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욱신거리고 온몸이 아팠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거대한 바위에 눌린 것처럼 눈이 떠지지 않았다. 지훈이를 부르려고 해도 목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누군가가 나를 옮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제발 천천히 걸어갔으면... 아니면 그냥 멈춰줬으면 좋겠다.“의사 선생님!”누군가가 소리쳤다. 왜 의사가 필요할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내가 처한 상황도 알 수 없었다. 의식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내 기절하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아프지 않았지만 여전히 눈을 뜰 수 없었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마치 시멘트에 봉인된 것 같았다.사람들이 이야기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소리였다. 난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나는 지훈이를 간절히 보고 싶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내가 전화하지 않았으니 지훈이는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잠깐 정신을 차렸는데 또다시 앞이 캄캄해졌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노아 걱정밖에 없었다....눈을 뜨자 눈 부신 불빛이 보였다. 너무 밝아서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깨어나셨네요.”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눈을 뜨려고 했지만 빛이 너무 강해 눈이 아팠다.“어머 죄송해요.”그녀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어딘가로 걸어갔다.“이제 눈을 떠도 괜찮아요.”그녀의 말대로 눈을 떴더니 커튼이 닫혀 있고 방안은 어둑해져 있었다. 나는 서른 후반쯤으로 보이는 간호사를 보면서 내가 병원에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고마워요.”나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이걸 마시고 계세요. 의사 선생님을 불러올게요. 환자분께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족분들께서 정말 기뻐할 거예요.”간호사는 나에게 물잔을 건네고 나갔다.나는 천천히 물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안에는 꽃, 풍선 그리고 곰 인형이 가득했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여러 장의 카드들도 있었다.그중 하나를 읽어보려는데
“수아 씨,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걱정했어요.”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세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병원이죠... 제가 차 문을 열자 강력한 힘에 의해 튕겨 나갔어요. 그 충격으로 머리를 부딪쳤죠.”눈을 뜬 이후로 나는 내가 겪었던 일을 잊으려고 했다. 거의 죽을 뻔한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두려웠다.“맞아요. 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고 당신은 그 충격으로 튕겨 나간 겁니다.”의사는 잠시 멈칫거렸다.“지금이 몇 년도인지 아시나요?”나는 연도를 말했고 의사는 그것을 받아적었다. 우현수는 내 손을 꼭 쥐었고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그런 눈빛을 처음 보았다. 비록 너무 짧은 순간이었지만 말이다.나는 내 차가 폭발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고 통증도 점점 더 심해졌다.“연도도 알고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고 현수 씨가 누군지도 알고 있으니 잘 회복된 것 같네요. 하지만 기억 상실증에 걸릴 수도 있으니 추가 검사를 해야 합니다.”“네.”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부상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어깨가 탈구되어 교정을 했고요. 갈비뼈 세 개가 부러졌고 비장이 파열되었으며 외상성 뇌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뇌에 액체가 축적되어 이를 배출해야 했고 약간의 부종도 있었습니다. 어깨에 있던 상처가 다시 벌어져서 다시 꿰맸어요. 현재 가장 큰 걱정은 머리 부상입니다. 지금 어떠세요?”우현수가 내 오른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손으로 머리를 만졌다. 손끝에 붕대가 닿자 나는 이 모든 게 실감이 났다.“제가 얼마 동안 누워있었죠?”“오늘이 네 번째 날입니다. 머리 부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어요. 이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니 며칠 더 머물며 상태를 확인할 예정입니다. 괜찮겠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지쳐서 다시 잠들고만 싶었다. 의사는 무언가를 적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이제
[우현수의 시각]“우리 수아는 어때?”최미숙은 애써 울음을 참으며 나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수아가 혼수 상태에 빠진 며칠 동안 우리는 걱정되는 마음에 힘든 나날을 보냈다.“어제 몇 분 동안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이 머리에 부상을 입어 잠시 휴식이 필요하대요.”그러자 최미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도철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많이 변했다. 최미숙은 수아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수아는 더 이상 가족들과 엮이기 싫었다. 수아는 우리 모두와 관계를 끊고 싶어 했다.“괜찮겠지?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어?”“네. 의사 선생님이 자신 있게 말씀하셨지만 완전히 회복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어요. 아직은 좀 일러요. 이런 머리 부상에는 합병증이 따라올 수도 있다고 했어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수아가 무사하길 바랐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이겨낼 거예요. 저는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수아가 깨어나면 전화할게요. 방금 지훈이를 찾더라고요.”“그래. 소식 꼭 좀 전해줘. 부탁해.”“네.”나는 전화를 끊고 수아를 바라봤다. 수아는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백옥같은 그녀의 피부를 난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긴 속눈썹과 앵두처럼 빨간 입술을 왜 그동안 보지 못했을까?