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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는 차가운 병원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여전히 울고 계셨다.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잃었으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고 그런 어머니를 보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완쾌할 줄 알았는데 세상을 떠났으니 나는 모든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고 아버지는 나를 미워했지만 결국 나의 아버지였기에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아?”

이때 우현수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는 한 시간쯤 전에 도착했다. 지금껏 나를 걱정해 준 적이 없기에 나는 갑작스러운 관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아.”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아버지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나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이미 상처받을 대로 받았거나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하나둘씩 무너지는 가운데 나만 멍하니 버티고 있었다.

이때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도언이가 나를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내가 잘못한 건 있지만 그날의 대가를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했다.

“왜?”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실 때 어머니가 청아한테 전화했어. 아마 곧 도착할 거야. 아직 아빠가 돌아가신 걸 몰라.”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우현수는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따뜻했던 위로가 다시 차갑게 식어갔다.

“알았어.”

나는 대충 대답했다. 굳이 더 할 말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청아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것이다.

“청아한테 잘해.”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잖아요.”

“그건 네 생각이고. 9년 전 네가 배신해서 청아가 우리 집을 나갔잖아. 또다시 그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젠 네 아빠도 돌아가셨고 우리는 서로 챙기면서 살아야 해.”

어머니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과거의 일을 다시 언급하는 게 너무 싫었다. 어리석었던 행동의 대가를 이미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 나에게 벌을 주었다.

“나도 엄마 딸이에요. 왜 이러는 건데요?”

나는 어머니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곧장 일어나서 나갔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숨을 돌리고 싶었다.

눈물이 맺혔지만 나는 꾹 참았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나를 딸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나를 불렀을까?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어차피 나는 가족이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냥 훌쩍 떠나버리고 나를 잊어줬으면 좋겠다.

“실례합니다. 혹시 한도철 씨 따님이신가요?”

간호사가 갑자기 나타나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진정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마지막 인사를 나누세요.”

간호사는 부드럽게 말했다.

“네. 잠시만요.”

간호사는 나에게 고민 할 시간을 주면서 떠났다. 비록 아버지에게 외면을 당했지만 나를 키워줬기에 마지막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면 가족들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내가 없으면 더 완벽한 한 가족일듯싶다.

나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 시체 안치실로 가는 길을 물었다.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두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차가운 침대에 평온하게 누워있는 아버지는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 잘 가세요.”

나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작별해야 할 사람은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결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젠 떠날 때가 되었다.

병실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서류와 청구서를 정리하고 있었고 도언이는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으로 멍을 때렸다. 우현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더 이상 상처받기도 싫었고 상처받는 게 지겨웠다. 내가 나를 지켜야만 한다.

이때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청아를 보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에 긴 생머리 그리고 늘씬한 다리와 섹시한 몸매를 뽐냈다.

도언이는 청아와 포옹을 하며 귓속말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전혀 없던 인사였다. 나는 괴롭고 부러웠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우현수도 달려왔다. 그는 청아를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 우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청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목이 멨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둘만의 세상으로 변했다. 그들은 플래시보다 더 빠르게 서로의 품에 안겼다.

도언이가 청아를 안고 있는 것보다 이것이 나의 가슴을 더 미어지게 했다.

한청아가 돌아왔다. 우현수의 품에 안긴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현수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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