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이가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혼자의 삶에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지훈이는 내 삶의 전부였기에 그가 없으니 나는 너무 허전했다. 예상대로 나는 혼자 씩씩하게 지내지 못했다. 마치 난파선처럼 바다에서 떠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매일 지훈이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렸다. 지훈이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결 차분해지고 에너지를 얻게 된다.공항에서 헤어진 후 나는 우현수에 대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그의 자리가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미래가 없었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더 이상 살 수는 없었다.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칼에 찔렸거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없으니 아마 모두 무사한 것 같았다.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누군가와 부딪혔다.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죄송합니다.”나는 사과하며 떨어진 책을 주웠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그저 집에 가서 자고 싶었다.“괜찮아요.”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유재인이었다.그는 내가 떨어뜨린 책을 함께 주웠고 우리는 동시에 일어섰다. 그의 환한 미소를 보자 나도 모르게 같이 웃었다.“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요?”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재인은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고 정말 멋져 보였다. 내는 남자를 멀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눈을 흐뭇하게 해주는 미남들까지 보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아이들에게 펜타닐을 파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어요.”유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했다.“근데 수아 씨는 여기 선생님이에요?”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네.”나는 갑자기 신경이 쓰였다. 억만장자의 아내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지만 나는 가르치는 일이 좋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반대가 심하셨다. 내가 청아처럼 변호사가 되거나 도언이처럼 사업가가 되길 원하셨다. 아마 나를 더 싫어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그럼 무슨 과목을 가르치세요?”그는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
우리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너무 어색해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그는 마치 나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의 강렬한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돌렸다.“재인아!”뒤돌아보니 다른 경찰관이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곧 갈게.”유재인은 짧게 대답하고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오늘 참 예쁘네요. 이렇게라도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또 연락드릴게요.”“네...”이때 그는 갑자기 나에게 포옹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남아 멍을 때렸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고 장을 보러 갔다. 시장은 학교에서 멀지 않아서 걸어가기로 했다.깁스를 풀었지만 어깨가 여전히 쑤시고 아팠다. 그래도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사야 할 물건들을 떠올리며 걸어가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유재인과의 대화였다.유재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우현수와 너무 달랐다. 그동안 나를 예쁘다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비록 유재인은 늘 다정하게 나를 대해줬지만 나는 그게 진심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 남편조차 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다른 남자들도 그러지 않을까?‘한수아, 왜 혼자 김칫국을 마시고 난리야.’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유재인은 아마 예의상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멋진 남자가 나 같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일 리가 없으니까.나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나는 내 외모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쓸데없는 기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드디어 시장에 도착했다. 혼자 살고 있었으니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구매하고 계산을 마친 후 가게를 나섰다.오늘은 어깨가 아파서 차를 몰고 출근하지 않았다. 택시를 잡고 집을 가려던 순간 우현수와 청아를 발견했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청아가 무슨 말을 하자 우현수는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순간 아픈 추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내 앞에서는 한
