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강지한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 심미연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그리고 3년 뒤, 그녀는 강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어 강지한의 아내가 되었다. 평생을 함께하며 서로를 사랑할 든든한 배우자가 생겼다고 믿었다. 3년간 심미연은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자존심도, 꿈도,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포기하며 오직 그의 가장 소중한 여자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강지한의 마음속엔 이미 첫사랑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3년 후, 심미연은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그의 첫사랑이 임신 소식을 공개적으로 알리며 사람들 앞에 섰다. 억눌린 감정을 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강지한에게 물었다. “지한 씨, 내가 임신했다면... 어떻게 할 거야?” 그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지워.”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어보았다. “그 여자도 임신했대... 지우라고 할 거야?” 강지한은 차가운 태도로 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 그 아이는 강씨 가문의 장손이 될 거야.” 그 순간, 심미연의 마지막 희망은 완전히 부서졌다. 실망과 절망 끝에 그녀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녀가 제출한 이혼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 문 뒤로 그녀를 몰아붙이며 위협하듯 말했다. “이혼? 어림없어. 넌 내 여자야. 평생... 영원히!” 결국 심미연은 협의 이혼을 포기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판결을 기다리던 중, 의문의 사고를 당하며 유산 위기에 처했다.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임신 사실을 숨긴 채 멀리 떠났다. 몇 년 후, 경성으로 돌아온 심미연 앞에 강지한이 나타났다. 그는 변하지 않는 차가운 눈빛,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미연 변호사님, 내 아들을 훔쳐 간 대가... 이제 제대로 계산해야겠죠?”
View More심미연은 마음속으로 약간의 걱정이 밀려왔다. “그날 생일 파티는 하지 않을 거예요. 병원 가서 상미랑 같이 있을래요.” 심태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심미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차피 그는 생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안 돼.” 심미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심태하와 강상미가 가까워질수록 강지한과도 가까워지는 것이고 그만큼 위험이 커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왜요?” 심태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도 알잖아. 강상미의 아빠가 바로 네 아빠라는 걸. 그런데 왜 그 사람 앞에 계속 가려고 해? 또 혼자 있을 때 널 데려가면 어떡할 건데?”심미연의 목소리는 냉담하게 떨어졌다. 강지한 같은 사람은 정말 가증스러웠다. 심태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제서야 그가 그 사실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네가 정말 그 아이와 함께 보내고 싶다면 사도 돼. 엄마는 그저 사실만 알려준 거야. 그 이후는 네가 결정할 일이야.” 심미연은 아이와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아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녀는 그 선택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할게요.” 심태하는 결국 주문을 완료하며 공주 드레스를 샀다. “비록 생일을 함께 보낼 순 없지만 그래도 드레스는 선물할 수 있잖아요.” 심미연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친구 사이엔 당연히 선물할 수 있지.”심태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두 팔로 심미연의 목을 감싸며 부드럽게 말했다. “엄마, 내 생일이 엄마가 고생한 날이라면서요. 엄마가 원하는 선물 뭐든지 제가 사드릴게요.” 방금 400억을 벌었으니 엄마가 원하면 뭐든지 해줄 수 있었다. 심미연은 그 말에 웃으며 답했다. “너가 주고 싶은 걸로 주면 돼.”가끔 심미연은 이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지 믿을 수 없었다. ‘이 아이는 겨우 세 살인데 어떻
박유진은 장갑을 낀 채 심미연과 심태하에게 새우를 벗겨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엄마한테 물어봐.” 그들 사이의 특별한 일이라면 아들에게 방해받은 그 키스밖에 없었다. 심미연은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어. 밥 먹을 때 얘기하는 거 아니야.” 심미연은 당황한 얼굴로 심태하의 그릇에 당근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당근 많이 먹어. 버리지 마. 알겠지?” 심태하는 포크로 당근을 찝어 심미연의 입에 가져다주며 말했다. “엄마도 드세요.” 박유진은 심미연과 심태하가 서로 당근을 먹여주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심미연과 심태하는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까지 똑같았다. 심미연이 심태하에게 먹으라고 말하면 심태하도 그녀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이런 장면은 매일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박유진은 자신이 정말 행복한지 실감했다. 두 사람이 당근을 다 먹고 나자 박유진은 손질한 새우를 건넸다. 심미연은 새우를 집어 바로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박유진은 잠시 놀라 멈췄다. 심태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새우를 포크에 끼워서 그의 입으로 가져다주었다. “아빠도 드세요.” 그는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박유진은 그 새우를 받아 먹으며 말했다. “고마워, 태하야. 고마워, 미연아. 두 사람 정말 나를 너무 사랑하는 거 아니야?” 그는 마음속으로 달콤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 얼마나 행복할까.’“아빠, 많이 먹어서 키도 크고 튼튼해져야 해요.”심태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박유진에게 말했다. “그래. 아빠 많이 먹을게.” 심미연은 아들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인데 왠지 모르게 뭔가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 끼 식사가 끝났다. 심미연이 일어나서 그릇을 치우려는 순간 박유진이 바로 말렸다. “미연아, 도와줄 필요 없어. 나가서 태하랑 놀아줘.”
