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환은 추문철의 행동을 힐끗 보고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임지환은 의자를 가져와 여유롭게 앉아 다리를 꼬고 말했다. “좋아,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봐. 난 언제든지 상대해 줄 수 있어.”“얼씨구?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도홍희는 이를 악물고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며 팽팽해졌다.“어머님, 오해가 깊으시네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양서은은 즉시 나서서 상황을 중재하려 했다. “임지환은 사실... 오늘 준우를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에 온 거예요.”“서은아, 넌 우리 위씨 가문 예비 며느리야. 네 팔이 어찌 밖으로 굽을 수 있어?”양서은이 임지환을 변호하자 도홍희는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했다.“엄마,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이 여자 때문에 내가 괜히 누군가가 설치한 함정에 빠진 거예요.” 위준우는 냉랭하게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뭐라고?” 도홍희는 아들이 아프게 된 일에 그런 내막이 있을 줄은 몰랐다.“위준우, 헛소리하지 마. 분명 네가 먼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를 모함했잖아.”양서은은 그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라 즉시 반격했다. “임지환이 네 모함을 듣고 참다못해 너에게 손을 댄 거야.”“이것 봐. 다들 들었지? 이 임지환이라는 녀석이 먼저 날 때린 게 분명하잖아. 내가 말실수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난 사람을 때리진 않았어.” 위준우는 비열하게 웃으며 옆에 있는 유진헌을 향해 물었다. “유 국장, 너도 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을 게 아니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너도 대충 판단할 수 있겠지?”쭉 옆에서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유진헌은 갑자기 이 뜨거운 감자가 자신에게 던져지자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유진헌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빠른 속도로 어떻게 대응할지 머리를 굴렸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을 정도로 힘겨운 고민 끝에 유진헌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생각엔... 이건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추문철, 네 체면을 봐서 지금까지 쭉 참고 있었거든. 근데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 임지환은 추문철을 바라보며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이 기괴한 모자에게 진절머리가 났다는 게 그의 속내였다.“홍희야, 미안해!” 임지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추문철은 도홍희 앞에 다가섰다. 놀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추문철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도홍희의 얼굴에 왼쪽과 오른쪽으로 연속으로 따귀를 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아한 기품을 자랑하던 귀부인의 얼굴은 돼지머리처럼 부어올랐다.“추문철, 적당히 해. 사람이 얄미운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여자잖아. 나도 여자와 똑같은 수준으로 대응하기는 싫어.” 임지환은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추문철은 임지환의 말을 듣고 도홍희에게서 손을 떼고 조용히 임지환 뒤에 섰다.“임지환, 두고 봐! 오늘 널 죽이지 않으면 내가 짐승처럼 벌벌 기어서 이 병원을 나갈 거야!” 도홍희는 분노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늘 반드시 임지환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굳게 맹세했다.“아줌마, 여기는 병원이야.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면 다른 환자들이 쉬는데 방해가 돼.” 임지환은 연기를 내뿜으며 차분하게 말했다.“임... 임 선생님, 여기 병실에서는 금연입니다.”병원 원장 심창진이 용기를 내 조심스럽게 말했다.임지환은 그 말에 순간 당황한 듯 담배를 껐다. “미안하네요, 내가 병원에서 금연이라는 규정을 깜빡했군요.”“심 원장, 왜 이렇게 까다로운 규칙을 들이대요? 임 대사님이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그냥 피우게 해요!” 유진헌이 꾸짖으며 시장에서 유통하지 않는 고급 담배를 임지환에게 내밀며 틈타 아첨했다. “임 대사님, 이거 피우세요. 이 담배는 맛이 참 좋아요.”“넌 제법 눈치는 있군. 하지만 아쉽게도 따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따라다니고 있어.”임지환은 유진헌을 힐끗 쳐다보고는 담배를 받아들이며 말했다.“임 대사님,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앞으로 저는 임 대사님만
