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의 말에 양다인은 그제야 안심하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고마워요, 주원 씨. 그럼 먼저 집에 돌아갈게요.”양다인은 세수를 하고 명품 그랜드 캐슬을 떠났다.소백중네 집에 도착한 양다인은 마침 집을 나설 준비를 하던 희원과 마주쳤다.양다인은 희원의 앞을 가로막았다.“지금 그쪽은 어떻게 됐어?”희원은 양다인을 힐끗 쳐다보고 답했다.“유준 오빠가 골수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얘기해 줬잖아.”그러자 양다인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어제는 나한테 문자 보내지 않았어!”“문자가 없으면 별다른 상황이 없다는 뜻이잖아. 매일 문자 보내는 게 귀찮지 않아?”양다인은 희원한테 바짝 다가갔다.“나랑 얘기할 때 태도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야!”희원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았다.“감시하지 말까? 그런 게 아니라면 비켜!”“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양다인은 말을 마친 뒤 구두를 또각거리며 별장으로 들어갔고, 희원도 화를 내며 병원으로 향했다.희원이 금방 떠났을 때, 마침 서민희가 소백중을 부축해 뒷마당에서 정원으로 걸어나왔다.그리고 희원의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소백중이 미간을 찌푸렸다.“희원이는 요즘 왜 자꾸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거야? 혹시 취직했어?”“아버님, 희원이 아직 출근 안 해요. 아마 무슨 일이라도 있겠죠.”“요즘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데. 절대 아무데나 돌아다니지 않게 잘 지켜봐.”서민희가 웃으며 답했다.“아버님, 희원이는 제가 잘 지켜 볼게요. 다만 다인이 나이도 이제 어리지 않은데 아버님이 잘 돌봐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서민희는 소백중을 일깨워줬다.“그래, 네 말이 맞아. 다인이 어제 또 집에 안 들어왔지?”“아버님,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제대로 얘기하면 되죠.”소백중은 미간을 찌푸렸다.‘요즘 대체 뭐하러 다니는지 따라가 확인해 봐야겠어!’병원.유준이 희민을 데리고 수액을 맞고 있을 때 현욱이 병실로 들어섰다.유준은 현욱을 한 번 쳐다보고 희민의 손을 이불 안에 넣었다.“최대한 좀
“어떻게 할 셈이야?”현욱은 어깨를 으쓱했다.“그것까지는 신경쓰지 마. 아무튼 결과만 기다리고 있어.”유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만약 양다인한테 골수가 있다면 가격부터 흥정해 봐.”“어떻게 얘기할지 나도 잘 아니까, 안심하고 나한테 맡겨 봐.”“그래.”오후.현욱은 양다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두 사람은 병원 앞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선글라스를 끼고 카페에 들어선 양다인은 현욱을 발견하고 다가오기 시작했다.현욱은 양다인을 보고 밖에 있는 날씨를 확인했다.“흐린 날씨에 왜 선글라스를 꼈어요?”그러자 양다인은 자리에 앉으며 우울한 말투로 답했다.“요즘 희민이 일 때문에 잠을 좀 설쳤거든요.”현욱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혐오감이 일었다.‘그대 희민을 때리고 욕할 때도 죄책감 하나 없어 보였는데,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려고?’현욱은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양다인을 살폈다.“말 돌리지 않을게요. 혹시 희민이와 일치한 골수를 갖고 있습니까?”양다인은 고개를 들어 선글라스를 통해 현욱을 바라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가격 얘기해 봐요.”현욱은 양다인과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돈은 필요없어요!”양다인은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그저 희민이를 만나고 싶어요. 그 아이가 건강해질 때까지 옆에서 보살펴 주고 싶어요.”현욱은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 희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잊은 건 아니죠?”갑자기 눈물이 양다인의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녀는 티슈를 꺼내 눈물을 닦았다.“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그래도 어려서부터 제 손으로 키운 아이잖아요. 아무리 혈연 관계가 없다고 해도 모자지간으로 지내왔는데 제발 한 번만 희미이를 만나게 해주세요.”현욱은 양다인의 이런 태도에 반감을 느꼈다.‘예전에는 뭐 하다가 이제와서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거야?’“양다인 씨.”현욱은 인내심 있게 말을 이었다.“지금 한 가지 선택밖에 없어요. 바로 가격을 정하고
