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픔과 괴로움이었다.도망치고 싶었고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두 사람을 뚫어지게 보고만 있었다. 이글거리는 두 사람의 눈빛을 보자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둘이 포옹하는 모습도 그리고 우현수가 청아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모습도 모두 지켜봤다. 우현수는 청아의 얼굴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녀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는 키스하지 않고 단지 이마를 청아의 이마에 대고 있었다.그는 따뜻한 가족의 품속에 돌아온 사람처럼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우현수는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만약 이곳이 병원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아직 부부였다면 그는 나를 배신했을까?부정하고 싶었지만 또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는 한청아였으니까. 우현수는 청아를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갈 사람이다.더는 견딜 수 없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순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덜 아플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 또한 내 탓이다. 애초에 사랑해서는 안 될 남자를 사랑한 내 잘못이다.“제발 그만. 이 고통을 멈춰줘.”나는 내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를 어떤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대답도 없었고 구원도 없었다.나는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크게 숨을 쉬려고 해도 턱턱 막혀왔다. 나는 천천히 죽어가는 것 같았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이게 바로 사랑해서는 안 될 남자를 사랑한 결과야.”한도언이 조롱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도언아, 뭐 하려는 거야? 청아한테서 떨어지라고 경고하거나 나를 비웃는 거라면 꺼져. 돌아가. 꼴 보기 싫으니까.”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내가 울고 있는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도언이는 나의 말에 살짝 놀랐다. 내가 반박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익숙한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갔다. 성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모두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온 듯했다.장례식을 돕는 사람은 없었지만 주위를 둘러봤더니 모든 것이 준비 완료된 상태여서 시름이 놓였다. 나를 키워준 은혜에 마지막으로 보답할 기회라고 생각했다.예배가 시작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사람들이 앉은 반대쪽에 가서 앉았다. 가족들과 같이 앉으면 어색할 것 같았고 청아 곁에는 더 앉고 싶지 않았다.“엄마, 왜 여기 앉아요? 할머니 옆에 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지훈이가 가족들이 앉아 있는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물론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까.“앉을 자리가 없잖아. 우리는 그냥 이쪽에 앉자.”나는 거짓말했다. 지훈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 내 옆에 앉았다. 익숙한 향수 냄새에 나는 깜짝 놀랐다. 우현수가 왜 청아 옆에 앉지 않고 이쪽에 앉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우현수 때문에 상처받고 화가 나서 같이 앉고 싶지 않았다.“아빠.”지훈이는 속삭이듯 그를 불렀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았다.나는 그들을 째려보며 신경 쓰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내가 엄마랑 아빠 사이에 앉아도 돼요?”지훈이가 귓속말로 나에게 말했다. 숨 막히는 어색함을 없애줄 지훈이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재빠르게 지훈이와 자리를 바꾸었고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우리는 모두 언젠간 이 세상을 떠나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는 우리의 몫이죠.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떠나게 될까요? 아니면 후회만 남긴 채 떠나게 될까요?”목사의 말을 듣자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죽는다면 누가 나의 장례식에 올까? 사람들은 과연 신경 쓸까? 아니. 어쩌면 축하 연회를 열겠지. 지훈이만 슬퍼할
[우현수의 시각]나의 전처이자 지훈이의 엄마가 칼에 찍혀 피를 흘리며 차가운 묘지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이 순간 한수아에게 한 번도 느껴보진 못한 감정을 느꼈다.칼을 든 남자들이 달려왔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수아가 지훈이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혼자인 청아에게 달려갔다. 청아를 위해서라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경찰은 곧 도착해서 범인을 잡았다. 한 경찰이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치자 나는 누가 다쳤는지 뒤돌아봤다. 하지만 수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수아가 다친 모습을 보자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모든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경찰은 수아를 안전하게 구급차에 실었다. 수아의 상태를 확인 못 하게 한 경찰의 태도에 화가 났다. 수아는 나의 아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처이다.하지만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화가 났다. 나는 수아를 지켜야 했다. 만약 수아에게 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지훈이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나의 전처이자 지훈이의 엄마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평생 갈 것이다.그래서 나는 병원 복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수아는 응급실로 실려 간 이후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시어머니인 최미숙이 기도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수아를 걱정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도철이 돌아간 후 최미숙은 많이 부드러워졌다.지훈이만 빼고 우리 모두 병원에 도착했다. 한도언과 청아는 최미숙 곁에 앉았다.나는 너무 불안했다. 지훈이를 위해서라도 수아가 무사해야 한다고 속으로 기도했다.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른다. 고개를 들었더니 수아가 보였다. 그녀는 간호사 데스크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왼쪽 팔은 붕대로 감겨 있었고 신용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수아는 가방을 든 채로 미간을 찡그리며 힘겹게 핸드폰을 꺼내려 애를 썼다.“수아야.”우리 곁을 지나칠 때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는 수아를 불렀다. 그러자 수아는 고개를 들었다.
