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너무 격해지면 네 건강에도 좋지 않아.”진석의 말에 하영은 숨을 들이마셨다.“나는 쓰러지지 않아! 이번 일은 내가 정유준을 찾아가 물어볼 거야!”하영의 말에 예준이 입을 열었다.“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만 설날 저녁 계획은 아마 미뤄야 할 것 같아.”말을 마친 뒤 예준은 진석을 보며 얘기했다.“하영을 데리고 먼저 들어가요. 저는 잠시 통화 좀 할게요.”“네.”예준은 하영을 데리고 들어가는 진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사실 아주머니가 첫 수술을 마쳤을 때 그를 의심한 적이 있었다.‘종양 내과에 있는 진석이 왜 개두 수술실에 나타난 걸까? 그저 하영을 위해서?’하지만 예준은 곧 이 생각을 버렸다.만약 정말 부진석에게 문제가 있다 해도 정유준의 병원에까지 손 쓸 능력은 없었다.게다가 하영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 깊은데 그녀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겠지.다음 날 오후.의사가 정밀 검진 결과를 유준에게 건네줬다.급히 진단한 결과 정희민은 급성 백혈병 중기라는 진단을 받았다.중기라는 두 글자에 진단서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유준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의사에게 물었다.“치료 방법은 있습니까?”“일단 약물 치료로 완화한 후 제일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빨리 골수 이식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완치될 수 있습니다.”유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제 골수는 맞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검사를 받아보셔야 알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일치할 확률은 50퍼센트입니다. 안전하게 일단 일치하는 골수를 먼저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의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복도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정유준 씨!”양다인의 잠긴 목소리가 유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그 목소리에 유준의 얼굴엔 혐오스러운 눈빛을 숨김없이 드러났다.정유준은 몸을 돌려 자기 앞으로 뛰어오는 양다인을 보고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얃아인은 병실을 보며 얘기했다.“희민이가 안에 있는 거 알아요. 아프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할게.”유준이 말을 이었다.“대신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따르고 치료 잘 받아야 해.”희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네.”라고 대답했다.그저 아빠가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무슨 말이든 다 따를 생각이다.명품 그랜드 캐슬.양다인은 연세 병원에서 나와 바로 주원의 집으로 향했다.주차를 한 뒤 거실로 들어가자, 거실에 앉아 쉬고 있는 주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주원 씨, 저 왔어요.”주원은 눈을 뜨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양다인을 바라보았다.“정희민은 어때요?”“별로 안 좋아요.”양다인은 주원의 곁에 앉으며 별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그저 골수가 문제죠.”“골수?”주원이 잠시 멈칫하다가 입을 열자 양다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말을 바꿨다.“골수 이식을 받아야 하거든요…….”양다인은 깜짝 놀랐다. 주원은 아직 자신의 정체를 그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아직 감정이 단단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얘기는 절대 할 수 없었다. 양다인은 어쩌면 주원이 먼저 태도를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주원은 시선을 거두고 얘기했다.“그저 충분한 자금만 있으면 골수를 찾는 건 쉬운 일이죠. 하지만 정유준이 돈이 있어도 골수를 찾을 수 없다면 그때는 골치가 좀 아프겠지만.”양다인은 조심스레 주원을 떠보기 시작했다.“혹시 정유준이 골수를 찾을 방법을 차단하려는 건가요?”주원은 그저 웃으며 양다인을 바라보았다.“어떨 것 같아요?”“그렇다면 제가 정유준한테 접근하기 더 쉬워지겠죠!”양다인은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저한테 정희민을 살릴 수 있는 게 있지만 정유준이 찾을 수 없게 되면 분명 그 일로 저를 다시 받아줄 거예요!”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일은 내가 도와줄 테니까 남은 일은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요.”양다인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네! 주원 씨를 위해서 꼭 정유준 곁에 있을게요!”저녁.소예준은 강제로 하영과 인나를 집에 돌아가 휴식하라고 했