유진헌의 마음속에서 억눌린 분노가 순간적으로 폭발했다.오랜 세월 동안 유진헌은 줄곧 위씨 가문의 개로 살아왔다.위씨 가문 사람에게 사랑이나 존경을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 위씨 가문의 하인들조차도 그를 함부로 발로 차며 업신여기는 상황이었다.이런 수모를 견디는 삶에 유진헌도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그래서 이런 기회가 주어진 오늘에 비로소 자기 정확한 위치를 되찾으려 하는 것이었다.그래서 유진헌은 섬뜩한 살기를 가득 품고 위준우에게 다가가 사납게 한 방 걷어찼다.쿵!아무런 방비도 없이 위준우는 그 발차기에 직격당해 병실 문까지 굴러갔다.“그래, 너희 말이 맞아. 오늘의 나는 배신자야.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우리 잘난 위씨 가문 사람이 도대체 날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해 미치겠어. 보여줘 봐!”유진헌은 완전히 마음을 다잡고 막 나가기로 했다.임지환이라는 든든한 배후가 생기려면 반드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발차기는 그의 충성을 맹세하는 일종의 신호였다.위준우는 발차기를 당하고 아파서 소리를 지르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속 공포감이 더욱 커졌다.지금껏 키운 충성스러운 개마저도 주인에게 반항하기 시작하니 이보다 더 큰 일은 없었다.“너희들 오늘 끝장났어.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도홍희는 경계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유진헌을 쓱 쳐다보고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민국 씨, 당신 아들 문제는 내가 해결 못 했어. 상대가 사과는커녕, 우리를 죽도록 두들겨 팼어. 아직 살아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병원으로 튀어와!”추문철과 유진헌이 연이어 반란을 일으켜 임지환에게 빌붙자 도홍희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자기 남편 위민국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10분 내로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갈게. 홍희야, 절대 그 자식들을 도망치게 하지 마!”휴대폰 너머로 분노가 담긴 위민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조금만 기다려 봐... 10분 후에 너희들 모두 내 앞에 무릎
“누군가가 나를 해치지 않으면 나도 그 사람을 해치지 않아. 네가 말한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음을 자초하지 않았더라면 난 결코 그들을 죽이지 않았을 거야.”임지환은 단호한 말투로 또박또박 자신의 태도를 밝혔다.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유진헌은 내심 크게 안도했다.‘내가 선견지명이 있어 임 대사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게 진짜 다행이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음에 죽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었을 거야.’이렇게 생각하니 유진헌의 마음도 한결 놓였다.10분도 안 돼서 병원 복도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당장 이 병원 출입구를 전부 봉쇄해! 파리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알았어? 과연 누가 그리 배짱이 대단한지 한번 보자고... 우리 위씨 가문과 감히 맞설 생각을 한다고?”말이 끝나기 무섭게 평범한 헤어스타일에 엄숙한 표정의 중년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서 특호 병실에 들어왔다.남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30명이 넘는 전신 무장한 군인들이 병실의 출입구를 완전히 봉쇄했다.“홍희야! 준우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위민국은 아내와 아들의 참혹한 모습을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누가 감히 위씨 가문을 건드리는 거지? 이건 저승에 가는 지름길이 확실했다.도홍희는 남편이 오자마자 든든한 배후가 생겨 자신감이 넘쳐나 임지환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고발했다.“민국 씨, 바로 이 사람이야!”“너냐?”위민국은 임지환을 보자 무의식 간에 잠시 멍해졌다.도홍희가 가리킨 사람은 제법 젊어 보이고 외모도 흔히 보는 평범한 얼굴인데 아무리 봐도 배경이 있기는커녕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이 사람이 추문철을 사주해서 내 뺨을 때렸어. 그리고... 민국 씨가 기르는 그 유진헌이라는 개 말이야. 우리 위씨 가문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충성을 다하겠다며 우리 아들을 때리기까지 했어!”도홍희는 눈물까지 흘리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억울함을 호소했다.“추문철! 유진헌! 너희 둘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관료 사회에서 오래 살아남은 인물답게 말 한마디로 바로 추문철의 약점을 찔렀다.