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불만을 품고 있던 놈들은 이러한 장면을 보자 하나같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그제야 민도준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공태준을 보면서 이제야 발견한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아이고, 공 가주도 있었네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내가 살아 있어서 실망하셨나?”공태준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여상스럽게 대응했다.“무슨 그런 농담을. 민 사장님이 살아 돌아왔는데 안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민도준은 혀를 끌끌 찼다.“역시 공 가주님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네요. 그렇게 헛수고했는데 화도 안 내다니.”그 말에 공태준은 그제야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건 민도준의 건들거리는 태도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분명 사람을 보내 개인 병원을 지키라고 한 뒤 민도준이 아직은 퇴원할 상황이 아니라는 소식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였는데.민도준은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상태를 보아하니 중상을 입기는커녕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으니 언짢을 수밖에.그렇다면 전의 모든 게 눈속임이었단 말인가?민도준은 공태준이 자기를 훑어보자 아예 팔을 쫙 편 채 사람 좋은 태도로 말했다.“잘 보여요? 아니면 돋보기라도 가져다드릴까?”희롱하는 말투에 공태준의 미간은 한층 더 움푹 파였다.민도준은 그게 재밌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하려는 찰나 옆에서 자기를 열심히 훔쳐보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힐끗힐끗 훔쳐보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권하윤은 당장이라도 민도준의 얼굴을 뚫을 기세였다.이에 민도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렇게 잘생겼어?”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가 겨우 긴장이 풀린 권하윤은 이미 정상적인 사고도 할 수 없는지 멍한 표정으로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민도준은 재밌다는 듯 공태준을 힐끗거리며 입을 열었다.“공 가주보다도 더?”“네!”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공 가주, 그간 뭐 하셨어요?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우리 제수씨가 아직도 공
분위기는 점점 이상해졌지만 민도준은 아예 무시한 채 오히려 공태준을 위로했다.“괜찮아요, 공 가주. 이번 기회를 못 잡았다면 다음 기회가 있으니 너무 상심해 마세요.”이런 상황에서 민도준의 위로는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같았다.아무리 교양 있는 공태준이라도 이것만은 참지 못하겠는지 얼굴만큼 어두워진 목소리로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그래요.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 가르침을 주세요.”이건 끝까지 싸워보자는 일종의 도전장이었다.방 안은 마치 가스라도 들어찬 듯 불씨만 있으면 바로 터질 것만 같았다.심지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권하윤은 어깨를 누르는 힘이 한층 더해졌다는 걸 느꼈다.그때, 등 뒤에서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르침이라고 하니 생각났는데 오늘의 일은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지만 권하윤은 공태준이 뒤에서 무슨 작당을 꾸몄는지 알고 있었기에 민도준의 성격으로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민도준의 시비를 거는 말투에 공태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러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민도준은 마치 피곤한 듯 권하윤의 어깨를 스치며 팔을 앞으로 뻗더니 상체를 아예 권하윤의 어깨에 기댔다.그러더니 공태준을 위아래로 훑으며 아쉬운 듯 말을 꺼냈다.“공 가주처럼 조심성 많은 분이 여자 하나 때문에 저와 틀어질 줄은 몰랐습니다.”민도준은 권하윤의 턱을 잡고 자기 쪽으로 돌리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제수씨, 어쩔 거야? 공 가주의 혼을 쏙 빼놓았으니 이제 어쩌면 좋아?”분명 자유로워 보이는 자세와 가벼운 말투였지만 권하윤은 그 말속에 숨은 위험을 감지했다.이에 고개를 마구 저으며 자기 눈을 깜빡이며 결백을 증명하려고 애썼다.“저 안 그랬어요. 정말이에요…….”“응? 아니라고? 그렇다면 공 가주가 짝사랑이라도 한다는 거야?”어이없다는 듯 내뱉은 민도준의 말에는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그렇다고 해도 그걸 공 가주 앞에서
