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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유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혹시 갈 곳이 없으면 저랑 같이 갈래요?”

임유진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

유진은 자기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충동적으로 낯선 남자를 집에 데려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이 남자가 아무런 공격성이 없어 보여서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이 남자가 감옥에 있을 때의 자신과 너무 닮아서일 수도 있다.

그도 아마 그녀와 똑같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 치고 있는 그녀에 반해, 그는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는 것 같았다.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괜찮으시다면 바닥에서 주무시겠어요? 이불 깔아 드릴게요.”

유진은 침묵을 유지하는 상대에게 새 수건과 새 칫솔을 꺼내 건네주었다.

“욕실은 저쪽이에요. 남자 옷이 없어서……, 최대한 옷이 젖지 않게 조심하세요.”

남자가 욕실에 들어가자 유진은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여분의 이불을 꺼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그리 집은 크지 않은 원룸이다.

기껏해야 5평 남짓한 크기에 따로 주방도 없이 달랑 화장실 하나 있는 게 다였다. 때문에 평소에 요리를 해 먹을 때면 구비해 둔 인덕션을 사용하곤 했다.

남자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는 물에 젖어있었다.

유진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수건 하나를 꺼내 들고 몸을 일으켰다.

“허리 좀 숙여 봐요.”

남자는 허리를 숙이는 대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물기를 닦아드리려고요. 머리가 너무 축축하잖아요, 안 말리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에요. 다른 뜻은 없어요.”

여전히 유진을 빤히 쳐다보던 남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지금 나 걱정하는 거예요?”

서늘한 목소리였지만 이상하리만치 듣기 좋았다.

“네.”

유진은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당신을 데려온 이상 걱정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속눈썹이 살짝 떨리던 그는 이내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제야 유진은 수건을 그의 머리에 덮고 담담히 물기를 털어주었다.

“이름이 뭐예요?”

오랜 침묵 끝에 그의 입에서 두 글자가 튀어나왔다.

“혁이.”

“혁?”

유진은 그 이름을 읊조렸다.

“전 임유진이에요. 어디 살아요? 가족은요?”

“없어요.”

유진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물음 뒤 돌아온 대답에 하던 행동을 멈췄다.

‘가족이 없었어? 그래서 길거리를 나돌아 다녔던 건가?’

‘난 가족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보면 처지가 비슷하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 빼고.’

“우리 참 비슷하네요.”

유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닦아주었다.

물기를 거의 닦은 그녀는 수건을 내려놓고 빗으로 그의 머리를 빗겨줬다.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이마 전체가 드러났을 때, 유진은 그가 상상 이상으로 잘생겼다는 걸 알았다.

정교한 이목구비는 동양인들 사이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입체감이 있었고, 특히 그녀를 보는 그의 눈은 전처럼 텅 비어 있지 않고 오히려 무언가로 가득했다.

“배고프죠? 제가 먹을 걸 좀 만들어 올게요.”

유진은 길거리를 쓸면서 그가 밥을 먹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에 유진은 계란을 푼 라면을 끓였다.

“자, 얼른 먹어요. 뜨거우니까 천천히 불어먹어요.”

혁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라면을 먹었다. 그를 빤히 쳐다보던 유진은 집에서 느껴지던 적적함이 사라진 것 같았다.

‘설마 이 사람 때문인가?’

“이렇게 추운 날 얼어 죽으면 어쩌려고 혼자 길바닥에 앉아 있었어요?”

유진은 문득 길거리에서 그를 데리고 왔을 때, 그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때 유진은 자신이 얼음을 쥐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었다.

“그런 걸로 안 죽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안 죽어요.”

‘뭐, 본인이 정 그렇다면야.’

혁이 라면을 다 먹은 후, 유진은 곧바로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전 불을 켜고 자요, 불편해도 참아줘요.”

이건 출소 이후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혁은 그녀의 말에 괜찮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유진은 침대에 누웠고, 혁은 그녀가 깔아 놓은 이불 위에 누웠다.

여태 유진은 아무리 자려고 노력해 봐도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아니, 두려웠다.

