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꾹 눌려 말할 수 업자 권하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권하윤이 고개를 끄덕인 뒤 민도준의 표정이 아까처럼 무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권하윤을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조금 풀렸다.이에 권하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버둥대 빠져나와서는 민도준의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화내지 마요. 네? 저 정말 잘못했어요.”민도준은 눈을 내리깐 채 또다시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권하윤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사과는 참 빨라.”권하윤은 그 말에서 민도준이 화를 풀었다는 걸 알고는 배짱이 커져 아예 민도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제가 꼭 고칠게요.”그 말이 떨어지자 몇 초간 침묵이 이어지더니 익숙한 손길이 등에서 느껴졌다.민도준의 손이 목덜미로부터 허리까지 미끄러져 내리자 권하윤의 떨리던 몸도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하지만 평정심을 되찾은 뒤에야 권하윤은 민도준이 방금 다른 내용을 봤는지 물어보고는 화를 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왜지?’‘내가 공태준이 준 USB를 봤다고 화낸 건가? 아니면 내가 그 USB 안의 내용을 봐서…….’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민도준이 갑자기 권하윤을 들어 안았다.“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속마음을 숨기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제가 어떻게 해야 도준 씨의 화가 풀릴지 생각 중이었어요.”이 시각 권하윤은 또다시 실수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듯한 얌전한 얼굴로 돌아와 민도준이 마음 약해지기를 바라며 불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그 모습에 민도준은 끝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왜 어떻게 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지 생각하지 않아?”이것도 조금 훈수를 두는 말투였지만 아까랑 비교하면 비 온 뒤의 맑음에 가까웠다.이에 권하윤은 이내 민도준을 끌어안고 흔들어 댔다.“사람이 어떻게 실수를 안 해요? 역시 도준 씨밖에 없어요!”그때 민도준은 권하윤의 등을 꾹 눌러대며 말했다.“그만해.”‘칫, 그럼 내 잘못을 따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권하윤은 이런 생
갑자기 차가워진 민도준의 눈빛에 권하윤은 흠칫 놀라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이제 졸리네요.”권하윤은 강력하게 부정하면서 몸을 한껏 움츠린 채 민도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얌전함을 과시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민도준이 권하윤을 밀어냈다.민도준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자 권하윤은 겁에 질려 고개를 들었고 어렵사리 화가 풀린 민도준이 또다시 자기한테 화낼까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민도준은 잔뜩 긴장해서 웅크리고 있는 권하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졸린다며? 내려와.”권하윤은 민도준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느릿느릿 소파에서 내려왔다.이윽고 민도준은 권하윤을 침실로 끌고 가더니 마치 인형을 만지작거리듯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을 덮어주고 심지어 등을 토닥여 주기까지 했다.기괴해진 분위기에 권하윤은 잠이 오지 않아 눈을 깜빡이며 침대 끝에 걸터앉은 민도준을 바라봤다.“왜 안 자?”권하윤은 민도준이 자기를 두드려 주는 손을 덥석 잡았다.“저 무서워서 잠이 안 와요.”이에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권하윤의 손을 이불 안으로 넣어주고는 주위를 둘러봤다.이 방에는 두 사람이 함께 오래 산 흔적이 많이 묻어 있었다. 예전보다 많은 물건이 생겨나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권하윤도 민도준의 시선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도준 씨, 뭘 보고 있어요?”“사실 이 방도 살기에는 충분하지 않아?”권하윤은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불편할 거 아니야. 앞으로는 이 방에서만 살아.”뜨거운 손바닥이 권하윤의 얼굴을 쓱 문질렀다.그 순간 권하윤은 너무 놀라 믿기지 않는 듯 민도준을 바라봤다.‘지금 나더러 이 방에서만 갇혀 지내라고?’