현욱의 시선이 인나에게 향했고, 인나도 마침 몸을 돌려 현욱을 발견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인나는 또 앞에 있는 양다인도 발견했다.그러자 인나의 눈가에 짜증이 일었다.현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다인을 내버려둔 채 인나를 향해 걸어갔다.양다인도 궁금한 마음에 몸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니, 인나와 그 뒤를 급히 쫓아 카페를 나서는 현욱을 보고 비웃음을 날렸다.카페 문밖.현욱은 빠른 걸음으로 인나를 쫓아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인나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 혹시 병원에 가는 길이에요? 어디 아파요?”인나는 현욱의 손을 힘껏 뿌리치고 날카롭게 소리쳤다.“나한테서 떨어져요! 그쪽 얼굴만 보면 토하고 싶으니까!”현욱이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뭘 어쨌는데요? 지난번 일은 이미 지난지 한참인데 아직도 나 용서할 수 없어요?”“용서?”인나는 피식 우승며 카페에 앉아 있는 인나를 가리켰다“지금 양다인이랑 함께 앉아 있으면서 용서를 바라는 거예요?”현욱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양다인을 만난 건 인나 씨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 바로…….”현욱은 반쯤 얘기를 하다말고 멈칫했다.유준과 희민의 병에 대해 얘기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인나는 하영의 절친이기 때무에 더욱 얘기할 수 없었다.현욱이 말이 없자 인나는 실소를 터뜨렸다.“왜요? 변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요?”현욱은 몸과 마음이 극도록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아무튼 인나 씨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나는 유준을 도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양다인을 만난 거예요.”“양다인한테 묻고 싶은게 있다고요?”인나는 크게 웃었다.“내가 그런 헛소리를 믿을 것 같아요? 정유준이 알아내지 못 하는 일이 뭐가 있어서 현욱 씨가 도와서 물어봐요? 내가 바본 줄 알아요?”현욱은 인나의 말에 다시 말문이 막혔다.“지금은 얘기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예요.”“나중에 완벽한 거짓말을 꾸며낸 후에 다시 설명할 생각인가요?”“…….”인나가 비
“양다인이랑?”하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확실해?”“정말 확실하다니까, 왜 내 말을 못 믿어?”인나는 속상한 마음에 더욱 흐느끼자 하영이 위로하기 시작했다.“믿어. 하지만 현욱 씨와 양다인이 함께 뭔가를 꾸미는 건 말이 안 돼…….”예전에 양다인과 정유준이 함께 있을 때 현욱이 하영을 도와 얘기해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양다인이랑 함께 있을 수 있지?’인나는 울먹이며 얘기했다.“나는 지금 내가 본 것만 믿어.”하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돌렸다.“오늘 병원엔 다녀왔어?”“바로 병원에 갔을 때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고 카페에 갔다가 마주친 거야. 다시 가고 싶지 않아.”“그럼 다음에 나랑 같이 가자.”“그래, 나 너희 집에 가서 놀다가 밥이나 얻어먹고 싶어.”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현관 비밀 번호도 알고 있으면서 그냥 오면 되잖아. 굳이 얘기할 필요 있어?”“나 환영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얘기한 거야.”그러다가 인나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참, 너 옆에 있던 별장 아직 안 팔았어?”“아직, 내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아.”“내가 돈만 있으면 사는 건데. 그러면 이웃이 돼서 매일 주희 씨가 해준 밥을 먹을 수 있잖아.”“여기 없어도 매일 밥 먹으러 오면서 뭘…….”연세 병원.현욱은 병원으로 돌아와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유준의 곁에 털썩 앉았다.“유준아, 나 망했어.”현욱이 절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자 유준이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그를 힐끗 쳐다봤다.“언제 안 망한 적 있었어?”현욱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네가 그러고도 친구야? 이번에는 정말 망했단 말이야!”“얘기해 봐.”유준이 낮은 소리로 얘기하자 현욱이 바로 몸을 곧게 폈다.“나 양다인이랑 얘기하고 있을 때 인나 씨 만났어! 그런데 나랑 양다인 사이를 의심하잖아! 웃기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희민이 일은 비밀이니까 왜 양다인이랑 만났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거야!”그
