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색도 안 좋고, 누렇게 변한 얼굴을 보면 엄마가 많이 놀라시겠네.’희민은 손을 내리고 세면대에 기댔다.‘대체 언제면 완치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골수 이식을 받을 수 있지?’희민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매일 너무 힘들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약물 치료로 인해 아무 것도 넘기지 못 하고 저녁에는 의식마저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그래도 유준이 걱정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너무 힘들었다.희민의 눈에 뿌옇게 물안개가 차오르고 손을 들어 화장실 문을 열었다.문을 조금 열었을 때 의사 선생님의 말이 들려왔다.“대표님, 백혈구 수치가 많이 올랐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골수 이식만 하면 금방 나을 겁니다.”“골수를 이식하고 약물 치료는 계속 받아야 합니까?”“아니요. 하지만 골수 이식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과정이 많이 고통스럽고 꼭 완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거든요.”유준은 침묵을 지켰다.“네, 일단 나가보세요.”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병실을 나섰고, 희민은 벽에 기댄 채 언제 나갈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지금은 유준의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이미 바쁜데, 희민 때문에 더욱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한참 뒤에 희민은 휴대폰 벨소리를 듣게 되었다. 곧이어 희민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목소리가 전해졌다.“유준 씨, 드디어 나한테 전화를 주네요.”유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만나서 얘기해.”“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만나는 건 어때요?”“좋아, 내가 위치 보내줄게.”“네, 기다릴게요.”희민은 고통스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는 그 여자가 골수를 내놓을 때까지 꾹 참아야 했다.건강해진 몸으로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으니까.저녁.송유라가 레스토랑 위치를 보내왔다. 하영은 애들을 집에 데려다준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20분 뒤 하영은 레스토랑 앞에 주차를 마치고 들어가려 할 때 뒤에서 양다
하영은 어깨 위에 올려진 양다인의 손을 뿌리쳤다.“여기서 가식 떨지 말고 할 말 있으면 알아듣게 얘기해!”“내가 할 얘기가 뭐가 있겠어?”양다인은 손을 거두고 하영에게 뿌리쳐져 얼얼한 손등을 매만졌다.“그냥 정유준 씨는 평생 내 남자라고 얘기해 주는 거야. 너는 유준 씨뿐만 아니라 주원 씨도 얻지 못할 거야!”하영은 피식 웃었다.“사랑이 참 넘치시네. 넌 아무나 올라탈 수 있는 대중교통이냐?”그 말에 양다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강하영, 나한테 예의를 갖춰. 아니면 네 아들도 잘 지내지 못할 거니까!”“맞는 게 겁나지 않으면 어디 마음대로 해 봐.”양다인의 눈가에 공포감이 스치더니 몸을 곧게 펴고 하영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너랑 쓸데없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말을 마친 양다인은 그대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영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하영은 정유준이 왜 또 양다인을 만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희민이가 받은 고통이 아직도 부족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만약 양다인이랑 다시 만날 생각이면 아들을 내게 돌려줘야지!’하영은 화를 꾹 억누르고 몇 번 심호흡을 한 뒤에야 레스토랑에 들어섰다.3012 룸.하영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룸에는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다.하영은 송유라를 한 번 바라보고 곁에 있는 남자 얼굴에 시선을 돌렸는데, 어딘지 소예준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온화해 보이는 겉모습은 친해지기 쉬운 사람처럼 보였다.송유라는 하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강하영 대표님, 오셨네요.”하영도 웃으며 대답했다.“오래 기다리셨죠?”문을 닫고 하영은 유라 곁에 앉았다.