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화의 공격은 그의 이름과는 정반대였다.조금의 평화로운 느낌도 없이 처음부터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살벌한 기술이었다. 게다가 옆에서 지원하는 흰 발톱의 송골매 덕분에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이봐, 넌 엄청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걸? 내 손에 죽은 자들은 전부 황족과 귀족들이었어. 너 같은 무명 인사가 내 손에 죽는 건 운이 참 좋다는 뜻이지.”송평화는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 동시에 임지환을 끊임없이 비웃으며 심리전을 펼쳤다.뼈 때리는 공격보다 마음을 울리는 공격이 더 효율이 높은 공격이었다.'“재밌네,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어.”절체절명의 순간, 임지환은 손으로 땅을 짚고 반동을 이용해 오른발을 강하게 차올렸다.그러고는 지면에 갇힌 용이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강력한 발차기로 송평화의 가슴을 강타했다.“이 정도면 송평화는 임지환의 상대가 안 되겠네.”옆에서 지켜보던 소유리는 임지환의 반격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댔다.쾅!하지만 소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임지환의 발차기가 송평화의 가슴에 정확히 적중했음에도 송평화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듯 보였다.더 놀라운 건 송평화의 마른 몸에서 희미한 청색 빛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이건... 선천강기잖아. 설마 너 죽은 척 연기로 20년 동안 숨어서 지내며 대종사 경지에까지 올랐단 말이야?”소유리는 이 기이한 장면을 보고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역시 황실 자손이군. 보는 눈은 있네. 하지만... 아쉽게도 너무 늦었어.”송평화는 섬뜩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임지환의 오른쪽 다리를 부러뜨리려 했다.“너 참 웃기네. 너무 일찍 기뻐하는 거 아니야?”임지환의 목소리는 죽음을 예고하는 사신처럼 서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이 정도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 내 선천강기를 뚫지도 못하면서 허풍을 떨긴 뭘 떨어...”송평화 역시 임지환을 조롱하듯 웃으며 매서운 손을 뻗어 사나운 기세로 임지환의 오른쪽 다리를 낚아채려 했다
“뭔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른 해 봐. 안 그러면 너도 네 딸처럼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할 테니까.”임지환은 뒷짐을 지고 냉담한 표정으로 송평화를 바라보며 재촉했다.“삐익...”하지만 임지환의 예상과 달리, 송평화는 더 이상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고 대신 갑자기 휘파람을 불며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삐익...”다음 순간, 하늘을 맴돌던 흰 발톱의 송골매가 그 소리에 반응했다.임지환은 송골매가 자기를 향해 공격해 올 것으로 추측했지만 생각 밖으로 송골매는 송평화를 향해 돌진했다.쫙...송평화는 옷을 찢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자기 팔에 상처를 냈다.뚝...뚝...순간 시뻘건 피가 상처에서 멈추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송골매는 피 냄새를 맡는 순간 갈색 눈동자가 피처럼 붉게 변했다.임지환과 소유리 두 사람의 의아한 눈빛 속에서 송골매는 송평화의 피를 마구 삼키기 시작했다.“죽여라!”송평화는 천천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그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진한 붉은색 눈동자로 변한 송골매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듯 날개를 퍼덕이며 임지환을 향해 돌진했다.“설마 이게 독수리의 신이 남겨둔 마지막 카드인가? 아까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소유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송평화는 그 말을 듣고 오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이 송골매는 내 피를 흡수했어. 이제 나와 완전히 하나가 된 거야. 그 힘은 인간을 훨씬 뛰어넘어. 저 녀석을 죽이는 건 순식간이야.”“그래?”임지환은 가볍게 웃으며 허리춤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휙 던졌다.슝!은침은 차가운 빛을 내며 빠른 속도로 송골매를 향해 날아갔다.하지만 송골매는 임지환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했다.탁!은침이 날아가 박히는 순간, 송골매는 날개를 휘둘러 은침을 막아냈다.임지환의 은침이 처음으로 빗나가는 순간이었다.이전에 상대가 대사급 고수라 할지라도 은침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 송골매 앞에서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흥미롭네
