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돌아갈 거야?” 돌아간다는 말에 권하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눈물 머금은 눈동자를 굴렸다. “경성으로 돌아가는 거죠?” 깊에 파인 도준의 아이홀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니면? 설마 또 거짓말 친 거야?”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자기의 결심을 내비친 하윤은 순간 달콤함과 동시에 코끝이 찡해났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도준은 여전히 자기한테 기회를 주려고 한다는 생각에 하윤의 눈에는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이윽고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도준의 목에 감더니 그의 품에 완전히 안겼다. “도준 씨 따라 갈게요. 절대…… 도준 씨 곁을 떠나지 않을게요.” 다투고 난 뒤에 얻은 따스함은 마치 시고 떫은 맛 뒤에 따른 단맛처럼 여전히 신맛에 혀끝이 얼얼하면서도 달콤함이 느껴졌다. 한참 뒤, 도준이 하윤의 허리를 두르며 입을 열었다. “왜 갑자기 변했어? 진실을 이제 안 알아보려고?” 등에서 느껴지는 힘은 미친 듯 뛰던 하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동시에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불안마저 달래 주었다. 하윤은 도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중얼거렸다. “알아보고 싶어요. 그런데 도준 씨한테 미안한 짓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을 내뱉고 난 뒤에야 하윤은 도준이 왜 자기 때문에 화가 났는지 깨달았다. 공태준한테는 미안해하고 빚졌다고 했으면서 그동안 빚을 가장 많이 진 도준은 또 뒷전으로 밀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분명 도준이야말로 하윤을 가장 아끼고 보호해준 사람인데 말이다. ‘나 왜 이렇게 못됐지…….’ 생각할수록 미안한 마음이 더해져 하윤은 파묻고 있던 머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까는 제가 실수했어요.” 도준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응?” 이에 하윤은 반성하며 말했다. “아까 도준 씨가 제…… 남편이라서 도준 씨 마음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틀렸어요. 도준 씨가 저한테 가장 잘해주는 사람이기에 제일 도준 시 마음을 제일 먼저 고려해야 했어요.” “응.” 도준은 의자에
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에 흠칫 놀라며 몇 번이나 반박하려 했지만 황당하고 터무니없던 말이 마치 진짜 일어날 것처럼 느껴졌다. 공태준이 만약 하윤이 쫓던 원흉이 아니면 그를 전처럼 증오하지도 않을 거고, 지금껏 본인을 구해준 정을 생각해서 친구로 지내는 것도 문제될 것 없다. 도준의 말대로 태준이 점점 하윤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파고든다면 하윤이 그를 막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 태준을 경계하던 때도, 태준이 원하면 하윤에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친구라는 이유로 가까이 지내다가 천천히 접근한다면……. 이러한 가능성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하윤은 그제야 덜컥 겁이 나 도준의 손을 꽉 잡았다. “미안해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도준은 코웃음을 쳤다. “이제 알았으니 어떻게 할래?” 그 물음에 하윤은 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도준이 말한 이 모든 게 아직은 그저 가설에 불과하지만 태준이 하윤을 도와 가문과 척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이런 상황에 공태준을 무시한다면 너무 양심이 없는 처사지만 그렇다고 매번 대꾸하자니 잘못하다가 태준한테 넘어갈 지도 모른다……. 한참을 생각하던 하윤은 갑자기 도준을 보며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 모습이 재미 있어 웃음이 나려 하자 도준은 일부러 하윤을 밀어버렸다. “무슨 꿍꿍이를 꾸미기에 눈에서 빛이 나?” 하윤은 슬금슬금 도준에게 다가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준 씨. 세상에서 제일 좋은 도준 씨.” “뭘 마구 불러대? 소름 돋게.” 싫은 듯 자기를 밀어내는 도준의 태도에 하윤은 입을 삐죽거렸다. “이게 뭐가 소름 돋는다고 그래요?” 하윤은 작은 손으로 도준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공태준의 빚을 제가 갚을 수는 없으니 도준 씨한테 부탁할게요.” 도주은 약 2초간 멈칫하다가 하윤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 “한참 동안 생각한 방법이 나한테 모두 떠넘기는 거였어?” 도준의 손길에 간지러워진 하윤은 옆으로 몸을 피하면서 입은 멈추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떠넘기는 거
