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권하윤은 잠이 들지 않아 침대 위에서 뒤척이다가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했다.그렇게 11시까지 그 동작을 반복하다가 끝내 폭발한 하윤은 핸드폰을 이불 안으로 던져 버리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전화하겠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많이 보낸 문자에 답장도 안하고. 전화 와도 내가 대꾸하나 봐라.’그러던 그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 머리까지 이불을 덮고 있던 하윤은 당연히 자기가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불을 걷어낸 순간, 문틈 사이로 빛이 흘러 들어오는 게 보였다.‘집에 누가 있어!’‘누가 들어왔나 봐!’하윤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움켜쥔 채 허리를 굽히고 문틈 사이로 밖을 관찰했다.그 순간, 커다란 힘이 침실 문을 확 열어 젖혔다.“아!”너무 놀란 나머지 하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 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살려달라고 소리치려던 찰나,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그만 소리쳐. 나야.”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은 하윤은 문밖에서 흘러 드는 빛으로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장난기 섞인 익숙한 얼굴을 확인하자, 하윤은 화가 난 듯 남자의 가슴을 내리쳤다.“오면 온다 왜 말을 안 해요? 놀랐잖아요.”도준은 피하지도 않고 하윤에게 맞아주면서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서프라이즈 해주려고 그랬지.”본인은 도준을 때리느라 손이 아픈데 도준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자 하윤은 구시렁댔다.“나빠 죽겠어.”“싫어? 그럼 나 간다?”도준이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굴자 하윤은 얼른 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다.“안 돼요. 못 가요.”고개를 젖힌 채 만류하는 모습은 바로 입맞추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이에 도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하윤의 이마를 콩 내리쳤다.“그래, 안 갈게. 그러면 어디 한번 나 붙잡아 봐.”하윤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끝내 도준에게 입을 맞추었다.분명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그리움에 병이 난 것 같았다.어느새 하윤의 등은 벽에 밀쳐졌고 허리를 끊어 안은 힘은
여전히 공포에 질려 하는 정다정을 보는 순간 권하윤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다정에게 있어 성인 남성에게 대항하는 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다정은 하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끝내 용기를 낸 거다.게다가 아까 도준이 때린 것은 아니냐고 물은 것도 예전에 장옥분이 맞고 살던 트라우마 때문일 거다.매일 어머니가 맞는 걸 봐왔으니 하윤도 똑 같은 일을 당한 거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팠지만 하윤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걱정하지 마. 언니 남편은 언니한테 엄청 잘해줘. 때린 적도 없고. 일찍 자고 내일 아침 같이 식사하자.”다정은 도준과 하윤의 방을 힐끔거리더니 이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방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응. 왜 그래? 잠이 안 와?”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다시 저었다.그러고는 하윤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언니, 아까 꽃병 깨뜨려서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제가 너무 바보 같았어요.”잇따라 일어난 하윤이 얼른 다정을 달랬다.“괜찮아,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구해주려던 거잖아. 언니 감동받았어.”하윤은 말하면서 다정을 방으로 끌고 가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주었다.“잘 자고 일어나면 내일 모든 일이 잘 될 거야.”스탠드 램프만 켠 침실 안, 다정이 이불을 덮어주는 모습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다정은 엄마가 그리워 눈물이 앞을 가렸다.“언니…….”다정이 이제 막 말하려던 찰나, 밖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뭘 그렇게 꾸물거려? 얼른 와.”도준이 다정을 잡으러 방까지 들어올까 봐 하윤은 서둘러 다정에게 작별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 때문에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다정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하윤이 방에 돌아왔을 때, 도준은 침대에 기대 있었다. 팔에 두른 붕대는 남자의 겉모습에 영향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색다른 매력을 더했다.이불을 허리까지 덮은 채 훤히 드러낸 복근과 스탠드 등 불
