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은 머리가 어지럽고 힘이 없는 것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인나는 예준의 병실 침대 옆에 앉았다.“예준 오빠, 정유준이 오빠랑 하영이 관계를 다 알았어요.”예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괜찮아,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야.”“그럼 아이들은…….”“하영이 깨어나면 직접 얘기하라고 해야지. 캐리가 얘기한 거지?”인나의 물음에 예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캐리가 얘기하지 않았어도 정유준이 눈치챘을 거야.”예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하영이 돌봐주러 갔지?”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쫓아버릴 생각이에요?”“그럴 필요 없어. 하고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 한 사람이라도 더 하영을 돌봐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의사한테 가서 보혈약을 처방해 달라고 할게요.”“그래, 수고 해줘.”“저한테 너무 그러실 필요 없어요.”같은 시각.유준은 병원비를 지불한 뒤 중환자실로 왔고, 캐리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제부터 하영을 잘 부탁해요.”유준과 캐리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호흡기를 달고 있는 하영을 바라보았고, 유준은 남몰래 한숨을 돌렸다.“도와줄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그럴 필요 없어요!”캐리가 유준을 노려보았다.“우리 회사 일에 상관하지 마시고 하영이나 잘 돌봐줘요. 아니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겉옷을 집어 들고 병원을 나서려던 캐리가 내키지 않은지 다시 돌아왔다.“하영은 대체 그쪽이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유준은 눈을 들어 의아한 표정으로 캐리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하영이 그쪽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알아요?”캐리가 약간 떨리는 입술로 얘기했다.“5년 간 S국에 있을 때도 TV에 그쪽 얼굴만 나와도 몰래 눈물을 훔쳤어요! 술에 취하면 그쪽 얘기만 했어요. 며칠 전에도 울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제가 하영의 모든 주변사람을 대신해서 부탁하는데, 제발 우리 하영이한테 상처주지
“아닙니다. 환자와는 어떤 관계죠?”유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애들 아빠입니다.”말을 마친 유준은 속으로 스스로를 비웃었다. 그 외에 어떻게 자신을 소개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알겠습니다. 환자가 병원에 실려온 원인은 무엇이죠?”……아크로빌.세준과 세희는 불안한 마음으로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고 있었고, 세희가 울먹이며 물었다.“어떡하지? 엄마가 많이 다쳤을까?”“나도 몰라.”세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내가 삼촌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세준이 전화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신호음이 한참 울리고나서야 세준의 피곤에 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세준아.”“삼촌, 지금 어디세요?”세준이 다급하게 물었고, 예준은 애들이 전화해서 물어볼 것을 예상한 듯 솔직하게 얘기했다.“지금 병원이야.”“엄마는 어때요? 혹시 다쳤어요?”“그래, 조금 다치긴 했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아니야. 그러니까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그때 세희가 휴대폰을 뺏아들었다.“삼촌, 엄마랑 얘기하고 싶은데,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아요.”“세희야, 엄마는 지금 휴식이 필요해.”예준이 부드러운 어조로 다독이자, 세희가 의아한듯 물었다.“엄마 지금 잠들었어요?”“그래, 깨어나면 제일 먼저 너희들한테 전화하라고 할게.”“네, 삼촌도 푹 쉬세요.”“그럴게.”전화를 끊은 위에도 두 녀석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세희야!”그때 아래층에서 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세희는 얼른 슬리퍼를 신고 방을 나섰다.“주희 언니, 무슨 일이에요?”“너희들 진석 아빠가 오셨어.”“진석 아빠가 오셨대!”세희가 고개를 돌려 세준을 바라보았다.“오빠, 진적 아빠한테 엄마가 있는 곳으로 데려달라고 얘기해 볼까?”그 말에 세준의 눈이 반짝였다.“좋은 생각이야!”상의를 마친 두 녀석은 1층으로 내려가 진석을 찾았다.만나자 마자 세희는 진석의 품으로 뛰어들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부탁했다.“진석 아빠, 부탁이 있어요!”진