잠에 들기만 하면 다른 수감자들에게 맞고 욕먹으며 괴롭힘을 당하던 꿈을 꿨다. 그 당시 그녀는 여러 번 맞아 피를 토하거나 갈비뼈가 부러지는 게 다반사였다.

심지어 그녀는 이대로 감옥에서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날은 날이 밝을 때까지 세상모르고 편히 잔 데다 평소처럼 악몽도 꾸지 않았다.

유진은 침대 밑에 누워 있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설마 저 사람이 있어서 그런가? 이 방에 나 혼자뿐이 아니라 곁에 누군가 함께 있어 줘서?’

그녀는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몸을 웅크리더니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남자의 볼에 대며 손아귀에 전해지는 그의 온기를 느꼈다.

‘진짜네, 꿈인 줄 알았는데. 어제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집까지 데려왔구나.’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가 잠에서 깨 아름다운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유진은 얼굴을 붉히며 이내 뒤로 물러났다.

“저, 전 그저…….”

‘그저 뭐? 뭔 변명을 하고 있어? 이렇게 잠자는 남정네 얼굴을 만지고 있는 게 아무리 봐도 변태처럼 보였을 텐데.’

무안한 듯 남자를 쳐다봤지만 그는 여전히 두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기…… 갈 곳 없으면 당분간 여기서 지내요. 한 사람 더 있을 공간은 있으니까.”

다급한 나머지 유진은 계획에도 없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고 나니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너무 외로운 나머지 가끔은 아무나 곁에 있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면 늦은 밤마다 지난날의 악몽을 떠올릴 필요 없을 테니까.

한때 아름다운 삶을 살아오던 그녀는 지금 너무나도 초라했다.

심지어 그녀는 잘 지내다가도 문득 3년간의 악몽 같았던 감옥 생활이 뇌리에 스쳤다. 이는 그녀를 평생 괴롭힐 트라우마였다.

까만 그의 눈동자가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혁의 눈에는 의아함이 번쩍였다.

유진은 냉정을 되찾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싫다면 못 들은 거로 해요.”

“절 원해요?”

그의 얇은 입술로 들리는 목소리는 소복이 내린 눈과같이 포근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면 오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치 ‘원한다.’라거나 ‘싫다.’만을 놓고 묻는 말이었다.