[한수아의 시각]등이 뻐근하고 팔이 쑤시는 통증에 잠에서 깨어보니 지훈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제 TV를 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밤새 나를 돌보겠다고 진지하게 말한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나는 지훈이가 깨날까 봐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침 8시쯤이라 지훈이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준비해야 했다.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가 잠시 서서 한 팔로 아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팬케이크를 만들 재료를 꺼내려던 순간 어제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깨에 붕대를 감지 않고 팔에 깁스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기절 후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칼에 깊게 찔렸지만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운이 좋았다고 한다. 만약 부위가 조금만 더 아래였다면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다.그들은 상처를 소독한 후 꿰매고 팔을 깁스에 고정했다. 나는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받았고 의사는 다음 진료 때까지 팔을 높게 들고 다니라고 했다.팬케이크를 만들면서 나를 구해준 남자가 생각났다. 누구인지 알아내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내 가족들이 내 안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때 나를 챙겨준 유일한 사람이다.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누구인지 더 궁금했다. 한때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한테서 상처를 너무 받았기 때문이다.문을 열고 보니 어제 본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처음으로 눈에 띈 건 그의 크고 까만 눈동자였다. 내가 본 눈동자 중 가장 맑은 눈동자였다.어제는 충격과 아픔 때문에 주의 깊게 보지 않았지만 그는 정말 잘생겼다. 키는 190cm 정도 되었고 적당한 근육의 소유자였다. 날렵한 턱선과 매끈한 피부 그리고 짙은 갈색 머리까지 더해져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그의 카리스마에 나는 한 번 더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다.“안녕하세요.”나는
[우현수의 시각]수아는 나를 차갑게 바라봤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순간 나는 살짝 실망했다.“왜 왔어?”수아는 무뚝뚝하게 물었다. 나는 억지로 그녀의 집에 들어섰다. 10년 동안 함께 살았던 여자인데 지금은 나를 마치 낯선 사람처럼 취급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 적막함을 깨트릴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나는 깁스한 수아의 팔을 보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게다가 주말은 내가 지훈이를 돌볼 시간이니 말이다.방금 떠난 수아의 집에서 떠난 그 남자를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수아가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다니.“아까 그 사람은 뭐 하러 여기 왔어?”나는 애써 분노를 참으며 물었다. 그 남자가 경찰이고 수아의 목숨을 구한 건 알지만 선을 넘은 행동인 것 같았다. 그리고 수아 곁에서 맴도는 게 싫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내 아들이 집에 있는데 아침부터 다른 남자를 초대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혹시 여기서 자고 간 거야? 그래서 방금 떠난 거야?”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가 헤어진 지 몇 달 만에 지훈이가 있는 자리에서 다른 남자를 데리고 오다니.그러자 수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네가 청아를 집으로 불러들일 때 내가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내 일에 끼어들지 마.”나는 수아를 노려보며 말했다.“청아는 달라.”“뭐가 다른데?”수아는 일부러 모른 척하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나를 비꼬는 것처럼 말이다.“아. 청아는 네가 사랑하는 여자지.”나는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았다. 나에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듯 툭툭 쏘아댔다.“지훈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난 이제 싱글이야. 내가 누구를 집에 데려오든 내 마음이야. 이건 내 집이거든. 우현수, 넌 날 조종할 수 없어. 난 소개팅도 하고 데이트도 할 거야. 평생 싱글로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그 말을 듣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왜
“내가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에게 거짓말한 적 없다는 거 알잖아. 내가 청아를 사랑했던 건 너도 알고 있었잖아.”수아는 화가 난 듯 행주를 던졌다.“그런데 왜 나랑 같이 잤어? 정말 역겨워. 내가 왜 너한테 반했을까?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는지 모르겠어.”수아의 말을 듣자 화가 나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우리는 결혼하고 잠자리를 가졌지만 그건 단지 육체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것뿐이었다. 비록 수아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었다.“옛날이야기를 하려고 온 게 아니야. 지훈이에 관해 이야기하러 왔어.”나는 계속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지쳐 화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려던 말을 하고 당장 떠나려 했다. 아니면 나중에 후회할 만한 말을 하거나 행동할지도 모른다.지훈이를 언급하자 수아는 갑자기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수납장을 열고 약병을 꺼냈다. 한 손으로 뚜껑을 열더니 알약 두 개를 입에 넣고 삼켰다. 라벨을 읽어보니 진통제였다.“팔은 좀 어때?”“할 말이나 해. 