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은 테이블 위에 놓은 보온병을 살펴봤다.“나 누가 줬는지 알 것 같아.”하영도 곁으로 다가와 목도리가 담겨 있는 선물함을 들더니 입을 열었다.“희민이가 보낸 거지?”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저도 희민이한테 줄 선물이 있는데 보내줄 수 있어요?”“엄마, 저도 희민 오빠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세준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좋아.”하영은 대답하고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주희가 다가왔다.“제가 가져다 드릴게요!”주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오후에 선물을 보내온 분을 만났거든요! 생긴 건 조금 멍청해 보였는데 눈이 크고 수려하게 생겼어요.”하영은 주희가 얘기한 사람이 허 비서라는 것을 알았지만 주희가 시원을 멍청해 보인다고 표현할 줄은 몰랐다.하영은 애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가서 선물을 가져와. 엄마 침대맡에 시계가 있는데 그것도 가져다줘.”그러자 세희가 수상쩍은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 언제 또 몰래 희민 오빠 선물을 샀어요?”하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너희들이랑 같은 시계야.”두 아이는 선물을 가지러 위층으로 뛰어갔고, 하영은 주희에게 난원의 주소를 알려주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후, 주희는 선물을 전하러 난원으로 향했고, 하영은 두 아이를 씻기고 잘 준비를 했다.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병원.현욱이 유준을 찾으러 왔다가 희민이 잠든 것을 보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아직 7시도 안 됐는데 벌써 잠들었어?”유준은 의사가 전해준 진단서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열도 높고 피도 많이 뽑았거든.”현욱은 한숨을 내쉬었다.“약물 치료는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대?”유준은 현욱을 올려다보며 얘기했다.“염증 치료를 받고 열이 내려야 약물 치료할 수 있대. 아마 모레쯤 시작할 수 있을 거야.”“골수는?”현욱이 또 묻자 눈을 가늘게 뜬 유준의 눈가에 걱정이 드러났다.“사람을 시켜 암시장에 가서 알아도 보고 의사도 여러
캐리도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저 쓰레기 같은 인간이 너 괴롭히면 어쩌려고?”하영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여기 무덤인데 그럴 일 없어. 오빠, 진석 씨, 저기 주례사 분 모셔다 드려.”사람들은 하영의 단호한 태도에 더 얘기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길로 떠났다.그리고 사람들이 떠나자마자 유준이 무덤 앞으로 다가왔다.하영은 서늘한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렸다.뺨을 내려치는 소리에 깜짝 놀란 허시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강하영 씨!”“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여기 나타나요?”하영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으며 물었다.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돌린 유준의 서늘한 눈빛도 하영의 분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유준의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무슨 짓이라뇨?”하영은 유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하영의 말에 유준의 이마에 핏줄마저 드러났다.“무슨 말인지 똑바로 얘기해!”하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당신이 나한테 의사를 보내서 수술 동의서를 받으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수술 결과는요? 결국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잖아요!”유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더욱 서늘해졌다.“수술 중에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내가 어떻게 막아? 나는 아주머니를 위해서 최고의 의료 팀을 꾸렸는데 그건 보이지 않아?”“그런 거창한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정유준 씨는 그저 나한테 복수하려는 거잖아요!”“내가 너한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네가 지금 이렇게 무사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정유준이라는 사람은 항상 남의 상처를 이용한다는 거 누가 몰라요?”하영은 유준을 차갑게 비웃었다.“이제 드디어 뜻대로 했네요.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기쁘죠? 내가 기댈 곳하나 없는 것을 보니 아주 즐거워 죽겠죠?”“네 눈엔 내가 그렇게 비열한 인간으로 보여?
허시원은 허리를 굽혀 절을 한 뒤 하영을 바라보았다.“강하영 씨, 대표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대표님 곁에 3년 동안 있으면서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쓰는 것을 본 적 있으십니까? 대표님께서 그 의료 팀을 모셔오느라 꽤 많은 인력과 자금을 들였습니다. 오늘은 하영 씨가 너무 심한 것 같네요.”말을 마친 시원이 자리를 떠나고, 하영은 무덤 앞에서 침묵을 지켰다.‘내가 너무 했다고?’하영도 어쩌면 유준이 정말 아주머니를 구하려고 진심으로 애쓰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아주머니는 유준이 청해온 의료 팀의 수술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심지어 맹세의 말조차 한마디 못 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한참을 그곳에 서있던 하영은 양운희의 무덤으로 향했다.무덤 앞에 도착한 하영은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앞에 놓고, 티슈를 꺼내 비석을 닦아주기 시작했다.“엄마, 저 왔어요.”하영은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보러 오지 않았다고 탓하지 않아요?”“해외에서 그동안 이름도 바꾸고 5년 동안 숨어 살았거든요. 이제는 나름 어느 정도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돌아왔어요. 엄마가 하늘에서 저를 지켜준 덕분에 제 사업이 이렇게 잘 되고 있는 거겠죠? 엄마, 엄마한테 손주들도 셋이나 있는데 다들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다음에 올 때 같이 와서 보여드릴게요.”하영은 말하면서 양운희의 따뜻한 미소가 담긴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그러다 코끝이 찡해나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엄마, 찾아 올 용기가 없었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아직 원수에게 복수를 하지 못해서 엄마 보러 올 용기가 없었으니 용서해 주세요.”차 안.돌아가는 길에 유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차창밖으로 지나쳐 가는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던 유준의 가슴이 거의 질식할 정도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대표님.”허시원이 불안한 듯 입을 열어 위로를 건넸다.“사실 강하영 씨도 지금 속상한 마음에 안 좋은 얘기를 했을 거예요.” 유준은 눈을 들어 시원을 바라보았다.
