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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무안안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1-20 20:22:52
“혹시 진짜 죽었나 싶어서 확인하는 거야.”

강지한의 목소리엔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심미연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꽉 쥐며 한 글자씩 힘을 주어 말했다.

“난 목숨이 질겨서 죽지 못했나 봐!”

그렇게 말하고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번호를 차단하는 일까지 한순간이었다.

...

이노하이브 그룹 산하 병원의 VIP 병실.

온지유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적으로 푸석한 안색과 마른 몸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연약해 보였다.

강지한은 병실 한쪽에서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온지유는 그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한 씨, 미연 씨는... 괜찮은 거야?”

강지한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짧게 답했다.

“괜찮아.”

온지유는 속으로 심미연을 몇 번이나 저주하면서도, 겉으론 부드럽게 말했다.

“돌아가서 미연 씨랑 함께 있어줘. 여기 의사랑 간호사가 있어서 괜찮아.”

강지한의 표정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자. 오늘 밤은 내가 여기 있을 테니 잠이나 자.”

온지유는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는 난처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오늘 밤 안 돌아가시면, 내일 미연 씨가 분명 할아버지께 고자질할 거야.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으시잖아. 자주 화내시면 안 되는데...”

강지한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하고 얼른 자.”

온지유는 입술을 깨물며 강지한을 올려다봤다.

“정말 여기서 나랑 같이 있어 줄 거야?”

“그래. 자라.”

...

다음 날 아침.

심미연이 눈을 뜨자마자 신하린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하린은 잔뜩 화가 난 듯 입술을 깨물고 서 있었다.

“아침부터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심미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신하린은 휴대폰을 내밀며 씩씩댔다.

“온지유 그 뻔뻔한 게 자작극을 벌이고 실시간 검색에 올랐어! 이번엔 완전 자극적이야.”

심미연은 하린이 내민 휴대폰 화면을 흘긋 보았다.

[충격 폭로! 유명 무용가, 임신설?! 약혼남과 함께 병원 방문 포착]

기사 내용을 확인하자 초음파 사진과 함께 강지한이 온지유를 부축하는 사진이 떴다.

사진 속 강지한의 손목에 채워진 파텍필립 시계는 너무도 선명했다. 경성에서 그 시계를 가진 사람이 강지한 외에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심미연의 손끝이 떨렸다. 눈가가 뜨거워지고, 심장은 무뎌진 칼로 저며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태였지만, 9년 동안 사랑해 온 마음이 그렇게 간단히 사라질 리 없었다.

신하린은 심미연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자, 스스로를 머리를 두드리며 외쳤다.

“미안해, 미연아! 내가 너 임신한 거 깜빡했어. 이런 얘기 절대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심미연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받지 않으려 했지만, 혹시 의뢰인의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마자 강지한의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쏟아졌다.

“심미연, 어젯밤 내가 병원에서 온지유 지켜준 거 열받아서 기사를 뿌린 거야? 너무하는 거 아니야?”

심미연은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차갑게 대답했다.

“내가 한 거 아니야!”

그녀는 이런 천박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공격할 만큼 비열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 사실을 믿을 생각조차 없는 듯 몰아붙였다.

“지금 당장 해명해. 너랑 나 사이가 틀어져서 일부러 실시간 검색 올린 거라고! 해명하면 이혼해 줄게.”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은 칼날처럼 매서웠다.

심미연은 분노로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았지만, 끝까지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려 애썼다.

“강지한, 너 진짜 미쳤어? 무슨 근거로 내가 그랬다고 확신하는 거야? 날 망치려는 거야?”

그녀는 만약 실검 사건을 자신이 꾸민 일이라고 인정하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었다. 로펌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이고, 온지유의 명예훼손 고소까지 당하여 하루아침에 경성 최고의 이혼전문변호사가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강지한, 정말 너무해!’

“온지유가 임신한 거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오늘 아침 초음파 사진까지 뜬 걸 보면 네가 한 게 아니고 뭐겠어!”

강지한은 차갑고 냉소적으로 몰아붙였다.

심미연은 그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맞섰다.

“온지유 임신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지는 그 여자만 알겠지. 난 절대 아니야. 그러니 나한테 뒤집어씌우려 하지 마.”