가식적인 관심인 거 우리 둘 다 알고 있으니 연기 그만해.”수아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책상을 치며 소리칠 뻔했다.“야! 한수아!””왜? 난 그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야. 말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할 거면 나가. 지훈이가 깨나면 문자 보낼게.”수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나는 다치지 않은 그녀의 한쪽 손을 잡았다. 그녀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빠르게 손을 뺐다.“다치지 마!”수아는 버럭 화를 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계속 이렇게 싸워야만 하는 걸까? 우리 사이에는 아직 지훈이가 있는데 말이다.“네가 이러니깐 내가 청아에게 마음이 갔던 거야.”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자 수아의 표정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차갑게 변했다.“할 말 있으면 하고 없으면 꺼져. 내 집에서 나를 모욕하고 청아와 같이 비교하는 걸 참을 수 없어. 그게 왜 내 탓인데? 우린 이혼했어. 사랑이 뭔지 뭐 그딴
[한수아의 시각]“왜 거기에 가야 해요? 저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지훈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불만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나와 우현수가 같이 가는 줄 알고 신났지만 말이다.학교 측에서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주면서 어머니께 수업 자료를 보내주며 지훈이가 뒤처지지 않게 해주었다.“말했잖아. 이번 여행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여행이야.”경찰서장과 이야기한 후 나는 그들이 따뜻한 해변으로 갈 거라고 확신했다.“해변으로 갈 거야. 네가 우리한테 휴가 보내 달라고 마침 졸랐잖아.”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해변이라는 단어를 듣자 지훈이는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다. 지훈이는 바다를 엄청 좋아한다. 셋이 같이 몰디브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일주일 동안 울었던 적도 있었다. 지훈이는 그곳으로 이사하길 원했고 우리가 그 제안을 거부하자 혼자 몰디브에 남겠다고 애원했다.나는 지훈이가 내 삶에 가져다준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엄마,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지훈이가 갑자기 물었다.“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그건 없죠.”지훈이는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었다.“그럼 괜찮아요. 저 이제 삐지지 않을게요.”“왜 삐졌어?”“엄마가 저랑 같이 가지 않아서요. 하지만 나중에 합류하면 되잖아요.”나는 나중에도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훈이가 슬퍼할까 봐 하려던 말을 삼켰다.“이제 가자. 안 그러면 늦어.”나는 다치지 않은 한쪽 어깨로 가방을 메고 지훈이의 작은 캐리어를 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지훈이도 자기 가방을 메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택시를 부르려던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지훈이가 열기 전에 내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지훈이는 늘 상대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문을 여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가 답하지 않거나 모르는 목소리면 열지 말라고 몇 번 주의를 줬으나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문을 열자마자
우현수는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서 있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째려봤지만 나 역시 겁을 먹지 않기로 다짐하고 물러서지 않았다.“난 안 나가. 그러니까 취소하고 내 차에 타. 지금 당장.”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나도 화가 치밀어 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참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네가 뭔데? 응? 내가 네 강아지야? 시키면 다해야 해?”나도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수년 동안 우현수는 나를 쥐락펴락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무엇을 얻었을까? 화를 억누르고 나답지 살지 못했는데 결국에는 이 지경이 되었다. 얻은 건 아무것도 없고 오직 고통과 상처만 남았다.“한수아...”우현수는 경고하듯 말했다.“또 싸우는 거예요?”지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픈 표정으로 서 있는 지훈이를 발견했다. 나랑 우현수가 싸우는 모습을 지훈이에게 보이는 게 너무 싫었다. 지훈이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말이다.“아니야. 싸우는 게 아니야. 뭐 좀 토론하고 있어.”나는 우현수에게 눈치를 줬다.“그렇지?”우현수도 나처럼 노아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이었다. 그 역시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환하게 웃었다.“그럼. 네 엄마가 팔을 다쳐 운전을 못 해서 우버를 불렀대. 하지만 나는 너희 둘을 데려다주고 싶었어.”우현수는 지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왜 우리 아빠랑 같이 안 가요?”나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천장을 바라봤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훈이 때문에 나는 매우 난처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아니야. 같이 갈 거야.”나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지훈이 때문에 이런 일까지 하다니.“야호!”지훈이는 환호하며 거실로 달려가 다시 가방을 챙기고 나왔다.“여기서 기다려.”나는 우현수에게 말하고 지훈이의 짐과 내 가방을 가지러 갔다. 나는 거실을 조금 정리한 후 짐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