남자의 넓은 등에 가려진 불빛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하윤의 가느다란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숨결보다 더 뜨거운 남자의 시선이 드리우자 하윤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하지만 도준이 놀라기라도 할까 봐 두려운 것처럼 숨소리를 가늘게 내며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다.“할 수 있는 건 저도 더 생각해 봐야겠는데요.”그런데 하윤의 발은 뻔뻔한 그녀의 태도와 달리 자꾸만 들썩이며 도준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아니면 제가 더 주물러 드릴까요? 저 요즘 밥도 많이 먹어 힘이 남아 돌거든요.”하윤의 교활한 웃음에 마음이 간질간질해난 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살짝 웃고는 앞으로 쑥 내미는 하윤의 손을 잡아 그 위에 입을 맞췄다.“그래? 그럼 이제 손 아프다고 하지 않겠네?”손등에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윤은 손을 뒤로 뺐다.“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제가 말한 행위는 지극히 건전한 거거든요!”“그래?”그때 도준이 하윤의 목덜미에 숨결을 내뱉으며 말했다.“그러면 우선 할 일부터 하고 이따가 주물러.”“…….”창밖의 달빛이 바닥에 흩뿌려져 카펜 위를 밝게 비추었고 강하게 불던 밤바람은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잠잠해졌다.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운 하윤은 몸에 힘이 빠져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귀찮았다.하윤의 그런 모습이 재밌었는지 도준은 피식 웃으며 하윤의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는 손등으로 그녀의 얼굴을 톡톡 쳤다.“어깨 주물러 준다며? 번복하는 거야?”“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일어나지 못하겠어요.”아니나 다를까 한 손에 다 잡힐 듯 가는 허리에 커다란 손자국이 나 울긋불긋한 키스마크와 뒤엉켜 있었다.그때, 하윤이 눈물 머금은 듯한 촉촉한 눈으로 도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흥, 마음 아파하지도 않고 주물러주지도 않고.”이제 갓 정사가 끝난 뒤라 불만 섞인 말투에 애교가 흘러 넘쳐 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래, 돌봐줄게.”자기 체온보다 훨씬 뜨거운 손이
문이 열리자 한민혁은 목을 빼 들고 안을 슬쩍 보고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다 잔 거 맞지? 시작해도 돼?”조심스러운 한민혁의 모습에 민도준은 사정없이 그에게 발길질했다.“제대로 말해.”‘내가 뭐 어쨌다고? 발각될까 봐 조심하는 거잖아.’민혁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억울한 듯 구시렁댔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른 도준의 붕대를 갈아주었다.물에 축축해진 붕대를 풀고 새로 준비한 붕대를 가지려고 몸을 돌린 순간, 멀쩡한 팔을 보자 민혁은 순간 멍해졌다.“어, 붕대를 감아야 하는 팔이 어느 쪽이더라?”“…….”잠시 뒤, 있지도 않은 도준의 상처를 붕대로 감은 민혁은 떠나면서 다시 한번 침실을 흘깃거렸다.“형, 대체 언제까지 속일 거야?”“왜? 불만 있어?”날카로운 도준의 눈빛에 민혁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럴 리가. 그냥…….”이윽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하윤 씨가 억지 부리는 사람도 아닌데, 언젠가 알게 될 일, 다른 사람한테서 듣기 전에 형이 먼저 말하는 게 어때?”진심 어린 민혁의 조언에 도준은 또 담배 한 개를 입에 물더니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그냥 가라.”도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 챈 민혁은 얼른 목을 움츠린 채 도망쳐 버렸다.그로부터 얼마 뒤, 도준은 희뿌연 연기를 연기를 내뿜는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하지만 방 문이 닫히는 순간, 비스듬히 열려 있는 객실의 문틈 사이로 다정이 맨발바람으로 서서 문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다.……다음날.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끝내 눈을 뜬 하윤은 야릇한 도준의 동작에 몸이 달아올랐다.“뭐 하는 거예요? 왜 사람 자게도 못해요?”그때 등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도준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잇따라 들렸다.“누가 자지 말래? 하윤 씨는 잠 자고, 난 하윤 씨랑 자고, 서로 방해되는 것도 아니잖아.”하윤의 반항은 도준의 막무가내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시각, 문 밖에서 유정인을 도와 아침상을 준