그녀는 어젯밤의 교통사고와 오늘 아침 실검 사건 모두가 온지유의 계획일 거라고 확신했다.

‘날 덮어씌우겠다고? 날 너무 만만하게 봤어!’

하지만 강지한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잔인한 말을 이어갔다.

“심미연, 내 말 안 들으면 네 친구 스튜디오는 문 닫게 될 거고, 네 외할머니 치료비도 끊길 줄 알아.”

그의 말은 가슴을 도려내듯 잔혹했다.

‘살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이런 거구나. 강지한은 진짜 악마야.’

“오전까지 시간을 줄게.”

그는 단호하게 말을 내뱉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미연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눈물이 터질 듯한 감정을 꾹 참았다.

신하린은 그녀가 애써 강한 척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심미연을 꽉 끌어안았다.

억지로 웃는 척했지만, 그 미소는 금세 무너졌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추려 손등으로 닦아내고, 마음을 다잡은 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연아, 우선 일어나서 씻어. 난 잠깐 작업실에 다녀올게.”

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가. 바쁘면 일부러 오지 않아도 돼.”

신하린은 주얼리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요즘 몇 건의 큰 의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심미연은 그녀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 다녀올게.”

신하린은 한 번 더 심미연을 꼭 안아준 뒤 방을 나섰다.

...

심미연이 아침 식사를 끝낼 무렵,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 이름으로 성무진이 뜨는 걸 본 순간 심미연의 왼쪽 눈가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떨치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마자 들려온 건 신하린의 격분한 목소리였다.

“강지한, 그 뻔뻔한 쓰레기! 죽이려면 날 죽여! 미연이를 왜 괴롭혀? 미연이가 어젯밤에 거의 죽을 뻔했다고!”

심미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표님 바꿔 주세요!”

“잠시만요!”

성무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 뒤, 곧 강지한의 냉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네 친구를 시켜서 온지유를 해치려 했지? 이미 경찰에 신고했어. 할 말 있으면 경찰서에서 해.”

그 말에 심미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내가 한 짓이라며? 그러니까 하린이는 풀어줘. 내가 경찰서에 갈게.”

심미연은 강지한의 잔혹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린이를 구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떠안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신하린의 작은 스튜디오는 그녀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그것마저 잃는다면 하린이는 무너질 게 뻔했다.

강지한은 비웃으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그는 성무진에게 휴대폰을 던지듯 넘기며 차갑게 명령했다.

“하린이는 풀어줘. 대신 네가 심미연을 경찰서로 데려와.”

신하린은 그 말을 듣고 절망에 가까운 표정으로 간절하게 항의했다.

“미연이는 어젯밤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어요! 경찰서로 데려갈 순 없어요!”

사실 신하린은 강지한에게 심미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강지한 같은 쓰레기가 알게 되면 분명 아이를 지우라고 강요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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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11-20
  • 다시, 너를 붙잡다   제11화

    “난 너랑 내기 같은 거 안 해, 미연이가 너 싫다고 하면 나한테도 다시 찾아오지마, 남자가 여자 마음 하나 못 잡고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강준형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심미연은 절대 자신을 떠나지 못한다 확신한 강지한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서류들을 챙겨서 강준형의 뒤를 따랐다.문밖에는 진작 내려온 심미연이 서 있었는데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얼굴에 김종수가 걱정스레 물었다.“사모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아니에요.”강지한이 내뱉은 말들이 모두 상처였는데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지만 심미연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앉아 계세요, 물이라도 갖다 드릴게요.”하지만 김종수는 그런 심미연을 외면할 수가 없어 물을 가지러 갔고 마침 내려온 강준형이 앉아있는 심미연을 보며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둘 다 그냥 여기서 자고 가, 매일 청소도 하고 이불도 바꾸니까 다 깨끗해. 얼른 올라가 봐.”둘을 같이 붙여놓아야 아이가 생길 테니 강준형은 어떻게든 둘을 한방에 밀어 넣고 싶어했지만 심미연은 온화한 목소리로 강준형을 보며 말했다.“내일 법정에 나가야 하는데 자료정리를 아직 못 끝내서요. 저는 그만 가볼게요.”예전에는 본가에 돌아오면 며칠은 있으려고 하던 심미연이 오늘은 돌아가기에 급급해하는 모습이 낯설었던 강지한은 입술을 말아 물며 심미연을 보고 있었다.“일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최우선이야, 몸도 챙겨가면서 해. 오늘은 일이 있다니까 있으라고 강요는 안 하마.”강준형은 말을 하면서도 강지한을 보며 얼른 손에 든 서류들을 심미연에게 전해주라고 눈치를 주었다.“할아버님,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할아버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강준형은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저를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었기에 심미연은 진심으로 그가 만수무강하길 바라고 있었다.“그래, 얼른 가봐.”그렇게 작별인사를 마친 심미연이 뒤 돌아 걸어가는데도 강지한은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강준형은 그를 발로 차며 말했다.“얼른 가서 우산 씌워줘!”강준형

