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아의 시각]“왜 거기에 가야 해요? 저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지훈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불만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나와 우현수가 같이 가는 줄 알고 신났지만 말이다.학교 측에서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주면서 어머니께 수업 자료를 보내주며 지훈이가 뒤처지지 않게 해주었다.“말했잖아. 이번 여행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여행이야.”경찰서장과 이야기한 후 나는 그들이 따뜻한 해변으로 갈 거라고 확신했다.“해변으로 갈 거야. 네가 우리한테 휴가 보내 달라고 마침 졸랐잖아.”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해변이라는 단어를 듣자 지훈이는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다. 지훈이는 바다를 엄청 좋아한다. 셋이 같이 몰디브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일주일 동안 울었던 적도 있었다. 지훈이는 그곳으로 이사하길 원했고 우리가 그 제안을 거부하자 혼자 몰디브에 남겠다고 애원했다.나는 지훈이가 내 삶에 가져다준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엄마,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지훈이가 갑자기 물었다.“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그건 없죠.”지훈이는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었다.“그럼 괜찮아요. 저 이제 삐지지 않을게요.”“왜 삐졌어?”“엄마가 저랑 같이 가지 않아서요. 하지만 나중에 합류하면 되잖아요.”나는 나중에도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훈이가 슬퍼할까 봐 하려던 말을 삼켰다.“이제 가자. 안 그러면 늦어.”나는 다치지 않은 한쪽 어깨로 가방을 메고 지훈이의 작은 캐리어를 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지훈이도 자기 가방을 메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택시를 부르려던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지훈이가 열기 전에 내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지훈이는 늘 상대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문을 여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가 답하지 않거나 모르는 목소리면 열지 말라고 몇 번 주의를 줬으나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문을 열자마자
우현수는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서 있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째려봤지만 나 역시 겁을 먹지 않기로 다짐하고 물러서지 않았다.“난 안 나가. 그러니까 취소하고 내 차에 타. 지금 당장.”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나도 화가 치밀어 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참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네가 뭔데? 응? 내가 네 강아지야? 시키면 다해야 해?”나도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수년 동안 우현수는 나를 쥐락펴락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무엇을 얻었을까? 화를 억누르고 나답지 살지 못했는데 결국에는 이 지경이 되었다. 얻은 건 아무것도 없고 오직 고통과 상처만 남았다.“한수아...”우현수는 경고하듯 말했다.“또 싸우는 거예요?”지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픈 표정으로 서 있는 지훈이를 발견했다. 나랑 우현수가 싸우는 모습을 지훈이에게 보이는 게 너무 싫었다. 지훈이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말이다.“아니야. 싸우는 게 아니야. 뭐 좀 토론하고 있어.”나는 우현수에게 눈치를 줬다.“그렇지?”우현수도 나처럼 노아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이었다. 그 역시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환하게 웃었다.“그럼. 네 엄마가 팔을 다쳐 운전을 못 해서 우버를 불렀대. 하지만 나는 너희 둘을 데려다주고 싶었어.”우현수는 지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왜 우리 아빠랑 같이 안 가요?”나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천장을 바라봤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훈이 때문에 나는 매우 난처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아니야. 같이 갈 거야.”나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지훈이 때문에 이런 일까지 하다니.“야호!”지훈이는 환호하며 거실로 달려가 다시 가방을 챙기고 나왔다.“여기서 기다려.”나는 우현수에게 말하고 지훈이의 짐과 내 가방을 가지러 갔다. 나는 거실을 조금 정리한 후 짐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한
“어머니가 너를 찾으시던데. 만났어? 통화했어?”그러자 나는 짜증을 냈다.“말이 왜 이렇게 많아? 평소처럼 나를 무시해 주면 안 돼?”우현수는 운전대를 꽉 쥐며 이를 갈았다. 그는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순한 양처럼 행동하던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익숙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나는 우현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의 이상형인 청아처럼 되려고 애썼다.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려고 모든 걸 다했다. 하지만 이젠 진정한 나로 살고 싶었다.나는 그 생각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우현수가 화를 낼수록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진정되는 것 같았다.다시 정적이 흘렀다. 우리 둘은 말없이 앉아 있었고 지훈이는 만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시간 뒤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지훈이의 손을 잡고 우현수는 짐을 내렸다.“빨리 바다로 가고 싶어요.”지훈이는 흥분한 상태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그래. 빨리 가자. 우리 지훈이가 가고 싶다는데.”우현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다치지 않은 나의 한 쪽 팔을 잡고 어머니 쪽으로 나를 끌고 갔다.그쪽에는 경찰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몇 명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지훈이는 모두에게 인사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굳이 친절을 베풀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우현수는 짐을 가져와 한 경찰관에게 건넸고 청아, 도언이와 우지찬 옆으로 갔다. 그리고 청아 쪽으로 돌아서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고 이마에 키스했다.나는 모른 척했다. 우현수가 나를 무시한 것과 내가 느끼는 고통은 모두 거짓이라고 나를 속이며 위로했다.왜 굳이 내 앞에서 저런 행동을 할까? 지훈이가 비행기에 타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는 없는 건가?“5분 뒤 출발할게요.”조종사라고 짐작되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평소처럼 굽신거릴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예상을