권하윤은 이상하게 행동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머리가 아파왔다. 한 명은 위험했고 다른 한 명은 안타까웠기에,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이 테이블 살 때 좀 작은 걸 산 거 같아요. 둘이 같이 앉으니 약간 좁아 보이는데 제가 그냥 가운데에 앉을게요.”말을 마친 하윤은 민도준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움츠린 채 가운데로 의자를 옮겼다. 옆에서 유정인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네 사람은 족히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 ‘이게…… 좁다고?’자리에 앉은 후, 불안한 하윤은 도준의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며 말했다. “도준 씨,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았으니 많이 드시고 몸보신하세요.”도준은 하윤의 불안한 얼굴을 살피며 손을 들려 다가, 맞은편에 앉은 정다정이 갑자기 기침을 시작했다. 다정은 마치 무언가에 사레가 들린 것처럼 계속 기침하자 하윤은 바로 휴지를 건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다정이 기침을 멈추자, 하윤은 뒤에서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하윤은 몰래 테이블 아래에서 도준의 무릎을 살짝 스치며, 눈을 깜빡이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도준은 하윤을 무시하고, 나중에 다시 따질 것을 기다렸다. 이번 식사로 하윤은 심신이 굉장히 고단했지만 평온을 유지하려 애썼다.식사 후, 다정이 방으로 돌아가자, 하윤은 바로 일어나 도준의 뒤로 갔다. 하윤은 팔을 도준의 목뒤로 두르고, 턱을 그의 어깨에 대며 말했다. “도준 씨, 왜 이렇게 조금만 드시고 어떻게 배가 부르겠어요?”도준은 낄낄 웃으며 대답했다. “화가 너무 나서 그런가 보지.”하윤은 도준이 특별히 돌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정작 자신은 다정을 챙기느라 바빴던 것을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꼈다. 하윤은 도준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미안해요, 도준 씨. 당신이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화내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까웠어요.”도준은 하윤이 귀찮게 하는 손을 떼어내며 비스듬히 그
권하윤은 이상함을 느꼈다. ‘혹시 정다정이 잠든 걸까?’민도준은 이미 출발할 준비가 되었지만 안 나오는 하윤에 차 키를 돌리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갈 거야 말 거야?”다정이 식사할 때는 괜찮아 보였고, 집에서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 하윤은 유정인 아주머니 아주머니에게 다정을 부탁하고 서둘러 나섰다.민씨 집안의 개인 병원차에서 내리자마자 간호사와 의사가 따라와 주민수와 주림의 상태에 대해 보고했다. 주림의 검사 결과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지만, 심리적 문제가 있어 심리학자와 정신과 전문가의 상담이 이어지고 있었다. 반면 민수는 나이가 많아 여러 가지 작은 건강 문제가 있었으며, 최근에 작은 수술을 받았다.도준이 그들을 잘 돌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하윤은 감사의 뜻으로 그의 팔 안쪽을 만지작거렸다.도준은 하윤을 살짝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안심했어?”하윤이 달콤하게 대답했다. “언제나 당신을 믿었어요. 그리고 안심했어요.”도준은 피식 웃으며 하윤의 말을 꿰뚫어 보지 않았다. 둘은 먼저 주림을 보러 갔는데 방에 들어가기 전에 도준이 멈춰 서자 하윤은 그런 도준의 행동이 의아했다.“혼자 들어가. 난 담배 한 대 피울게.”하윤은 도준이 자신에게 공간을 주려는 것을 깨닫고, 고마워하며 말했다. “그럼 빨리 나올게요.”한동안 보지 못했던 주림은 정신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외부와의 교류가 없어 보였다.그 와중에 천만다행인 것은 주림의 안색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하윤은 주림이 주씨 저택 지하실에서 자신을 붙잡았을 때, 그 순간 주림의 정신이 멀쩡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윤은 주림과 단둘이 있을 때 그의 앞에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주림 선배, 괜찮으세요? 제 말 들리세요?”주림은 잠시 하윤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자 하윤은 이것이 주림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한 반응인 줄 알고 조금 흥분했다. “제 말 들리나요? 정신이 드셨나요?”“죄송하지만, 그는 아직 의식을