민도준의 말은 공태준의 퇴로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태준이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집어냈다. 도준이 하윤을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태준이 하윤을 돕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꿍꿍이가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도준의 몇 마디 말로 태준이 하윤을 위해 한 모든 일이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이건 태준에게 너무 잔인했다. 잔인하다 못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태준은 싸늘한 목소리조차 감추지 못했다. “저도 윤이 씨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서 도와준 것이니 민 사장님도 너무 신경 쓸 거 없어요.” 도준은 손으로 하윤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막거리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뭐가 됐든 우리 집사람이 하도 잘 속아넘어가서요. 제가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으면 누군가 우리 집사람 쉽게 보고 보답하라는 빌미로 접근해서 유괴라도 할까 봐 그럽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 쉽게 속아넘어가는 당사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것은 모두 까놓고 말하자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태준은 화를 내지는 않았어도 더 이상 평온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뜻은 감사하지만 따로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도준은 느긋하네 하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댔다. 이윽고 하윤이 긴장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그녀의 목덜미를 눌러 얼굴을 마주했다. 하윤은 자기를 꿰뚫어볼 듯한 도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비위를 맞추려는 듯 도준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푸딩처럼 말캉한 입술은 도준의 턱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그제야 도준은 하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공 가주님이 착한 일 하겠다니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후회한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약속은 유효하니까. 공적인 일로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계속 접근하는 게 얼마나 추한지 공 가주님도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전화를 끊자마자 도준은 옆에서 멍 때리고 있는 하윤을 바라봤다. “왜? 마음 아파?” 하윤은 그 말에 얼른 고개를 저으며 아부해 댔다
권하윤은 말하면서 창 밖을 내다봤다. 출근하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언뜻언뜻 보였고 하이힐 소리와 전화 안내음이 이따금씩 들리면서 하윤이 지금 얼마나 황당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일깨워 주는 듯했다. 하지만 민도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 손으로 하윤의 허리를 움켜쥐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아무것도 안중에 없는 듯한 미소는 마치 그물처럼 하윤을 꿈쩍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남자의 손바닥은 부드러운 실크 원단을 스치며 자나 가는 자리마다 욕망의 흔적을 남겼다. “되고 안 되고는 내가 판단해. 착하지. 소리 내지 않으면 신경 쓰는 사람 없을 거야.” 도준의 황당한 말에 하윤은 버럭 화를 냈다. “그게…… 읍읍!” 하지만 도준은 하윤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낼까 봐 도와주겠다는 이유로 하윤의 입을 막아버렸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차 안의 온도는 점점 올라갔다. 뜨거운 열기가 차창에 김이 서리는가 싶더니 힘없는 듯한 하윤의 작은 손에 의해 사라졌다. 차 경적 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길가에는 차가 끊임없이 지나치다가 회사 사무실에 사람이 꽉 차서야 비로소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차 안. 티슈가 박스 안에서 꺼내 지더니 한참 뒤 작은 손이 그것을 던져버렸다. 겨우 청소를 끝냈지만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슬립 치마의 모습에 하윤은 도준을 째려봤다. “이거 좀 봐요! 저 이런 꼴로 어떻게 나가요!” 도준은 하윤이 옆으로 던져버린 슬립 치마를 들어 슬쩍 냄새 맡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음, 확실히 못 입겠네.” 너무 노골적인 행동에 따져 묻던 하윤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이윽고 화가 난 듯 고개를 돌려 트렌치코드를 그대로 걸쳤다. 다행히 코트가 긴 덕에 무릎까지 덮을 수 있었다. 