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그를 향해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조심스럽게 박유진의 손을 감싸쥐고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음속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한 뒤 그녀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 “오빠, 걱정하지 마. 강지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어떤 방법으로 날 압박하든 누구와 함께할지는 오직 내가 선택하는 거야.” “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강요받아 결정을 내린 적 없어. 지금 내 마음은 오빠 곁에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야. 난 평생 오빠와 함께하고 싶어.”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심미연의 말은 그가 확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박유진은 그녀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던 불안이 서서히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 대신 밀려오는 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과 벅찬 감격이었다. “좋아. 평생 함께 하자.”“이번 생도, 다음 생도, 그 다음 생까지 영원히.” 그는 심미연의 손을 더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로 마음 깊이 새기며 그 온기를 손끝에 담아내는 듯했다. 심미연은 가슴 속에서 뛰는 심장 박동을 느꼈다. 그녀와 박유진은 서로를 알아온 지 벌써 20년. 박유진이 자신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심미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박유진만큼 자신을 아껴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유진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심미연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심미연은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떨리는 숨결 속에서 다가오는 온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배고파요.” 순식간에 그 둘 사이의 묘한 분위기가 깨졌다. 심미연은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한 표정으로 박유진을 밀
박유진은 손을 뻗어 심태하의 코끝을 가볍게 꼬집으며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아빠가 기분이 안 좋은 거 맞아. 태하가 아빠 곁을 떠날까 봐 걱정했어.” 심미연이 경성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그날부터 박유진은 매일 그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태하는 절대 아빠를 떠나지 않아요.” 심태하는 작은 손가락을 내밀며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약속해요.” 박유진은 그의 손을 잡고 약속처럼 말했다. “그럼 약속을 지켜야 해.” 그는 물론 세 살짜리 아이가 약속을 지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진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심태하가 아닌 심미연이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꼭 지킬게요.” 심태하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박유진은 강지한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아이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이에게는 친부모와 함께 자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만약 심미연이 아이를 데리고 강지한의 곁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그저 묵묵히 축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빠, 같이 놀아요.” 심태하가 손을 내밀며 부르자 박유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엄마 잠깐 보고 올게. 와서 놀아줄게.” 심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알겠어요.”박유진은 일어나 옷자락을 훔쳐 심태하가 놀고 있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방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심미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왔어? 잠깐 앉아 있어. 금방 준비할게.” 이 3년 동안 심미연은 주방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매번 요리는 박유진이 했고 그녀는 그저 먹기만 했다. 박유진은 마음 속 불안감을 눌러 담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 생각을 억누르고 큰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의 몸을 뒤에서 감싸 안았다. 그의 턱이 그녀의 어깨에 살며시 닿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미연아, 수고했어.” 매번 요리는 그가 했고 심미연이
심미연은 그를 발로 차며 소리쳤다. “꺼져.” 강지한은 정말로 뻔뻔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를 한 차례 차고 나서 심미연은 서둘러 병실로 돌아가 아들을 안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주일 뒤에 내가 너 찾아갈게.” 심미연은 그의 말을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강지한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해도 세상 모든 걸 손에 쥐는 건 불가능했다. 그가 은성을 망가뜨리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될 일은 아니었다. 차에 앉자 심미연은 서서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엄마, 그 사람하고 함께 살 거예요?” 심태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심미연은 잠시 멈칫하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여동생 아빠 말하는 거예요. 내 아빠이기도 하고.” 심태하는 그녀가 질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덧붙였다. “태하는 그 사람 좋아해?” 심미연이 되물었다.“그 사람과 같이 살고 싶은 거야?” 심태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지금 아빠가 좋아요.” ‘지금 아빠는 성격도 좋고 나를 혼내지도 않으면서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주잖아.’ 심미연은 그의 대답을 듣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박유진은 그녀와 아들에게 정말 잘해주었고 심태하를 친자식처럼 보살펴주었다. 그래서 심태하가 그를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 나 유치원 안 갈 거예요.” 갑자기 심태하가 말했다. 심미연은 깜짝 놀라 물었다. “왜? 유치원에서 괴롭힘 당했어?” 세 살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고 여섯 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유치원을 안 가면 초등학교를 가겠다는 건가?’“선생님이 가르치는 건 다 생활 자립 능력이라든지 사고 훈련 같은 거예요. 다 할 수 있는데 뭐 배우겠어요?” “게다가 그 애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자기 생각도 표현 못 해요. 대화도 재미없고 툭하면 울어요. 그 애들하고 있으면 나까지 멍청해질까 봐 걱정돼요.” 심태하는 매우 논리적으로 말했다. 심미연은 그
