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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바빠도 소홀하면 안 되지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권하윤은 당연히 여행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어색하게 입꼬리를 애써 말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도준 씨 바쁘지 않아요?”

“바빠도 하윤 씨를 소홀히하면 안 되지.”

민도준은 애초부터 인내심이 강했던 사람처럼 권하윤을 애인 대하듯 눈빛으로 현혹했다.

“자기야,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국내로 가고 싶어 아니면 해외로 가고 싶어?”

해외라는 두 글자에 권하윤의 호흡은 몇 초 늦어졌다.

민도준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든 괜찮아요.”

“착하네.”

민도준은 권하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

“내일 애들 시켜서 관광 안내 책자를 가져다줄 테니까 열심히 고르고 있어. 심심하지 않게.”

권하윤은 입을 뻐금거렸지만 끝내 거절의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민도준은 바쁜 일이 있다면서 권하윤 곁에 잠시 있어 주는가 싶더니 이내 떠나가 버렸다.

그러고는 방에 얼마 있지 않았는데 밖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보니 문을 나무로 봉쇄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한참 뒤 사라졌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권하윤이 문을 열어 보려고 힘을 밀어봤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았다.

별장에 갇히면서 느꼈던 답답함은 오늘 이순간 최고조에 달했다.

심지어 요즘 민도준과 함께 그려낸 “집”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떠나야 해.’

안 그러면 언젠가는 이곳에 갇혀 답답하게 죽어갈 테니까.

‘하지만 도준 씨가 발표회에 데려가지 않으면 어떻게 떠나지?’

물론 민도준이 나중에 권하윤을 데리고 놀러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건 결국 기약 없는 약속일 뿐이다.

만약 발표회가 끝난 뒤 민도준이 또다시 번복하면 권하윤으로서도 아무 방법이 없을 거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나니 권하윤은 이번 발표회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도준 씨가 오늘 USB 건으로 화를 내고 원래 했던 결정을 번복했으니 화가 가라앉고 난 뒤 다시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

‘그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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