진석도 곁에서 한마디 거들었다.“가다가 내가 살짝 고개를 돌려봤는데 하영이가 정유준의 뺨을 때리는 것 같았어.”“대박!”캐리가 깜짝 놀랐다.“그 쓰레기 인간을 때렸다고?”예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머니의 죽음이 정유준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인나는 새우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대표님이 모셔 온 의료팀이잖아요.”모두의 시선이 인나에게 집중되었고, 인나는 순간 당황한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다들 왜 그렇게 봐요?”“여자들의 생각은 참 단순하다니까.”캐리가 혀를 찼다.“그 인간이 하영에게 복수하고 싶었다면 과연 그런 뻔한 수법을 썼겠어?”부진석도 한마디 덧붙였다.“신체 기능 때문에 수술 중에 예상치 못한 상황은 종종 있는 법이거든.”그때 소예준도 입을 열었다.“수술 중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누가 몰래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죠.”캐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오리무중에 빠졌다.“다들 정말 말을 이상하게 하네요. 추리 소설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에요?”“왜 그렇게 생각해요?”예준이 캐리를 바라보며 묻자 캐리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거긴 정유준 병원이잖아요! 정유준 몰래 손을 쓰려면 대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이죠? 만약 모두의 말대로면 그 사람은 분명 정유준한테 원한을 갖고 하영과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거네요.”인나도 놀라며 탄성을 내뱉었다.“그렇다면 가장 동기가 있는 사람은 양다인이잖아.”인나의 말에 예준이 대답했다.“양다인한테 그 정도 능력은 없을 거야.”“왜 없어요?”인나가 입술을 삐죽였다.“살인까지 저지르고도 그 사실을 덮었잖아요.”“살인?”캐리가 깜짝 놀랐다.“나는 왜 그 사실을 몰랐지?”다들 동시에 캐리를 돌아보며 남의 사생활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냐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증거도 없는데 함부로 추측하는 건 아닌 것 같아.”진석의 말에 예준은 뚫어지게 그를 응시했다.처음부터 끝까지, 진석은 하영을 위해 한 마디
“아버지가 죽고 싶으면 깔끔하게 죽으라고 하더라. 나중에 또 나타나서 마지막 남은 호감마저 사라지게 하지 말라면서. 어머니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못하셨어. 어머니가 떠나게 되면 내가 혼자 남을 걸 잘 아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결국 떨쳐버리지 못하고 아버지가 남긴 돈으로 술과 담배를 시작하셨거든. 매번 술만 마시면 자해한 탓에 손목이랑 다리는 2년 내내 성한 곳이 없으셨어.”“그때 나는 집에 가는 게 가장 두려웠어. 혹시라도 어머니가 집에서 죽어 있을까 봐. 더욱이 어머니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두려웠어.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은 5년 동안 지속되었고, 결국 어머니는 악성 종양에 걸리셨지.” “제발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말씀드렸지만 마르고 상처투성이가 된 손으로 내 손을 꽉 잡더니 더 이상 내게 짐이 디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남은 돈을 내게 남겨주시면서 좋은 어린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어.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찾아가지도 말라고 하셨어. 아버지는 악마라고 하시면서.”“어머니는 내가 내면이 순수한 천사가 되기를 바라셨어.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내가 유일한 빛이었기 때문이야.”진석은 간단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쳤고, 하영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다.“아버지 원망하지 않아?”하영의 물음에 진석은 물컵을 건네주었다.“원망하면 무슨 소용이야? 그저 자기 마음만 괴롭지.”하영은 진석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아버지가 아니라면 진석 씨와 어머니도 그 지경이 되지 않았을 거잖아. 안 그래?”“원망한 적도 있었어.”진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찾아간 적도 있는데, 생각보다 별로 잘 지내지 못하더라고.”하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잘 지내지 못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진석은 맑은 눈동자로 하영을 응시하며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했다.“곁에 진심인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하영이 말을 이었다.“진석 씨랑 어머니한테 5년 동안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남겼다는 건 상당히 부유하다는 얘기잖아
예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이번 일은 고마워.”그러자 여자는 콧방귀를 뀌었다.“그 말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 다른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건 어때?”예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미안…….”“나한테 마음 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여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됐어. 한 번만 봐줄게. 아직 일이 채 마무리되지 않았으니까.”“고마워.”“별말을 다 하네. 나 지금 엄청 기뻐! 천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데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일찍 쉬어.”“그 사람이랑 잠깐 놀아줘야지!”말을 마친 여자는 전화를 끊었고, 예준은 휴대폰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끄려던 순간 사무실 문이 열렸다.소진호가 사무실에 들어서더니 예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문을 닫았다.“삼촌.”예준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공손한 태도로 응했다.소진호가 다가와 예준의 앞에 앉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예준아,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은데.”예준도 다시 자리에 앉으며 일부러 모른 척하는 태도로 물었다.“무슨 말씀이세요?”“희원이 핸드폰에서 아영이 사진 봤다.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어?”