    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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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4화

    그 뒤를 이어 육현성이 캐주얼한 차림이지만 온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한 채 들어왔다.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어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듯했다.박인우는 갓 취직한 직장인의 모습으로 주변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평가로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룸에 들어선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이 한유나로 쏠렸다.한유나는 테이블에 단정히 앉아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간단하게 묶었는데 잔머리 몇 가닥을 뺨에 늘어뜨려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더했다. 탐구하는 듯한 그들의 시선에 미소로 화답하는 한유나의 여유와 대범함이 호감을 자아냈다.인사와 자기소개를 주고받자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었다.이진영은 한유나와의 관계, 그리고 앞으로 부부가 될 가능성이 큰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했다.한유나 역시 이 감정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거침없이 언급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와 태연함을 드러냈다.그녀의 솔직함에 이진영은 부끄러웠다.그의 표정을 살피던 강지한은 친구로서 어깨를 툭툭 치며 함께 화장실에 가자고 손짓했다.은밀하고 조금 비좁은 공간에서 강지한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시고 연기를 내뿜으며 엄숙하지만 관심 어린 어투로 물었다.“진영아, 넌 항상 신하린과 함께 있지 않았어? 왜 갑자기 한유나와 이런 관계가 생겼어?”그의 눈빛에는 의심과 걱정이 섞여 있었는데 이진영의 감정 세계에 관심이 많은 게 분명했다. 이진영은 복잡한 얼굴로 강지한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의 마음가짐과 현재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짧지만 깊어 오랜 우정의 깊은 호흡을 드러냈다.그 시각 경궁.신하린은 기분이 좋아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지고 눈동자에 희미하고 억척스러운 빛이 반짝이며 알코올이 주는 짧은 즐거움과 끝없는 근심이 뒤섞인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쓰레기! 개자식!”취해서 약간 쉰 듯한 목소리였지만 말끝마다 또박또박 감정적으로 모든 불만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3화

    이진영은 몸을 움직여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영롱한 술잔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있었는데 그 동작 속에는 끝없는 이야기와 못다 한 정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한유나의 마음속에 좋지 않은 생각이 스쳤다.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가볍게 귓전에 들려왔다.“우리 같은 가정에서 태어나면 결혼의 선택은 종종 개인적인 감정의 경계를 넘어 가족의 책임과 기대 때문에 꽁꽁 묶인다는 것을 한유나 씨도 알잖아요. 그래서 내 마음 깊은 곳에 사랑하는 여자가 숨겨져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결혼이 양가 부모님을 만족시킬 수 있고 한유나 씨와 나 사이에는 적어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에요.”그는 이 말을 할 때 눈빛을 알 수 없는 곳에 두었는데 마치 그곳을 꿰뚫고 누군가를 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런 눈빛이 한유나의 마음을 이유 없이 옥죄게 했다.그녀는 사실 이진영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대면했을 때 그녀는 마음이 유난히 아팠다.“한유나 씨, 이 문제는 내가 직접 대답할 수 없어요.”이진영은 시선을 거두며 술 한 잔을 마셨다.신하린에 대한 소유욕도 있고 침대 위에서의 느낌도 좋아하지만 신하린과의 관계를 여자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기껏해야 침대 동반자라고 할 수 있었다.서로 환심을 사며 몸의 위로를 찾는 그런 관계 말이다.한유나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매운맛이 위까지 올라와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겉으로 보이는 평온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가볍게 웃었다.“그렇다면 제 이해를 말할게요. 이진영 씨에게 여자가 있지만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결혼한다면 이진영 씨는 그녀와 연락을 끊어야 해요.”그녀는 자신과 이진영이 아마도 이 가족의 혼인에 있어서 세심하게 배치된 두 개의 바둑알처럼 자신의 방향과 귀착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 인식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남은 인생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2화