“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송유라는 우아한 동작으로 하영에게 물을 따라주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추가 비용을 더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리가 고맙죠. 소개할게요, 곁에 있는 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하영은 남자를 바라보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정유준의 눈이 가늘어졌다.“그게 꼭 내 아이라는 보장은 없잖아. 나랑 만날 때 다른 남자랑 관계를 가졌던 거 잊은 건 아니지?”유준의 말에 양다인은 얼굴이 굳어진 채 말까지 더듬었다.“유준 씨, 미, 미안해요.”“사과받으러 온 거 아니야.”유준의 미간에 약간 짜증이 묻어났다.“네 요구 들어줄게.”그 말에 양다인은 두 눈을 빛냈다.“정말요? 정말 내가 희민이를 돌봐도 돼요?”유준은 계속 양다인을 살폈다.‘대체 원하는 게 뭘까?’유준은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변호사를 통해 계약서 작성해서 보낼게. 희민이가 완쾌되는 동안 네가 약간이라도 불리한 행동을 한다면, 내 손으로 직접 너를 경찰서로 끌고 갈 테니까!”양다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절대 그럴 일 없어요. 정말이에요…….”그러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나 정말 후회 많이 했으니까, 이번에 반드시 제대로 희민이를 돌볼게요.”양다인의 그런 모습에도 유준은 그저 혐오감만 느꼈다.하지만 지금 유준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양다인이 유일한 골수를 내주지 않을 거니까.“나도 조건이 있어요.”양다인은 눈물을 훔치며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희민이가 완쾌될 때까지 나 쫓아내지 마세요.”“난원에 들어올 생각이야?”유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양다인은 입술을 깨물었다.“아니에요. 유준 씨도 원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그저 희민이가 완쾌될 때까지만 나 쫓아내지 않으면 안 돼요?”양다인이 알아본 결과 골수 이식 후 적어도 한 달 동안은 무균실에 머물러야 했다.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빨리 퇴원할 수 있지만, 퇴원 후에도 약물 치료를 받게 되면 적어도 반년은 걸릴 것이다.반년 동안 성심성의껏 희민을 보살피면 유준의 신뢰를 얻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그때 주원 씨를 도와 정유준을 쓰러뜨리면 사모님 자리는 바로 내 것이 되겠지.’유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계약서에 사인하면 1년 뒤에는 반드시 희민이 곁을 떠나야 할 거야. 내가 변호사한테 계약
“내가 언제 양다인이랑 재결합한다고 했어?”유준이 불쾌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두 사람 일엔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저 양다인은 내 아들을 학대한 여자라는 것만 알고 있으니까요!”유준이 싸늘한 어조로 설명했다.“나는 양다인이랑 재결합할 마음 없어. 마찬가지로 내 아들을 너한테 보내는 일도 없을 거야.”“밥까지 같이 먹는 사이인데 그래도 만나는 게 아니라고?”양다인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꼭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야 만나는 사이인가요? 나는 정유준 씨처럼 마음이 넓은 편이 아니라서, 내 아들을 학대한 인간과는 같이 밥도 먹을 수 없거든요!”“사정이 있어서 만난 거야.”“그럼 무슨 사정인지 얘기해 봐요.”하영의 말에 유준은 말문이 막혔다.유준은 괜히 하영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얘기해 줄 수 없었다.하영은 유준이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 비웃음을 날렸다.“오늘 확실하게 얘기할게요. 만약 양다인과 다시 만날 생각이라면 내 아들을 내게 보내주세요! 안 그러면 변호사를 찾아 소송 걸어서 양육권을 되찾을 거예요!”말을 마친 하영은 화를 내며 유준을 피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는 순간 유준은 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그 순간 유준의 눈가에 의아함이 스쳤다.‘소씨네 사람들이 왜 강하영과 밥을 먹는 거지? 설마 소예준과 결혼이라도 하는 건가? 그런데 할아버지와 소예준은 왜 자리에 없지?’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영은 두 사람을 차가 있는 곳까지 배웅했다. 떠나기 전에 송유라는 하영의 손을 잡고 입을 열었다.“앞으로 하영이라고 불러도 괜찮죠?”송유라가 웃으며 물었다.“우리 딸이랑 나이가 비슷해서 그래요.”그러자 하영이 웃으며 답했다.“물론이죠. 앞으로 말씀 편하게 하세요.”하영은 정말 상관없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의 소통을 통해 어쩐지 그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영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하영의 말에 송유라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었다.“그래, 그럼 우리