소진호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지만 예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삼촌, 급해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5년 전 저도 지금 삼촌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소진호가 화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너의 외할아버지가 못 알아보는 건 그건 할아버지 문제고, 적어도 너는 나한테 그 아이를 만나게 해줬어야지!”“못 만나게 하는 게 아니라 아영이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외할아버지가 아영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줬거든요.”“상처라니?”소진호가 놀란 표정을 지으니 예준의 눈가에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양다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아영을 방에 가두고 굶겨 죽일 뻔했어요! 그때 아영은 세쌍둥이를 임신 중이었단 말입니다!”소진호는 몸을 움찔했다.“너의 외할아버지도 참 어리석구나…….”“삼촌도 너무 속상해하지
게다가 우아하고 화려한 필적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부부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대표님, MK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를 모셔 왔습니다. 존슨이라는 명성만으로 한 달도 안 돼서 매출이 MK보다 크게 떨어질 것 같습니다.”하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스승님이 왜 MK를 선택한 거지? 정유준은 대체 어떻게 스승님과 연락이 닿은 거야?’어쩐지 요즘 존슨한테서 연락이 없더라니, 알고 보니 정유준 회사로 간 것이다.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스승님이 어떤 회사에서 일을 하든 관여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한테 숨겼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하영이 아무 말이 없자 부부장은 마음이 급해 났다.“대표님, 이제 어떡하죠?”한참 침묵을 지키던 하영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단호하고 자신 있는 눈빛으로 변해있었다.‘스승님이 그런 결정을 하신 건 분명 나름의 생각이 있으실 거야.’하영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존슨한테서 배운 능력으로 한 번 제대로 겨루어 보는 것이다.하영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이만한 일로 흔들릴 필요 없어요. 다음 디자인은 제가 직접 할 테니까 다들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면 돼요.”디자인 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대표님이 무덤덤하게 그런 말을 뱉었고, 심지어 직접 나서겠다고 하는데 긴장할 게 뭐가 있겠는가?직원들은 대표님만 따라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회의를 마친 뒤 사무실로 돌아온 하영은 존슨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 연결음이 한참 들려오더니 존슨의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묻고 싶은 게 뭔지 알아. 일단 밥부터 먹을까? 나 배고파 죽을 것 같아.”하영은 짐짓 화난 척했다.“돈도 많은 MK 대표가 밥도 안 사 줘요?”“기지배가 왜 화를 내고 그래? 이따가 만나면 이유 얘기해 줄 테니까 레스토랑 위치 나한테 보내줘.”존슨은 하영에게 얘기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본인이 할 말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하영은 할 수 없다는 듯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존슨에게 위치를 보내줬다.12
정유준과 현욱은 병실 안에서 희민의 팔에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약물을 투여하고 의사는 유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대표님, 약물 투여 중일 때 가끔 부작용으로 구토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그 과정이 매우 괴로울 겁니다.”유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직은 아무 반응이 없는 희민을 바라보았다.“희민아, 견딜 수 있겠어?”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어요.”희민은 엄마 아빠가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건강한 몸을 갖고 싶었다.유준은 침대 옆에 앉아 따스한 손바닥으로 희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남자라면 당연히 그래야지.”곁에서 듣고 있던 현욱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훔쳤다.“유준아, 희민이 아직 다섯 살인데 남자는 아니지.”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현욱을 쳐다보았다.“한마디만 더 하면 평생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릴 줄 알아!”꾹 다물고 있던 희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현욱이 미안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나는 그냥 희민이 긴장을 풀어주느라 그런 거지.”“고마워요, 아저씨. 저 괜찮아요.”시간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고, 아직 반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희민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더니 끊임없이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아들의 괴로운 모습을 지켜보던 유준은 온몸이 차갑게 식어갔다.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풍파를 겪었고, 사회상의 온갖 잡배들을 상대해 왔다.모든 일에 해결 방법이 있지만 유일하게 희민이가 겪고 있는 고통은 대신 감당해 줄 수 없었다.소씨 집안.서민희는 방 안에 앉아 어떤 핑계로 하영을 만나러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희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리고 서민희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다가가 물었다.“엄마, 어디 편찮으세요?”서민희는 손을 내려놓고 희원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아니, 뭐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무슨 일인데요? 제가 도울 일은 없어요?”“희원아, 요즘 양다인이 너한테 뭐 부탁한 거 없어?”“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