별장에서 지낸다면 그나마 숨겨두는 거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방에만 있으라고 하는 건 감금이나 다름없다.이에 권하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싫어요.”“왜 싫은데?”민도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권하윤은 당연히 여행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어색하게 입꼬리를 애써 말아 올리며 입을 열었다.“도준 씨 바쁘지 않아요?”“바빠도 하윤 씨를 소홀히하면 안 되지.”민도준은 애초부터 인내심이 강했던 사람처럼 권하윤을 애인 대하듯 눈빛으로 현혹했다.“자기야,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국내로 가고 싶어 아니면 해외로 가고 싶어?”해외라는 두 글자에 권하윤의 호흡은 몇 초 늦어졌다.민도준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어디든 괜찮아요.”“착하네.”민도준은 권하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내일 애들 시켜서 관광 안내 책자를 가져다줄 테니까 열심히 고르고 있어. 심심하지 않게.”권하윤은 입을 뻐금거렸지만 끝내 거절의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네.”민도준은 바쁜 일이 있다면서 권하윤 곁에 잠시 있어 주는가 싶더니 이내 떠나가 버렸다.그러고는 방에 얼마 있지 않았는데 밖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들어보니 문을 나무로 봉쇄하는 소리였다.그 소리는 한참 뒤 사라졌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권하윤이 문을 열어 보려고 힘을 밀어봤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았다.별장에 갇히면서 느꼈던 답답함은 오늘 이순간 최고조에 달했다.심지어 요즘 민도준과 함께 그려낸 “집”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떠나야 해.’안 그러면 언젠가는 이곳에 갇혀 답답하게 죽어갈 테니까.‘하지만 도준 씨가 발표회에 데려가지 않으면 어떻게 떠나지?’물론 민도준이 나중에 권하윤을 데리고 놀러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건 결국 기약 없는 약속일 뿐이다.만약 발표회가 끝난 뒤 민도준이 또다시 번복하면 권하윤으로서도 아무 방법이 없을 거다.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나니 권하윤은 이번 발표회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도준 씨가 오늘 USB 건으로 화를 내고 원래 했던 결정을 번복했으니 화가 가라앉고 난 뒤 다시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그래, 희망
아이 달래듯 부드러워진 민도준의 말투에 권하윤은 순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왜 이러는 거지? 설마 밖에 나갔다가 귀신이라도 씌었나?’하지만 뭐가 됐든 권하윤은 민도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아예 죽은 척 눈을 감고 있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민도준이 권하윤을 잡고 마구 흔들어 댔다.“정말 화났어?”권하윤은 그제야 눈을 감은 채로 콧방귀를 뀌었다.“제가 화나든 말든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하는 건 변함 없잖아요. 어찌 됐든 아무 데도 갈 수 없으니까 저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요.”그 말투는 불쌍하기도 하고 화가 나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마 권하윤 외에는 몇 안 될 거다.민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눈을 감고 입을 삐죽거리는 권하윤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날카로움도, 부드러움도 심지어는 민도준 본인조차 알 수 없는 심란함도 섞여 있었다.민도준은 항상 뭐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뭘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권하윤이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걸 본 순간 바로 화면을 덮어버렸다.그 순간 민도준은 권하윤이 자기 곁에서 도망칠 수 있는 날개와 다리를 부러트리고 싶으면서도 권하윤이 아플까 봐 걱정되고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잃을까 봐 걱정되었다.이렇듯 자꾸만 망설이는 건 민도준의 성격이 아닌데 말이다.‘나도 점점 미쳐가나 보네.’민도준은 잔뜩 불만이 묻어 있는 권하윤의 얼굴을 꽉 꼬집었다.“눈 떠. 얼른, 할 얘기 있어.”민도준의 차가워진 말투에 권하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민도준을 힐끗거렸다.“왜요?”“방에 갇혀 있기 싫어?”그 말에 권하윤은 발끈했다.“당연하죠! 저 산 사람인데 방에만 가둬두고 해볕 쪼임도 못하고 신선한 공기도 못 마시게 하면 이건 학대예요!”권하윤이 화를 내는 모습에 민도준은 이내 권하윤을 품속으로 끌어들였다.“됐어. 햇볕도 쬐고 싶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싶다 이거지?”권하윤은 여전히 화가 났지만 민도준의 태도가 그나마 많이 누그러들자 더 이상