임연수 아주머니는 두 아이를 거의 5년이나 보살펴 줬고, 그들 모두 아주머니를 제일 소중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그런 아주머니가 돌아갔다는 얘기에 아이들도 하영만큼이나 괴로웠다.하영은 두 아이를 품에서 놓아주고 입을 열었다.“1월 2일에 할머니를 보내드릴 거니까 엄마가 학교에 얘기해서 너희들도 함께 가자.”두 아이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명품 그래드 캐슬.주원이 오늘 양다인에게 자고 가라고 얘기했다.양다인은 주원의 방에 앉아있었다. 약속한 이틀이라는 시일이 다가오는데 주원은 아직 휴대폰을 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양다인도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어서 일단은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기로 했다.욕실에 들어가 옷을 다 벗은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양다인이 휴대폰을 확인하니 발신자가 김형욱인 것을 보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김형욱 씨?”양다인은 말을 하며 욕실 문 쪽으로 몸을 가까이 붙였다.정주원이 지금 통화하고 있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골수는 이미 찾았으니까 언제든지 보내줄 수 있어. 가격은 그쪽이 내줘야겠어.”김형욱의 말이 들려왔지만 밖에 있는 주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방음이 너무 좋은 탓인가?’“얼마나 필요한데요?”양다인은 조심스럽게 문을 살짝 열었다.“4,000만 원.”김형욱이 얘기할 때 양다인은 마침 욕실 문을 열었고, 문틈으로 정주원이 통화하는 것을 발견했다.양다인은 흥분된 마음으로 황급히 욕실 문을 다시 닫았다.‘이번엔 확실히 증거를 잡았어! 정주원이 맞았어!’양다인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좋아요. 돈은 어떻게 보내드리면 되죠?”“이따가 계좌번호 보내줄게.”“알았어요, 김형욱 씨.”전화를 끊은 뒤 바로 문자가 왔고, 양다인이 먼저 계좌번호에 2,000만 원을 이체하자마자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상대방이 골수가 있는 위치를 보내줬다.새해.희민은 잠에서 깨자마자 하영의 문자를 받았다.[우리 소중한 희민이 새해 복 많이 받아.]하영의 문자에 희민의 코끝이 찡해
“좋아.”희민은 유준이 허락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유준은 흔쾌히 동의하자 희민의 눈빛이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고마워요.”유준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그저 아주 작은 요구를 들어줬을 뿐인데 희민이 이 정도까지 기뻐할 줄 몰랐다.점심.유준은 희민을 데리고 점심을 먹은 뒤 손잡고 백화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희민은 이미 뭘 살지 정했는지 가게를 찾아 바로 들어갔다.하영을 위해 목도리를 고르고,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는 세준을 위해서 보온병을 골랐다.그리고 세희 선물은 저녁에 안고 잘 수 있는 커다란 인형을 골랐다.마지막으로 유준을 위해 넥타이를 골랐다.선물을 받은 유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나 주는 거야?”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새해인데 아빠도 선물을 받으셔야죠.”유준은 흐뭇한 표정으로 몸을 굽혀 희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마워.”희민은 놀란 얼굴로 유준을 바라보았다.‘아빠가 웃었어…….’처음으로 아빠가 이렇게 기쁘게 웃는 모습을 봤다.희민의 창백한 얼굴은 기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아빠, 많이 웃어요. 보기 좋아요.” 유준의 미소는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가에 어색한 표정이 떠올랐다.그는 손을 거두고 헛기침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또 필요한 거 있어?”“없어요.”“너는 뭐 살 것 없어?”유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희민의 눈가에 담담한 미소가 떠올랐다.“모두가 기뻐한다면 그게 저한테는 선물이에요.”유준은 희민의 작은 손을 잡았다.“네가 예전에 데스크톱 컴퓨터를 고르고 있던 걸 본 적 있는데.”그 말에 유준의 귓불이 빨갛게 물들었다.“부품을 보고 있었어요. 혼자서 조립해 보고 싶었거든요.”“필요한 부품들을 적어서 허시원에게 전해줘. 대신 사다 줄 거야.”희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공부와 상관없는 일을 한다고 반대하지 않으세요?”“너한테 그런 능력이 있는데 왜 반대해야 하지?”……병원에서 돌아온 유준은 허시원에게 희민이