변호사의 두 마디만으로 하영의 마음은 반쯤 무거워졌다.“다른 방법은 없을까요?”하영이 마음이 내키지 않은지 다시 물었다.“방법 정말 하나도 없을까요?”“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얘기해 보세요.”“정유준 대표님과 결혼해서 아이를 학대하는 증거를 확보하시면 됩니다.”“…….”정유준이 아이를 학대할 가능성은 없다. 그저 무뚝뚝한 태도로 아이에게 엄격하게 구는 게 전부일 거다.‘그리고 정유준과 결혼하라고?’하영이 만 번을 양보해서 결혼하기로 마음먹어도, 정유준과 정창만이 동의할 리 없었다.어떤 방법이든 선택하기 어려웠던 하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주 변호사님.”하영이 피곤한 언조로 입을 열었다.“일단 생각해 볼게요. 고마워요.”“아닙니다.”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하영은 이 문제를 나중에 처리하기로 했다.그리고 부진석의 연락처를 찾아 톡을 보냈다.[자? 오늘은 좀 어때? 너무 바빠서 병문안 갈 시간이 없었어.]곧 진석에게서 답장이 왔다.[이제 많이 괜찮으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그럼 다행이고, 내일 죽이라도 끓여서 가져갈게.][괜히 번거롭게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 병원에도 밥 잘 나오니까 며칠 뒤에 나 퇴원하면 데리러 와줘.]진석이 거듭 거절하자 하영도 어쩔 수 없었다.같은 시각, 소씨 집안.집에 돌아온 양다인은 소백중이 거실에 앉아 티브이를 시청하는 것을 보고, 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방으로 올라갔다.소백중이 막 입을 열어 양다인을 부르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계단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그 모습에 소백중은 미간을 찌푸렸다.‘저 아이가 요즘 왜 이렇게 허둥대는 거지? 말을 붙이려 해도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도 않고.’소백중은 도우미에게 티비를 끄라고 얘기한 뒤, 양다인을 찾아 얘기라도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다.그때 방으로 돌아온 양다인은 제일 먼저 주원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뒤에야 주원이 전화를 받았고, 양다인은 약간 투정 부리듯 입을 열었다.“전 또 주원
소백중은 화난 얼굴로 양다인을 밀어냈다.“네가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해서 너한테 돈까지 주며 회사까지 차려줬는데, 개업하고 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갔잖아! 그런데 지금 또 다른 사람 자식까지 돌봐주겠다고?”양다인은 억울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할아버지, 내일 출근할게요. 그러니까 너무 화내지 마세요…….”“정희민이 백혈병에 걸려 죽든 살든 너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아니에요, 할아버지. 제 손으로 키운 아이가 이렇게 죽는 걸 그냥 지켜볼 수 없어서 그래요.”소백중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아무리 그래도 네 아들이 될 수 없어!”“할아버지.”양다인은 눈물을 흘렸다.“할아버지, 제발 희민이를 보러 가게 해 주세요. 정말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래요.”“안 돼!”소백중은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으니까 그런 줄 알아! 내일부터 제대로 회사 운영할 생각이나 하고 다시는 그 자식 만나지 마라!”말을 마친 소백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분노에 찬 모습으로 양다인의 방을 떠났다.문이 쾅 하고 닫히는 순간 양다인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망할 영감탱이, 거의 죽을 목숨이면서 왜 자꾸 이래라저래라 간섭질이야? 왜 아직도 안 죽어? 아무리 반대해도 나는 꼭 갈 거야! 그딴 회사가 뭐라고, 어려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영감이 죽어버리기만 하면 당장 팔아버려야지!’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던 유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양다인은 연기 하나는 정말 잘한다니까. 겉과 속이 다른 여자는 곁에 둬도 말썽만 생길 거야.’정주원은 전화를 끊은 뒤 품에 안긴 여자를 어루만지자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주원 씨, 아파요.”주원은 여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여자를 어루만지던 손에 힘을 주면서, 무덤덤한 어조로 물었다.“아프다고?”그러자 여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에요, 유준 씨. 제가 잘못했어요!”주원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바닥에 던졌다.바닥에 쓰러진 여자는 온몸에 고
