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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천덕꾸러기

권하윤은 어안이 벙벙해서 모르쇠로 일관했다.

“네? 제 말 진짜예요.”

권하윤의 표정을 보자 할머니는 빙그레 웃을뿐 계속해서 간파하지 않았다.

“똑똑한 아가씨네. 두 사람이 그런…….”

“하.”

할머니가 말을 분명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권하윤은 한 순간에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자기가 민도준의 제수씨였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하윤 양이 참한 아가씨라는 건 나도 아네. 우리 도준이한테 진심이라는 것도.”

할머니는 권하윤을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앞으로 사람들이 손가락질해 대고 뒤에서 말들이 많을 거네. 두 사람이 앞으로 아이를 가져도 그 아이마저 손가락질받을 수 있겠지. 두 사람이 보통 사람이면 모를까, 하필이면 민씨 가문과 얽힌 사람이니 누군가 일부러 안 좋게 여론을 만들 것도 뻔하고. 이런 것들은 생각해 봤나?”

안 생각해 봤을 리 없다.

사건의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권하윤을 동생과 몸을 섞고 또 그 형과도 섞은 가벼운 여자로 볼 거라는 것도 안다.

심지어 민도준마저 인륜을 파괴하는 파렴치한이라고 말을 듣겠지.

권하윤이 고개를 숙이자 할머니는 끝내 마음이 아팠는지 권하윤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

“하윤 양, 내 말에 마음이 안 좋을 거란 거 아네. 그런데 나중에 후회하며 서로를 원망하기보다 지금 서로 놓아주는 게 더 좋지 않겠나? 만약 두 사람의 마음이 확고하다면 나도 더 말하지는 않겠다만.”

할머니는 심한 말도, 꾸짖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권하윤이 가장 숨기고 싶고 가장 모른 체 하고 싶었던 문제를 앞에 내놓았다.

하지만 이럴수록 권하윤의 마음은 답답하고 불안했다.

민도준이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쓰는 것도 싫었고, 자기 때문에 안 좋은 일에 휘말리는 것도 싫었으니까.

그러던 그때, 숙였던 고개가 갑자기 들리며 자의 눈빛과 마주하게 되었다.

민도준은 권하윤 눈가에 아직 가시지 않은 물기를 보자 눈썹을 들여 올렸다.

“누가 이랬어? 아주 땅 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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