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나는 수아를 좋아하지 않았다. 수아가 가까이 오려고 하면 나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거부했다.하지만 지금의 수아는 주목받을 만큼 매력적이었다.나는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가 요즘 자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수아의 맥박을 짚으며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려고 했다.지난 일요일을 떠올리면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청아를 조심하라고 수아에게 전화하려 했었다. 하지만 청아는 울며 나에게 와서 수아가 결혼 생활 동안 나와 수도 없이 많은 잠자리를 가졌다고 자랑했다고 말했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수아에게 전화하여 따지려 했다.순간 폭발음과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청아를 쳐다봤다. 한도언은 그녀 옆에 서 있었는데 마치 지옥에서 도망친 사람 같아 보였다.“깨어났어요?”한도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 사고 때문에 우리 모두 정신을 차렸다. 한도언은 누나를 잃을 뻔했기에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아니요.”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현수야 집에 가. 가서 샤워하고 옷 좀 갈아입고 와. 너 지금 좀비 같아 보여.”청아가 말했다.“안 갈 거야.”나는 반박했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난 도저히 떠날 수 없었다.“네가 이러다 지쳐서 쓰러지면 큰 일이야. 그냥 집에 가. 가서 씻고 나와.”청아는 계속 나를 설득했고 한도언도 말을 덧붙였다.“누나 말이 맞아요. 우리가 여기 있을 테니 집에 다녀오세요.”나는 수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당장 깨어날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빨리 샤워하고 돌아와도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알겠어. 그럼 수아 곁을 떠나지 마.”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쁜 놈들이 다시 수아에게 공격할 수도 있으니 나는 많이 걱정되었다. 한도언은 수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청아는 나를 차갑게 바라봤다.내가 일어나 떠나려 할 때 청아는 나의 팔을 덥석 잡았다.“수아는 괜찮을 거야.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청아는 미소를 지으며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우리가 다시 만나기로 한 이후로 그녀는 내 뺨, 턱 그리고 이마에 자주 입을 맞췄다. 하지만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9년 동안 꿈꿔왔던 일이었음에도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그 키스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행동인 것 같았다. 내가 왜 갑자기 이럴까? 청아는 내가 거의 10년 동안 꿈꿔왔던 여자인데 말이다.나는 집에 도착하고 제일 빠른 속도로 샤워했다. 옷을 입던 중 한도언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수아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면서 나는 잠깐 낮잠을 자기로 했다. 나는 며칠 동안 잠
유재인은 수아의 오른쪽에 앉아 여러 장의 카드를 펼쳐놓고 있었다. 수아는 살짝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있고 얼굴엔 상처가 있었지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런데 내가 들어오자 그녀의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나가.”수아가 차갑게 말했다. 다시 차가운 수아로 돌아온 것 같았다.“싫어.”나는 차분하게 대답하며 그녀의 왼쪽에 앉았다.수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고 눈빛은 화로 가득 찼다. 어제까지는 분명 괜찮아 보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너도 그리고 저 둘도 나갔으면 좋겠어. 꼴도 보기 싫어. 나가.”수아는 청아와 한도언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뭔가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어제는 평온했는데 오늘은 완전히 달랐다. 수아를 두 사람에게 맡긴 게 실수였던 걸까?“수아 씨, 진정하세요. 아직 회복 중이라 화를 내면 안 돼요.”유재인이 나서며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그러자 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워졌고 방금 전의 분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유재인의 손에서 수아의 손을 당장이라도 빼앗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왜 화가 나는 걸까?수아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으니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이 장면이 날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왜 그녀가 유재인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자 나는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경찰서장이 들어왔다. 유재인은 수아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서장님.”유재인이 인사했다.“그래. 재인아.”서장은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우리에게 다가왔다.“수아 씨,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수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유재인은 다시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날 공격당했을 때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나요?”서장이 펜을 꺼내며 물었다.“아니요. 별다른 일 없었어요. 평범한 날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교회에 갔어요.”“그 전날은요? 낯선 사람을 본 적 있나요?”수아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세를
