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인이랑?”하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확실해?”“정말 확실하다니까, 왜 내 말을 못 믿어?”인나는 속상한 마음에 더욱 흐느끼자 하영이 위로하기 시작했다.“믿어. 하지만 현욱 씨와 양다인이 함께 뭔가를 꾸미는 건 말이 안 돼…….”예전에 양다인과 정유준이 함께 있을 때 현욱이 하영을 도와 얘기해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양다인이랑 함께 있을 수 있지?’인나는 울먹이며 얘기했다.“나는 지금 내가 본 것만 믿어.”하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돌렸다.“오늘 병원엔 다녀왔어?”“바로 병원에 갔을 때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고 카페에 갔다가 마주친 거야. 다시 가고 싶지 않아.”“그럼 다음에 나랑 같이 가자.”“그래, 나 너희 집에 가서 놀다가 밥이나 얻어먹고 싶어.”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현관 비밀 번호도 알고 있으면서 그냥 오면 되잖아. 굳이 얘기할 필요 있어?”“나 환영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얘기한 거야.”그러다가 인나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참, 너 옆에 있던 별장 아직 안 팔았어?”“아직, 내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아.”“내가 돈만 있으면 사는 건데. 그러면 이웃이 돼서 매일 주희 씨가 해준 밥을 먹을 수 있잖아.”“여기 없어도 매일 밥 먹으러 오면서 뭘…….”연세 병원.현욱은 병원으로 돌아와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유준의 곁에 털썩 앉았다.“유준아, 나 망했어.”현욱이 절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자 유준이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그를 힐끗 쳐다봤다.“언제 안 망한 적 있었어?”현욱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네가 그러고도 친구야? 이번에는 정말 망했단 말이야!”“얘기해 봐.”유준이 낮은 소리로 얘기하자 현욱이 바로 몸을 곧게 폈다.“나 양다인이랑 얘기하고 있을 때 인나 씨 만났어! 그런데 나랑 양다인 사이를 의심하잖아! 웃기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희민이 일은 비밀이니까 왜 양다인이랑 만났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거야!”그
유준이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또 너를 다치게 할까 봐 겁나지 않아?”희민은 고개를 저으며 유준을 향해 웃어보였다.“아빠가 저 지켜줄 거잖아요.”유준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희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빠한테 이틀만 시간을 줘. 만약 그래도 찾을 수 없으면 양다인을 부를게, 괜찮지?”희민은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말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민은 눈을 감고 또 잠에 빠졌다.머리를 쓰다듬던 유준이 천천히 손을 거두고 손바닥에 빠진 머리카락을 본 순간, 누군가 가슴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그동안 희민의 몸이 아픈 것만 생각하다가 머리가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유준은 아픈 가슴을 꾹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병실 밖으로 나간 유준은 경호원에게 헤어디자이너를 불러오라고 분부했다.아크로빌.하영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희에게 음식을 많이 차려달라고 당부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가 낯선 번호인 것을 확인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네, 누구시죠?”하영이 묻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저예요, 송유라.”하영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송유라 씨, 오늘 주말이라 디자인은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송유라는 스피커 폰으로 돌리고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소진호를 힐끗 바라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다음 주면 나올 수 있을까요?”하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디자인 팀에 급하다고 얘기하면 이틀 안에 나올 수 있어요. 참 송유라 씨,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려운 아이들이 있는 곳이 구체적인 위치가 어디죠?”“F시에 있는 산골 마을이에요.”유라가 대답했다.“네, 다음 주에 보내드릴게요. 사이즈 별로 전부 만들어 놓으라고 할게요.”“갑자기 부탁한 주문이라 조금 부담스럽죠? 듣자니 강 대표님 회사에 요즘 주문이 꽉 찼다고 들었어요.”“솔직히 말씀드리면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크게 영향은 없어요.”“도와줘서 고마워요. 혹시 내일 저녁에 시간 괜찮을까요? 저희 남편이랑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요.