그는 눈빛마저 차분했다.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까미아빠
와..여주오지랖 개쩌는듯.. 날이추어서 노숙자가 걱정되면ㅈ경찰에신고를하면되지...다큰처자가 혼자사는집에 겁도없이 성인남자를??뭘보고대체??뭐지처지랑비슷해보여서?뭔개소리야...떠돌이개도아니고;;요새같이흉흉한세상에 레알머리꽃밭이네 감방도갓다왓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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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님, 저택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아니면…….”“서흥구로 가.”병원에서 나오기 바쁘게 물어 오는 고이준의 물음에 강지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서흥구는 바로 임유진이 살고 있는 동네다. 이준도 자기의 상사가 그 자그마한 단칸방에 얼마나 더 머물 예정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서흥구로 향하던 중, 신호등이 바뀌는 찰나 이준은 갑자기 지혁을 불렀다.“대표님, 저기 임유진 씨가 있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지혁이 고개를 돌려 봤을 때, 맞은편 거리에서 바닥을 쓸고 있는 가느다란 그림자 보였다.형광색 작업복에 질끈 묶어맨 머리를 한 채 추위에 오돌오돌 떠는 유진의 입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그리고 그때, 스쿠터 한 대가 적색 신호등에 걸리지 않기 위해 쏜살같이 유진의 곁을 지나면서 유진의 다리를 스치고 가는 바람에 유진은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하지만 스쿠터 주인은 잠시 멈칫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쌩 지나가 버렸다.지혁과 이준 역시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대표님, 저 차주에 대해 조사하고 책임을 물을까요?”이준은 자기의 상사가 유진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는 데다 지난번 클럽에서도 유진을 위해 나섰기에 이번 일도 당연히 나설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길 건너편에 넘어진 유진을 보는 순간 지혁의 뇌리에는 할아버지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오늘 네가 한 말 꼭 기억해 두거라 영원히. 네 아비처럼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고…….”‘그래, 난 절대 아버지처럼 여자 때문에 인생 망치는 짓 안 해. 이건 그저 게임일 뿐이야.’게다가 지혁은 지금 평소의 자신이 아니기에 유진이라는 환경미화원에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참견하지 마.”지혁은 눈빛을 거두며 담담하게 명령했다.하지만 그 명령을 받은 이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설마 내가 잘못 짚은 건가? 대표님이 유진 씨한테 마음이 없나?’전방의 적색 신호등은 어느새 녹색으로 변해 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시각, 서미옥이 넘어진 유진을 일으켜 세웠다.“유진 씨,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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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실망할 일은 없을걸?”임유진은 이 말만 남기고 다시 양말을 신고는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그런 유진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러면 나중에 절대 실망하면 안 돼.”--클럽에서의 일이 있고 난 뒤 임유라는 매일매일을 불안에 시달렸다. 그날의 하 감독의 태도는 이상하다 못해 지금까지도 이해되지 않았으니까. 더욱이 그다음 날 하 감독은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총감독마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심지어 교체된 이유를 제작진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함정이었다. 하지만 유라는 왠지 모르게 총감독까지 교체된 이유가 하 감독의 일과 관련 있으며 나아가서 유진과도 관련이 있다고 느껴졌다.그렇게 의심만 하기를 며칠째, 유라는 하 감독이 오른손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오른손은 하 감독이 임유진을 때린 손이었던 것 같은데.’그런 생각이 들자, 유라는 몹시 불안해졌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답을 얻을 수 없었다.‘그날 하 감독이 전화를 받고 난 뒤부터 임유진에 대한 태도가 변했어. 게다가 하 감독이 이렇게 된 건…… 너무 우연의 일치 아닌가? 아니면…… 임유진 뒤에 정말 대단한 백이 있는 건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대단한 백이 있다면 유진이 고생을 하며 길거리에서 청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혼자서 끝내 결론을 얻어내지 못한 유라는 그날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곧이곧대로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하지만 임정호는 작은딸이 큰딸더러 술 접대를 하게 했다는 걸 듣기 바쁘게 유라를 째려보았다.“넌 어떻게 네 언니한테 술 접대를 시킬 수가 있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안은…….”“술 접대가 뭐 어때서요? 게다가 유라도 우리 집을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유라가 유명해져야 우리 가족도 잘 먹고 잘살 거 아니에요. 설마 당신, 그 감옥 다녀온 큰딸한테 희망 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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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57화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경빈 씨!”공수진은 이경빈의 이름을 외치며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이경빈은 시선을 내려 탁유미의 떨리는 손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공수진을 향해 말했다.“먼저 올라가. 금방 갈게.”“네?”공수진은 그 말에 깜짝 놀라 열림 버튼을 결국 누르지 못하고 그렇게 문이 닫힐 때까지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다.불안함과 초조함이 밀려왔다.그도 그럴 것이 문이 닫히기 전 이경빈이 그녀가 탁유미를 바라보았으니까.게다가 그 눈빛은 누가 봐도 망설이는 눈빛이었다.뭘 망설이는 거지?왜 탁유미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거지?4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이경빈은 탁유미만 보면 흔들리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 거지?탁유미 그 여자가 뭐라고?공수진은 이를 꽉 깨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어차피 죽을 거 그냥 지금 빨리 죽어버리지! 왜 또 경빈 씨 앞에서 알짱대는 건데!?’엘리베이터 앞.이경빈은 지금 자기 스스로도 놀라는 중이다.탁유미가 ‘잠깐만’이라고 외치며 팔을 잡았을 때 정말 발걸음이 멈춰선 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할 말이 뭐야. 빨리 말해.”이경빈이 그녀에게 잡힌 팔을 우악스럽게 빼내며 말했다.더 이상 그녀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지는 건 싫었다.“나랑 윤이한테 시간 좀 내줘. 같이 놀이공원 가자. 윤이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랑 아빠랑 같이 놀이공원을 가본 적이 없어. 그래서 윤이한테 좋은 추억 만들어주고 싶어.”“좋은 추억?”이경빈이 차갑게 웃었다.“탁유미, 너랑 내가 윤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을 가는 게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해? 대체 무슨 꿍꿍이야? 아들을 포기하는 척 이렇게 다시 나한테 접근하는 게 목적이야? 새삼 이씨 가문 안주인 자리가 그립기라도 해?”탁유미는 떨리기도 하고 또 불안하기도 하기도 했지만 상처를 받았다던가 분노했다던가 하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이경빈의 말은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으니까.탁유미는 그저 이경빈이 자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56화