이대로 나가도 괜찮을지 하윤이 한참 동안 확인하던 그때, 차창 밖에서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흠칫 놀란 하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도준이 자기 외투로 하윤을 가렸다. 밖을 힐끗 본 하윤은 경찰 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경찰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에 하윤은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지만 사건은 여전히 먹구름처럼 하윤의 머리 위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윤이 경찰서에서 나올 때 도준은 차에 기대 어디론가 전화하더니 하윤을 보자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래요, 나중에 연락합시다.” 전화를 끊은 도준은 손을 들어 하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인 용의자도 되어 되고 이제는 나랑 같은 곳을 바라볼 작정이야?” 경찰서에서 취조 당하다시피 조사를 마친 뒤라 잔뜩 그늘졌던 얼굴이 도준의 농담 같은 말 덕에 다시 환해졌다. 하지만 하윤은 침울한 마음을 감추지 않은 채 피식 웃다가 아내 다시 투덜거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제가 의심받고 있는데 농담이 나와요?” 도준은 하윤을 차 안으로 끌어 들이며 피식 웃었다. “이제야 무서워?” 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며 안전벨트를 잡아당겼다. “제가 무서울 게 뭐 있어요? 살인한 것도 아닌데.” 하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불안했다. 경찰이 하윤을 제일 먼저 찾아왔다는 건 하윤의 용의점이 가장 크다는 거니까. 하윤의 아버지와 친구였던 엄석규는 하윤의 아버지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위증까지 만들어 궁지에 몰아넣었다. 게다가 얼마 전 하윤이 공공장소에서 엄석규의 모든 죄증을 까발린 것으로 충분히 살인 동기가 있다고 판단되었을 거다. 물론 사건 당시 현장에 없었다는 명백한 증거도 있지만 경찰이 깊이 파고 들면 도준과 하윤의 관계를 알아낼 거고 하윤이 엄석규를 죽이고 싶으면 직접 나서지 않고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아낼 거다. 그 가능성을 생각하자 하윤은 얼른 도준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설마 도준 씨가 엄석규한테 손쓴 거 아니죠?” “그게 무슨 말이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묻는 도준을 보자 하윤은 찔리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까 제가 불쌍해서 저 대신 복수해준 건 아닌가 그런 뜻이었어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하윤의 설명
“안 돼요. 이러면 저 도망자가 되는 거라고요.” 권하윤은 민도준의 팔을 다급히 잡아당겼다. “얼른 차 세워요.” 하지만 도준은 오히려 하윤의 손을 꼭 잡아 핸들에 올려 놓더니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세울 수 없는데.” 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걸 보자 하윤은 머리가 쭈뼛 곤두섰다. “저 데리고 도망가면 나중에 공범으로 잡히면 어쩌려고 그래요? 얼른 차 돌려요.” 조급한 나머지 당장이라도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것처럼 행동하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그제야 하윤의 손을 놓고 차속을 줄였다. “지금 돌아가면 살인범이 될 수 있어.” “네?” 하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알리바이도 있는데 그럴 리가요.” 도준은 의아한 듯 입을 벌리고 있는 하윤을 힐끗 바라봤다. 그러다가 답을 알려달라는 듯 동그란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하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 있어?” 하윤은 도준이 자기를 놀리는 걸 발견하고는 화가 난 듯 콧방귀를 뀌며 의자에 몸을 던졌다. “네, 저 바보 맞아요. 그래서 나이 많고 경험 많은 도준 씨처럼 계획적인고 악랄하지 못해요. 됐어요?” “나이 많다고?” 살짝 오라간 위협적인 말투에 하윤은 등골이 오싹했지만 여전히 꿀리지 않은 태도로 대꾸했다. “제가 틀린 말 했어요? 도준 씨 저보다 나이 많은 거 맞잖아요.” “그것도 5년이나.” 하윤은 손을 쫙 편 채로 내밀며 도준 앞에서 흔들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27인 도준에게 나이 많다고 하는 건 너무했다. 이건 복수하려고 일부러 비아냥거리는 게 틀림없었다. 도준은 하윤의 도발에 코웃음 쳤다. “아주 기어오르는 구나.” 하윤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지만 이내 현재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인지하고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됐어요, 얼른 말하기나 해요. 제가 어떻게 범인이 된다는 거예요?” 도준은 더 이상 하윤에게 장난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설마 엄석규가 죽는 거로 모든 일이 끝날 것 같