지훈이가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혼자의 삶에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지훈이는 내 삶의 전부였기에 그가 없으니 나는 너무 허전했다. 예상대로 나는 혼자 씩씩하게 지내지 못했다. 마치 난파선처럼 바다에서 떠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매일 지훈이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렸다. 지훈이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결 차분해지고 에너지를 얻게 된다.공항에서 헤어진 후 나는 우현수에 대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그의 자리가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미래가 없었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더 이상 살 수는 없었다.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칼에 찔렸거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없으니 아마 모두 무사한 것 같았다.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누군가와 부딪혔다.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죄송합니다.”나는 사과하며 떨어진 책을 주웠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그저 집에 가서 자고 싶었다.“괜찮아요.”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유재인이었다.그는 내가 떨어뜨린 책을 함께 주웠고 우리는 동시에 일어섰다. 그의 환한 미소를 보자 나도 모르게 같이 웃었다.“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요?”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재인은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고 정말 멋져 보였다. 내는 남자를 멀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눈을 흐뭇하게 해주는 미남들까지 보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아이들에게 펜타닐을 파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어요.”유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했다.“근데 수아 씨는 여기 선생님이에요?”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네.”나는 갑자기 신경이 쓰였다. 억만장자의 아내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지만 나는 가르치는 일이 좋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반대가 심하셨다. 내가 청아처럼 변호사가 되거나 도언이처럼 사업가가 되길 원하셨다. 아마 나를 더 싫어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그럼 무슨 과목을 가르치세요?”그는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
우리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너무 어색해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그는 마치 나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의 강렬한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돌렸다.“재인아!”뒤돌아보니 다른 경찰관이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곧 갈게.”유재인은 짧게 대답하고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오늘 참 예쁘네요. 이렇게라도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또 연락드릴게요.”“네...”이때 그는 갑자기 나에게 포옹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남아 멍을 때렸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장을 보러 갔다. 시장은 학교에서 멀지 않아서 걸어가기로 했다.깁스를 풀었지만 어깨가 여전히 쑤시고 아팠다. 그래도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사야 할 물건들을 떠올리며 걸어가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유재인과의 대화였다.유재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우현수와 너무 달랐다. 그동안 나를 예쁘다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비록 유재인은 늘 다정하게 나를 대해줬지만 나는 그게 진심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 남편조차 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다른 남자들도 그러지 않을까?‘한수아, 왜 혼자 김칫국을 마시고 난리야.’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유재인은 아마 예의상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멋진 남자가 나 같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일 리가 없으니까.나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나는 내 외모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쓸데없는 기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드디어 시장에 도착했다. 혼자 살고 있었으니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구매하고 계산을 마친 후 가게를 나섰다.오늘은 어깨가 아파서 차를 몰고 출근하지 않았다. 택시를 잡고 집을 가려던 순간 우현수와 청아를 발견했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청아가 무슨 말을 하자 우현수는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순간 아픈 추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내 앞에서는 한