[한수아의 시각]“엄마, 보고 싶었어요. 왜 전화 안 했어요?”지훈이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나는 당장이라도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아직 여기에 있고 그를 두고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미안해. 엄마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아빠 폰으로 전화하는 거야.”“그럼 영상통화 할 수 있어요? 보고 싶어요.”지훈이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병실에 누워 있는 날 보여줄 수는 없었다. 지훈이가 걱정할 테고 당장 집에 오겠다고 할 것이다.게다가 내가 표적이 된 상황에서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지금은 안 돼. 여기에서 영상통화를 못 한대.”나는 거짓말을 했다.“그런 룰이 어디 있어요? 왜 안되는데요?”지훈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지훈이가 화가 난 걸 알았지만 그저 넘기기로 했다.“지훈아...”“보고 싶단 말이에요. 아빠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랑 말하면 영상통화 할 수도 있잖아요. 아빠라면 다 할 수 있잖아요.”울먹거리는 지훈이의 목소리를 듣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이때 우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날 보고 있었다. 지훈이도 우현수라는 이름 하나면 다 해결된다는 걸 알 나이가 된 것 같다.“이번엔 안 돼. 대신 내일 카톡으로 통화하자.”“정말이죠?”“정말이야. 약속.”오늘 퇴원하면 내일쯤 통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알았어요. 엄마. 내일 얘기해요. 사랑해요.”“나도 우리 지훈이를 사랑해. 잘 자.”“할머니가 바꿔 달라...”나는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지금 엄마랑은 절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우현수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나가달라고 그렇게 말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간호사에게도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간호사에게 자기를 쫓아내면 병원 영업을 정지시키겠다고 위협했다.그는 매일 찾아왔다. 이렇게 자주
청아가 대체 여긴 왜 온 거야? 누가 들여보냈지? 난 청아가 여기 있는 게 너무 싫었다. 나랑 가까이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잠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니깐.“아무 짓도 안 했어.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네가 깡패들 손에 죽이 전에 내가 먼저 널 죽도록 괴롭힐 거야. 네 아들도 포함해서 말이야. 곧 지훈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를걸?”우리가 진짜 자매가 맞긴 한 걸까? 내가 청아에게 못된 짓을 한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벌을 받아야 할까? 그 대가를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했다.“청아야, 넌 참 못났어.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아둬. 지훈이는 절대 너를 엄마로 생각하지 않을 거야. 공항에서 너를 무시했던 거 기억 안 나? 넌 그 애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현수랑 결혼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거고.”그러자 청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하던 표정이 이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상관없어. 어쨌든 현수는 밤마다 나랑 같이 자. 난 곧 임신할 거야. 그러면 현수는 널 그리고 네 아들도 잊겠지. 내 아이들만 인정하게 할 거라고. 솔직히 현수가 널 사랑한 적은 없잖아. 네가 옆에 있어도 아마 내 생각만 했겠지.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그녀의 말이 가슴을 후벼팠지만 난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오직 지훈이 생각뿐이었다. 청아를 엄마라고 부르게 만들겠다고? 나는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그리고 근처에 있던 꽃병을 집어 던졌다. 청아는 비명을 지르며 피했고 꽃병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 도언이가 방으로 들어왔다.“미쳤어?”청아가 소리쳤다.“둘 다 당장 나가!”나도 같이 소리쳤다.이때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어리둥절하게 우리를 바라봤다.“누나 무슨 일이야?”도언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난 그의 상냥함조차 싫었다.그가 날 얼마나 무시하고 차갑게 대했는지 그 모든 순간이 떠올랐다. 날 누나로 대해준 적도 없다. 늘 청아에게만 다정했고 보란 듯이 나한테 그걸 또 자랑했다.“네 그 잘난 작은 누나한테
“무슨 말이야?”우현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난 네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수아랑 집에서 놀고 있어야지, 안 그래?”나는 청아의 말이 자꾸 떠올라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우현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 지금 싸우려고 그러는 거지? 난 싫어. 그냥 퇴원하고 집에 가자.”“날 싫어하는 주제에 왜 도와줘? 필요 없어! 그냥 꺼져. 우현수, 너도 여기 있기 싫잖아.”“정말? 내 도움이 필요 없다고? 그럼 어떻게 혼자 퇴원 수속을 할 건데? 넌 친구도 없잖아.”“재인 씨가 날 데려다줄 거야.”나는 친구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유재인은 내가 부탁하면 와줄 것 같았다.그러자 우현수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그는 진지하게 말했다.“선택해. 나랑 같이 돌아가거나 아니면 병원에 며칠 더 있어. 유재인은 절대 안 돼.”“대체 왜 이래? 날 떨쳐내려고 그렇게 애쓰더니 이제 와서 왜 악착같이 붙어있어? 난 청아랑 엮이는 게 싫어.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고.”그가 자꾸 나한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면 청아는 내가 그를 유혹하려 한다고 오해할 게 뻔했다.“그나저나 그날 네가 공격당했을 때 청아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청아를 집에서 내쫓았어?”“청아가 다 말해주지 않았어?”나는 어이가 없었다.“네 얘기도 듣고 싶어.”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굳이 들을 필요 없잖아. 어차피 넌 내 말을 안 믿을 거고, 항상 청아 편만 들 테니까.”“수아야...”나는 문을 쾅 닫고 천천히 옷을 입었다. 옷을 다 입고 나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눈앞이 흐릿해졌다.그리고 문을 나서며 벽을 짚고 힘겹게 걸었다. 우현수는 도우려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간호사가 두고 간 휠체어로 걸어가 앉았다. 의사가 퇴원 절차를 모두 설명했으니 이제 나가면 그만이었다.나는 백을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빨리 가. 더 이상 서로 얼굴 볼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