“임지환, 너 진짜 바보야? 저 자식을 바로 죽이면 될걸, 굳이 짐승이랑 육탄전을 벌여야 하겠어? 그건 자살과 다름없는 짓이잖아.”바닥에 쓰러져 있던 소유리가 다급한 표정으로 전혀 숙녀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여 고래고래 외쳤다.지금 둘은 한배를 탄 처지에 있어 소유리의 다급한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여기서 임지환이 죽으면 소유리는 송평화의 손에 떨어질 게 분명했다.송평화는 잔인하기로 유명해서 소유리를 죽이지는 않는다고 해도 절대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다.“걱정 마, 저 짐승 따위는 나를 어쩌지 못해.”임지환의 목소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고 소유리에게 대화를 나누면서 대수롭지 않게 주먹을 휘둘렀다.임지환의 위력이 없어 보이는 공격에 송골매의 붉은 눈동자에는 인간적인 경멸이 비쳤다.송평화의 피로 길들인 후, 송골매는 이미 어느 정도 지성을 갖춘 상태였다.“이건 그냥 짐승이 아니야. 내가 직접 훈련한 이변이 일어난 맹수야. 네가 송골매와 겨루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야. 네가 송골매에게 당하고 나면 반드시 널 갈기갈기 찢어서 우미의 혼을 달래줄 거야.”송평화는 임지환을 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삐익!”송골매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방패처럼 튼튼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깃털을 휘저어 소름이 끼치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날카로운 송골매의 부리는 칼보다도 날카롭게 빛나며 임지환을 향해 돌진했다.“하찮은 깃털 짐승이 감히 내 앞에서 미쳐 날뛴다고?”임지환이 호통을 치자 그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비밀 통로에 울려 퍼졌고 주먹도 더욱 빠르게 나갔다.그 순간 송평화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한편, 무술을 배운 적이 없는 소유리는 더욱 버티기 힘들어 임지환의 목소리에 겁을 잔뜩 먹고 그대로 주저앉았다.지금 소유리의 귀에는 수백 마리의 벌이 윙윙대는 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꽥!”갑자기 처참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메웠다.임지환과의 접전에서 무적일 것만
“이게 뭐지? 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거야? 설마 이 밀실의 산소가 부족해진 건가?”옆에서 두 사람의 교전을 지켜보던 소유리조차 임지환의 기운에 영향을 받아 불편함을 느꼈다.‘이 녀석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겨우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어떻게 날 완전히 짓누를 수 있지? 설마 저 녀석 실력이 대종사 이상이라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이 자식에게 겁먹어 이렇게 쫄 순 없어.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혹시나 살길이 있을지도 몰라.’임지환의 압도적인 기운을 받자 송평화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마침내 송평화의 눈에 뜨거운 전투 의지가 불타올랐고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죽더라도 너를 끌고 같이 갈 거야!”송평화는 고삐 풀린 야수처럼 임지환에게 돌진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이제야 조금은 대종사의 풍모가 있군. 하지만 아쉽게도 넌 길을 잘못 들었어. 내가 진정한 선천 경지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마.”임지환은 날카로운 시선을 보이며 느릿느릿 말했다.임지환의 여유로운 자태는 생사를 다투는 싸움이 아닌 스승님이 제자에게 전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말투에는 태연함과 무심함이 배어 있었다.“헛소리 집어치워! 오늘은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야!”송평화는 여전히 고래고래 외치며 주먹을 뻗어 임지환의 가슴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어떠한 화려한 기술도 없이 단순한 주먹과 발차기로 공격했지만 그 동작은 공기를 가르며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쾅!폭발력이 엄청난 주먹이 임지환의 가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됐어! 이 녀석이 방금 방출한 기운은 단순한 허세였어. 이 녀석이 죽으면 저 계집을 인질로 삼아야겠어. 설령 폭탄을 터뜨리지 않아도 이 보물을 가지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겠어.”임지환을 강타한 순간, 송평화는 이미 앞으로 펼쳐질 달콤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네 힘이 겨우 이 정도야? 가슴이 간지러운데? 실력이 형편없구나.”하지만 임지환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송평화를