주치의는 자신 있게 말했다. “환자의 문제는 주로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저희는 경미한 외부 자극과 함께…….”주치의의 길어지는 말에 도준은 말을 바로 잘랐다. “그런 무의미한 이야기는 됐어요. 거기 그 사람, 정말 병이 있는 거예요, 아니면 어떤 거예요?”주치의는 더 이상 학문적인 언변으로 더 이상 속이지 못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정신병이라면, 환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현재 그의 상태는 자기 보호의 일종, 심리적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도준은 놀랍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척할 수도 있다는 얘기겠네요.”“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심리 문제의 원인은 환자 자신이 생각에서 오는 자기기만일 수도 있어요. 환자가 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아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의식이 있다는 것입니다.”도준은 복잡한 말에 지쳐 말했다. “됐어요, 내가 말한 대로 매일 그 노인의 상태를 주림에게 얘기해요. 반응이 있든 없든.”“네, 민도준 씨. 항상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도준은 손짓으로 주치의를 보내고 시계를 확인하자 보육원 봉사가 끝나가는 시간이었고 그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병동 아래층하윤은 간호사가 주민수에게 IV를 교체하고 약을 먹인 후에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몸 상태가 좀 나아졌나요?”늙은 민수는 잠시 고민한 뒤에 하윤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려고 하자, 하윤은 서둘러 주민수를 말렸다. “수술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좀 더 누워계세요.”간호사가 나간 후, 민수는 하윤을 바라보며 자신의 옷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고는 다시 하윤을 바라보았다.사소한 동작이었지만, 민수가 전화번호를 묻는 것임을 알아차린 하윤은 고개를 저었다. 도준이 하윤에게 과거를 묻고 새로 시작하자고 했을 때, 하윤은 이 새로운 기회를 소중히 여겼고, 더 이상 믿음을 잃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민수를 보호하기 위해, 하윤은 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모든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자 민수의 표정은 실망인지 안도인지 분
말을 이어가려던 주민수는 갑자기 권하윤의 뒤를 바라보았고 하윤이 돌아보니 민도준이 들어오고 있었다. “왜 그래? 기다리느라 지루해진 건가?”문에 기대어 있는 도준은 병상 위의 민수를 훑어보며 미소 지었다. “그냥, 밖이 추워서 따뜻한데 있고 싶어서 들어왔어요.”그렇게 말하며, 도준은 대수롭지 않게 하윤의 옆에 앉았고 도준이 자리에 앉자, 하윤은 다시 민수에게 물었다. “방금 무슨 말씀하셨나요?”민수는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너무 얇게 입었어.”하윤은 민수의 걱정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더 따뜻하게 입을게요.”민수는 자신의 뜻을 내비치며 말했다. “너희 같은 젊은 아가씨들은 다 예뻐 보이려고 옷을 얇게 입지.”‘너희라니? 주림의 어머니가 젊었을 때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하윤이 물으려는 찰나, 도준이 입을 열었다.“그만하고, 어르신 편히 쉬게 해드리자, 가자.”민수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며 하윤은 도준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고 일어나며 작별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푹 쉬세요. 다음에 다시 뵐게요.”병원을 떠나면서, 하윤은 바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도준에게 쇼핑을 같이 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가 귀찮아할까 봐 걱정됐다.조수석에 앉아, 하윤은 자신의 옷을 만지며 도준이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말이 맞아요, 오늘 정말 춥네.”도준은 하윤을 흘긋 보고는 입을 열었다.“춥다고? 그럼 일찍 집에 가자, 집이 따뜻해.”자신이 생각한 대로 대답하지 않자 하윤은 말문이 막혔고 더 티가 나게 신호를 보내며 자신의 옷자락을 잡았다.“나 정말 오랫동안 쇼핑 안 해서 도준 씨가 신선한 면을 못 봐서 질려하고 그래서 나 버림받으면 어떡해. 에효, 살기 참 팍팍하다.”도준은 하윤의 계속되는 애처로운 목소리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내가 쇼핑하러 안 데려가면 나쁜 놈 되는 거야?”하윤은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도준의 어깨에 기대며 졸랐다. “가요,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