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이 말했다.“이 일은 현욱이 나에게 알려준 거야.”하영은 멈칫했다.“현욱 씨가요?”“응.”유준은 말투가 약간 누그러졌다.“넌 좀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이 일은 나로 인해 일어났으니 숨길 것도 없지.”하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아이들의 일을 언급해도 될 것 같아.’“아이들 말이에요, 계속 나에게서 빼앗아갈 거예요?”유준은 일어서서 말했다.“너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게 아닌 이상, 양육권을 따질 필요도 없겠지.”‘그러니까 줄곧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양육권을 따지려 했던 거야?’유준은 하영을 등진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미안, 난 아직 우리에 관한 일들이 생각나지 않아. 그러니 약혼도 받아들일 수 없어.”그 말을 듣고 하영의 눈 밑에 실망이 떠올랐다.그러나 그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라도 아마 유준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모든 것은 시간에 맡기면 됐다.‘평생 기억 못 해도 좋아. 유준 씨 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하니까.’하영은 일어나서 문 앞으로 향했다.“시간도 늦었으니 내가 아래층으로 데려다줄게요.”“염주강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유준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영은 걸음을 멈추며 옅은 미소를 한 채 몸을 돌렸다.“당신이 날 버린 것이지, 내가 당신을 버리려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당신은 내 삶과 내 결정에 간섭할 자격이 없어요.”유준은 눈살을 찌푸렸다.“계속 그 남자와 만날 거야?”하영은 웃으며 문을 열었다.“이제 가봐요.”일주일 후, 하영과 유준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하영이 서글프게 탁자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인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하영이, 꼬박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네 얼굴에는 왜 웃음이 하나도 없는 거야? 무슨 일 생겼니?”하영은 넋을 잃은 채로 인나를 바라보았다.“아, 아니야.”“너 지금 멀쩡한 사람 같지가 않아서 그래.” 인나는 일어나서 하영에게 커피를 타주며 은근히 그녀를 자극
하영은 반신반의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인나는 우려낸 커피를 하영 앞에 놓았다.“하영아, 네가 말한 거 보니까 정유준 아직 너에게 감정 있는 것 같아! 무의식적인 반응은 절대 틀리지 않을 거라고!”하영은 시선을 거두며 커피를 들었고 목소리는 쓸쓸함이 묻어났다.“나 지금 유준 씨에 대해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가 없어.”‘내가 다른 남자와 접촉하는 것을 원치 않는 동시에 또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니.’‘이걸 누가 참을 수 있겠어? 또 누가 또 감히 유준 씨의 생각을 판단하겠냐고?’인나는 하영의 어깨를 두드렸다.“하영, 나만 믿어. 언젠가는 정유준이 다시 네 뒤를 쫓아다니면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할 거야! 그러나 지금은 반드시 참아야 해. 그 남자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가장 좋기는 네가 막 귀국했을 때처럼 그렇게 냉담하게 대하는 거야!”하영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MK에서.현욱은 유준 사무실의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 있었다.유준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회장 사무실이 불편한 거야? 굳이 내 사무실에 와서 누우려는 이유가 뭐지?”“거긴 춥고 외로워서, 가고 싶지 않아.” 현욱은 원하지 않았다.“유준아, 저녁에 같이 한 번 모이지 않을래?”“누구랑?”“당연히 기범이지!” 현욱은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그 녀석이 계속 귀찮게 굴잖아. 네가 보고 싶다면서 데리고 나오라고.”유준은 머릿속으로 잠시 생각을 한 후에야 기범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내가 그 사람과 친한 거야?” 유준이 물었다.현욱은 멈칫하더니 피식하고 웃었다.“기범이 그 자식 만약 이 말을 들었으면 틀림없이 울고 불며 난리를 부렸을 거야!”“그건 나랑 상관없어. 난 안 갈 거야.”“왜?!”현욱은 흥분해하며 말했다.“우리 세 사람 정말 오랫동안 같이 모이지 못했단 말이야!”유준은 현욱에게서 시선을 돌려 자료에 집중하려 했다.그러나 이 빽빽한 글자들은 하나도 그의 눈에 들어갈 수 없었다.억지로 집중을 하려 한다면 유준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하
“됐어, 그만해!” 현욱은 앞으로 다가가서 기범을 잡아당겼다.“사람 징그럽게 하지 말라고!”기범은 현욱에게 끌려가 소파에 앉았고 유준도 그들 옆에 앉았다.기범은 자신을 향한 유준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고 바로 테이블 위의 양주를 열었다.“잔말은 더 이상 하지 않을게!” 기범은 그들에게 술을 따라준 다음 또 일일이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다.“우리 감정은 모두 이 술 속에 있으니까 이제 한 번 마셔보자고!”기범은 명실상부한 수다쟁이로 분위기를 이끄는 일인자였다. 그래서 한 시간 후, 유준도 천천히 그를 받아들였다.유준이 약간 취한 것을 보고 현욱은 기범에게 눈짓을 하며 술을 좀 더 권하라고 표시했다.이렇게 하면 현욱도 유준의 비밀을 쉽게 캐물어낼 수 있었다.기범은 현욱의 시선을 알아차리며 또 다른 구실을 찾아 유준더러 몇 잔 더 마시라고 했다.이번에 두 사람은 모두 유준이 티가 날 정도로 취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현욱은 이 틈을 타서 입을 열었다.“유준아, 우리 가장 친한 친구 맞지?”유준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응.”“그럼 이 친구한테 말해봐, 너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거야?”기범은 쯧쯧 소리를 내며 현욱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너 어떻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가 있어?!”현욱은 고개를 돌려 기범을 노려보았다.“그럼 어떻게 물어보라고?”“내가 하는 거 잘 봐!” 기범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유준아, 너 혹시 하영 씨 때문에 그러는 거야?”현욱은 의혹을 느끼는 동시에 어이가 없었다.‘이건 나보다 더 직접적이잖아?!’현욱은 유준이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가 억지로 ‘응’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현욱과 기범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그러자 현욱은 계속 추궁했다.“너 하영 씨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 아니면 하영 씨가 너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일을 한 거야?”유준이 대답했다.“저번에 아크로빌에 갔을 때, 그 여자는 뜻밖에도 염주강의 별장에서 나왔어. 난 그들 두 사람이