“하영아, 절대 가면 안 돼!”인나가 말을 이었다.“정주원 같은 인간은 너한테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인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희가 얼음 주머니를 가지고 들어왔다.주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얼음 주머니를 인나에게 건넸고, 인나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주머니를 받았다.“고마워요.”“아닙니다!”주희가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섰고, 하영은 몸을 일으켜 인나 곁으로 다가가 얼음 주머니로 인나의 눈에 올려줬다.“조심할 테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하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얘기하자, 인나는 아예 하영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나 괜찮아, 며칠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하영은 한숨을 내쉬더니 인나에게 물었다.“너 혹시 F시에 있는 산간 지역 알아?”인나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모르지, 왜?”“좋은 일 좀 하려고, 송유라라고 하는 여자가 찾아와서 산간 지역에 있는 어린아이들한테 옷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거든. 나도 생활용품들을 사 가려고.”인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사 가겠다고? 너 혼자서? 언제 가는데?”하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옷은 10흘 정도면 나올 것 같으니까, 완성되면 가 보려고.”“그럼 다음 주네?”“응.”인나의 물음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위험하지 않아? 그런 산간 지역에 있는 길은 전부 험하다고 들었거든.”“그곳에 있는 아이들도 겁내지 않은데 내가 겁낼 게 뭐가 있어? 게다가 나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하영이 안심하라는 듯 얘기하자 인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팀을 꾸려서 가려고?”“맞아, 물건도 적지 않으니 내가 따라가야 안심할 수 있어.”“그래. 그렇게 결정했다면 더 말리지 않을게, 안전이 제일이야. 알지?”월요일.하영은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해 회의를 열어 산간 지역에 있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과 자료들을 토론했다.디자인팀에 있어서 아동복은 가장 디자인하기 쉬웠다.점심이 되자 디자인팀에서 10장 정도의 디자인을 하영
‘안색도 안 좋고, 누렇게 변한 얼굴을 보면 엄마가 많이 놀라시겠네.’희민은 손을 내리고 세면대에 기댔다.‘대체 언제면 완치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골수 이식을 받을 수 있지?’희민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매일 너무 힘들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약물 치료로 인해 아무 것도 넘기지 못 하고 저녁에는 의식마저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그래도 유준이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희민의 눈에 뿌옇게 물안개가 차오르고 손을 들어 화장실 문을 열었다.문을 조금 열었을 때 의사 선생님의 말이 들려왔다.“대표님, 백혈구 수치가 많이 올랐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골수 이식만 하면 금방 나을 겁니다.”“골수를 이식하고 약물 치료는 계속 받아야 합니까?”“아니요. 하지만 골수 이식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과정이 많이 고통스럽고 꼭 완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거든요.”유준은 침묵을 지켰다.“네, 일단 나가보세요.”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병실을 나섰고, 희민은 벽에 기댄 채 언제 나갈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지금은 유준의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이미 바쁜데, 희민 때문에 더욱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한참 뒤에 희민은 휴대폰 벨소리를 듣게 되었다. 곧이어 희민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목소리가 전해졌다.“유준 씨, 드디어 나한테 전화를 주네요.”유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만나서 얘기해.”“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만나는 건 어때요?”“좋아, 내가 위치 보내줄게.”“네, 기다릴게요.”희민은 고통스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는 그 여자가 골수를 내놓을 때까지 꾹 참아야 했다.건강해진 몸으로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으니까.저녁.송유라가 레스토랑 위치를 보내왔다. 하영은 애들을 집에 데려다준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20분 뒤 하영은 레스토랑 앞에 주차를 마치고 들어가려 할 때 뒤에서 양다
