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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익숙한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갔다. 성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모두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온 듯했다.

장례식을 돕는 사람은 없었지만 주위를 둘러봤더니 모든 것이 준비 완료된 상태여서 시름이 놓였다. 나를 키워준 은혜에 마지막으로 보답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예배가 시작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사람들이 앉은 반대쪽에 가서 앉았다. 가족들과 같이 앉으면 어색할 것 같았고 청아 곁에는 더 앉고 싶지 않았다.

“엄마, 왜 여기 앉아요? 할머니 옆에 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훈이가 가족들이 앉아 있는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물론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

“앉을 자리가 없잖아. 우리는 그냥 이쪽에 앉자.”

나는 거짓말했다. 지훈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 내 옆에 앉았다. 익숙한 향수 냄새에 나는 깜짝 놀랐다. 우현수가 왜 청아 옆에 앉지 않고 이쪽에 앉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현수 때문에 상처받고 화가 나서 같이 앉고 싶지 않았다.

“아빠.”

지훈이는 속삭이듯 그를 불렀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을 째려보며 신경 쓰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

“내가 엄마랑 아빠 사이에 앉아도 돼요?”

지훈이가 귓속말로 나에게 말했다. 숨 막히는 어색함을 없애줄 지훈이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재빠르게 지훈이와 자리를 바꾸었고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간 이 세상을 떠나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는 우리의 몫이죠.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떠나게 될까요? 아니면 후회만 남긴 채 떠나게 될까요?”

목사의 말을 듣자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죽는다면 누가 나의 장례식에 올까? 사람들은 과연 신경 쓸까? 아니. 어쩌면 축하 연회를 열겠지. 지훈이만 슬퍼할 것 같았다.

나는 친구도 없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슬플까?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스스로 벽을 쳤기 때문이다. 청아의 그림자 밑에서만 살았다. 늘 비교되면서 주눅이 들었다.

나는 청아처럼 예쁘지도 섹시하지도 않았고 똑똑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랑받지도 못했다. 청아와 비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록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청아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다. 모두 청아 생각만 하고 내 아픔과 고통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청아가 행복하면 모두 행복했고 청아가 슬프면 다들 위로했다. 그녀는 늘 우선 순위였고 나는 조금이라도 관심받고 싶어서 애를 썼다.

“엄마.”

지훈이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때야 나는 예배가 끝났고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아야, 괜찮아?”

우현수의 목소리는 언제나 나를 떨리게 했다. 나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마주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 두 사람에게는 모두 양육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현수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일어섰다. 청아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면 장면이 생각나서 무례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가자, 지훈아.”

지훈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따라 걸어 나왔다.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와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익숙한 몇몇 동료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아직 아버지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드디어 보네.”

청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부은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눈은 충혈되었지만 여전히 요정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대화를 빨리 끝내려고 했다.

“청아야 지금 이럴 때 아니야. 먼저 아버지 일부터 끝내자.”

그러자 청아는 피식 웃더니 나만 들을 수 있게 귓속말했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거야. 그리고 나는 이제 돌아가지 않을래. 몇 년 전 네가 빼앗은 모든 것을 되찾을 거야. 내 남자도 내 가족도.”

목사님이 묘지로 오라는 소리에 청아는 자리를 떠났다. 지훈이는 나와 청아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청아의 말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사실 되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청아가 말하는 가족들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우현수는 여전히 청아를 자기 여자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나는 어머니, 청아 그리고 도언이와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나는 마치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낯선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혼자 태어나서 다시 혼자...”

목사님은 아버지의 관을 땅에 묻으며 말했다. 곧 흙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대성통곡했고 청아와 도언이는 묵묵히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안아주었다.

나는 지훈이를 위로하며 그를 꼭 안았다. 내 옆에서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났다. 지훈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이젠 강해져야 할 때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사람들은 다시 몰려와 우리를 위로했다. 나는 멍하니 그들의 위로를 받았지만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흩어져 있었다.

“엄마, 저기 할아버지랑 할머니!”

지훈이는 내 팔을 당기며 우현수의 부모님을 가리켰다.

우현수는 그의 쌍둥이 형제 우지찬과 함께 있었다. 지훈이가 그들과 인사하는 동안 나는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나를 스쳐 지나가듯 무시했다. 예상했던 바였다.

“외할머니 집사람들이랑 같이 간식 먹어도 돼요?”

지훈이가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고팠을 것이다. 친척들이 떠나자 우리는 어색하게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지훈이가 다른데 정신을 팔자 우현수의 시선은 온전히 청아에게로 향했다. 청아는 우리로부터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어색한 상황을 끝내려고 내가 말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칼을 든 남자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우현수는 청아를 향해 몸을 던졌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자기 몸으로 청아를 보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아니라 청아를? 하지만 또 놀랍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일 순위가 아니었으니까.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키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조심해!”

이때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는 나를 밀쳐냈지만 이미 늦었다. 무언가 내 피부를 관통했고 나는 그 충격으로 숨이 턱 막히더니 바로 쓰러졌다.

“빨리 구급차 불러!”

그 사람은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나는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고통스러웠다.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피로 흥건해진 나의 드레스와 그의 손을 보자 정신을 잃었다. 나는 피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다.

“제발... 지훈아...”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지훈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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