민도준은 분명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말하고 있었지만 권하윤은 너무 놀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농담일 수 있겠지만 민도준이 하면 진짜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도 그럴 게, 민도준은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겁에 질린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약속할게요.”“착하네.”민도준은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만족한 듯 권하윤에게 입을 맞췄다."배고프지 않아? 뭐 먹고 싶어?”이윽고 잇따른 물음에 권하윤은 그제야 자기가 저녁도 먹지 못했다는 게 생각났다.하지만 여러 번 충격을 받고 나니 이젠 입맛이 거의 사라고 없어져 고개를 저었다.“배 안 고파요.”권하윤은 뭐든 의욕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의욕이 넘쳐 보였다.“배 안 고파? 그러면 다른 거 할까?”장난기 섞인 말과 함께 강한 입맞춤이 휘몰아쳤다.남자의 숨결이 너무 뜨거워 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민도준은 그러면 그런대로 권하윤의 얼굴부터 점점 아래로 내려가 쇄골에 코를 박고 잘근잘근 씹어대기 시작했다.이윽고 긴장 가득한 권하윤을 살살 달랬다.“착하지. 무서워할 거 없어.”그 시각 민도준은 권하윤을 자기 아래에 가둔 채 점점 자기를 받아들이게 했다.민도준은 평소에도 사람을 강압적인 분위기로 몰아세우기를 좋아하던 사람인데 침대에서는 더 강압적이다.그 때문인지 거역하는 권하윤의 손을 커다란 손으로 꽉 잡아 쥔 채 깍지를 끼더니 이내 권하윤 머리 양옆으로 내리눌렀다.흐리멍덩한 상태에서 깨끗이 씻겨진 권하윤은 민도준의 품에 안긴 채로 침대에 누웠다.분명 몽롱한 가운데 민도준이 뭐라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았지만 다음 눈이 감기며 의식을 잃어버렸다.-그 뒤 며칠 동안 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이라면 뭐든 순종했다.게다가 민도준은 대부분의 시간을 권하윤과 함께 보내는 데 사용했다.가끔 권하윤을 품에 안은 채 티브이를 보는가 하면 아기자기하게 썬 과일을 권하윤의 입에 넣어주면서 말이다.그러다 가끔은
민도준이 화가 난 게 아니라는 걸 발견하자 권하윤은 배짱이 생겨났는지 콧방귀를 뀌었다.“도준 씨가 진심을 말하라면서요?”그때 담배를 꺼버린 민도준이 눈빛으로 자기 옆을 가리켰다.“이리 와.”방금 전까지 된통 당한 탓에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한 권하윤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서야 천천히 옆으로 다가갔다.하지만 옷매무새를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촉촉한 눈가에 아직도 야릇하고 나른한 분위기가 남아 있어 반짝거렸다.현재 민도준과 그나마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권하윤은 얼른 민도준의 어깨에 고래를 기댔다.“그래서 지금은 아이를 가지면 안 돼요.”“그럼 언제 가지면 괜찮을 것 같은데?”민도준이 갑자기 힐끗거리며 묻는 물음에 권하윤은 순간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지금 두 사람의 상황이라면 언제든 안될 테니까.하지만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건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깐 동안 생각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적어도 우리 둘의 미래가 보일 때요…….”권하윤은 이렇게만 말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꼬치꼬치 캐물었다.“어떤 게 미래가 있는 건데?”그 물음에 권하윤은 마음이 두근거려 자기를 끌어안은 민도준의 손에서 벗어나 콧방귀를 뀌었다.“적어도 지금처럼 모두가 박민주 씨를 도준 씨 아내라고 생각하고 저를 정부라고 생각하게 하면 안 되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아이를 가지면 뭐라더라? 아, 사생아라고 하잖아요.”민도준은 쫑알쫑알 말해대는 권하윤을 다시 자기 쪽으로 잡아당겨 왔다.“대체 어느 집 정부가 하윤 씨처럼 주인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서 행패를 부려?”그 말에 불만이 생겼는지 권하윤은 민도준의 품에 안겨 자꾸만 작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전에 저 데리고 발표회에 간다고 했으면서 번복한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본처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권하윤은 점점 더 말을 가리지 않고 하자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권하윤의 엉덩이를 때렸다.“또 헛소리하는 거야?”“누가 헛소리래요? 분명 도준 씨