    한유나는 이진영의 뒤를 따라 걸어가며 코끝에 전해지는 남자의 은은한 재스민 향을 맡았다.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이진영이 도대체 어떤 남자인지 상상하게 되었다.“앉으세요.”소리를 듣고서야 한유나는 정신을 차렸다.어느덧 두 사람은 룸에 들어섰다.“왜요? 제가 잘생겼어요? 왜 계속 이렇게 쳐다봐요?”이진영이 웃으며 조롱하는 걸 보니 두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느껴졌다.분명히 두 사람은 오늘에야 처음 만났는데 말이다.한유나는 허리를 숙이고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감사를 표했다.이진영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자 종업원이 술과 간식을 배달해 왔다.이진영은 잔을 들고 술을 따랐다.그를 바라보는 한유나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호감이 조금 생겼다.얼굴도 잘생기고 상냥한 그런 남자는 아마 모든 여자가 좋아할 것이다.“마실 수 있으면 조금 마시고 아니면 음료수를 다시 주문할게요.”이진영은 술을 다 따르고 방금 그 일이 생각난 듯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미안해요. 아까는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한유나는 손을 뻗어 술 한 잔을 들고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조금 마실 수 있으니 음료는 주문 안 해도 돼요.”이진영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 술은 사과의 의미로 마실게요.”한유나는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이 사람이 책임감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적어도 그는 그녀에게 진지하게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다.다른 남자였으면 벌써 핑계를 대고 빠져나갔을 텐데 말이다.이진영은 그녀가 어리둥절해 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함께 마신다는 말도 없이 한 잔을 단숨에 해치웠다.한유나도 그의 모습을 보고 술잔을 비우고 티슈를 꺼내 입을 닦으며 이진영과 눈을 마주쳤다.“이진영 씨, 나랑 같이 있기로 했으면 이제부터 심각한 질문을 할 거예요.”이진영은 다시 술병을 들고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내가 총각인지 묻고 싶은 거라면 진지하게 말해줄게요. 아니에요.”한유나가 무엇을 물어볼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그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1화

    생각하던 중 휴대폰 벨이 울렸다.이진영이 눈썹을 찡그렸다.‘설마 신하린 이 여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음식을 들고 와서 같이 밥을 먹자는 건가? 흥! 그러면 태도가 좋은 걸 봐서 그렇게 심하게 굴지 말아야지.’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꺼냈다.하지만 화면에는 강지한이라는 이름이 떴다.‘왜 강지한이 갑자기 전화한 거지? 무슨 일이 있는 건가?’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술 마시러 나와.”강지한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야, 왜 갑자기?”이진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강지한이 기분 나쁜 건가? 오죽하면 나를 찾아 술을 마시려는 거지?’“말이 너무 많아. 늘 가던 곳으로 와.”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이진영은 휴대전화를 접고 젓가락을 들어 탁자 위의 야채 요리를 다 먹은 후에야 집을 나섰다.차를 몰고 클럽에 도착하자 그는 그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는듯했다.그는 미간을 비비고 나서야 여자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한유나 씨.”그는 주동적으로 말을 꺼냈지만 표정은 냉담했다.“어제 저를 바람맞혔어요.”여자는 긴 머리를 쓸어넘겼는데 분위기가 싸늘했다.“어제 급한 일로 출장을 가서 전화하는 걸 깜빡했어요. 미안해요.”이진영의 제대로 설명했다.한유나는 명문가 아가씨이고 연구소에서 일하는데 많은 남자 마음속의 여신이었다. 그래서 아마 감히 그녀를 바람맞힌 사람이 그가 처음일 것이다.한유나는 정말 화를 내 마땅했다.“사과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한유나는 청초한 얼굴에 하는 일까지 좋아 사람들에게 늘 깔끔한 여자라는 느낌을 줬다.“친구랑 같이 왔어요? 초대해서 같이 술 한잔할까요?”이진영은 까칠함을 거두며 온화하게 말했다.“이진영 씨, 물어볼 게 있어요.”평생의 큰일에 관해 한유나도 이진영과 함께 있는 것이 사랑 때문일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속마음을 분명히 묻고 싶었다.손님 대하듯 서로 존경하는 것이 매일 싸우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이진영은 웃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0화

