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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수아의 시각]

등이 뻐근하고 팔이 쑤시는 통증에 잠에서 깨어보니 지훈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제 TV를 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밤새 나를 돌보겠다고 진지하게 말한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나는 지훈이가 깨날까 봐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침 8시쯤이라 지훈이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준비해야 했다.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가 잠시 서서 한 팔로 아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팬케이크를 만들 재료를 꺼내려던 순간 어제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깨에 붕대를 감지 않고 팔에 깁스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절 후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칼에 깊게 찔렸지만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운이 좋았다고 한다. 만약 부위가 조금만 더 아래였다면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다.

그들은 상처를 소독한 후 꿰매고 팔을 깁스에 고정했다. 나는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받았고 의사는 다음 진료 때까지 팔을 높게 들고 다니라고 했다.

팬케이크를 만들면서 나를 구해준 남자가 생각났다. 누구인지 알아내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내 가족들이 내 안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때 나를 챙겨준 유일한 사람이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누구인지 더 궁금했다. 한때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한테서 상처를 너무 받았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보니 어제 본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처음으로 눈에 띈 건 그의 크고 까만 눈동자였다. 내가 본 눈동자 중 가장 맑은 눈동자였다.

어제는 충격과 아픔 때문에 주의 깊게 보지 않았지만 그는 정말 잘생겼다. 키는 190cm 정도 되었고 적당한 근육의 소유자였다. 날렵한 턱선과 매끈한 피부 그리고 짙은 갈색 머리까지 더해져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그의 카리스마에 나는 한 번 더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그럼요.”

나는 몸을 비켜주며 말했다. 그는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참 멋진 집이네요.”

“고맙습니다.”

나는 살짝 부끄러웠다.

“팬케이크를 만들었는데 같이 드실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를 부엌으로 안내했다. 계속 아침을 만들려고 하자 그는 나를 말렸다.

“정식으로 인사를 하지 않았네요. 저의 이름은 유재인입니다.”

그는 부드럽게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다정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남자가 없었다. 나는 항상 재미없고 매력 없는 여자로 취급받았으니까.

“저는 한수아예요.”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알아요. 예쁘네요.”

그는 윙크하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매력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런데 재인 씨는 우리 아버지와 무슨 사이죠? 왜 장례식에 참석하셨어요?”

나는 그에게 커피 한 잔을 내주며 팬케이크를 건넸다. 그리고 내 몫도 챙겨서 그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유재인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수아 씨 아버지가 위협을 받고 돌아가셨으니 경찰서장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우리를 배치한 거죠.”

“경찰이군요? 제가 경찰관들은 거의 다 아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네. 저는 몇 달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일이 너무 바빠서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이 거의 없었죠.”

유재인은 음식을 삼키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저랑 놀아요. 제가 친구 해 줄게요. 사실 오늘 아침에 어떻게 재인 씨를 찾을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왜요?”

“저를 구해줬잖아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심폐소생술을 해주며 구급차를 부르던 모습이 흐릿하게 기억나요.”

그리고 유재인이 나를 향해 달려오던 모습이 기억났다. 만약 그가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면 칼은 내 심장을 찔렀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저는 그냥 제 일을 했을 뿐이에요.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을 품에 안았으니 제 영광이죠. 수아 씨가 글쎄 자기 피를 보고 놀라서 기절하더라고요.”

그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놀렸다.

그러자 나는 당황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그의 말투와 행동을 보아 꽤 매력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삶에 한 번도 없었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함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 집에 오셨나요? 어떻게 집 주소를 알았죠?”

“경찰이잖아요. 이 정도는 껌이죠. 수아 씨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어제 사건 보고서를 제출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병원에 찾아갔는데 수아 씨가 이미 퇴원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녁에 찾아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오늘 온 거예요.”

솔직히 나는 놀랐다. 이 낯선 남자가 보여준 배려와 관심은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했다. 물론 지훈이는 예외였다. 나는 처음 받아 보는 관심에 익숙지 않았다.

“고마워요.”

나는 살짝 울먹이며 말했다. 그는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 화제를 바꿨다.

그 후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비록 낯선 사람이지만 너무 편안했다. 지훈이 외에 다른 사람과 이렇게 편안하게 지내본 기억이 없었다.

약 40분 후 그는 번호를 교환하고 떠났다. 비록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낼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자들이 다시 찾아오거나 연락할 필요가 있을 만큼 매력적인 여자는 아니었다.

설거지하려던 참에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는 아직 잠을 자고 있어 나는 그를 깨울 생각이 없었다.

“두고 가신 거라도…”

나는 문을 열며 물었다. 우현수의 얼굴이 보이자 나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청아를 구하려고 달려갔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현수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어제의 일은 그가 나를 얼마나 무시하고 싫어하는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애써 화를 누르며 태연한 척했다.

그는 나에게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고 나는 죽은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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