강지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박시훈, 그 여자가 내 전처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 지금 그는 심미연을 합법적인 아내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박시훈은 코웃음을 쳤다. [너는 3년 전에 이미 심미연 씨와 이혼했잖아. 그럼 전처 아닌가?] 심미연은 그의 전처였기에 사실 그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강지한이 협박을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강지한은 얼굴을 붉히며 전화를 끊었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강지한은 심미연이 간호사에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웃음은 마치 봄날의 꽃처럼 아름답고 눈부셨다. 강지한은 숨이 막힐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전에는 왜 심미연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몰랐을까?’ 아마 그의 시선이 느껴졌던 걸까. 심미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에 있던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작은 얼굴은 굳어진 채 눈빛은 차가워 보였다. 강지한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가 지금 차별을 두는 거야?’ ‘내가 저 여자 적이야?’ ‘왜 이렇게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 거야.’심미연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강지한, 무슨 얘기 하고 싶은 거야? 빨리 말해. 나 회사로 돌아가야 해.”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멀리 떠나고 싶었다. 강지한과는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너 아들과 함께 돌아와. 우리 재혼하자.” 강지한은 잠시 생각한 뒤 덧붙였다. “다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자. 그때 상미와 네 아들은 완전한 가정이 생길 거야.”심미연은 그의 말을 듣고 한없이 비웃으며 말했다. “난 이미 결혼했어.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고 너랑 다시 재혼할 일은 없어.” “내일 바로 이혼하고 나랑 혼인신고 하러 가자. 내 아들은 절대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를 수 없어.” “심미연, 너 지금 회사도 있고 로펌도 잘 운영되고 있다는 거 알아. 아무리 잘 나가도 내가 경성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
심미연은 눈썹을 찡그린 채 강지한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 그녀는 강지한이 아들을 숨기려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강지한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정말 두 아이 앞에서 얘기할 생각이야?” 강지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미소가 번졌다.심미연은 그를 한 대 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강지한, 너 미쳤어?” ‘도대체 왜 이렇게 정신없는 말을 하는 거지?’ “그럼 나가자.” 강지한의 낮고 강한 목소리가 압박감을 내뿜었다. 심미연은 결국 돌아서서 심태하에게 말했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여기서 기다려. 절대 다른 곳 가지 마. 알았지?” 심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엄마 가보세요.” 그렇게 심미연은 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강지한은 딸의 얼굴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작은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딸의 몸 상태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상미는 오빠랑 같이 놀고 있어. 아빠 금방 돌아올게. 알았지?” 그는 강상미에게 유난히 다정하게 말했다. 이 어린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고 조용히 냈다. “아빠, 아줌마를 화나게 하면 안 돼요. 안 그러면 상미는 아빠를 안 볼 거예요.” 강상미는 부드럽게 말하며 방금 전 아줌마의 눈물로 붉어진 눈을 떠올렸다. 그 모습이 마음속 깊은 곳을 눌러왔고 답답하고 괴롭게 느껴졌다. “알겠어.” 강지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심미연 그 여자, 지금 완전히 벽을 쌓아버린 상태야. 내가 좀 더 강하게 나오지 않으면 그 여자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을 거야.’“엄마 화나게 하지 않으면 내가 엄마 설득해서 동생의 병 고치게 할게요.” 심태하는 강지한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비록 그는 엄마를 어떻게 설득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두었지만 그래도 그 나쁜 아빠랑 조건을 하나는 걸어야 했다. 강지한은
