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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6화 유일한 이유가 아니었어

권하윤이 모든 감정을 쏟아내자 전화 건너편에서 아무렇지 않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났어?”

가벼운 말투는 두 사람의 위치가 얼마나 다른지 또 한 번 상기시켰다.

순간 저 자신이 우스웠다.

고통스러워하는 제 모습이 도준한테는 그저 우스웠을 걸 생각하니 타오르던 분노마저 꺼지며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네, 끝났어요.”

“끝났으면 이제 내가 말해도 왜?”

상의하는 듯한 도준의 말투에 하윤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맞아. 비행기 폭발 사고 때 추형탁이 손써 두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런데 그 정도쯤은 사고 당시 낙하산 타고 내려오면 피할 수 있는 거였어.”

하윤은 반신반의하는 듯 물었다.

“알았다면 왜 그렇게 됐어요?”

“추형탁 말고도 손쓴 사람이 더 있었으니까.”

“공은채요?”

“응.”

실험 훈련 실패한 사건과 뇌물수수에 연루된 사람의 생사가 불확실한 것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도준이 실종되었을 때, 추형탁은 거리낌 없이 도준을 문제 삼아 조관성을 공격했고, 공씨 가문도 추형탁에게 줄을 섰을 거다. 그리고 그 덕에 두 무리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었고.

그러니까 어찌 보면 공아림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도준이 조관성과 짜고 공씨 자문을 무너뜨린 것도 맞는 말이고, 그게 모두 공은채 때문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도준이 저 때문에 조 국장과 손잡았고, 그로 인해 정권 싸움에 연루된 줄 알고 밤잠까지 설쳤다는 게 참 가소로웠다.

공은채라면 먼저 사고를 치고 나중에 통보한다 해도 도준은 아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시끄러운 곳과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으니, 옛 감정이 다시 싹 텄을 수도 있고…….

생각할수록 짜증이 치밀어 올라 하윤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최후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문자는 도준 씨가 보낸 거 맞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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