아직 헤어지지 않았는데 권하윤은 벌써 아쉬워 났다.권하윤은 순간 짙은 감정이 출구를 찾지 못해 마구 기승을 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민도준에게 가까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뭐 하는 거야?”민도준은 자기 옷자락을 꽉 잡고 있는 권하윤을 보며 물었다.그러자 권하윤은 얼굴을 붉히며 민도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우리 위층으로 올라가요.”그 말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냈다.“응? 올라가자고?”분명 질문을 던졌지만 권하윤의 등을 쓰다듬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손바닥의 온도가 옷감과 마찰하면서 뜨거운 열기를 형성하는 바람에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권하윤은 온몸이 불편했다.민도준에게 공제된 듯 전해지는 전율은 권하윤의 정신을 잠깐 불러와 그제야 한 발 뒤로 물러났다.“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티브이나 계속 봐요.”그러면서 손을 뻗어 리모컨을 찾고 있을 때 민도준이 권하윤의 가는 팔을 덥석 잡았다.남자의 손등에 울퉁불퉁 튀어 오른 핏줄은 힘을 준 탓에 더 분노한 듯 불룩 튀어 올랐다.“잘 붙잡아. 떨어지면 나도 몰라.”다음 순간 두 발은 땅에서 붕 뜨는 바람에 권하윤은 놀란 나머지 민도준의 어깨를 꼭 잡았다.민도준이 뚜벅뚜벅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권하윤은 그의 튼실한 어깨를 꼭 잡은 채 자기 자신을 걱정했다.“저기, 우리 아니면 올라가지 마요.”민도준이 거절하려고 할 때 눈에 갑자기 카펫이 깔린 계단이 눈에 들어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올라가지 않아도 돼. 그럼 잘 참아 봐.”권하윤은 민도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멍해 있다가 위험한 민도준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민도준의 눈빛을 보고도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면 지금껏 당한 게 모두 헛수고라고 해야 할 거다.때문에 민도준이 자기를 내려놓을 때 바로 상황을 눈치챈 권하윤은 다급하게 거절했다.“저 그런 뜻 아니에요.”“괜찮아. 지금은 그런 뜻 맞을 테니까.”이 말을 하면서 민도준은 한
뜨거운 눈물이 눈시울을 덥혀 시큰거리더니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뭘 울어?”권하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민도준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그때 민도준이 권하윤의 얼굴을 적신 눈물을 닦아내면서 살짝 농담 섞인 말로 물었다.“역시 여자는 물로 만든 거라 이건가? 아주 끝이 없네.”하지만 권하윤은 엉엉 울어대느라 민도준의 희롱 섞인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심지어 가슴은 이미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으로 폭발할 것만 같았다.하나는 행복 그리고 하나는 고통이었다.행복한 건 민도준이 사랑한다고 말해줘서이고 고통스러운 건 왜 하필 그걸 지금 알려주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얻지 못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바로 얻은 뒤 잃는 건데 말이다.그것도 권하윤이 가장 놓치기 아쉬워하는 것…….그때 살짝 굳은 살이 박인 손가락이 권하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말할수록 더 심하게 우네? 그만 울어.”권하윤도 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감정을 막을 방법이 없어 민도준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으며 중얼거렸다.“저 안아줘요.”권하윤이 껌딱지처럼 몸에 딱 달라붙자 민도준은 순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럴 것까지 있어?”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 권하윤이 원하는 대로 품에 끌어들이더니 무심한 듯 툭툭 두드렸다.“됐어, 그만 울어. 모레 발표회가 끝나면 놀러 가자.”자기가 갈 수 없는 걸 알고 있었지만 권하윤은 그 말에 여전히 동격이 생겼다.“어디요?”민도준이 대충 뱉어낸 두 곳은 전에 권하윤이 책자를 보며 칭찬한 적 있던 곳이었다.그 순간 권하윤의 눈시울에 눈물이 더 많이 고였다.“그곳은 요즘 우기일 텐데 비가 많이 오면 어떡해요.”“그럼 호텔에만 있으면 되지, 똑같아.”권하윤은 울다가 피식 웃어버렸다.“호텔에서 뭘 하고 놀려고요?”“놀 게 왜 없어? 하윤 씨 있잖아.”가벼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통유리창이 있는 호텔을 찾아서 하윤 씨를 유리 앞에 세워 두고…….”"안 들을래요.”권하윤은 귀를 막으며 도리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