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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 가봐야 해. 지훈이를 좀 봐줘.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어.”

나는 가방을 들며 멍하니 말했다.

“알았어. 어머니가 오면 나도 곧 병원으로 갈게.”

나는 멍해져서 우현수의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한 채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을 떠났다. 병원으로 운전하기 시작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나를 신경 쓰지도 않았고 나에게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 한청아는 나의 여동생이고 한도언은 나의 남동생이다.

청아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도언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두 사람은 가문의 공주와 왕자였다. 나는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한 외톨이었다.

모두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난 누구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와 운동을 아무리 잘하고 동아리 활동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따내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나는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낯선 외부인 같았다.

9년 전 사건 이후로 나는 가족과 거의 관계를 끊었다. 한도언은 나와 말도 섞지 않았고 아버지와 함께 나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기까지 했다. 어머니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나에게 말을 걸거나 전화를 걸었다. 청아와는 9년 동안 만나거나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청아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 말은 난 죽은 존재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청아는 더 이상 나를 언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가 칼에 찔렸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지만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이런 큰 일이 벌어지면 충격이라도 받아야 하나? 아니면 슬퍼해야 하나?

평생 나를 외면한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 내가 이상한 걸까?

병원으로 가는 내내 나는 어린 시절의 일들을 생각했다. 그 상처와 아픔은 여전히 생생했다. 가족에게 외면당한 고통은 아마도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남편과 시댁에게 외면당한 여자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받아 주는 사람은 오직 아들 지훈이다.

곧 병원에 도착했다. 마을에는 큰 병원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어 아버지가 이곳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어깨를 펴고 병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방금 병원으로 이송된 한도철 씨는 어느 병실에 있나요?”

나는 안내 간호사에게 물었다.

“가족분이신가요?”

“네. 저의 아버지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간호사는 무언가를 검색하면서 대답했다.

“지금 응급실에서 수술 준비 중이에요. 직진하시면 끝에 응급실 문이 보일 겁니다. 그쪽으로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간호사의 말을 따라 응급실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괜찮아지실 거야. 금방 회복될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나는 아버지가 무사하길 바랐다. 지훈이에게는 사랑스러운 외할아버지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와 도언이를 발견했다. 나는 표정을 관리하며 다가갔다.

“어머니, 도언아.”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은 울어서 충혈되어 있었고 파란 원피스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도언이는 울지 않았지만 충격이 컸던 것 같았다. 애써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데요? 아버지는 괜찮아요?”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가게에서 돌아오시던 길에 집 바로 앞에서 습격당하셨어. 그래서 내가 즉시 구급차를 불렀어. 한쪽은 폐에 그리고 다른 한쪽은 신장을 관통했다고 해. 지금 수술 준비 중이야.”

어머니는 통곡하면서 말했다. 나는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싫어할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항상 강하셨어요. 괜찮으실 거예요.”

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몇 분 후 의사들은 아버지를 밀고 나왔다. 아버지는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도언이와 어머니는 이내 달려갔다. 나는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얼굴이 있다면 내가 아니라 청아일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도언이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더니 도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의사들이 아버지를 데리고 가기 전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종이처럼 생긴 것을 건네는 걸 보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했고 의사들은 이내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우리는 자리에 돌아와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다시 자리에 앉기도 했다. 그리고 도언이와 어머니에게 커피를 건넸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두 시간 반 후 의사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 비친 어두운 표정에서 나와 어머니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어머니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어머니는 대성통곡했다. 도언이는 어머니가 쓰러지기 않게 부축했고 둘은 바닥에 주저앉아 함께 울었다. 이젠 청아가 돌아와야 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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