    탁유미는 이경빈이 묵고 있는 호텔로 와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물었다.“이경빈 씨를 만나고 싶은데 지금 호텔에 있나요?”“이경빈 고객님은 현재 외출 중이세요. 용건이 있으신 거면 직접 연락을 해보시거나 로비에서 기다려주세요.”직원이 예의 있게 답해주었다.탁유미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며 결국 기다리기로 했다.연락하고 싶어도 이경빈의 연락처 같은 건 진작 삭제했으니까. 그녀가 이경빈과 연락할 수 있는 루트는 양육권 분쟁 준비 당시 연락을 취했었던 그의 변호사와 연락하는 방법뿐이었다.탁유미는 넓은 로비 한쪽에 가만히 앉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시간이 정처 없이 흐르고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그때 문이 열리고 드디어 이경빈이 모습을 드러냈다.그의 옆에는 공수진도 함께 있었다.이경빈은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탁유미의 모습을 발견했다.로비에 사람이 적었던 것도 아닌데 그의 눈은 마치 자석처럼 단번에 탁유미 쪽으로 이끌렸다.“네가 왜 여기 있어?”이경빈이 자기 앞으로 걸어오는 탁유미를 향해 물었다.“할 말이 있어.”탁유미가 조금 쭈뼛거리며 말했다.“할 말?”이경빈이 코웃음 쳤다.“나한테는 3개월 동안 만큼은 찾아오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하더니 네가 찾아오는 건 또 괜찮나 보지?”비아냥 섞인 그의 말에 탁유미가 입술을 깨물었다.그때 옆에 있던 공수진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경빈 씨는 왜 찾아왔어요? 설마 이제 와서 양육권은 못 주겠다고 하려는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해도 안 돼요. 약속은 약속이니까!”말을 마친 후 공수진은 이경빈의 팔을 더 꽉 잡았다.“경빈 씨, 이만 가요.”“그래.”이경빈이 지나쳐 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자 탁유미가 손을 뻗어 이경빈의 앞을 막아섰다.“나랑 잠깐 얘기 좀 해. 몇 분이면 돼!”그러자 이경빈이 싸늘하게 대꾸했다.“우리 사이에 할 말이 뭐가 더 남았나? 3개월 얘기를 꺼낸 건 너야. 나도 더는 너 안 찾아갈 테니까 너도 나 찾아오지 마. 그리고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면 꿈 깨!”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55화

    한지영은 깨어났다고 해도 한두 시간가량 뒤면 또다시 잠이 들고는 했다.오늘도 새벽녘에 잠시 눈을 떴다가 몇 시간 뒤에야 다시 눈을 떴다.탁유미는 임유진보다 일찍 와 있었기에 투명 유리 너머로 한지영이 눈을 뜬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녀는 줄곧 한지영에게서 젊은 시절의 자신을 투영해서 보고 있었기에 누워있는 한지영을 보는 게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탁유미는 자신은 얼마 안 가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한지영은 이번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잘 살기를 바랐다.물론 지금껏 한지영에게는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지만 말이다.병문안을 다 마친 후 탁유미와 임유진은 함께 병원을 나섰다.“언니, 몸은 좀 어때요? 실력 좋은 선생님들한테 한번 봐달라고 할까요?”임유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괜찮아요. 약만 꾸준히 먹으면 통증도 가벼워지거든요. 그리고 지금 봐주는 선생님도 실력 있는 분이에요.”탁유미의 말은 사실이었다.임유진이 걱정되어 탁유미의 주치의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그쪽으로는 유명한 의사였다.“그럼 금전적으로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줘요.”“알겠어요. 고마워요.”탁유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인생이 평탄한 편은 아니었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임유진 같은 친구를 사귈 수 있어 그녀는 스스로가 무척이나 행운아처럼 느껴졌다.“참, 윤이는요? 윤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지난번에 사준 옷이랑 장난감은 마음에 든대요?”임유진이 물었다.“엄청 좋아했어요. 요 며칠은 유진 씨가 사준 장난감만 가지고 놀아요. 그리고 옷은 한번 입어 보더니 자기 마음에 쏙 들었는지 특별한 날 입을 거라며 옷장에 고이 모셔둔 거 있죠?”그 말에 임유진은 윤이와는 정반대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새 옷을 사게 되면 근처 편의점을 가는데도 그 옷을 입으려 했고 다른 옷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다.“다음에 윤이 데리고 놀이공원이라도 가야겠어요. 윤이가 새 옷 입은 모습이 궁금해요.”“그래요.”탁유미는 그녀의 말에 뭔가 떠오른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54화