세준은 테이블 위에 놓은 보온병을 살펴봤다.“나 누가 줬는지 알 것 같아.”하영도 곁으로 다가와 목도리가 담겨 있는 선물함을 들더니 입을 열었다.“희민이가 보낸 거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저도 희민이한테 줄 선물이 있는데 보내줄 수 있어요?”“엄마, 저도 희민 오빠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세준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좋아.”하영은 대답하고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주희가 다가왔다.“제가 가져다 드릴게요!”주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오후에 선물을 보내온 분을 만났거든요! 생긴 건 조금 멍청해 보였는데 눈이 크고 수려하게 생겼어요.”하영은 주희가 얘기한 사람이 허 비서라는 것을 알았지만 주희가 시원을 멍청해 보인다고 표현할 줄은 몰랐다.하영은 애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가서 선물을 가져와. 엄마 침대맡에 시계가 있는데 그것도 가져다줘.”그러자 세희가 수상쩍은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 언제 또 몰래 희민 오빠 선물을 샀어요?”하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너희들이랑 같은 시계야.”두 아이는 선물을 가지러 위층으로 뛰어갔고, 하영은 주희에게 난원의 주소를 알려주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 주희는 선물을 전하러 난원으로 향했고, 하영은 두 아이를 씻기고 잘 준비를 했다.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병원.현욱이 유준을 찾으러 왔다가 희민이 잠든 것을 보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아직 7시도 안 됐는데 벌써 잠들었어?”유준은 의사가 전해준 진단서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열도 높고 피도 많이 뽑았거든.”현욱은 한숨을 내쉬었다.“약물 치료는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대?”유준은 현욱을 올려다보며 얘기했다.“염증 치료를 받고 열이 내려야 약물 치료할 수 있대. 아마 모레쯤 시작할 수 있을 거야.”“골수는?”현욱이 또 묻자 눈을 가늘게 뜬 유준의 눈가에 걱정이 드러났다.“사람을 시켜 암시장에 가서 알아도 보고 의사도 여러
캐리도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저 쓰레기 같은 인간이 너 괴롭히면 어쩌려고?”하영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여기 무덤인데 그럴 일 없어. 오빠, 진석 씨, 저기 주례사 분 모셔다 드려.”사람들은 하영의 단호한 태도에 더 얘기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길로 떠났다.그리고 사람들이 떠나자마자 유준이 무덤 앞으로 다가왔다.하영은 서늘한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렸다.뺨을 내려치는 소리에 깜짝 놀란 허시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강하영 씨!”“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여기 나타나요?”하영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으며 물었다.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돌린 유준의 서늘한 눈빛도 하영의 분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유준의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무슨 짓이라뇨?”하영은 유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하영의 말에 유준의 이마에 핏줄마저 드러났다.“무슨 말인지 똑바로 얘기해!”하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당신이 나한테 의사를 보내서 수술 동의서를 받으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수술 결과는요? 결국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잖아요!”유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더욱 서늘해졌다.“수술 중에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내가 어떻게 막아? 나는 아주머니를 위해서 최고의 의료 팀을 꾸렸는데 그건 보이지 않아?”“그런 거창한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정유준 씨는 그저 나한테 복수하려는 거잖아요!”“내가 너한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네가 지금 이렇게 무사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정유준이라는 사람은 항상 남의 상처를 이용한다는 거 누가 몰라요?”하영은 유준을 차갑게 비웃었다.“이제 드디어 뜻대로 했네요.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기쁘죠? 내가 기댈 곳하나 없는 것을 보니 아주 즐거워 죽겠죠?”“네 눈엔 내가 그렇게 비열한 인간으로 보여?