하영은 어깨 위에 올려진 양다인의 손을 뿌리쳤다.“여기서 가식 떨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알아듣게 얘기해!”“내가 할 얘기가 뭐가 있겠어?”양다인은 손을 거두고 하영에게 뿌리쳐져 얼얼한 손등을 매만졌다.“그냥 정유준 씨는 평생 내 남자라고 얘기해 주는 거야. 너는 유준 씨뿐만 아니라 주원 씨도 얻지 못할 거야!”하영은 피식 웃었다.“사랑이 참 넘치시네. 넌 아무나 올라탈 수 있는 대중교통이냐?”그 말에 양다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강하영, 나한테 예의를 갖춰. 아니면 네 아들도 잘 지내지 못할 거니까!”“맞는 게 겁나지 않으면 어디 마음대로 해 봐.”양다인의 눈가에 공포감이 스치더니 몸을 곧게 펴고 하영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너랑 쓸데없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말을 마친 양다인은 그대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영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하영은 정유준이 왜 또 양다인을 만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희민이가 받은 고통이 아직도 부족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만약 양다인이랑 다시 만날 생각이면 아들을 내게 돌려줘야지!’하영은 화를 꾹 억누르고 몇 번 심호흡을 한 뒤에야 레스토랑에 들어섰다.3012 룸.하영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룸에는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다.하영은 송유라를 한 번 바라보고 곁에 있는 남자 얼굴에 시선을 돌렸는데, 어딘지 소예준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온화해 보이는 겉모습은 친해지기 쉬운 사람처럼 보였다.송유라는 하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강하영 대표님, 오셨네요.”하영도 웃으며 대답했다.“오래 기다리셨죠?”문을 닫고 하영은 유라 곁에 앉았다.“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송유라는 우아한 동작으로 하영에게 물을 따라주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추가 비용을 더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리가 고맙죠. 소개할게요, 곁에 있는 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하영은 남자를 바라보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정유준의 눈이 가늘어졌다.“그게 꼭 내 아이라는 보장은 없잖아. 나랑 만날 때 다른 남자랑 관계를 가졌던 거 잊은 건 아니지?”유준의 말에 양다인은 얼굴이 굳어진 채 말까지 더듬었다.“유준 씨, 미, 미안해요.”“사과받으러 온 거 아니야.”유준의 미간에 약간 짜증이 묻어났다.“네 요구 들어줄게.”그 말에 양다인은 두 눈을 빛냈다.“정말요? 정말 내가 희민이를 돌봐도 돼요?”유준은 계속 양다인을 살폈다.‘대체 원하는 게 뭘까?’유준은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변호사를 통해 계약서 작성해서 보낼게. 희민이가 완쾌되는 동안 네가 약간이라도 불리한 행동을 한다면, 내 손으로 직접 너를 경찰서로 끌고 갈 테니까!”양다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절대 그럴 일 없어요. 정말이에요…….”그러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나 정말 후회 많이 했으니까, 이번에 반드시 제대로 희민이를 돌볼게요.”양다인의 그런 모습에도 유준은 그저 혐오감만 느꼈다.하지만 지금 유준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양다인이 유일한 골수를 내주지 않을 거니까.“나도 조건이 있어요.”양다인은 눈물을 훔치며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희민이가 완쾌될 때까지 나 쫓아내지 마세요.”“난원에 들어올 생각이야?”유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양다인은 입술을 깨물었다.“아니에요. 유준 씨도 원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그저 희민이가 완쾌될 때까지만 나 쫓아내지 않으면 안 돼요?”양다인이 알아본 결과 골수 이식 후 적어도 한 달 동안은 무균실에 머물러야 했다.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빨리 퇴원할 수 있지만, 퇴원 후에도 약물 치료를 받게 되면 적어도 반년은 걸릴 것이다.반년 동안 성심성의껏 희민을 보살피면 유준의 신뢰를 얻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그때 주원 씨를 도와 정유준을 쓰러뜨리면 사모님 자리는 바로 내 것이 되겠지.’유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계약서에 사인하면 1년 뒤에는 반드시 희민이 곁을 떠나야 할 거야. 내가 변호사한테 계약