    그 말에 강지혁의 몸이 움찔했다.임유진의 목소리와 그녀의 따뜻한 품이 마치 끝이 없는 바다처럼 그의 모든 불안을 다 잠재워주고 있었다.아마 그녀가 있어 살아있는 게 이토록 감사하게 느껴질 것이다.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이렇게까지 다채롭고 즐겁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저 매일매일 의미 없는 하루만 보낼 뿐 삶에 대한 더 큰 욕망은 없었을 것이다.“유진아, 너랑 있으면 꼭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강지혁이 중얼거렸다.“꿈 아니야. 너랑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내게 꿈이 아닌 듯 나도 너한테 꿈이 아니야. 우리가 결혼한 것도 아이를 가진 것도 이렇게 함께 사는 것도 전부 꿈이 아니야.”임유진이 진지하게 답했다.“그러니까 혁아, 나한테 조금만 더 기대줘. 우리한테는 앞으로 좋은 일밖에 없을 거야.”그 말에 강지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얼굴을 가까이해 부드럽게 입술을 포개왔다.“응. 그럴게.”두 사람의 미래가 정말 그녀가 말한 것처럼 좋은 일밖에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그는 지금 이 달콤함이 영원하기만은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만약 그녀가 곁에 있어 주는 지금이 그저 한낱 꿈에 불과하다고 하면 그는 기꺼이 눈을 가린 채 이 꿈속에 갇히고 싶었다....임유진은 한지영 부모님으로부터 한지영이 깨어났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중환자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 임유진은 눈가가 다 빨개졌다.깨어났다고는 하나 그저 눈만 뜨고 조금의 반응만 있을 뿐 여전히 목소리는 내지 못해 무슨 이유로 이런 꼴을 당했는지 물어보기는커녕 간단한 인사조차 건넬 수 없었다.게다가 임유진이 막 중환자실 도착하고 얼마 안 가 한지영은 또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아직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었다.“아주머니,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조만간 몸이 차차 회복되면 말을 할 수 있게 될 거예요.”임유진이 한지영 부모님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자 이해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훌쩍거렸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53화

    “그래?”강지혁이 피식 웃으며 임유진을 안아 자기 다리 위에 앉혔다.임유진은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강지혁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정말 나한테 소홀한 적 없어?”강지혁의 얼굴은 어느새 임유진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밤하늘처럼 예쁜 눈동자가 다정하고 또 부드럽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강지혁이 이럴 때면 임유진은 꼭 여우에게 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참, 너 생일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지?”임유진이 핑크색으로 물든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생일 선물로 뭘 줄지는 이미 다 생각해뒀어. 대신 뭘 받든 싫어하면 안 돼.”그 말에 강지혁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네가 뭘 주든 난 기쁘게 받을 거야. 그런데 내 생일날은...”강지혁이 잠깐 뜸을 들였다.“나는 그날 우리 둘이서만 있었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 말고.”그 말에 임유진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우리 둘이서만?”“응. 내 생일이잖아. 나는 다른 사람이 오는 거 싫어.”강지혁의 목소리가 어쩐지 묘하게 가라앉았다.그리고 눈가에는 언뜻 쓸쓸함도 스쳐 지나갔다.“이유 물어봐도 돼?”강지혁의 기분 변화를 감지한 임유진이 물었다.그 질문에 강지혁은 입을 꾹 닫은 채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깊이 묻었다.그의 호흡이 어딘가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꼭 어두운 무언가가 강지혁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혁아, 우리 이제 부부야. 부부끼리는 좋은 일은 물론이고 힘든 일도 다 공유하는 거야. 너한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 마음이 편해지게 들어줄 수는 있어.”임유진의 다정한 말에 강지혁은 더 세게 그녀를 끌어안았다.임유진은 이제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그녀 앞에서는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내 생일 다음 날, 그 여자가 나랑 아버지를 떠났어.”임유진은 그 말에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강지혁이 말한 ‘그 여자’가 그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챘다.“그날은 모든 게 다 꿈만 같았어. 정말 모든 게 다 평화로웠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52화