펑펑...조금 전까지 멀쩡히 서 있던 송평화가 갑자기 불붙은 폭죽처럼 야윈 몸에서 지속적으로 강렬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폭발음이 한 번 울릴 때마다 또한 끔찍한 핏줄기가 몸에서 치솟았다.“피야! 피가 엄청 많아...”시뻘건 피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송평화의 몸에서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비록 생사를 넘나드는 참혹한 현장을 여러 번 본 소유리였지만 이 처참한 광경 앞에서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구역질을 억누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여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난... 너무 억울해!”송평화는 마지막 힘을 짜내며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는 그 절망적인 외침 속에서 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네 실력은 괜찮긴 하지만 머리는 잘 안 돌아가는구나.”송평화가 눈을 감지 못한 채 죽은 비참한 모습을 보며 임지환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한편, 간신히 구역질을 참아낸 소유리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무슨 뜻이야? 설마 방금 다친 척한 거야?”말하는 동안 소유리의 손이 서서히 임지환의 복부 쪽으로 다가갔다.탁!임지환은 손을 뻗어 소유리의 손등을 가볍게 쳐내며 담담하게 말했다.“이상한 데 만지지 마, 나 멀쩡하니까.”“뭘 만지려던 게 아니야. 그냥 네가 걱정스러워 그런 것뿐이야. 아까는 네가 내게 다쳤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괜찮다고 그래?”임지환이 소유리의 속셈을 간파하자 소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사실 내 지금 능력으로는 그 주먹 한 방을 막는 게 한계였어.”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저 녀석이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공격을 들이댔다면 내가 이렇게 쉽게 저 녀석을 죽일 수 없었을 거야.”임지환의 옛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체내의 영기도 사실 많지 않았다.하지만 송평화는 그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다.임지환에게 겁을 먹고 나서 선수를 놓쳤고 결국 임지환의 일격에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송평화가 아직 살아 있다면 네가 한 말에 피 토하며 죽을지도 몰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
소유리는 가슴을 내밀며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임지환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대응했다.“미리 경고하는데 마지막 폭탄을 아직 찾지 못했어. 이 유람선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어.”“쳇! 알았어, 올라가서 사람들을 불러올게.”소유리도 지금은 심술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벽에 걸려 있던 횃불을 내려서 밀실을 뛰쳐나갔다.찰칵!소유리가 어두운 길목에 숨겨져 있던 스위치를 누르자 침대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비밀 통로에서 무사히 탈출한 소유리는 곧바로 갑판 위로 올라갔다.“유리 씨,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 임지환이라는 남자가 유리 씨에게 허튼짓을 한 건 아니죠?”소유리가 무사히 나타나자 한중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선생님, 오해하셨어요. 임지환은 저에게 허튼짓을 한 게 아니라 제 목숨을 구해줬어요.”소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선생님, 자그마한 부탁이 하나 있어요. 앞으로는 임지환 앞에서 꼭 예의를 지켜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거든요.”“그게 무슨 뜻이죠?”한중오는 자기 제자가 임지환을 두둔하는 말을 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선생님, 저는 절대 과장해서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전설 속의 최고 킬러 독수리의 신마저 임지환의 손에 죽었어요. 임지환은 개미 밟듯이 너무 쉽게 대사급 고수를 죽이더라고요.”밀실에서 일어난 모든 기억을 떠올리며 소유리는 지금까지도 꿈인지 현실인지 믿기지 않았다.임지환을 만나기 전에는 이 세상에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무사 김현무보다 더 강한 무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독수리의 신은 스승님께서 이미 오래전에 죽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된 겁니까?”한중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만에 하나 독수리의 신이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임지환이 그 전설 속의 인물을 이길 리 없잖아요.”