“오늘 하루 어땠어?”나는 전화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청소하며 지훈이와 통화했다. 많이 불편했지만 적어도 어깨 상태는 이제 훨씬 나아졌다.“너무 재밌어요!”지훈이는 흥분된 어조로 소리쳤다.“방금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이제 미끄럼틀 타러 가요! 바로 바다로 이어진 그런 미끄럼틀!”지훈이의 신나는 목소리에 나도 행복해졌다. 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그가 안전하게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내가 그랬잖아. 재미있을 거라고.”나는 청소를 포기하고 소파에 앉았다. 온전히 지훈이랑 통화하고 싶었다.“엄마는 어때요? 주말 잘 보내고 있어요?”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여덟 살짜리 내 아들이 나보다 더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다. 나는 갈 곳도 없고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만날 사람도 없었다.동료들이 가끔 나를 모임에 초대하곤 했지만 내가 계속 거절하자 더 이상 초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알고 싶어서 초대한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들을 초대할 때 내가 거기 있어서 초대한 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뭐 그냥 그렇지. 청소나 좀 하고 있어”나는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지훈이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엄마 나처럼 나가서 재미있게 놀아야죠. 나 없다고 집에만 있으면 안 돼요.”지훈이의 잔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알았어. 청소만 끝내고 나면 나갈게.”나는 거짓말을 했다. 청소를 끝내면 아마 영화나 보고 야식이나 먹겠지. 아니면 그냥 푹 잘 것이다.“알았어요. 외할아버지가 저를 부르네요.”“그래 빨리 가봐. 이따 다시 통화하자.”“할머니가 엄마한테 안부 전해 달래요.”“그래. 미끄럼틀 조심히 타.”나는 어머니의 안부 인사를 완전히 무시하며 말했다.지훈이는 전화를 끊고 신이 난 상태로 미끄럼틀을 타러 갔다. 내가 어머니의 안부 인사를 무시한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훈이는 아버지와 똑같이 평소에는 굉장히 민감한 성격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완전히 놀이에 빠져 있었다.나는 미소를
나는 전화를 끊고 서둘러 옷 방으로 달려가 옷을 골랐다. 훈련장에 가는 거라 편한 옷이 좋을 것 같아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운동화를 선택했다.유재인은 약속대로 10분 안에 도착했고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왜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분위기는 편안했고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와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아버지가 경찰 때문에 돌아가셨거든요.”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자 나는 놀라서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면 경찰을 더 싫어해야 할 텐데요?”“아니요. 우리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좋은 아버지도 아니었고. 불법 무기를 팔던 분이었는데 경찰이 총으로 아버지를 쏴서 죽였을 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나도 그들처럼 위험한 사람들을 제압하고 우리 동네를 안전하게 만들고 싶었어요.”그는 잠시 말이 없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를 언급할 때 그의 어조를 보아 그의 아버지는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닌 끔찍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했다.내가 가르치는 반에도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이 있었다. 나는 최대한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런 학대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럼 수아 씨는 왜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나는 평소라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지만 유재인 앞에서 마음을 열고 말하려는 내 자신을 보며 놀랐다.“훌륭한 부모님이 아니셨어요. 저를 신경 쓰지도 않았거든요. 아홉 살쯤이었을 때 정말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고 그분은 제가 엄마에게 원했던 모든 것을 해주셨어요. 저를 신경 써주고 칭찬해 주고 안아주고 지지해 줬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친절하셨어요. 저는 그분을 잊을 수 없었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가르치는 일도 좋아하고요.”서현정 선생님은 나의 정신적 지주였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슬프고 외로웠던 아홉 살 나에게 베풀어준 친절에 여전히 감사했다.“와우.”
[우현수의 시각]나는 수아를 구해준 그 경찰이 수아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상하게도 그가 수아의 손을 잡은 게 싫었다. 꼭 손을 잡아야만 했던 걸까?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짜증이 났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청아가 부드러운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괜찮아?”청아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청아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여자다.’나는 자신을 다잡으며 수아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내가 싫다고 했으니 다른 남자가 수아에게 관심을 보이든 말든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괜찮아.”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청아도 활짝 웃었다. 처음 청아를 봤을 때 그녀는 매력적인 미소로 나를 사로잡았다.몇 분 후 수아는 그와 함께 돌아왔다. 수아는 그가 한 말에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둘이 너무 어울려 보여 나는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겉으로는 수아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왜 지금 저 남자를 죽도록 때리고 싶은 기분이 들까?“왜 우리를 못 본 척해?”한도언은 훈련을 멈추고 수아에게 물었다. 지찬이도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어서 나란히 서 있으면 다들 우리가 쌍둥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수아는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한도언을 차갑게 째려봤다.“꼭 아는 척해야 해?”“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가족이잖아.”한도언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언제부터? 넌 누나가 청아 한 명밖에 없잖아. 우현수가 사랑하는 여자도 청아고. 지찬 씨는 글쎄... 나를 형수로 인정한 적도 없고.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청아가 바로 옆에 서 있는데 내가 왜 굳이 인사하고 아는 척해야 해?”수아는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순간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사실 수아 말처럼 우리는 늘 수아를 차갑게 대했다.“뭔 개소리야? 아 X발 짜증 나! 동생한테 인사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