추문철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임지환을 바라봤다.“추문철, 이제 그만 쉬어도 돼. 이제부터는 너와 상관없는 일이야.”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의 말 한마디로 추문철에게 적절한 퇴로를 제공해 주는 격이 됐다.“위민국, 예전 약속을 들먹이며 날 겁주려고 하지 마라. 네 아들을 내가 직접 때린 건 아니야. 앞으로 너희에게 일어날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니냐.”추문철은 자기 입장을 밝힌 후 임지환을 향해 말했다. “임지환, 앞으로는 내가 나서기 어려울 것 같네.”“네가 저 사람들을 대신해 날 어쩌려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의를 갖춘 거야.” 임지환은 손을 내저으며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내가 저 인간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힘이 없어.”추문철은 쓴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보탰다.“그래도 내가 이제 선천에 오르면 너와 한 번 더 겨루고 싶어.”“언제든 환영이야.”임지환은 시원하게 웃으며 약속했다.“그럼 먼저 실례할게.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추문철은 임지환에게 두 손 모아 인사한 후 병실 문을 향해 유유히 걸어 나가려 했다.“위 국장님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나갈 수 없어!”총을 든 병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감히 날 얕봐? 내가 만만해 보여?”추문철은 코웃음을 치며 바닥을 향해 갑자기 발을 굴렀다.쿵!그러자 바닥이 요동쳤고 모두가 이 소란 때문에 정신이 없이 당황한 사이 추문철은 마치 유연한 용처럼 잽싸게 인파 속을 오갔다.다들 추문철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눈앞이 번쩍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쥐고 있던 총이 이미 다른 곳으로 넘어간 뒤였다.2분도 안 되는 사이, 병사들의 총이 한 자루도 빠짐없이 모두 분해되어 있었다.쨍그랑...추문철은 그 30여 자루의 총을 위민국 앞에 보란 듯이 던졌다.“헉!”큰 장면을 많이 경험해 어느 정도 내공이 있는 위민국이었지만 이
“간다고? 오늘 네가 이 문을 나갈 수만 있다면 내가 무릎 꿇고 사과하지. 네가 무술 실력이 뛰어난 건 잘 알았어. 하지만 권력과 인맥을 따지면... 넌 내 앞에서 그저 갓난아기에 불과해.”위민국은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우리 강한시 시장을 부르겠어. 네가 정말 배짱이 있다면 시장 앞에서도 대놓고 맞설 수 있는지 보자고.”으름장을 놓자마자 임지환이 답하기도 전에 위민국은 홍진에게 전화를 걸었다.“홍진, 나 지금 강한시에 있는데 시간 있으면 잠깐 볼 수 있을까?”“위 국장,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오셨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바로 갈게요.”전화 너머에서 홍진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사실 우리 집안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서 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네. 일이 끝나면 다시 찾아갈게.”위민국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위민국은 홍진이 권세에 굽히지 않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도움을 청했다가는 거절당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다른 식으로 접근한 것이었다.위민국의 예상이 적중했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홍진은 바로 답했다. “어느 병원에 계시는가요? 바로 갈게요.”“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 정도 일로 홍 시장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어.”위민국은 겉으로는 사양하는 척했다.“이 강한시는 내 관할인데 위 국장이 여기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위씨 집안 어르신께 얼굴을 들고 뵐 수 없잖아요.”홍진은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위민국은 이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병원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홍진의 확답을 받은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이봐, 네가 뭘 믿고 그렇게 까부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아무리 대단한 배경을 갖고 있어도 우리 강한시 시장 앞에서라면 결국 꼬리를 내리게 될 거야.”위민국은 냉랭하게 말하며 더는 참지 못하고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지환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심지어 조금 전