유준이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또 너를 다치게 할까 봐 겁나지 않아?”희민은 고개를 저으며 유준을 향해 웃어보였다.“아빠가 저 지켜줄 거잖아요.”유준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희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빠한테 이틀만 시간을 줘. 만약 그래도 찾을 수 없으면 양다인을 부를게, 괜찮지?”희민은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말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민은 눈을 감고 또 잠에 빠졌다.머리를 쓰다듬던 유준이 천천히 손을 거두고 손바닥에 빠진 머리카락을 본 순간, 누군가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그동안 희민의 몸이 아픈 것만 생각하다가 머리가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유준은 아픈 가슴을 꾹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병실 밖으로 나간 유준은 경호원에게 헤어디자이너를 불러오라고 분부했다.아크로빌.하영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희에게 음식을 많이 차려달라고 당부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가 낯선 번호인 것을 확인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네, 누구시죠?”하영이 묻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저예요, 송유라.”하영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송유라 씨, 오늘 주말이라 디자인은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송유라는 스피커 폰으로 돌리고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소진호를 힐끗 바라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다음 주면 나올 수 있을까요?”하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디자인 팀에 급하다고 얘기하면 이틀 안에 나올 수 있어요. 참 송유라 씨,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려운 아이들이 있는 곳이 구체적인 위치가 어디죠?”“F시에 있는 산골 마을이에요.”유라가 대답했다.“네, 다음 주에 보내드릴게요. 사이즈 별로 전부 만들어 놓으라고 할게요.”“갑자기 부탁한 주문이라 조금 부담스럽죠? 듣자니 강 대표님 회사에 요즘 주문이 꽉 찼다고 들었어요.”“솔직히 말씀드리면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크게 영향은 없어요.”“도와줘서 고마워요. 혹시 내일 저녁에 시간 괜찮을까요? 저희 남편이랑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요.
“하영아, 절대 가면 안 돼!”인나가 말을 이었다.“정주원 같은 인간은 너한테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인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희가 얼음 주머니를 가지고 들어왔다.주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얼음 주머니를 인나에게 건넸고, 인나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주머니를 받았다.“고마워요.”“아닙니다!”주희가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섰고, 하영은 몸을 일으켜 인나 곁으로 다가가 얼음 주머니로 인나의 눈에 올려줬다.“조심할 테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하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얘기하자, 인나는 아예 하영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나 괜찮아, 며칠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하영은 한숨을 내쉬더니 인나에게 물었다.“너 혹시 F시에 있는 산간 지역 알아?”인나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모르지, 왜?”“좋은 일 좀 하려고, 송유라라고 하는 여자가 찾아와서 산간 지역에 있는 어린아이들한테 옷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거든. 나도 생활용품들을 사 가려고.”인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사 가겠다고? 너 혼자서? 언제 가는데?”하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옷은 10흘 정도면 나올 것 같으니까, 완성되면 가 보려고.”“그럼 다음 주네?”“응.”인나의 물음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위험하지 않아? 그런 산간 지역에 있는 길은 전부 험하다고 들었거든.”“그곳에 있는 아이들도 겁내지 않은데 내가 겁낼 게 뭐가 있어? 게다가 나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하영이 안심하라는 듯 얘기하자 인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팀을 꾸려서 가려고?”“맞아, 물건도 적지 않으니 내가 따라가야 안심할 수 있어.”“그래. 그렇게 결정했다면 더 말리지 않을게, 안전이 제일이야. 알지?”월요일.하영은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해 회의를 열어 산간 지역에 있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과 자료들을 토론했다.디자인팀에 있어서 아동복은 가장 디자인하기 쉬웠다.점심이 되자 디자인팀에서 10장 정도의 디자인을 하영