    강지한은 차를 잡고 있던 손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갑자기 움켜잡힌 듯 그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했다. 창밖의 밤은 깊고 먹물처럼 어두웠으며 실내의 조명은 흐릿하게만 그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 그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 일을 심미연에게도 말한 걸까?’‘그렇지 않다면 심미연은 왜 이렇게 단호하게 이혼을 결심한 걸까?”강준형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미 경고했잖아. 그 애 일에 너무 개입하지 말라고! 근데 넌 내 말을 그냥 흘려들었지!” 강준형의 목소리는 낮고 강렬했으며 그 한마디 한마디가 강지한의 가슴을 거듭 내리치며 파고들었다. 강지한은 잘 알고 있었다. 강준형이 진성과 온지유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고 분명 예전부터 사람을 시켜서 조사를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는 일이면 심미연도 다 알고 있는 걸까?’강지한은 아무 말 없이 고요히 침묵을 지켰다. “온지유는 겉으로 보기엔 여린 듯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강준형의 말에는 약간의 무력함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젊은 후배의 일을 이렇게 뒤에서 평가하는 게 본의는 아니었지만 네가 그저 이 늪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심지어 미연이까지 잃었다는 걸 보고는 그냥 지켜볼 수가 없더라. 혹시 넌 생각해 본 적 있어? 그 애의 착한 모습이 어쩌면 그저 교묘하게 짜놓은 덫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 목표는 바로 너고”강준형은 그 말을 하던 중 가볍게 한숨을 쉬었고 그 한숨은 마치 세월을 넘는 깊은 한숨처럼 약간의 세월의 흔적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강지한, 그거 알아?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은 대부분 가장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져 있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그걸 미리 읽을 수는 없단다.” 그 순간 공기가 마치 얼어붙은 듯했고 밖에서 가끔 들려오는 밤바람의 속삭임만이 이 공허함을 채우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강지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79화

    심미연은 이미 구연궁에서 살기로 결심한 상태였고 강준형이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알았어요. 이제 많이 늦었으니 먼저 돌아가서 쉬세요. 제가 자리를 잡고 나면 찾아뵐게요.”“알겠다!” 강준형은 그녀의 창백하고 피곤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저렸다. ‘참 좋은 아이인데.’이렇게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고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그녀가 강지한에게 계속 상처받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결국 강지한은 후회하게 된다고 생각했다!심미연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짐을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떠날 결심이 이미 서 있었기에 그녀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심미연!” 강지한은 그녀를 따라가려 했지만 강준형이 지팡이를 들어 그의 다리를 쳤다. “거기 서라! 따라가면 안 된다!”“할아버지...” 예전에는 분명히 온전하셨던 정신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미련을 두는 걸까?강준형은 기사에게 심미연을 데려다주게 하고 강지한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강지한, 네가 무슨 면목으로 그 애를 붙잡고 있어? 미연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남편인 네가 소식 하나 없었잖아. 미연이는 홀로 외할머니를 보내며 3일 동안 잠도 안 자고 버텼단 말이다. 미연이의 마음속 아픔은 네가 상상도 못 할 거야.”그 3일 동안 그는 심미연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졌다. 그런 착한 아이가 이제는 무감각해졌으니.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딘 걸까. 강지한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결국 손을 내려놓았다. 강준형의 말을 듣고 나서 그는 자신이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그래도 그는 여전히 심미연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네가 정말로 착한 사람이라면 그애를 놓아줘라! 그 애가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 강준형은 강지한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끼며 더 이상 두 사람을 엮어주려 하지 않았고 그저 강지한에게 놓아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강지한은 말없이 몸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78화