주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뻘쭘하게 웃으며 설명했다.“내가 게으름 좀 피우려고 그래. 올라 갈때 너희들 마실 것도 챙겨가라고 말이야.”세준과 세희는 “네.”라고 대답하고 방으로 올라갔고, 진석은 남아서 주희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주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진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부진석 씨, 그렇게 얘기하면 애들이 많이 놀라잖아요.”진석은 담담한 눈빛으로 주희를 바라보았다.“어떤 얘기요?”“위험기요!”진석은 우유를 들어 천천히 컵에 따르며 대답했다.“사실을 얘기했다고 생각해요.”“사실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애들은 걱정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잖아요!”주희가 격앙된 어조로 얘기하자, 진석은 고개를 살짝 돌려 주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모든 사람은 현식을 직시해야 하죠. 그건 아이들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언제까지 온실 안의 꽃처럼 살 수는 없으니까요.”주희는 말문이 막혔지만, 그래도 애들한테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지금처럼 밤낮으로 소식을 기다리는 것보다 나으니까.그리고 주희는 하영이 얼마나 다쳤는지 알고 있었다.우유를 전부 따른 진석이 주희를 보며 미소 띈 얼굴로 입을 열었다.“애들 곁에 있어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이상한 사람이야.’주희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어디가 이상한지 설명할 수 없었다.소백중네 집.하영이 다쳤다는 소식을 접한 송유라가 소진호더러 얼른 예준한테 전화해 보라고 재촉했다.그리고 하영의 상황을 전부 전해듣게 된 송유라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소진호가 면을 끓여 송유라 곁으로 다가갔다.“여보, 뭐라도 조금 먹어.”송유라는 손을 내려놓고 고개를 저었다.“저는 입맛이 없으니까 여보가 먹어요.”소진호는 그릇을 옆에 내려놓고 송유라 옆에 앉았다.“당신이 그렇게 자책한다고 해서 병원에 누워있는 하영이 깨어나는 건 아니잖아.”말이 끝나자마자 희원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엄마, 강하영이 사고를 당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양다인은 곁에 앉아 소백중의 팔에 팔짱을 꼈다.“제가 보러 오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많이 외로워하시잖아요. 삼촌은 회사 일로 바쁘고, 외숙모도 지금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잖아요. 희원은 요새 연애 중인지 할아버지 뵈러 올 시간이 없나 봐요.”말을 마친 양다인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저는 할아버지가 너무 안쓰러워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다들 외롭게 지내야 해요?”소백중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이 몇 번 찾아왔는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소백중은 참지 못하고 양다인에게 물었다.“네 오빠는 어디 갔어? 시간을 보니까 며칠이나 안 온 것 같은데.”양다인은 일부러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할아버지 아직 그 사실을 모르세요? 강하영이 하마터면 바위에 깔려 죽을 뻔했어요!”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소백중이 분노하며 물었다.“그래서 지금 그X한테 갔다는 얘기야?”양다인은 얼른 입을 틀어막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할아버지, 저도 모르겠어요. 오빠가 회사 일도 바쁠 수도 있잖아요.”“사람을 보내서 행적을 알아봐야겠구나!”소백중은 크게 화를 냈고, 양다인은 얼른 소백중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할아버지, 지금 화내시면 안 돼요. 할아버지를 화나게 하는 말을 해서 제가 죄송해요.”소백중은 양다인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다인아, 이 집에서 나를 생각해 주는 건 너밖에 없다는 걸 잘 안다. 양심없는 놈들이 나를 보러 오는 것도 싫어하는 것 같은데, 우리 집에서 살 필요도 없겠으니까 다 쫓아내 버려야겠다!”양다인의 눈가에 교활한 빛이 스쳤다.“할아버지, 그러면 삼촌이 화내지 않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최선을 다해 회사 일을 돕고 있잖아요.”“지금은 그냥 배은망덕한 놈이다!”소백중이 말을 이었다.“다인아, 이제 그만 놀고 할아버지가 지분을 넘겨줄 테니까, 주주로서 회사를 돌보는 게 어때?”그 말에 양다인은 깜짝 놀랐다.‘이 영감탱이가 지금