“오늘 하루 어땠어?”나는 전화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청소하며 지훈이와 통화했다. 많이 불편했지만 적어도 어깨 상태는 이제 훨씬 나아졌다.“너무 재밌어요!”지훈이는 흥분된 어조로 소리쳤다.“방금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이제 미끄럼틀 타러 가요! 바로 바다로 이어진 그런 미끄럼틀!”지훈이의 신나는 목소리에 나도 행복해졌다. 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그가 안전하게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내가 그랬잖아. 재미있을 거라고.”나는 청소를 포기하고 소파에 앉았다. 온전히 지훈이랑 통화하고 싶었다.“엄마는 어때요? 주말 잘 보내고 있어요?”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여덟 살짜리 내 아들이 나보다 더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다. 나는 갈 곳도 없고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만날 사람도 없었다.동료들이 가끔 나를 모임에 초대하곤 했지만 내가 계속 거절하자 더 이상 초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알고 싶어서 초대한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들을 초대할 때 내가 거기 있어서 초대한 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뭐 그냥 그렇지. 청소나 좀 하고 있어”나는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지훈이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엄마 나처럼 나가서 재미있게 놀아야죠. 나 없다고 집에만 있으면 안 돼요.”지훈이의 잔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알았어. 청소만 끝내고 나면 나갈게.”나는 거짓말을 했다. 청소를 끝내면 아마 영화나 보고 야식이나 먹겠지. 아니면 그냥 푹 잘 것이다.“알았어요. 외할아버지가 저를 부르네요.”“그래 빨리 가봐. 이따 다시 통화하자.”“할머니가 엄마한테 안부 전해 달래요.”“그래. 미끄럼틀 조심히 타.”나는 어머니의 안부 인사를 완전히 무시하며 말했다.지훈이는 전화를 끊고 신이 난 상태로 미끄럼틀을 타러 갔다. 내가 어머니의 안부 인사를 무시한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훈이는 아버지와 똑같이 평소에는 굉장히 민감한 성격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완전히 놀이에 빠져 있었다.나는 미소를
나는 전화를 끊고 서둘러 옷 방으로 달려가 옷을 골랐다. 훈련장에 가는 거라 편한 옷이 좋을 것 같아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운동화를 선택했다.유재인은 약속대로 10분 안에 도착했고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왜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분위기는 편안했고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와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아버지가 경찰 때문에 돌아가셨거든요.”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자 나는 놀라서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면 경찰을 더 싫어해야 할 텐데요?”“아니요. 우리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좋은 아버지도 아니었고. 불법 무기를 팔던 분이었는데 경찰이 총으로 아버지를 쏴서 죽였을 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나도 그들처럼 위험한 사람들을 제압하고 우리 동네를 안전하게 만들고 싶었어요.”그는 잠시 말이 없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를 언급할 때 그의 어조를 보아 그의 아버지는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닌 끔찍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했다.내가 가르치는 반에도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이 있었다. 나는 최대한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런 학대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럼 수아 씨는 왜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나는 평소라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지만 유재인 앞에서 마음을 열고 말하려는 내 자신을 보며 놀랐다.“훌륭한 부모님이 아니셨어요. 저를 신경 쓰지도 않았거든요. 아홉 살쯤이었을 때 정말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고 그분은 제가 엄마에게 원했던 모든 것을 해주셨어요. 저를 신경 써주고 칭찬해 주고 안아주고 지지해 줬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친절하셨어요. 저는 그분을 잊을 수 없었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는 가르치는 일도 좋아하고요.”서현정 선생님은 나의 정신적 지주였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슬프고 외로웠던 아홉 살 나에게 베풀어준 친절에 여전히 감사했다.“와우.”
[우현수의 시각]나는 수아를 구해준 그 경찰이 수아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상하게도 그가 수아의 손을 잡은 게 싫었다. 꼭 손을 잡아야만 했던 걸까?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짜증이 났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청아가 부드러운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괜찮아?”청아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청아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여자다.’나는 자신을 다잡으며 수아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내가 싫다고 했으니 다른 남자가 수아에게 관심을 보이든 말든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괜찮아.”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청아도 활짝 웃었다. 처음 청아를 봤을 때 그녀는 매력적인 미소로 나를 사로잡았다.몇 분 후 수아는 그와 함께 돌아왔다. 수아는 그가 한 말에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둘이 너무 어울려 보여 나는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겉으로는 수아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왜 지금 저 남자를 죽도록 때리고 싶은 기분이 들까?“왜 우리를 못 본 척해?”한도언은 훈련을 멈추고 수아에게 물었다. 지찬이도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어서 나란히 서 있으면 다들 우리가 쌍둥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수아는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한도언을 차갑게 째려봤다.“꼭 아는 척해야 해?”“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가족이잖아.”한도언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언제부터? 넌 누나가 청아 한 명밖에 없잖아. 우현수가 사랑하는 여자도 청아고. 지찬 씨는 글쎄... 나를 형수로 인정한 적도 없고.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청아가 바로 옆에 서 있는데 내가 왜 굳이 인사하고 아는 척해야 해?”수아는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순간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사실 수아 말처럼 우리는 늘 수아를 차갑게 대했다.“뭔 개소리야? 아 X발 짜증 나! 동생한테 인사 한번