“참, 그리고 엄석규를 매수한 공씨 집안 사람을 좀 찾아줘요.” 말투는 분명 상의하는 말투였지만 내용은 마치 명령이라도 내리는 듯했다. 겁도 없이 말이다. 이에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게 끝이야?” “아니요…….” 권하윤은 어색한 듯 배를 끌어안았다. “저 배고파요.”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반나절이나 조사받은 탓에 하윤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바쁠 때에는 배고픈 줄 몰랐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그제야 뱃가죽이 등에 붙은 것처럼 견딜 수 없었다. “걸신이 들렸네.” 비웃는 듯한 도준의 말에 하윤은 짜증이 치솟았다. “저 오전 내내 밥도 못 먹었거든요? 그게 어떻게 걸신 들린 거예요?” 말하다 보니 하윤은 원망스럽고 서러웠다. “어디 가는지 말도 안 하고 저 납치하듯 끌고 왔으면서. 밥도 안 주고 물도 안 주고,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하윤의 불만은 이것뿐이 아니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건 바로 도준이 자기를 경찰서 앞까지만 데려다 주고 함께 들어가주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취조실까지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안까지는 함께 가줄 수 있는 거니까. 게다가 천하의 민도준이 그런 특권도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물론 도준이 이렇게 한 게 따지고 보면 아무 문제없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하윤은 그래도 서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기회를 잡자 바로 투덜거렸다. 도준은 뾰로통한 하윤의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었다. “배고프다고 성질 부리고, 애가 따로 없네.” 하지만 하윤은 도준의 그 말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다. “됐어. 그만하고 뒤 돌아봐.” 그 말을 듣는 순간 하윤의 눈은 반짝 빛났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뾰로통해서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로 뒤돌아봤다. 물론 다음 순간 그 표정은 바로 무너져 버렸지만. “이거 언제 산 거예요?” 뒷좌석을 거의 꽉 채운 음식에 하윤은 손을 뒤로 뻗으며 물었다. 한참 동안 고른 하윤은 끝내 과자 한 봉지를 선택해 입에 밀어 넣었다
민도준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권하윤을 힐끗 바라봤다. 하윤은 마치 납치라도 당한 사람처럼 불안한 듯 자꾸만 밖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재촉했다. “얼른 말해요.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두 사람이 들어선 길은 고속도로보다 비좁은 데다 가끔씩 화물차가 지나다녀 운전하기 불편했다. 때문에 도준은 차속을 줄였다. “경성에 돌아갈 거라고 누가 그래?” “네?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면 어디 가는데요?” 자기가 위험에 빠질까 봐 도준이 자기를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하윤은 아니라는 도준의 대답에 멍해졌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전조등이 길을 길게 비추며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과 한데 맞물렸다. 으슥한 분위기에 덜컥 겁이 난 하윤은 얼른 입을 열었다. “위험한 것 같은데 우리 다른 데로 새지 말고 경성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요?” 도준은 하윤의 말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내가 하윤 씨도 아니고 이깟 거 무서워할 것처럼 보여?”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도준의 눈은 마치 잠복해 있는 야수처럼 고요하고도 위험했다. “상대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때 숨으면 더 위험해.” 하윤도 사실 이 도리는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 적은 어둠 속에 있고 하윤은 훤히 노출되어 있어 몸을 사리며 숨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도준이 손가락으로 핸들을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하윤 씨 아버지가 좋은 제자를 뒀잖아.” “주림 선배요?” 그제야 도준이 뭘 하려는지 눈치챈 하윤은 놀란 듯 되물었다. “지금 주림 선배 만나러 가는 거예요?” 선배를 너무 친근하게 부르는 하윤의 말투에 도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싫은 티를 냈다. “그냥 대충 이름으로 부르면 안 돼? 왜 하필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는 건데?” “선배를 선배라고 하는 게 어때서요? 저보다 기수가 빠르면 선배죠.” 하윤은 불만 섞인 말투로 대꾸하다가 눈을 굴렸다. “도준 씨 설마 질투해요?” 도준은 하윤의 말을 무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