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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과 다시 살기
전 남편과 다시 살기
Author: 엠엠

제1화

차에서 내리자 나는 저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손은 떨리고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가방에 서류가 있음에도 나는 아직도 그와 이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서류를 전해주고 아들을 데려오면 모든 것이 끝난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희미했던 목소리는 점점 더 뚜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부엌 근처에 멈춰 섰다. 그들의 대화는 너무 선명하게 들렸고 분위기는 차가웠다.

“왜 저랑 엄마랑 같이 살기 싫은 거예요?”

지훈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자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지만 이혼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의 결혼은 처음부터 잘못된 거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다.

“지훈아, 너도 알잖아. 난 네 엄마랑 같이 못 살아.”

남편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결혼 생활 내내 그는 나에게 한 번도 부드럽게 말한 적이 없었다. 항상 차갑고 무뚝뚝한 목소리였다.

“왜요?”

“별 이유가 없어.”

남편은 중얼거렸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는 그의 모습이 상상이 갔다. 지훈이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지훈은 내 아들이고 피는 속일 수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세요?”

너무나도 단순한 질문이지만 나는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래서 한발 물러서서 벽에 기대어 대답을 기다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 지훈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우리 아들에게 진실을 말할 것인지 그게 궁금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으며 시간을 끌었다.

“지훈아...”

“엄마를 사랑하냐고요?”

지훈이는 마지막이라는 듯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너를 낳아줘서 고맙지.”

그건 대답이 아니라 위로였다. 나는 너무 슬픈 나머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이토록 오래 흘렀는데도 여전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대답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도 지훈이를 낳았을 때도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심지어 잠자리를 함께할 때도 말이다.

그는 결혼 생활 내내 나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고통과 상처뿐이었다.

우리는 결혼했지만, 둘만의 결혼이 아니라 셋이 함께하는 결혼 같았다. 우리 둘 그리고 그가 9년 동안 포기하지 못한 그 여자와 함께 말이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제는 울기도 지쳤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몰래 엿듣는 건 예의가 아니지.”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린 후 나는 어깨를 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 카운터 옆에 서 있는 저 남자의 이름은 우현수이다. 그리고 이젠 나의 전남편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의 눈빛을 보자 나는 얼어붙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들 지훈이를 쳐다봤다. 지훈이는 나의 자랑이자 기쁨이고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는 우현수를 많이 닮았다. 머리숱은 나를 닮고 갈색을 띤 눈동자는 우현수를 닮았다.

“지훈아.”

“엄마!”

지훈이는 먹고 있는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나에게로 달려와 나를 와락 감싸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어.”

나는 지훈이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하고 지훈이는 다시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 한때는 내 집이었던 곳에서 나는 어색하게 서 있었다. 마치 내가 있어서는 안 될 곳처럼 말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곳과 맞지 않았다. 우현수는 알게 모르게 그녀를 염두에 두고 집을 지었다. 색깔과 디자인 하나하나는 그녀가 생각하던 꿈의 집이었다.

이건 그녀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첫 번째 신호였다. 전혀 나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뭐 해?”

우현수는 짜증스럽게 물으며 시계를 쳐다봤다.

“지훈이랑 있을 때 무턱대고 찾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 오늘 이혼 판결문을 받고 그걸 너에게 주고 지훈이를 데려오고 싶어서...”

그러자 우현수의 안색은 금세 어두워졌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그를 사랑했지만 그에게 나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였다.

그는 한 번 또 한 번 나에게 상처를 줬다. 나는 참고 버티면서 그가 변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혼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꿈꾸던 사랑을 얻은 줄 알았다. 하지만 틀렸다. 결혼은 악몽이었다. 나는 우현수가 사랑했던 그녀와의 추억과 싸워야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가슴을 문지르며 감정을 추슬렀다. 몇 달 동안 헤어져 있었음에도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

“지훈아, 네 방으로 돌아가. 너희 엄마랑 할 얘기가 있어.”

우현수는 이를 꽉 물고 말했다. 엄마라는 단어가 혐오스럽게 들릴 정도였다.

지훈이는 우리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지 마세요.”

지훈이는 명령하듯 말한 후 자리를 떠났다. 지훈이가 멀리 떠난 것을 확인하자 우현수는 화가 난 듯 카운터를 세게 내리쳤고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사무실로 보내도 되잖아. 왜 꼭 지훈이랑 있을 때 찾아 와?”

우현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현수야...”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닥쳐! 너는 9년 전 내 인생을 망쳤어. 그러면서 뭐라고? 이혼? 그게 네가 복수하는 방식이야? 한수아! 당장 꺼져!”

우현수는 숨이 가쁘도록 욕설을 쏟아부었다. 그의 말들은 마치 총알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이미 상처 난 나의 가슴을 다시 한번 산산조각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꺼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당장 이 집에서 꺼져... 돌아갈 시간이 되면 지훈이를 데려다 줄 거니까.”

우현수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혼 판결문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고 사과하려고 하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엄마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전화를 건다. 그래서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말을 끊었다.

“당장 병원으로 와! 네 아빠가 칼에 찔렸어.”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충격을 받은 나는 핸드폰을 땅에 떨구었다.

“무슨 일이야?”

우현수가 물었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핸드폰을 주우며 대답했다.

“아빠가 칼에 찔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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