심미연은 깊게 한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강지한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분명히 말했어. 태하는 네 아들이 아니라고.” 심태하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강지한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친자 확인하러 가면 되겠네.”강지한은 속에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심미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거의 불이 나올 정도였다. ‘이 여자는 아이가 생부인 나를 아빠로 인정하지 않게 하면서 외부인 박유진을 아빠로 인정하라고 하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네.’“너는 자격 없어.” 심미연은 허리를 굽혀 심태하를 안아 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그 사람 말 듣지 마. 넌 엄마의 아들이지. 그 사람 아들이 아니야.” 심태하는 엄마의 목을 꽉 안고 부드럽게 말했다. “엄마, 저 알아요.” 심태하는 자신이 엄마의 아들이자 강지한의 아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눈앞의 그 나쁜 아빠가 예전에 바람을 피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비록 ‘바람’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다. 심미연은 품에 안은 아들을 더 꼭 안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지한은 아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서도 아이가 상처받을까 걱정하지 않았다.“엄마, 우리 빨리 가요. 그 사람하고 멀리 떨어져서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 심태하는 엄마의 목에 얼굴을 부드럽게 비비며 마치 부드러운 강아지처럼 말했다. “엄마 말 잘 들을 게요. 이제 슬퍼하지 마세요. 네?” 그는 지금 눈앞의 그 남자가 너무 싫었다. 그는 절대 그 남자가 자신의 아빠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 이제 가자.” 심미연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애써 참으며 심태하를 꼭 안고 돌아섰다. “엄마, 저도 엄마랑 같이 갈래요.” 그녀의 다리가 갑자기 붙잡혔고 뒤에서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미연은 즉시 발걸음을 멈추고 병상에 누워 있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어린 아이가 눈물을
“엄마, 만약 동생을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서 그런거면 제가 그 돈 다 낼 수 있어요. 저 돈 진짜 많거든요.” 심태하는 손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과장스럽게 말했다. 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말해.” 만약 강지한이 자신이 사백억을 날린 게 세 살짜리 꼬맹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피가 거꾸로 솟아 기절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심태하에게 그 돈을 다시 토해내라고 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강지한은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니까. “아! 깜빡했어요.” 심태하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그는 정말로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 나쁜 아빠는 이 말을 듣지 못했다.강지한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작은 목소리로 오갔기에 정확히 들리진 없었지만 어쩐지 자기 흉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심태하는 심미연의 손을 끌고 병상 앞으로 다가갔다. 강상미는 커다란 눈망울로 점점 가까워지는 심미연을 바라봤다. ‘응?’ ‘이 아줌아... 왠지 낯이 익은 것 같아...’“상미야, 이리 와. 우리 엄마 소개해줄게.” 심태하가 강상미의 손을 잡아 심미연의 손바닥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우리 엄마 진짜 대단한 변호사야. 의술도 할 줄 알아. 엄청 멋지지?” “상미야, 어서 엄마라고 불러봐.” 심미연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이 꼬맹이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엄마...” 강상미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순진하게 반짝이는 눈망울. ‘엄마의 눈이 그 예쁜 언니랑 너무 닮았어.’ ‘하지만 이 아줌마는 그 언니가 아니야.’ 그 생각이 떠오르자 강상미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나도 예쁜 언니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는데...’ 조금 서운했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눈앞의 엄마가 더 좋을 것 같았다. ‘오빠 엄마니까... 분명 나도 많이 사랑해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심미연, 나 임신했어. 지한 씨랑 빨리 이혼해. 우리 아이가 아빠도 없이 태어나는 걸 원하는 거야? 아이는 죄가 없잖아... 얼마나 불쌍하겠어!”심미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감정이 묻어나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로 응수했다.“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어차피 녹음 중이니까 지금 다 말해. 나중에 이혼 소송할 때 도움 될 테니까.”“심미연, 너 진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거야? 나쁜 년, 녹음까지 하다니...”욕설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들려오는 삐 소리를 들으며, 심미연은 천천히 손에 든 임신 테스트기를 내려다보았다.[임신 4주 차]또렷한 글자가 눈에 박혔다. 원래는 오늘 밤 강지한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이 아이는 나에게 찾아온 구원이야...’...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도우미 임혜자가 반갑게 다가왔다.“사모님, 아침에 알려주신 레시피대로 요리 준비 다 해놨어요. 옷 갈아입고 내려오시면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심미연은 신발을 벗으며 무심히 답했다.“아주머니가 해주세요. 저는 목욕 좀 할게요.”임혜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아, 네. 알겠습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사모님이 평소에는 몸이 안 좋아도 도련님 밥은 꼭 직접 준비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심미연은 피곤한 몸을 욕조에 담그며 눈을 감았다. 차가운 물소리가 하루의 무게를 씻어내는 듯했지만, 깊은 피로는 그녀를 그대로 잠들게 했다.깨어난 것은 갑작스러운 움직임 때문이었다. 몸이 들어 올려지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강지한의 깊고 날카로운 눈동자와 마주쳤다.“아주머니한테 식사 준비를 부탁했다고 했다던데, 어디 안 좋은 거야?”강지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심미연은 온지유의 전화가 떠올라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형님... 임신하셨다면서? 아이를 낳으실 생각인가 봐?”강지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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