“그런데 왜 형 전 부인이랑 저 남자를 째려봐? 사람을 구해준 영웅인데.”지찬이가 말했다.“개자식이 무슨 영웅이야!”“영웅이지... 수아 씨를 구해줬으니깐 수아 씨 눈에는 영웅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수아가 유재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닥쳐!”나는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그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형 정신 차려. 형은 청아 씨 때문에 온 거잖아.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보낼래? 청아 씨야말로 형의 여자야. 형이 딴 데 신경을 팔고 있다는 걸 청아 씨도 눈치챘어.”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청아를 봤더니 그녀는 무릎 위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지찬의 말대로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청아와 다시 시작하려고 했으면서 수아한테 집착하다니. 게다가 수아는 이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나는 수아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미안해, 청아야. 내가 오늘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아 때문에 나는 오늘 엄청 혼란스러웠다.청아는 내 손을 잡고 내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아니야. 9년 동안 같이 살았으니까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지. 게다가 유재인이라는 사람이 경철이지만 나쁜 사람일 수도 있잖아.”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아의 말대로 나는 단지 수아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그녀는 지훈이의 엄마였으니 말이다.약 30분 후, 나는 수아가 훈련장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유재인이 수아 곁에 있지 않자 나는 자리를 비우고 수아를 따라갔다. 자초지종을 제대로 물어 볼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뭐 하는 거야?”수아는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나는 여자 화장실로 따라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아까는 뭐야?”나는 차갑게 수아를 쳐다보며 물었다.“무슨 말이야?”수아는 이마를 찌푸리며 대답했다. 나는 말을 길게 하기 싫었다. 다시 청아 곁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수아의 시각]“현수 씨는 누구예요?”유재인은 차로 나를 데려다주며 물었다.아까 우현수랑 단둘이 화장실에 있었던 이후로 나는 그의 근처에도 있고 싶지 않아서 재빨리 유재인에게 나를 집에 데려달라고 부탁했다.“제 전 남편이에요.”나는 덤덤하게 대답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현수가 나를 벽 쪽으로 밀면서 키스하려고 했단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한 번도 먼저 키스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충격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나는 거의 그에게 넘어갈 뻔했다. 내가 드디어 원하던 걸 얻게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우현수가 청아와도 키스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청아는 그의 여자이자 애인이었고 나는 그저 지훈이의 엄마일 뿐이었다.우현수는 나 때문에 질투하거나 소유욕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십 대 시절 그는 청아를 위해 늘 그랬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이 섹시하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부러웠다. 그는 나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심했다.하지만 오늘 우현수는 유재인 때문에 질투했다. 그는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우현수가 나와 유재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왜 그랬을까?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물론 나는 더 이상 우현수와 엮이기 싫어 유재인과 잤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우현수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니 내심 기뻤다. 나에게 신경을 쓴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유재인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쉽게 사랑에 빠지면서 상처를 받을까 봐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나는 그분이 청아 씨와 사귀는 줄 알았는데요. 청아 씨는 수아 씨 동생 아닌가요?”유재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맞아요.”“이게 무슨 상황이죠. 전 부인과 새 여자 친구가 어떻게 자매일 수 있죠?”그 말에 나는 움찔했다. 유재인은 새로 이사 왔기 때문에 9년 전에 무슨 일
나는 짜증을 참으며 일어나 목욕 가운을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달콤한 나의 잠을 깨운 사람을 욕할 준비를 하고 문을 열었지만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사람이었다.“청아? 뭐 하러 왔어?”나는 잠이 덜 깬 상태라 퉁명스럽게 말했다."난 그냥 경고하러 왔어. 현수한테서 떨어지라고. 현수는 내 거야. 다시는 너한테 빼앗기지 않을 거야."청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그래서 아침 7시에 우리 집에 온 거야? 미친년.”나는 더 이상 순진하고 어리석은 소녀가 아니었다. 청아가 또다시 나를 깔보게 놔두지 않을 것이었다.“현수는 내 거야! 처음부터 내 거였어. 너 때문에 난 사랑하는 사람이랑 9년을 떨어져 있었어. 다시는 너에게 빼앗기지 않을 거야.”청아는 날이 선 상태로 말했다."이젠 나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원하면 마음대로 가져가. 제발 나 좀 내버려둬!"나는 내 앞집에서 우현수 때문에 언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지훈이만 없다면 우현수는 나와 남이다.“어제 현수가 너를 쳐다보는 눈빛 그리고 너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도 봤어.”“그게 내 잘못이야?”청아는 당장이라도 나를 때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화를 낼 때조차 아름다웠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할 수 있을까? 과연 비결은 뭘까?“넌 다시 현수를 유혹하려는 거잖아.”“우리는 결혼까지 했었어.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잤어. 나는 그를 유혹할 필요도 없어. 네가 내 남은 찌꺼기를 가져가도 좋다면 가져가.”그 말을 하자마자 나는 후회했다. 너무 지나친 말이었고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만약 네가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현수는 내 남편이었을 거야. 내 언니가 내가 사랑하는 남자랑 결혼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해?”청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나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청아는 내가 9년 전 일에 대해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