권하윤은 민도준의 힘 때문에 일순 뒤로 당겨졌다. 심지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자기를 바라보는 무거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공태준이 막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는 권하윤과 민도준을 바라보기만 했다.하지만 오히려 붙잡지도 않는 그 행동에 권하윤은 더 불안했다.“왜 그래? 정신을 룸에 두고 왔어?”권하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자기가 이미 밖으로 나왔다는 걸 알아차렸다.아까와 같은 긴장감이 더 이상 흐르지 않았지만 민도준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심지어 시선이 흐릿해지고 동작마저 뻣뻣해졌다.“그, 도준 씨가 여긴 어떻게 왔어요?”“하윤 씨 바래다주려고 왔지.”권하윤이 멍한 표정을 짓자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뭐야? 모른 척하는 거야?”그제야 민도준이 경성을 떠나는 일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민도준이 제일 먼저 꺼낸 말이 이 말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권하윤은 어안이 벙벙했다.‘아, 나를 바래다주려고 온 거구나.’그런데…….권하윤은 막연한 표정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저, 저 사실…….”민도준은 권하윤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턱을 들어 차를 가리켰다.“차는 저기 있으니까 가 봐.”아니나 다를까 등 뒤에는 검은색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차를 힐끗 보다가 고개를 돌려 민도준을 바라봤지만 그는 별다른 표정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눈꼬리에 귀찮음이 가득 묻어 있었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문 채 권하윤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공태준 앞에서 한 연극을 진짜라고 믿었다니.’순간 웃음이 났다.‘도준 씨가 정말로 예전의 일을 없던 일로 여길 거라고 생각하다니. 도준 씨를 죽이려 했으면서 나도 참 순진하네…….’씁쓸함이 가슴을 휘감더니 눈물이 자꾸만 앞을 가렸다.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날려버리면 잠시 뒤 또 고여왔다.‘이제 가야 해. 지금 안 갔다가 공태준이 내 진짜 신분으로 위협이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도준 씨가 공은채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데 원수의 딸을 좋
허리를 끌어안은 작은 손은 힘을 꼭 주고 있었고 흐느낌 소리는 등에 파묻혀 희미하게 들려왔다.다시 돌아와서 듣게 된 한민혁의 말에서 권하윤은 아까 자기를 내리누르며 지탱하던 힘이 왜 그리도 센지 이제야 깨달았다.그때는 단지 자기한테 벌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민도준이 자기의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권하윤을 함께 데려가려는 목적만 아니었다면 사실 한민혁만 왔어도 충분했을 텐데.분명 안전한 곳에 몸을 피해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와도 될 텐데.‘또 나 때문에 도준 씨가 위험하게 됐어.’민도준을 노리는 사람들은 도처에 널렸고, 이런 상태로 다시 나타나는 건 적들에게 약점을 훤히 드러내는 거나 다름없는데 민도준은 그래도 오는 걸 선택했다.‘왜 나를 신경 쓰는 건데? 나도 도준 씨를 죽이려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나도 도준 씨를 죽이려 했는데…….’이러한 생각 때문에 권하윤은 아예 엉엉 소리 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가엾기 그지없었다.민도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있는 힘껏 권하윤의 팔을 뿌리쳤다.“이거 놔.”등 뒤에 꼭 붙어 있던 권하윤은 작은 머리를 좌우로 힘껏 흔들었다.심지어 행동으로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더 꼭 끌어안았다.“안 놓으면 팔 부러져도 몰라.”민도준의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배어 있었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흐느끼는 목소리로 고집을 부렸다.“부러져도 안 놓을 거예요.”“그, 저기…….”그때, 보다 못한 한민혁이 끼어들었다.“권하윤 씨, 손 안 놓으면 도준 형이 그 전에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요…….”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듯 권하윤은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천천히 손을 내렸다.민도준은 권하윤에게 눈빛도 주지 않은 채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예전에 쓰던 차는 폭발 사고 때문에 완전히 망가져 쓸 수 없게 되어 현재는 지프차로 차종을 바꾼 모양이었다.민도준이 차에 올라타자 권하윤은 놓칠세라 다급히 뒤를 쫓더니 차 문이 닫히려는 찰나 손을
