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쓸모없는 병신이 아니에요.” 하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아빠도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썼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죽었어요.”“죽어도 싸!!” 소백중은 하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만약 그때 그 자식이 순순히 주영과 이혼했으면 주영도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야!”“지금까지도 당신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생각이 없군요!”“예준이 설득해!” 소백중은 흥분해하며 소리쳤다.하영은 다시 거절했다.“그렇게 할 수 없어요!”“예준이 다시 돌아오게 해! 빨리!!” 소백중은 눈시울이 붉어졌다.“내 손자를 돌려줘! 소진 그룹은 예준이 없으면 안 돼!! 우리 집안 백년 넘은 가업이 이렇게 무너질 수 없다고!! 안돼!!!”그렇게 단숨에 소리를 지른 소백중은 갑자기 가슴을 안고 기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숨이 턱턱 막히는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숨을 크게 쉬기 시작했다.“연기하지 마세요!” 하영은 그를 호되게 쳐다보았다.“어떤 수를 쓰든 저는 오빠를 설득하지 않을 거예요!”“의…… 의사 불러…….”소백중이 이렇게 힘없이 외친 후에야 하영은 그가 정말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안색이 변하더니 침대 머리맡으로 가서 벨을 눌렀다. 그리고 곧 의사와 간호사가 들이닥쳤다.그들은 하영을 밖으로 내보낸 다음 응급처치를 진행했다.하영은 닫힌 방문을 멍하니 쳐다보며 머릿속은 텅 비었다.그녀는 온몸을 끊임없이 떨었고, 지금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마치 양운희가 죽기 직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난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그리고 잘못한 것도 없고…….’‘이 모든 것은 다 그 사람의 업보야. 예전에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하영은 눈을 깜박였다.‘난 일부러 그 사람을 이렇게 만든 게 아니야.’‘아니…….’정신을 차리자, 하영은 부들부들 떨며 휴대전화를 꺼내 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준은 전화를 받았고 하영은 울먹이며 말했다.“오빠…….”하영의
“지금 할아버지 상태는 어떻게 됐어요?”예준이 물었다.“링거 맞은 후 바로 잠 들었어요. 이제 더 이상 병원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네요. 시간을 좀 많이 내서 같이 있어줘요.”하영은 침울하게 예준의 품에서 벗어났다.예준이 의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는 떠났다.하영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이제 그만 소진 그룹으로 돌아가요.”“그게 무슨 말이야?” 예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하영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난 이 사람이 죽은 후, 귀신으로 되어 날 다시 찾아올까 봐 두려워요.”예준은 눈을 드리웠다.“내가 너무 무모하게 움직였어.”“오빠, 그 사람더러 나에게 사과하라고 할 작정이죠?”하영은 목이 쉬었다.“그러나 그 사람은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라 화가 나서 죽을지언정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너 정말 어머니를 닮았구나.” 예준은 웃으며 하영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때 어머니도 고집이 이렇게 셌는데.”아래층에서.소희원은 간호사로 변장한 다음 복도에서 걷고 있었다.그리고 부진석의 사무실을 지날 때, 그녀는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지나가던 간호사는 의아하게 소희원을 바라보았다.“혹시 새로 왔어?”소희원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웃으며 말했다.“네, 다른 진료실에 신입인데, 내일 첫 출근이거든요. 그래서 먼저 병원 환경을 좀 익숙히 하고 싶어서요.”“그럼 간호사복 입고 여기서 돌아다니지 마.” 간호사가 주의를 주었다.“네, 이따 바로 벗을게요.”간호사는 소희원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제야 떠났고, 소희원도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돌아다녔다.점심시간이 되자, 소희원은 또 진석을 뒤따라 병원 식당에 갔다.그동안의 미행을 통해, 소희원은 진석에게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예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오빠, 이 사람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 같아요!]소희원의 문자를 받자 예준은 이마를 짚었다.[그 남자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어젯밤 미행했는데, 그 남자 바로 집으로 돌아갔어