예준의 얘기에 소진호는 오랫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다음 날 아침.의사하 하영에게 몇 가지 검사를 해주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눈이 벌겋게 충혈된 유준이 의사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의사가 중환자실에서 나오자 유준이 얼른 다가가 물었다.“어떻습니까?”의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대답했다.“위험한 고비는 넘기셨지만 언제 깨어날지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네요.”“언제면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까요?”“조금 더 지켜보다가 늦어서 내일 오후면 옮길 수 있어요.”“병원을 옮기려면 언제쯤 될 수 있죠?”유준은 이곳의 의사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병원에 입원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였다.“그건 환자가 깨어난 뒤에 가능합니다. 급히 돌아가야 한다면 여기도 간병인이 있어요.”그 말에 유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제가 돌보면 되니까 간병인은 필요 없어요.”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환자분의 상황은 저희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뇌출혈이 조금 있어서 깨어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유준의 안색은 더욱 구겨졌고, 의사는 얘기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시원은 많이 지쳐 보이는 유준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가 여기 있을 테니까 조금 눈이라도 붙이세요.”“됐어. 깨어나기 전까지 아무 데도 안 가.”“여기 우리도 있으니까 괜찮아.”갑자기 예준의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고, 유준이 눈을 들자 인나가 예준을 부축해서 다가오고 있었다.“같은 말 반복하고 싶지 않아!”유준은 강경한 태도로 거부했고, 인나가 뭔가 얘기하려고 입을 떼려 할 때 예준이 가만히 있으라고 고개를 저었다.예준이 의자에 앉자 유준이 그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하영이 네 친동생이란 사실은 언제부터 알았어?”“하영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바로 내 동생이란 걸 알았어. 우리 어머니랑 많이 닮았거든. 그리고 알아봤더니 처음 찾은 증거는 양다인이 손을 써놨더라고.”정유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강하영이 동생이 아닐 거란 의심은 조금도
송유라가 수심에 잠긴 얼굴로 입을 열었다.“그래. 예준이가 우리한테 알려줬어. 다만 하영이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소진호는 정유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눈가에 불쾌한 빛을 띠고 얘기했다.“정 대표는 많이 바쁠 것 같은데 먼저 김제로 돌아가는 게 어때? 우리만으로 충분히 하영을 돌볼 수 있으니까.”유준은 시선을 돌려 소진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강하영이 깨어날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겁니다.”“정 대표가 여기 남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소진호는 약간 화난 어조로 말을 이었다.“하영이 깨어나도 정 대표 얼굴은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송유라가 얼른 소진호를 잡아당겼다.“여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내가 틀린 말 했어? 저놈이 우리 하영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본인이 제일 잘 알 거야!”소진호는 정유준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전혀 겁내지 않았다.단지 자기 조카인 하영만 눈에 보였고, 자기 조카가 다른 남자의 정부로 살아갔다는 사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유준은 입을 다물고, 소진호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여보.”송유라가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오늘은 하영이 보러 왔잖아요.”소진호는 화가 치밀어 올라 시퍼래진 얼굴로 계속해서 정유준을 비난했다.“우리가 잘 모르는 일도 있겠지만, 남자로서 끝까지 책임은 져야지! 여자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고 방치하는 게 아니라! 책임이라는 책자도 모르는 놈이 짐승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허시원은 더는 지켜볼 수 없어 얼른 나서서 한마디 했다.“소진호 대표님, 저희 대표님도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예전에 몇 번이고 강하영 씨를 도와…….”“허시원!”유준이 날카로운 어조로 시원의 말을 자르고 소진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이전에 범한 실수는 앞으로 어떻게든 갚을 생각입니다.”소진호는 코웃음을 쳤다.“그럴 필요 없어!”“여보!”송유라가 엄숙하게 소진호를 불렀다.“잠시 저랑 얘기 좀 해요!”소진호는 눈에 힘을 줘서 유준을 노려보고 송