권하윤은 주위의 분위기를 무시한 채 차에서 쫓겨날까 봐 얼른 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도준 씨는 지금 바람 맞으면 안 되니까 제가 문 닫아 드릴게요.”권하윤의 행위는 민도준의 한계를 대놓고 건드리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한민혁마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그러던 그때, 권하윤은 심지어 재촉을 하기 시작했다.“민혁 씨, 얼른 출발하지 않고 뭐 해요?”“네?”한민혁은 민도준을 힐끗 바라봤다.“출발해.”“아, 그러면 출발할게요.”차가 출발하자 권하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홍옥정 앞을 지나가면서 보니 이미 수많은 경찰차가 도착해 있었고 로건이 경찰들과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이윽고 강력팀 팀장인 장 형사가 화영의 앞에 서더니 뒤로 한 발 물러나 뒤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화영에게 경례했다. 절도 있는 동작에는 경의와 존경이 묻어 있었다.그 경례는 적을 소탕하기 위해 희생한 동료와 그 동료를 위해 적의 소굴에 숨어 들어 모든 걸 바친 여인에게 바치는 것이었다.잇따라 화영이 허리를 숙여 경찰들을 향해 인사했다.그 순간, 화영의 입꼬리는 예쁜 호를 그리며 올라갔고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차는 어느새 홍옥정을 떠났다.방금 본 장면에 감동한 권하윤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옆에 있는 민도준을 힐끗거렸다.그제야 민도준이 눈을 감은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이토록 가까이에서 민도준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이에 권하윤은 겁이라도 상실한 듯 바싹 다가가 숨을 죽인 채 민도준을 훔쳐봤다.목베개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약간 젖힌 민도준은 선명한 목젖을 그대로 드러냈다.날카로운 턱선을 따라 내려온 목은 섹시한 곡선을 자랑했다.권하윤은 소리 없이 침을 꼴깍 삼킨 채 민도준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그러다 문득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왜 이렇게 오랫동안 눈을 뜨지 않지? 설마 쓰러졌나?’그런 생각이 들자 방금까지 느꼈던 온화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그 대신 걱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한참을 기다렸지만
위층.민도준은 창가에 서서 권하윤이 차에 내려 비틀거리며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높은 건물 옆에 서 있으니 권하윤의 작은 몸집이 더 작게 보여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만 같았다.그때, 등 뒤에서 한민혁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도준 형, 하윤 씨 이미 갔어.”“응.”말을 전한 뒤 한민혁은 바로 떠나지 않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실 형이 병원에 있을 때 권하윤 씨가 여기 지켜내느라 엄청 고생했어. 공 가주를 찾아간 것도 형네 식구들을 누르기 위해서였고. 하윤 씨가 아니라면 여기 이미 아수라장이 됐을 거야.”“그래?”민도준은 몸을 돌려 가르침을 바라는 듯 물었다.“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그 섬뜩한 말투에 숨은 뜻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한민혁은 그간 이바닥에서 굴렀다고 말할 자격도 없을 거다.이윽고 한민혁은 자기 입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말을 바꾸었다.“그냥 헛소리 한 거야.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내 말이 뭐라고. 흘려들어 하하하.”민도준은 한민혁을 무시한 채 소파에 앉았다.눈살을 한껏 구긴 민도준의 모습에 한민혁은 걱정되는 듯 입을 열었다.“도준 형, 괜찮겠어? 의사라도 부를까?”“필요 없어. 안 죽어.”민도준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자 한민혁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얼른 뒤로 물러났다.“그러면 휴식하고 있어. 나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일 있으면 나 부르고. “문이 다시 닫히자 소파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있던 남자의 입꼬리는 비아냥거리는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그렇게 떠날 수 없다면 내 술잔에 그렇게 고민도 없이 약을 탔을까? 하, 본인도 아마 미안한지 아니면 미련인지 구분을 못 하겠지.’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길들지 않은 것도 모자라 오히려 나를 물려고 했으면서 내가 부처님이라도 되는 줄 아나?’살짝 눈을 붙이고 있을 때 갑자기 문소리와 함께 음식 냄새가 풍겨 들어왔다.조심스러운 발소리를 보니 한민혁이 아닌 건 분명했다.아니나