“하영아, 나에게 증거를 수집할 시간 좀 더 줘. 이 일은 너무 오래 지난 데다 그 당시 감시 카메라가 거의 없어서.”감시 카메라을 언급하자, 예준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왜 사건 발생 현장 근처의 감시 카메라를 생각 못했지?’영상이 지워져도 그는 기술부를 찾아 복구할 수 있었다!예준은 정신을 차리고 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 나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아. 집으로 데려다줄게!”하영은 이미 일어선 예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뭐가 이리 급해요?”“갑자기 조사해 봐야 할 일이 생각났거든.” 예준은 하영의 외투를 들며 말했다.“가자.”예준은 하영을 아크로빌로 데려다준 후, 기술부 사람에게 연락해 회사로 오라고 했다.기술부 부장이 도착하자, 예준은 입을 열어 물었다.“23년 전의 감시 화면을 회복될 수 있을까?”“23년 전이요?!” 부장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원본 있나요?”“음, 이미 경찰서 사람들에게 보내달라고 했어.”부장은 난색을 보였다.“저도 일단 시도해 볼 수밖에 없어요.” 30분 후.부장은 예준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대표님, 저도 최선을 다했어요.”예준은 실망을 느끼며 눈을 드리웠다.‘설마 이 방법도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그렇다면 난 또 무슨 수로 증거를 찾아야 할까?’그 당시 입찰에 참여한 몇 사람이 한 말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수고했어, 돌아가 봐.” 예준은 힘없이 입을 열었다.“네.”부장이 떠난 후, 예준은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었다.기술부 사람들이 복구할 수 없는 이상, 그는 해커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생각하던 중, 예준은 문득 세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정신을 차리더니 얼른 세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세준은 전화를 받았다. “네, 삼촌.”“세준아, 너 지금 위층에 있니 아니면 아래층에 있니?”예준이 물었다.“위층이요! 컴퓨터 연구하고 있었어요.” 세준이 대답했다. 예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세준아, 너 혹시 감시 카메라 화면
“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요.” 임수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영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잘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그만두고 싶은 거지?”“부서를 바꾸고 싶어서요.” 하영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올라가서 이야기하자.”사무실 안.하영은 가방을 내려놓고 임수진에게 물을 따라주었다.“왜 갑자기 부서를 바꾸려는 거야?”임수진은 안경을 밀었다.“인사팀이란 직업이 저와 잘 맞지 않는 거 같아요. 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임수진의 성격이 확실히 조용했기에 하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넌 인사팀에서 아주 뛰어난 성적을 거뒀는데, 부서를 바꾸면 너무 아깝잖아.”하영은 임수진 앞에 물을 놓았다.“아직 많이 부족하죠.”임수진은 단호하게 말했다.하영은 한숨을 쉬었다.“어느 부서로 가고 싶은데?”“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돼요.”“비서?” 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네 능력이 너무 아까운데.”임수진은 눈을 드리웠다.“그래도 비서로 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홀가분하거든요. 사장님, 제발 동의해 주세요!”하영은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전에 공장에 불을 지핀 범인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기에 하영은 임수진이 의심돼서 그녀를 다른 부서로 옮겼다. 그러나 지금, 임수진은 다시 돌아오려 했다.인사팀의 월급은 비서보다 훨씬 높았으니 하영은 임수진이 이러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녀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임수진을 바라보았다.“그래, 어차피 내 개인 비서의 자리도 아직 비어 있으니까. 그러나 월급은 상대적으로 좀 낮을 거야. 보너스는 내가 따로 줄 거고.”“네.”임수진이 떠난 후, 캐리가 바로 들어왔다그는 문을 닫고 하영에게 물었다.“무슨 일로 널 찾았는데?”하영은 임수진이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일을 캐리에게 말했다.말을 마치자, 캐리는 눈살을 찌푸렸다.“월급은 수백만 원 차이가 나는데,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지?”“잘 모르겠어.” 하영은 머리가 아파