‘안색도 안 좋고, 누렇게 변한 얼굴을 보면 엄마가 많이 놀라시겠네.’희민은 손을 내리고 세면대에 기댔다.‘대체 언제면 완치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골수 이식을 받을 수 있지?’희민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매일 너무 힘들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약물 치료로 인해 아무 것도 넘기지 못 하고 저녁에는 의식마저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그래도 유준이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희민의 눈에 뿌옇게 물안개가 차오르고 손을 들어 화장실 문을 열었다.문을 조금 열었을 때 의사 선생님의 말이 들려왔다.“대표님, 백혈구 수치가 많이 올랐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골수 이식만 하면 금방 나을 겁니다.”“골수를 이식하고 약물 치료는 계속 받아야 합니까?”“아니요. 하지만 골수 이식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과정이 많이 고통스럽고 꼭 완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거든요.”유준은 침묵을 지켰다.“네, 일단 나가보세요.”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병실을 나섰고, 희민은 벽에 기댄 채 언제 나갈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지금은 유준의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이미 바쁜데, 희민 때문에 더욱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한참 뒤에 희민은 휴대폰 벨소리를 듣게 되었다. 곧이어 희민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목소리가 전해졌다.“유준 씨, 드디어 나한테 전화를 주네요.”유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만나서 얘기해.”“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만나는 건 어때요?”“좋아, 내가 위치 보내줄게.”“네, 기다릴게요.”희민은 고통스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는 그 여자가 골수를 내놓을 때까지 꾹 참아야 했다.건강해진 몸으로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으니까.저녁.송유라가 레스토랑 위치를 보내왔다. 하영은 애들을 집에 데려다준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20분 뒤 하영은 레스토랑 앞에 주차를 마치고 들어가려 할 때 뒤에서 양다
하영은 어깨 위에 올려진 양다인의 손을 뿌리쳤다.“여기서 가식 떨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알아듣게 얘기해!”“내가 할 얘기가 뭐가 있겠어?”양다인은 손을 거두고 하영에게 뿌리쳐져 얼얼한 손등을 매만졌다.“그냥 정유준 씨는 평생 내 남자라고 얘기해 주는 거야. 너는 유준 씨뿐만 아니라 주원 씨도 얻지 못할 거야!”하영은 피식 웃었다.“사랑이 참 넘치시네. 넌 아무나 올라탈 수 있는 대중교통이냐?”그 말에 양다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강하영, 나한테 예의를 갖춰. 아니면 네 아들도 잘 지내지 못할 거니까!”“맞는 게 겁나지 않으면 어디 마음대로 해 봐.”양다인의 눈가에 공포감이 스치더니 몸을 곧게 펴고 하영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너랑 쓸데없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말을 마친 양다인은 그대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영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하영은 정유준이 왜 또 양다인을 만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희민이가 받은 고통이 아직도 부족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만약 양다인이랑 다시 만날 생각이면 아들을 내게 돌려줘야지!’하영은 화를 꾹 억누르고 몇 번 심호흡을 한 뒤에야 레스토랑에 들어섰다.3012 룸.하영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룸에는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다.하영은 송유라를 한 번 바라보고 곁에 있는 남자 얼굴에 시선을 돌렸는데, 어딘지 소예준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온화해 보이는 겉모습은 친해지기 쉬운 사람처럼 보였다.송유라는 하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강하영 대표님, 오셨네요.”하영도 웃으며 대답했다.“오래 기다리셨죠?”문을 닫고 하영은 유라 곁에 앉았다.“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송유라는 우아한 동작으로 하영에게 물을 따라주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추가 비용을 더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리가 고맙죠. 소개할게요, 곁에 있는 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하영은 남자를 바라보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