허시원은 허리를 굽혀 절을 한 뒤 하영을 바라보았다.“강하영 씨, 대표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대표님 곁에 3년 동안 있으면서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쓰는 것을 본 적 있으십니까? 대표님께서 그 의료 팀을 모셔오느라 꽤 많은 인력과 자금을 들였습니다. 오늘은 하영 씨가 너무 심한 것 같네요.”말을 마친 시원이 자리를 떠나고, 하영은 무덤 앞에서 침묵을 지켰다.‘내가 너무 했다고?’하영도 어쩌면 유준이 정말 아주머니를 구하려고 진심으로 애쓰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아주머니는 유준이 청해온 의료 팀의 수술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심지어 맹세의 말조차 한마디 못 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한참을 그곳에 서있던 하영은 양운희의 무덤으로 향했다.무덤 앞에 도착한 하영은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앞에 놓고, 티슈를 꺼내 비석을 닦아주기 시작했다.“엄마, 저 왔어요.”하영은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보러 오지 않았다고 탓하지 않아요?”“해외에서 그동안 이름도 바꾸고 5년 동안 숨어 살았거든요. 이제는 나름 어느 정도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돌아왔어요. 엄마가 하늘에서 저를 지켜준 덕분에 제 사업이 이렇게 잘 되고 있는 거겠죠? 엄마, 엄마한테 손주들도 셋이나 있는데 다들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다음에 올 때 같이 와서 보여드릴게요.”하영은 말하면서 양운희의 따뜻한 미소가 담긴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그러다 코끝이 찡해나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엄마, 찾아 올 용기가 없었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아직 원수에게 복수를 하지 못해서 엄마 보러 올 용기가 없었으니 용서해 주세요.”차 안.돌아가는 길에 유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차창밖으로 지나쳐 가는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던 유준의 가슴이 거의 질식할 정도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대표님.”허시원이 불안한 듯 입을 열어 위로를 건넸다.“사실 강하영 씨도 지금 속상한 마음에 안 좋은 얘기를 했을 거예요.” 유준은 눈을 들어 시원을 바라보았다.
진석도 곁에서 한마디 거들었다.“가다가 내가 살짝 고개를 돌려봤는데 하영이가 정유준의 뺨을 때리는 것 같았어.”“대박!”캐리가 깜짝 놀랐다.“그 쓰레기 인간을 때렸다고?”예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머니의 죽음이 정유준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인나는 새우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대표님이 모셔 온 의료팀이잖아요.”모두의 시선이 인나에게 집중되었고, 인나는 순간 당황한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다들 왜 그렇게 봐요?”“여자들의 생각은 참 단순하다니까.”캐리가 혀를 찼다.“그 인간이 하영에게 복수하고 싶었다면 과연 그런 뻔한 수법을 썼겠어?”부진석도 한마디 덧붙였다.“신체 기능 때문에 수술 중에 예상치 못한 상황은 종종 있는 법이거든.”그때 소예준도 입을 열었다.“수술 중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누가 몰래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죠.”캐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오리무중에 빠졌다.“다들 정말 말을 이상하게 하네요. 추리 소설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에요?”“왜 그렇게 생각해요?”예준이 캐리를 바라보며 묻자 캐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거긴 정유준 병원이잖아요! 정유준 몰래 손을 쓰려면 대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이죠? 만약 모두의 말대로면 그 사람은 분명 정유준한테 원한을 갖고 하영과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거네요.”인나도 놀라며 탄성을 내뱉었다.“그렇다면 가장 동기가 있는 사람은 양다인이잖아.”인나의 말에 예준이 대답했다.“양다인한테 그 정도 능력은 없을 거야.”“왜 없어요?”인나가 입술을 삐죽였다.“살인까지 저지르고도 그 사실을 덮었잖아요.”“살인?”캐리가 깜짝 놀랐다.“나는 왜 그 사실을 몰랐지?”다들 동시에 캐리를 돌아보며 남의 사생활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냐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증거도 없는데 함부로 추측하는 건 아닌 것 같아.”진석의 말에 예준은 뚫어지게 그를 응시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진석은 하영을 위해 한 마디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