소백중의 안색이 바로 변했다.“방금 너한테 정유준을 만나러 간다고 했어?”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아버지. 정유준이 다인 언니한테 어떻게 대했는지 다 아는데, 이대로 언니가 또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어요.”희원은 할아버지가 양다인이 정유준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주길 바라며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다.예전에 희원은 양다인이 정주원에게 접근하면서, 왜 굳이 희민의 골수를 찾았는지 알아보라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알 수 있었다.아마 양다인 손에 정희민과 일치한 골수가 있을 것이고, 그녀는 골수를 이용해 정유준에게 접근하려는 것을 눈치챘다.‘뻔뻔한 X, 이런 식으로 나를 이용했는데 내가 왜 가만히 있어야 해?’소백중은 어두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차 대기시켜!”청담 국제 학교.하영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떠나기 전에 당부했다.“오늘 오후도 주희 씨가 너희들 데리러 올 거야.”“네…….”세희는 기분이 안 좋은지 입을 삐죽였다.“엄마, 저녁에 또 어디 가요?”하영은 허리를 숙여 세희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바쁜 일이 있어서 그래. 대신 내일 오후엔 꼭 데리러 온다고 약속할게. 응?”세준이 세희의 손을 잡고, 작은 머리를 쳐들며 입을 열었다.“엄마, 세희가 주희 누나랑 아주 잘 놀고 있으니까 우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세희는 씩씩거리며 세준을 째려보았다.“주희 언니랑 재밌게 노는 건 내가 아니라 오빠잖아!”하영은 놀라운 표정으로 세준을 보며 짐짓 질투하는 척했다.“그래? 보아하니 이제 주희 누나가 엄마보다 더 중요한가 봐?”“그렇다니까요!”세희는 오만한 표정으로 더욱 부추겼다.“오빠가 매일 밤 주희 언니랑 방수벽으로 싸우고 그래요!”‘방, 방수벽?’세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건 방화벽이야.”세희는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더니 얼굴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아무튼 벽은 맞잖아! 오빠는 꼭 그렇게 따져야겠어
“2,000만 원?”하영은 그저 웃었다.“좋아. 그럼 네가 2,000만 원을 주면 되겠네.”그러자 양다인의 안색이 변했다.“내가 왜 너한테 2,000만 원을 줘? 네가 함부로 차를 세운 탓에 내가 부딪힌 거잖아. 똑바로 보고 얘기해!”하영은 턱으로 CCTV를 가리켰다.“저기 CCTV 있는 거 보이지? 내가 직진하고 있는데, 네가 코너를 돌다가 내 차를 박았잖아. 그리고 이곳은 원래 주차가 가능한 곳이야. 양다인, 얘기하기 전에 생각이란 걸 좀 해보는 게 어때?”“생각이라니? 지금 정부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내 손녀한테 그딴 식으로 얘기하는 거야?”갑자기 곁에서 누군가의 호통이 들려왔고, 양다인과 하영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짜악!상대방이 누군지 미처 확인하기 전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앞에 나타났고, 뺨 때리는 소리와 함께 하영의 고개가 돌아갔다.뺨에 얼얼한 고통이 전해져 왔고, 경호원은 얼른 하영을 뒤로 보호하며 앞으로 나섰다.순간 깜짝 놀란 하영은 얼얼한 뺨을 매만지며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하영은 고개를 들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소백중을 보고 싸늘한 어조로 비웃었다.“보아하니 양다인이 이렇게 오만한 건 전부 할아버지 덕분이네요.”그 말에 소백중의 눈가에 분노가 차올랐다.“지금 무슨 배짱으로 내 앞에서 그딴 식으로 얘기해?”하영은 피식 웃었다.“할아버지도 예의를 지키지 않는데 제가 왜 예의를 차려야 하죠?”“너!”소백중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손으로 하영을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고, 하영은 전혀 굴하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체면이 깎이는 게 두렵지 않으시면 계속 저한테 손대 보시죠.”소백중의 경호원이 곁으로 다가가 귀띔해 줬다.“어르신, 여기 CCTV가 너무 많습니다.”그러자 소백중은 억지로 화를 꾹 참았다.“이번 일은 이만 봐주도록 하마! 다음에도 또 내 손녀한테 무례한 말을 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너도 잘 알겠지!”“차 가지고 그만 가자!”소백중이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는 양다인을 보며 소리치자 양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