권하윤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보자 그제야 생각났는지 얼른 입을 열었다.“도준 씨가 걱정돼서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을 좀 사 왔어요.”자기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권하윤은 보온 박스를 열더니 그릇을 까내 뜨끈뜨끈한 국을 작은 그릇에 덜어냈다.“도준 씨 한번 드셔…….”하지만 안에 든 내용물을 보는 순간 말이 뚝 끊겼다.민도준은 그릇 안에 담긴 소꼬리를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물었다.“기력을 보충한다는 게 이쪽을 말하는 거였어?”권하윤도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다. 사장님이 뭘 원하냐고 물을 때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때려 박아서 만들어 달라고 했던 게 화근이었을까?‘내가 말한 기력은 몸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이쪽을 가리킨 게 아닌데…….’권하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깊은 심정이었다. ‘뭐, 반찬은 그래도 괜찮겠지?’애써 침착하며 음식을 담은 그릇을 열어보는 순간 눈앞에 거뭇거뭇한 해산물들이 보였다.민도준은 그중에서 가장 큰 굴을 하나 집어 들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음, 확실히 내 몸 걱정하는 걸 느꼈어.”젓가락을 내려놓는 동시에 굴을 다시 그릇에 담으며 민도준은 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걱정하지 마. 내가 다친 곳은 신장 쪽과 머니까.”권하윤의 얼굴은 순간 잿빛이 되었다. 조금 아부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은근히 암시를 한셈이니.더 이상 민도준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권하윤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섰다.“저 먼저 가볼게요.”작은 걸음으로 눈치를 보며 물러나는 권하윤을 보니 며칠 사이에 살이 쭉 빠진 것만 같았다. 호박색 눈동자는 곁눈질하며 눈치를 살필 때마다 반짝거리며 “나 좀 잡아줘요”라는 암시를 노골적으로 해댔다.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끝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심지어 작은 머리 위에 먹구름이라도 낀 것처럼 우중충해 보였다.그러다가 권하윤의 손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두 글자가 들려왔
분명 민도준이 자신을 일부러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권하윤은 몸 안에 자꾸만 불덩이가 타오르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이건 약물을 마셨을 때 느꼈던 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르는 욕망과는 달리 왠지 모르게 해소되지 않는 갈증 같았다.심지어 그런 갈증은 온몸의 신경을 갉아 먹고 있었다.권하윤이 자기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자 민도준은 재밌다는 듯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하지만 권하윤은 자기를 그냥 내버려 두는 민도준을 비겁하다고 생각할 새가 없었다. 이미 온 신경이 담배를 낀 긴 손가락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핏줄이 튀어나온 손등이 희뿌연 연기에 가려져 야릇하면서도 남성미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걸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따가워지고 따라서 몸 안도 열기가 차올랐다.민도준은 재밌는 듯 권하윤을 바라봤다. 그가 권하윤에게 먹였던 음식을 만약 남자가 먹었다면 지금쯤 아마 욕망에 휘둘려 미쳐버렸을 거다.‘그런 걸 덜컥 사 와서 나한테 먹이려 하는 건 우리 제수씨밖에 더 있을까?’민도준은 담배를 끝까지 피우고 천천히 일어났다.그때 권하윤도 따라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권하윤의 목소리는 어느새 쉬었는지 쇠를 긁는 소리가 났다.“도준 씨, 어디 가요?”“샤워하러.”민도준은 발갛게 상기된 권하윤의 얼굴을 바라봤다.“왜? 같이 씻으려고?”당장이라도 덮쳐버리고 싶은 걸 겨우 의지로 버티고 있는데 같이 샤워하자니?그건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을 거다.권하윤은 얼른 고개를 저으며 자기의 뜻을 밝히자 민도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밖에서 기다려.”권하윤은 그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눈에서 멀어지면 복잡하던 마음도 진정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욕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에 권하윤의 머리는 갑자기 상상도를 펼치기 시작했다.그러던 그때, 인중이 뜨거워지더니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휴지를 찾다 못 한 권하윤은 코를 막은 채 욕실 문을 두드렸다.“저, 저 세수만 좀 하고 갈게요.”문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