임지환은 자리에 서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위민국은 임지환이 침묵을 지키자 이어서 말했다. “네 다리를 부러뜨려서 이자만큼 받아 갈 거야.”“민국 씨, 다리만 부러뜨린다고 내 화가 풀리겠어요? 저 녀석 팔다리를 다 부러뜨려야 내 속이 시원할 거예요” 도홍희는 천천히 위민국 옆으로 걸어오며 증오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아, 맞다. 그리고 저 유진헌도 더는 감찰국에서 일할 필요가 없겠어요.” 임지환을 향해 분풀이하는 게 끝이 아니었다. 도홍희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유진헌에게도 독이 가득 찬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역시 세상에서 한이 맺힌 여자 마음만큼 독한 게 없군.” 그 말에 유진헌의 담배를 든 손이 살짝 떨렸다.“우리 위씨 가문을 건드린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지. 유진헌, 네가 이 청년 편을 들려고 했다면 그에 따른 결과도 겸허히 감수해야지.” 위민국은 눈을 가늘게 뜨며 냉소를 지었다.위씨 가문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절대 가만히 둘 수 없었다.게다가 유진헌은 위민국이 직접 키워낸 사람이라 감찰국에서 끌어내리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위 선생님, 이 일은 정말 협의할 여지가 없는 건가요?” 유진헌은 담배를 꺼트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개라면 개답게 굴어야지. 이제 와서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어.” 위민국은 상급자의 태도로 유진헌을 내려다보며 협상의 여지를 하나도 주지 않았다.위씨 가문 개로 키운 녀석이 감히 주인에게 반항하려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땅을 치며 후회할 정도는 아닙니다. 단지 내가 지금까지 위씨 가문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내가 당신들 눈에는 돼지나 개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가 막힐 뿐입니다. 지금까지 뭘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현타가 오네요.”유진헌은 씁쓸하게 웃으며 아쉬움과 슬픔이 섞인 말투로 말했고 이내 몸을 돌려 임지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임 대사님, 걱정 마십시오. 오늘은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위씨 가문과 끝까지 싸우겠습니다.”절체절명의 궁지에 몰리자 유
홍진은 말을 마치고 뒷짐을 지고 병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홍 시장이 직접 오다니 이거 정말 볼 만하겠군.”“위씨 가문을 건드리는 자는 한결같이 비극으로 끝날 게 뻔해.”위민국이 데려온 무리는 하나같이 고소해하는 표정을 지었다.“큰일 났어. 홍 시장이 오면 임지환은 완전히 끝장을 보게 될 거야.” 양서은의 마음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하하, 홍 시장이 오니 본격적인 연극이 시작되겠네.”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달리 유진헌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유진헌, 너 미친 거 아니야? 홍 시장이 네 죄를 물으러 왔다고!” 도홍희는 유진헌의 이상한 태도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하지만 유진헌은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죄를 묻는다고? 홍 시장이 과연 그럴 용기가 있을까?”“유진헌, 네가 누굴 용기가 없다고 하는 거야? 강한시 시장 홍진이 너 같은 녀석 하나 제대로 못 다룬다고 생각하나?” 홍진은 유진헌의 호언장담을 듣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소리를 높여 질책하며 병실로 들어왔다.“날 다루는 건 아무런 문제도 없어.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임 대사님을 대신해서 저 사람들과 맞선 거라고. 설마 우리 홍 시장께서 임 대사님의 체면도 무시할 셈인가?”유진헌은 당당한 태도로 또박또박 말했다.“임 대사라고?”홍진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려 병실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임지환이 병실 의자에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임 대사든 개 대사든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 시장님 앞에서는 아무리 날고뛰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고분고분 복종해야 할 거야!” 도홍희는 코웃음을 치며 유진헌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위 여사님, 말을 조심하세요. 임 대사님은 위 여사님이 함부로 비난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도홍희가 더 이상 폭언을 던지기 전에 홍진은 얼굴빛이 변하며 급히 그녀를 제지했고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급히 임지환 앞으로 다가갔다.“홍 시장,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위민국은 미간을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