“당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이 임 선생님에게도 똑같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에요. 임 선생님이 누군가를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스승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추측이 진짜였어. 그때 이놈이 진짜 죽은 척 연기하고 도망친 거였네. 흥, 그래도 결국 죽을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군. 너희들 한국에서는 이걸 인과응보라고 하더군. 그 말이 진짜 지금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네.”한중오는 감정이 격해져 목 놓아 통곡하다가 미친 듯이 웃어대며 난리를 피웠다.몇 분이 지나고서야 한중오는 정신이 나간 듯한 상태에서 벗어나 점차 이성을 되찾았고 이내 몸을 돌려 임지환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임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고마울 게 뭐가 있어?”임지환은 다소 의아해했다.“이놈을 죽인 건 임 선생님이잖아요. 이놈을 죽인 사람은 곧 제 은인입니다. 예전의 제 무례함과 오만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이 순간에서야 이 니혼 검도 대사는 진심으로 임지환에게 탄복하며 예의를 갖췄다.“감사까지는 필요 없고, 앞으로 우리 한국 무사들에게 예의를 갖추도록 해.”그러고는 유란에게 머리 돌려 지시했다.“유란, 난 지수를 먼저 데리고 올라갈 거야. 넌 우리 장모님을 데리고 올라가. 얼른 여기를 떠나야 해.”임지환은 지시를 내리고 배지수를 안아 들었다.유란은 고개를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유옥진을 안았다.“장모님이라고? 그러면 임지환이 안고 있는 여자는 임지환의 아내인 거야? 어휴... 임지환에게 시집가려고 했는데, 다 글러 먹었네.”소유리는 임지환의 말을 듣고 실망과 아쉬움이 가득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댔다.사실 소유리는 이미 마음속에서 임지환을 자기 미래 남편으로 찜해 둔 상태였다.“정확히 말하면 저 여자는 임 선생님의 전처예요.”유란은 소유리의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웃으며 입을 열었다.“물론, 전처라고 해도 유리 씨가 가망 없는 건 마찬가지예요.”“무슨 뜻이죠? 혹시 나랑 남자 놓고 경쟁할 생각인가요?”소유리는 자존심 강한 싸움닭처럼 고개를 높게 치켜들며 따졌다.“오해하지 마세요. 난 단지 유리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한국에서 태어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 임지환이 니혼에서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우리를 이끌고 무도 세계의 정상에 올랐을 텐데 말이야.”한중오는 내심 아쉬운 듯 중얼댔다.“제가 임지환과 결혼만 하면 임지환도 우리 민족의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소유리는 교활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스승님, 스승님의 꿈도 머지않아 이루어질 겁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올라가십시오.”한중오는 소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재미 삼아 말한 게 아니거든요. 임지환이 동의하지 않으면 돈을 퍼부으면 돼요. 2000억으로 안 되면 2조를 퍼부으면 되잖아요. 이렇게 큰 금액을 보고도 마음이 안 흔들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결혼 자금을 모아야겠네요.”소유리는 계획을 털어놓고 나서 금은보화가 가득 담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스승님, 이 안에는 가격이 어마어마한 보물이 잔뜩 있어요. 나르는 건 스승님에게 부탁할게요.”“유리 씨, 제 몸은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한중오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나르기엔 아마도...”“설마 저한테 시키실 건가요? 스승님, 여기는 스승님께 맡길게요. 수고하세요!”소유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깡충깡충 뛰며 나갔다.검도 대사 한중오는 자기가 막일꾼으로 전락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임지환 일행이 지상으로 돌아오는 동시에 마침 허청열도 헬리콥터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허 교관,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히네. 이제 여기 일이 다 마무리됐으니 날 용은 저택으로 바로 보내주면 될 것 같아.” 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선생님, 오늘은 아무래도 저와 함께 금릉에 한 번 다녀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허청열은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해?”임지환의 얼굴에서 미소가 천천히 자취를 감췄다.“방금 본부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그쪽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