    “못 들어주겠네, 정말. 이경빈 씨, 뚫린 입이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그때 옆에 있던 임유진이 참지 못하고 셋 사이에 끼어들었다.아직 당시 골수를 이식해준 실질적인 증거를 못 찾았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그녀는 아마 바로 이경빈에게 골수 기증가자 탁유미라고 말했을 것이다.이경빈은 그 말에 시선을 돌려 임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임유진 씨, 당신이 아무리 강지혁 씨의 아내라고 해도 나한테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은 없습니다.”이에 임유진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닌 이경빈의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이경빈 씨, 내 말 허투루 듣지 마세요. 당신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지 곧 알게 될 테니까.”탁유미는 임유진과 이경빈 사이에 트러블이라도 생길까 봐 서둘러 임유진의 팔을 끌어당겼다.임유진은 지금 뱃속에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품고 있기에 이렇게 화를 내게 하면 안 된다.“유진 씨, 난 괜찮으니까 화내지 말아요.”탁유미는 말을 마치고 임유진을 자기 뒤쪽으로 보낸 후 다시 이경빈을 바라보았다.조금전과는 달리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쓸쓸한 감정 따위 보이지 않았다.그 대신 자리 잡은 건 마치 낯선 타인을 보는 듯한 냉랭함이었다.“이경빈, 내가 바라는 건 네가 윤이한테 잘하는 거, 그거 하나야.”다른 건 이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이 남자 때문에 탁유미는 그간 너무 많은 감정을 써버렸다.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이 남자에게 쓸 여력의 감정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았다. 설사 감정이 남아 있다고 한들 이 남자에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탁유미는 말을 마친 후 고개를 돌려 임유진의 팔을 잡았다.“유진 씨, 이만 가요.”탁유미와 임유진이 매장을 완전히 떠나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을 때까지 이경빈은 그 자리에 선 채 탁유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해지고 또 초조해지는 걸까.꼭 줄곧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느낌이 든다.하지만 대체 뭘...?뭘 잃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51화

    약 처방을 다 받은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임유진은 윤이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고 싶다며 탁유미와 함께 근처 백화점에 들렀다.“장난감은 이미 많아요. 동현 씨가 준 것만 해도 한가득 이에요.”탁유미가 거절하려 하자 임유진이 웃으며 말했다.“언니, 장난감이 많아서 싫어할 애들은 없어요. 이왕 나온 김에 윤이 겨울옷도 좀 사줘야겠다. 슬슬 날씨가 쌀쌀해지니까요.”임유진은 장난감을 다 고른 후 탁유미를 데리고 키즈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예쁜 옷들을 가득 고른 다음 돈을 지급하고 매장을 떠나려는데 그때 익숙한 두 명이 매장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임유진은 그 두 사람을 보고는 바로 안색을 굳혔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필이면 이 넓은 백화점 안에서 이경빈과 공수진을 마주쳐 버렸다.물론 상대방도 임유진과 탁유미를 보고는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는 듯 흠칫했다.이경빈은 탁유미 쪽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탁유미는 오늘 안색이 무척이나 안 좋아 보였고 가뜩이나 가녀린 몸인데 옷도 얇은 것을 입고 있어 더욱더 왜소해 보였다.실내에서는 큰 문제가 될 게 없는 옷이지만 밖으로 나가게 되면 바람 하나 제대로 막아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이 여자는 날씨 변화도 제대로 못 느끼나?“어머, 여기서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는데.”공수진이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소유권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이경빈의 팔짱을 더 세게 꼈다.“지난번에는 썩 유쾌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서로서로 다 잊어버리는 거로 해요. 제가 그렇게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참, 안 그래도 윤이 옷 사러 온 건데 이렇게 된 거 예쁜 옷 고를 때까지 잠깐 기다려 줄래요? 지난번에 보니까 제대로 된 옷 하나 없더라고요. 윤이도 이제는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인데 허름한 옷을 입힐 수는 없잖아요.”퍽 아이를 위한 말인 것 같지만 말투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마치 불쌍한 사람들에게 적선해준다는 듯한 느낌이었다.“필요 없어.”아니나 다를까 탁유미가 차가운 목소리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50화