인나는 재빨리 벽을 짚었고, 놀란 사이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사람을 보려고 했지만, 귓가에 귀를 찌르는 욕설이 울렸다.“우인나! 넌 눈이 없는 거야?!”익숙한 소리를 듣자, 인나는 고개를 휙 들었다.그녀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더니 양다인을 비꼬았다.“어머, 웬일로 밖에 나왔대? 이젠 얻어맞는 것도 두렵지 않나 봐?”“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양다인은 짜증이 났다. “빨리 나한테 사과해!”“내가 왜?”인나는 은근히 비웃었다.“누가 먼저 들이박았는데, 왜 내가 사과해야 하지? 이 집에서 쫓겨난 개야!”양다인은 얼굴이 일그러졌다.“다시 한번 말해봐?!”“집에서 쫓겨난 개, 집에서 쫓겨난 개, 집에서 쫓겨난 개!” 인나는 코웃음을 쳤다.“서비스로 세 번 말해줄게!”양다인은 손을 번쩍 들어 인나의 얼굴을 때리려 했다.그러나 인나는 오히려 턱을 내밀더니 앞으로 다가갔다.“어디 한 번 때려봐! 능력 있으면 때리라고! 오늘 나 때리기만 하면, 난 집에서 쫓겨난 개가 임산부를 때렸단 일을 퍼뜨릴 거야!”이 말을 듣자, 양다인은 문득 멈추었다. “임산부?!”“왜? 못 믿겠어? 내가 검사 보고서 보여줄까?”양다인의 시선은 인나의 배 위에 떨어졌다.‘우인나가 임신했다니?’인나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다 봤어? 다 봤으면 비켜, 내 눈에 거슬리니까!”말을 마치자 인나는 힘껏 양다인을 밀어내고 화장실로 걸어갔다.“어머, 저 사람이 바로 양다인이야?! Tyc 사장님을 사칭해서 소씨 집안 아가씨로 된 그 여자?!”이때, 놀라움을 금치 못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감히 외출을 하는 거지? 욕먹는 것도 두렵지 않나봐?”“Tyc의 사장님이 사람을 죽였다고 모함했다 들었는데, 내가 보기에 사람은 이 여자가 죽였을 거야.”“빨리 가자, 난 살인범한테 찍히고 싶지 않아.”“가자, 가자…….”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양다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오늘 정주원을 졸라서 오랜만에 외출을 했는
하영은 입술을 오므리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녀도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길 바랐다.이와 동시, 난원.인나가 하영과 밥을 먹으러 나갔기 때문에 현욱은 난원에 가서 밥을 얻어먹었다.유준은 현욱의 맞은편에 앉아 그가 허겁지겁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전생에 굶어 죽은 귀신이야 뭐야?”유준은 싫증을 드러냈다.현욱은 손사래를 쳤다. “말도 마. 나 요즘 아예 스님이 된 것 같아.”“그게 무슨 뜻이야?” 유준은 술잔을 들고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현욱은 칼과 포크를 내려놓았다.“인나 씨 요즘 채소만 먹거든. 임신 때문에 뚱뚱해지고 싶지 않다면서. 그래서 나도 그동안 고기를 안 먹었어.”유준은 가볍게 비웃었다.“굳이 자신까지 학대하다니.”“학대라니!”현욱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었다.“내 아내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누구는 아직 대답도 듣지 못했으면서.”유준은 얼굴이 굳어졌다.“먹기 싫으면 꺼져!”“에이, 농담이야!” 현욱은 얼른 포크를 들고 웃었다.말이 끝나자 문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허시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도련님.” 허시원은 공손하게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현욱은 입안에 고기가 가득한 채 말했다.“허 비서, 앉아서 같이 좀 먹어!”“저는 이미 먹었습니다.” 시원이 웃으며 대답했다.유준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무슨 일이야?”시원은 웃음을 거두며 보고했다.“대표님, 방금 본가 쪽에서 소식을 보내왔는데, 큰 도련님께서 병에 걸리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현욱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무슨 병인데?”“에이즈라고 한 것 같습니다.”탁하는 소리와 함께, 현욱의 손에 든 나이프와 포크가 탁자 위에 떨어졌다.“에…… 에이즈?! 확실해??”현욱은 공포에 질린 채 물었다.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본가 쪽의 사람들은 이미 몰래 약을 가지고 가서 검사를 해봤는데, 확실히 에이즈를 치료하는 약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도련님은 아직 자신이 이 병에 걸
