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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우현수의 시각]

나의 전처이자 지훈이의 엄마가 칼에 찍혀 피를 흘리며 차가운 묘지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이 순간 한수아에게 한 번도 느껴보진 못한 감정을 느꼈다.

칼을 든 남자들이 달려왔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수아가 지훈이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혼자인 청아에게 달려갔다. 청아를 위해서라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경찰은 곧 도착해서 범인을 잡았다. 한 경찰이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치자 나는 누가 다쳤는지 뒤돌아봤다. 하지만 수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수아가 다친 모습을 보자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모든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경찰은 수아를 안전하게 구급차에 실었다. 수아의 상태를 확인 못 하게 한 경찰의 태도에 화가 났다. 수아는 나의 아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처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화가 났다. 나는 수아를 지켜야 했다. 만약 수아에게 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지훈이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의 전처이자 지훈이의 엄마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평생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병원 복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수아는 응급실로 실려 간 이후로 아무 소식도 없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시어머니인 최미숙이 기도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수아를 걱정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도철이 돌아간 후 최미숙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지훈이만 빼고 우리 모두 병원에 도착했다. 한도언과 청아는 최미숙 곁에 앉았다.

나는 너무 불안했다. 지훈이를 위해서라도 수아가 무사해야 한다고 속으로 기도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른다. 고개를 들었더니 수아가 보였다. 그녀는 간호사 데스크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왼쪽 팔은 붕대로 감겨 있었고 신용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수아는 가방을 든 채로 미간을 찡그리며 힘겹게 핸드폰을 꺼내려 애를 썼다.

“수아야.”

우리 곁을 지나칠 때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는 수아를 불렀다. 그러자 수아는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집어낼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여긴 왜 왔어? 누가 다쳤어?”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최미숙이 물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죽지 않았네요.”

수아의 대답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말투뿐만 아니라 그 차가운 어조도 예상 밖이었다.

나는 수아에게 물었다.

“어디가?”

“집.”

“팔 때문에 운전할 수 없잖아.”

“그래서 택시를 불렀어.”

수아는 얼음처럼 차갑게 대답했다.

“수아야, 할 얘기 있어. 아버지에 관한 일이야.”

최미숙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수아는 최미숙을 차갑게 바라봤다.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아버지는 나를 딸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러자 최미숙은 눈물을 흘렸지만 수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냉정했다.

그녀는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지훈이는?”

“누나 시어머니 집에 있어.”

한도언이 대답했다.

“내가 데려다줄게.”

나의 말을 듣자 수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어떻든 간에 그녀는 지훈이의 엄마였고 나의 아내였다. 게다가 다친 상태이기에 나의 제안을 수락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필요 없어. 나는 택시를 타고 갈게. 집에서 만나.”

그리고 수아는 떠났다. 우리는 수아가 서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나와 가까워질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텐데 오늘 나의 모든 제안을 거절하다니.

“수아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가서 얘기해야겠어.”

최미숙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나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에 올라타 불이 나게 액셀을 밟으며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에바가 한걸음 빨랐다.

차를 세우고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우리 부모님과 지찬이 그리고 그들을 무시하고 있는 수아가 있었다. 수아는 오늘 너무 이상했다.

“빨리 끝내자.”

수아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김지석이 나에게 사업 제안을 했었어. 파트너로 일하자고. 나는 좋은 투자 기회라고 생각해서 동의했지.”

내가 말했다.

“우리 둘은 괜찮은 회사라 생각하고 같이 서명했어. 나중에 그 회사가 그 범죄 조직에 연루되었다는 걸 알았어. 지석이와 나는 우리의 회사가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기를 원치 않아 계약을 해지하고 경찰에 신고했지.”

“그래서?”

수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이미 오늘 일로 지쳐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들은 지명 수배자들이었어. 우리가 신고하자 잠적했지. 경찰이 개입하면 그들이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을 줄 알았어.”

이때 최미숙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너희 아빠를 위협하기 시작했어. 대가를 치르게 할 거라며. 나와 너희들에게 복수하겠다고 했어. 아빠는 억울한데 말이야. 책임을 아빠에게 돌렸어. 처음에는 겁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네 아빠가 칼에 찔렸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

도언이와 지찬이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최미숙의 말을 듣자 수아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수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난 지훈이를 데리고 떠날 거예요.”

수아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한수아! 장난해?”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오늘 자칫 잘못하면 그녀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심각한 일인 것 같긴 해. 그런데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자 도언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칼에 찔렸잖아. 그게 상관없는 거야?”

수아는 도언이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그건 내가 운이 나빠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지.”

“수아야...”

최미숙은 말을 꺼내려 했지만 수아는 잘랐다.

“아니죠. 제가 아니라 당신 셋을 노린 거겠죠. 누구도 나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왜 저를 노리겠어요? 제가 죽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텐데.”

수아의 말을 듣자 우리는 모두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수아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 눈빛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걱정해야 할 사람은 청아 저 계집애예요. 우리 집의 공주잖아요. 당신들이 만든 개싸움에 저를 끌어들이지 마세요.”

수아는 우리 모두를 한 명씩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가식적인 관심 따위 필요 없어요. 내가 위험에 처한다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당신들의 보호를 받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최미숙은 수아의 말을 듣자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우리 앞에 서 있는 한수아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여자가 아니다.

이때 청아가 벌떡 일어나 수아를 노려보며 겁주려 했다. 과거의 수아였다면 겁을 먹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예전도 그랬지만 미친 거 아니야? 다 네 뜻대로 해야 해?”

청아가 이를 악물며 말하자 수아는 피식 웃었다.

“그동안 어디 숨어서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삶에는 한 번도 내 것이 있어 본 적이 없어. 이건 우리가 지금 논의해야 할 주제가 아니야. 나는 그동안 너희들이 보호 없이 살아왔어. 왜 갑자기 관심을 가지는데? 필요 없어. 가식적인 너희들이 싫어. 그러니깐 이젠 그만 가봐야겠어.”

수아는 우리 모두를 무시한 채 돌아섰다. 낯선 사람처럼 대하는 태도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훈아.”

잠시 후 지훈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나는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 팔은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지훈이는 달려가 수아를 안으며 물었다. 수아는 한 팔로 지훈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야. 문에 부딪혔어. 의사 선생님이 걱정하지 말래.”

수아는 지훈이의 뺨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우리를 바라볼 때 차갑고 딱딱했던 표정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파요?”

“조금?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 먹고 같이 껴안고 자자.”

그 말을 듣자 지훈이는 활짝 웃었다. 수아가 지훈이의 가방을 들어주려고 하자 지훈이가 막아섰다.

“네가 들게요. 저도 이제 컸으니까 집에 가면 엄마를 돌봐주고 아픈 데에 뽀뽀해 줄게요. 엄마가 늘 나한테 해주듯이.”

얼음처럼 차가웠던 수아의 얼굴은 사르르 녹아내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이 엄마 동생이에요?”

지훈이는 청아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난 동생이 없어.”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가족도 없어.”

억지로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그 말을 들었다. 다들 한숨을 쉬고 있었다. 지훈이도 들었을까 봐 나는 초조하게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지훈이는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갈게요. 아빠.”

“응. 그래.”

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지훈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고 떠났다.

수아가 떠난 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아의 태도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낯선 모습이었고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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