“내가 언제 양다인이랑 재결합한다고 했어?”유준이 불쾌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두 사람 일엔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저 양다인은 내 아들을 학대한 여자라는 것만 알고 있으니까요!”유준이 싸늘한 어조로 설명했다.“나는 양다인이랑 재결합할 마음 없어. 마찬가지로 내 아들을 너한테 보내는 일도 없을 거야.”“밥까지 같이 먹는 사이인데 그래도 만나는 게 아니라고?”양다인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꼭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야 만나는 사이인가요? 나는 정유준 씨처럼 마음이 넓은 편이 아니라서, 내 아들을 학대한 인간과는 같이 밥도 먹을 수 없거든요!”“사정이 있어서 만난 거야.”“그럼 무슨 사정인지 얘기해 봐요.”하영의 말에 유준은 말문이 막혔다.유준은 괜히 하영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얘기해 줄 수 없었다.하영은 유준이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 비웃음을 날렸다.“오늘 확실하게 얘기할게요. 만약 양다인과 다시 만날 생각이라면 내 아들을 내게 보내주세요! 안 그러면 변호사를 찾아 소송 걸어서 양육권을 되찾을 거예요!”말을 마친 하영은 화를 내며 유준을 피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는 순간 유준은 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그 순간 유준의 눈가에 의아함이 스쳤다.‘소씨네 사람들이 왜 강하영과 밥을 먹는 거지? 설마 소예준과 결혼이라도 하는 건가? 그런데 할아버지와 소예준은 왜 자리에 없지?’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영은 두 사람을 차가 있는 곳까지 배웅했다. 떠나기 전에 송유라는 하영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앞으로 하영이라고 불러도 괜찮죠?”송유라가 웃으며 물었다.“우리 딸이랑 나이가 비슷해서 그래요.”그러자 하영이 웃으며 답했다.“물론이죠. 앞으로 말씀 편하게 하세요.”하영은 정말 상관없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소통을 통해 어쩐지 그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영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하영의 말에 송유라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었다.“그래, 그럼 우리
변호사의 두 마디만으로 하영의 마음은 반쯤 무거워졌다.“다른 방법은 없을까요?”하영이 마음이 내키지 않은지 다시 물었다.“방법 정말 하나도 없을까요?”“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얘기해 보세요.”“정유준 대표님과 결혼해서 아이를 학대하는 증거를 확보하시면 됩니다.”“…….”정유준이 아이를 학대할 가능성은 없다. 그저 무뚝뚝한 태도로 아이에게 엄격하게 구는 게 전부일 거다.‘그리고 정유준과 결혼하라고?’하영이 만 번을 양보해서 결혼하기로 마음먹어도, 정유준과 정창만이 동의할 리 없었다.어떤 방법이든 선택하기 어려웠던 하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주 변호사님.”하영이 피곤한 언조로 입을 열었다.“일단 생각해 볼게요. 고마워요.”“아닙니다.”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하영은 이 문제를 나중에 처리하기로 했다.그리고 부진석의 연락처를 찾아 톡을 보냈다.[자? 오늘은 좀 어때? 너무 바빠서 병문안 갈 시간이 없었어.]곧 진석에게서 답장이 왔다.[이제 많이 괜찮으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그럼 다행이고, 내일 죽이라도 끓여서 가져갈게.][괜히 번거롭게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 병원에도 밥 잘 나오니까 며칠 뒤에 나 퇴원하면 데리러 와줘.]진석이 거듭 거절하자 하영도 어쩔 수 없었다.같은 시각, 소씨 집안.집에 돌아온 양다인은 소백중이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시청하는 것을 보고,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방으로 올라갔다.소백중이 막 입을 열어 양다인을 부르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계단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그 모습에 소백중은 미간을 찌푸렸다.‘저 아이가 요즘 왜 이렇게 허둥대는 거지? 말을 붙이려 해도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도 않고.’소백중은 도우미에게 티비를 끄라고 얘기한 뒤, 양다인을 찾아 얘기라도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다.그때 방으로 돌아온 양다인은 제일 먼저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뒤에야 주원이 전화를 받았고, 양다인은 약간 투정 부리듯 입을 열었다.“전 또 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