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성큼성큼 하영의 곁으로 걸어가서 그녀를 들어올렸다.하영은 즉시 몸을 움츠리더니 그에게 물었다.“정유준,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갈 때가 있어!” 유준은 엄숙한 얼굴로 하영을 향해 낮게 외쳤다.유준의 분노를 느낀 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미쳤어요? 무슨 일 있으면 말로 하면 되잖아요?!”말이 끝나자마자 현욱이 또 뛰쳐들어왔다.그는 다가가서 망연한 인나를 자신의 뒤로 감쌌다.그리고 하영과 유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너희들 싸우면 싸웠지 우리 인나 다치게 하지 마!”“닥쳐!!”“시끄러워요!”하영과 유준 두 사람은 동시에 현욱을 향해 소리쳤다.하영이 협조하려 하지 않자, 유준은 아예 그녀를 어깨에 짊어졌다.인나는 눈을 크게 뜨더니 급히 소리쳤다.“정 대표, 우리 하영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죠!!”“인나 씨, 상관하지 마!” 현욱은 인나의 입을 얼른 막았다.인나는 억울한 눈빛으로 현욱을 쳐다보며 하영이 유준에게 끌려가는 것을 지켜봤다.두 사람이 사라지자, 인나는 그제야 현욱의 손을 세게 때렸다.“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아이고, 지금 나도 인나 씨에게 설명할 수가 없어. 나중에 하영 씨한테 물어봐. 응?”레스토랑 밖.하영은 유준에 의해 차 안으로 던져졌다.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차문을 닫았다.유준은 시원을 향해 낮은 소리로 외쳤다.“운전해! 병원으로!”하영은 몸을 곧게 펴며 유준을 노려보았다.“멀쩡한 사람을 왜 갑자기 병원에 데리고 가는 거예요?!”유준은 엄숙한 얼굴을 하며 하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하영은 손잡이에 손을 얹더니 협박했다.“말하지 않으면 지금 바로 차에서 뛰어내릴 거예요!”그러나 유준은 오히려 그녀를 협박했다.“세 아이를 버리고 떠나고 싶다면, 얼마든지 뛰어내려!”그녀는 묵묵히 손을 거두었다.유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무척 초조해 보였다.‘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하영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설마
유준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그는 한숨을 내쉬며 하영 앞으로 걸어갔다.“가자, 내가 데려다줄게.”“정유준, 왜 나한테 이런 굴욕을 주는 거예요? 대체 무슨 자격으로?” 하영의 목소리는 유난히 차가웠다.유준은 얇은 입술을 오므렸다.“그런 뜻 없었어. 난 네가 그런 병에 걸릴까 두려워서 그래.”“날 병원에 데려왔다는 것은 바로 나와 정주원 사이에 무슨 일 생겼다고 묵인한 거 아닌가요?” 하영은 차갑게 웃었다.만약 의사가 그녀에게 무슨 검사를 하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만약 의사가 그녀에게 정주원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오해를 받았는지조차 몰랐다!‘이 남자 눈에 난 아무나 하고 잘 수 있는 그런 여자로 보이나 보지?!’‘내가 그렇게 더러워? 그렇게 비천하냐고?!’하영의 점차 떨리는 몸을 보며 유준은 심장이 쥐어뜯긴 듯 아팠다.“난 그런 생각 해 본 적이 없어!”하영은 문득 고개를 들더니 유준을 매섭게 쳐다보았다.“그걸 나보고 믿으라고요?!”“내가 어떻게 설명하면 되는데?”“설명?” 하영은 크게 웃었다.“아직도 그깟 설명이 쓸모 있다고 생각해요?!정주원 그 사람은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거 알고 있나요? 모른다면 당신은 또 뭐가 두려운 거죠? 설마 나에게 불리한 짓 할까 봐 두려운 거예요? 내가 마시는 것에 그의 피라도 탈까 봐?!!!”유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강하영, 진정 좀 해!”“나보고 어떻게 진정하란 거예요?! 말해봐요!” 하영은 눈물을 흘렸다.“당신은 진정했나요?! 나한테 물어봤어요? 내 말을 들어봤냐고요?!”유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그럼 나더러 어떻게 진정하라고? 네 몸에 약간의 상처라도 있으면, 또 우연히 정주영의 피와 접촉한 적이 있다면 일정한 위험이 있을 텐데! 강하영! 나도 무서워! 난 네가 이런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리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볼 수 없다고!!”“정말 어이가 없네요!!” 하영은 실망을 느끼며 유준을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