양다인은 슬리퍼를 갈아 신으며 생각했다.‘주원 씨 혹시 MK로 들어가려는 건가?’양다인은 주원이 통화를 끝내고 나서야 거실로 다가가 달콤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주원 씨, 저 왔어요.”주원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웃으며 반겼다.“벌써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에요?”양다인은 주원의 곁에 앉았다.“정희민이 지금 무균실에 있어서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으니 그냥 물어보고 왔죠.”“좀 어때요?”“괜찮은 것 같았어요.”주원의 물음에 양다인은 대충 대답하고 주제를 바꿨다.“주원 씨는 MK로 돌아갈 생각 없어요?”주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돌아가고 싶긴 하지만, 내가 가면 누가 환영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주원 씨, 그건 너무 소극적이잖아요.”양다인이 말을 이었다.“원래 주원 씨 회사인데 정유준이 끼어들었을 뿐이에요.”주원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그 말은 정유준이 내가 회사로 돌아가는 걸 동의하는 방법이 있다는 뜻인가요?”양다인의 주원의 품이 기대며 말했다.“주원 씨만 원하면 도와줄 수 있어요.”주원은 양다인의 어깨를 감싸며 입을 열었다.“다인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양다인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얘기했다.“사람이라면 누구나 약점이 있기 마련이니까요.”“정희민으로 정유준을 협박하라는 말인가요?”주원이 물었다.“그건 다인 씨가 자폭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 바보.”양다인은 피식 웃었다.‘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나를 들어낼 리 없잖아.’정유준의 약점은 애들 외에 하영도 있었다. 그녀에게 일이 생기자마자 유준이 그 먼 곳까지 날아간 것을 보면 하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으니까.양다인은 고개를 들어 주원을 바라보았다.“주원 씨, 돌아가고 싶은지 아닌지만 얘기해줘요.”주원은 양다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물론 돌아가고 싶죠.”주원은 유준이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제가 만약 주원 씨가 MK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면, 앞
“하영아.”유준의 입술이 열렸다.“언제 일어날 거야? 희민이가 너 기다리고 있어…….”유준은 말을 하며 면봉에 물을 묻혀 하영의 갈라진 입술을 닦아 주었다.“앞으로 다시는 오해하지 않고, 네 얘기부터 잘 들을게.”유준의 목소리는 점점 울먹임이 섞이기 시작했다.“네가 깨어난다면 말이야.”“예전에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이제야 알았어. 계속 의심을 했던 건 결국 네가 내 곁을 떠날까 봐 겁이 나서 그런 거야. 소예준과 결혼한 사이라고 오해했을 때 나 정말 힘들었어. 그래서 다시는 너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란 말을 했던 거야. 우리 예전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너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모든 걸 너한테 맡기고 싶어…….”뜨거운 눈물이 하영의 손등 위로 떨어졌고, 그 순간 하영의 손이 미세하게 움직였지만, 유준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하고 싶은 말을 마친 유준은 다시 하영의 곁에 앉아 있었고, 시원이 돌아와 주주들이 영상회의를 해야 한다고 얘기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준은 병실을 나서기 전에 하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남겼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원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제삼자인 내가 봐도 대표님이 얼마나 하영 씨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데, 왜 하영 씨는 모를까?’아크로빌.진석은 9시까지 애들이랑 놀아주다가 집을 떠났고, 아래층에서 시동이 걸리는 소리에 세준과 세희는 눈을 번쩍 떴다.두 사람은 창가에 서서 진석의 차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빠르게 방을 나와서 주희를 찾으러 갔다.3층.방에 앉아 문자를 보내던 주희는 갑자기 쳐들어온 두 녀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주희 언니!”세희가 주희 곁으로 다가와 다급하게 물었다.“언니가 저랑 오빠를 데리고 엄마 보러 가면 안 돼요?”세준도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주희를 바라보자, 두 녀석의 단순한 집요함에 두 손을 들었다.“왜 진석 씨한테 얘기하지 않아?”세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진석 아빠는 우리가 엄마 보러 가는 걸 동의하지 않아요.”세희도 뾰로통한 표정으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