    “미연아, 내가 이번 일에 관해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 나가지 말고 내 말을 먼저 들어줄래?” 강지한은 억누른 화를 속으로 삼키며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가 급히 진주에서 돌아온 게 심미연을 보내려 온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에 관해 설명하고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이번엔 그의 잘못이었다!심미연은 짐가방을 단단히 붙잡고 아무 감정 없이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그녀가 10년 동안 사랑해 온 사람이었고 평생 그를 사랑할 거라 믿었지만 결국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신이 그녀에게 좋은 길을 마련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지한 씨, 내가 당신에게 준 기회는 이미 다 끝났어. 그래서 이번에는 무조건 떠날 거야.” 그녀의 표정은 아무 감정이 없이 가볍고 담담했다.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그녀는 강지한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정리했다. 사람은 한 번 마음을 놓으면 다시 맞닥뜨릴 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었다. 앞으로 강지한의 모든 것은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잘못했어. 네가 정말 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할아버지 생각은 해봤어? 건강도 안 좋은데 네가 떠난다고 그러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걱정되지 않아?”강지한은 심미연의 결단을 보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할아버지를 방패 삼아 막으려 했다. 심미연이 할아버지를 그렇게 아끼는 만큼 그녀는 그가 아프고 슬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강지한은 확신했다.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물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어. 할아버지는 내가 이혼하는 걸 지지하셔.”예전엔 할아버지의 건강 때문에 이혼 얘기를 꺼내지 못했지만 이번엔 강지한의 행동은 너무 지나쳤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혼을 반대하셔도 그녀는 할 것이었다. 더 이상 강지한과 그런 날들을 계속할 수 없었다. 이제 외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77화

    심미연은 일어나 멀리 있는 곳을 응시했다. 그 시선은 마치 지금 자신이 가게 될 길이자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가득 찬 새로운 여정이 펼쳐지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한편 강준형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서서 그녀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음속 깊이 뭔가를 잃은 듯한 아쉬움과 함께 손녀의 앞날을 향한 무한한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강씨 가문의 저택은 다시 한번 고요함을 되찾았다. 하지만 오늘 밤 심미연이 내린 결단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깊은 파문을 일으켜 새로운 삶의 여정이 시작될 것을 예고했다. 미르 파크로 돌아온 심미연을 반기며 임혜자가 서둘러 다가왔다. “사모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바로 준비할게요!” 심미연은 미소로 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요.”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드실 때 말씀하세요!” “네. 그럼 저는 올라가 볼게요.” 임혜자는 그녀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더 말라가는 사모님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손바닥만큼 작아 보일 정도였고 그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심미연은 윗층으로 올라와 빠르게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보낸 3년의 세월 동안 짐이라고는 고작 하나의 여행 가방에 담길 만큼 간단했다. 짐을 끌며 문을 나서던 그녀는 잠시 멈추어 침실을 뒤돌아보았다. 그 방을 바라보는 마지막 시선이었다. 임혜자는 그녀가 가방을 들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다가갔다. “사모님, 어딜 가시려고요?” 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제 이 집을 떠나려고요.” “사모님, 왜 이러세요!” 임혜자는 눈가가 붉어진 채 울먹이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가지 마세요!” 하지만 심미연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며 단호히 짐을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마음속 결단을 전달하는 듯했다. 가방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76화

    온지유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순간 마음 한편에서 감동이 살짝 밀려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만약 그녀가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육현성이 이런 말을 한 순간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 온지유의 침묵은 육현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는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었고 어쩌면 그녀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자신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결국 그것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현성 오빠, 저는...” 온지유는 육현성이 괴로워하는 것을 느꼈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알아요. 지유 씨, 자기 자신을 강요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요.” 결과를 알게 된 육현성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앞으로 자주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당연히 그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현성 오빠, 나랑 이제 아예 연락고 안 해줄 건가요?” “지유 씨, 미안해요. 그냥 내가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요즘 육씨 가문이 엉망진창이라 육현성도 정신없이 바빴기에 온지유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다. 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갑자기 눈가가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알겠어요!” 그녀는 육현성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육현성이 떠나자마자 강지한이 도착했다. 온지유의 붉어진 눈을 보고 또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하며 울었다고 생각했다. “유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눈에 안 좋다고 울지 말랬잖아.” 강지한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달래야 했다. 온지유는 육현성의 다정함이 떠오르며 울음을 참지 못하고 더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강씨 가문의 저택에서. 심미연은 단정한 원피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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