    임유진은 기사님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탁유미와 함께 병원으로 왔다.줄을 서서 접수를 기다리는 동안 탁유미의 안색이 또다시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임유진은 그 모습에 어제 강지혁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언니, 아주머니 말대로 당시 언니가 골수를 기증해준 사람을 찾으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그러자 탁유미가 애써 미소를 지어보았다.“유진 씨도 엄마랑 같은 생각인 거예요?”“간이식만이 살길이잖아요.”임유진의 말에 탁유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간 기증은 가망이 없어요. 엄마가 나 몰래 병원에 연락해서 당시 내가 골수를 기증해준 사람을 찾으려고 했는데 어제 병원 측에서 전화가 와 받아봤더니 기증받은 사람이 간 기증을 거부했대요.”“네? 그럴 리가요.”임유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당연한 일이죠.”탁유미가 웃으며 답했다.“나랑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간을 떼어내 주는 리스크를 감당하려고 할 리가 없죠.”임유진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결국 삼켰던 말을 입밖에 내뱉고 말았다.“만약 그 사람이 이경빈이라면요? 언니한테서 골수를 이식받은 사람이 이경빈이라면요?”탁유미는 임유진의 말을 듣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이경빈이라뇨? 유진 씨,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임유진은 탁유미에게 어제 강지혁이 알아낸 것들을 전부 다 얘기해주었다.“그래서 나는 언니 골수를 받은 사람이 이경빈이라고 생각해요. 공수진은 골수를 기증한 적 따위 없는 거죠.”탁유미는 임유진의 말에 입만 달싹일 뿐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세 사람의 혈액형이 다 똑같은 특수한 혈액형이라니, 이런 우연이 정말 가능할까?탁유미는 자신이 구한 사람이 이경빈이라는 말에 문득 그때 의사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의사는 당시 골수 이식을 받는 사람은 젊은 남자고 외동아들이라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고 했었다.누군가를 특징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보들이었고 이런 사람들은 거리에 수두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349화

    물론 이경빈이 탁유미에게 일말의 감정도 없다면 말이다.“만약 거부하면 기절이라도 시켜서 수술대 위에 올려놓을 거야!”임유진이 이를 꽉 깨문채 단호하게 말했다.이에 강지혁은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그렇게 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신기해서. 넌 이제껏 그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통제한다거나 법망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려고 한 적 없잖아.”그 말에 임유진이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내렸다.흥분한 나머지 변호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언니한테 감정이입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봐. 만약 이대로 언니가 세상을 떠나면 공수진은 그때부터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기 세상인 것처럼 굴 거니까. 애초에 죄책감 따위 없는 인간이겠지만.”임유진은 뭔가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만약 이경빈이 정말 기증을 거부하면 혁이 너는 내가 하려는 일에 동의해줄 수 있어? 날... 도와줄 수 있어?”임유진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했다.그도 그럴 것이 이건 그녀가 평소 지키던 선을 벗어나는 일이니까.하지만 그녀는 이대로 탁유미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윤이가 엄마를 잃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강지혁은 그녀의 질문에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전에도 말했지.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해주겠다고. 그게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해도 난 널 위해 해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강지혁은 지금 충동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단지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그는 정말 임유진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만약 네가 날 도운 거로 인해 너한테 불필요한 일이 생기면?”강지혁은 그 질문에 임유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그게 뭐? 유진아, 나는 너를 위해 하는 일이라면 그 무엇 하나 달갑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고.”강지혁에게 잡힌 손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손을 꽉 맞잡더니 눈을 맞추고 자기 진심을 내보였다.“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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