“듣기엔 거북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현욱이 중얼거렸다.“누가 너더러 하영 씨를 거절하래?”“야, 배현욱,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기범은 참지 못하고 또 현욱과 다투기 시작했다.“우리는 유준의 친구잖아! 넌 왜 자꾸 강하영의 친구처럼 행동하는 거지?”현욱이 되물었다.“넌 또 뭘 잘못 먹은 건데? 자꾸 유준에게 하영 씨가 나쁜 여자라고 세뇌하다니!”“난 단지 유준에게 조언을 하고 있을 뿐이야. 전에 강하영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지금은 왜 또 남에게 양보하려는 거냐고! 나중에 기억이 돌아왔을 때, 오히려 강하영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을 보면 또 밤낮으로 술을 마시려 하지 않겠어?”“너 그렇게 대단하면 직접 하영 씨를 불러오면 되잖아!”현욱이 소리쳤다.“넌 옆에서 구경이나 하는 주제에 아는 척하긴!”“그래!” 기범은 휴대전화를 꺼냈다.“내가 부르면 되지! 강하영의 연락처가 없는 것도 아니고.”“네가 어떻게 그 여자의 번호가 있는 거지?”이때 유준이 갑자기 불쾌함을 느끼며 기범에게 물었다.기범은 눈을 깜박이며 말을 더듬었다.“나 전, 전에 네가 없을 때 강하영의 번호를 저장했거든.”“대단하네!” 현욱은 이 기회를 잡으며 기범을 비꼬았다.“너 유준의 여자를 넘보고 있었구나!”기범은 조급해했다.“그런 거 아니야! 너 딱 기다려, 나 지금 바로 강하영을 부를 거야.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할 거라고!”아크로빌에서.하영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침대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기범의 전화인 것을 보고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벌써 10시가 되었는데, 기범 씨는 왜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하는 거지?’의혹을 품고 하영은 연결 버튼을 눌렀다.그러나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기범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강하영 씨, 지금 당장 몬스터 VIP룸 111로 와요, 빨리!”하영은 어이가 없었다.“나...”“나예요, 하영 씨.”하영은 자신이 왜 가야 하냐고
“그 뭐지!” 이때 현욱이 벌떡 일어섰다.“하영 씨, 유준에게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좀 해봐요! 인나 씨가 집에 가라고 재촉하고 있어서 난 먼저 가볼게요!”하영은 영문을 몰랐다,현욱은 말을 마치고 또 옆에 있던 기범을 잡아당겼다.“너도 나가. 여기서 걸리적거리지 말고!”기범은 영문을 몰랐다.“난 여자 친구가 없는데, 왜 나까지 끌고 나가려는 거야? 게다가 난 아직 결백을 증명하지 못했다고!”“이 두 사람 눈에 거슬리지 말라고!”현욱은 말을 하면서 기범을 끌고 룸에서 나왔다.문이 닫히자, 분위기는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이제 너도 그만 가봐.” 유준은 하영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당신도 이제 그만 마셔요. 내가 집으로 데려다줄 테니까.’“그럴 필요가 더 있을까?” 유준은 비아냥거렸다.“내가 내 관심이 필요할 것 같아?”하영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정유준 씨, 지금 말 다 했어요?”유준의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졌다.“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지금 자신의 마음이 들통났다고 조급해하는 건가?”“당신은 그렇게도 내가 주강 오빠와 함께 하길 바라는 거예요?”“내가 뭘 바란다고?” 유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말했지, 넌 염주강과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당신은 그걸 원하지 않는 이상, 왜 또 자꾸 주강 오빠를 언급하는 거죠?”하영이 되물었다.유준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네 언행과 행동거지는 모두 염주강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잖아!”“이 일에 계속 집착할 거예요?” 하영은 화가 나서 가슴이 심하게 기복했다.“그래요, 그럼 당신이 바라는 대로 내일 당장 주강 오빠의 마음을 받아들일게요. 이러면 됐죠!”말이 끝나자, 하영은 벌떡 일어서더니 떠나려고 했다.유준은 하영의 말에 자극을 받아 마음속에 분노가 솟아올랐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방금 한 말, 다시 한번 말해봐?” 유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새까만 눈동자는 분노를 선명하게 드러냈다.하영도 화가
하영은 눈빛이 반짝였다. ‘이 남자는 지금 자신의 마음속에 여전히 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가?’하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유준은 계속해서 말했다.“시간을 좀 줘.”하영은 입술을 오므리며 눈물이 차올랐다.“당신이 평생 기억을 되찾을 수 없다면요?”유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한동안 하영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하영은 갑자기 입술을 구부리며 씁쓸하게 웃었다.“기억이 나지 않으면 나와 함께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유준은 여전히 침묵에 잠겼다.그도 하영과 다시 함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기억이 없는 유준은 지금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유준은 하영의 일을 한쪽에 놓고 싶었지만, 기범의 말은 또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하영을 붙잡지 않으면 그녀는 정말 염주강과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하영을 붙잡고 싶어도 유준은 두 사람이 예전에 어떤 사이였는지조차 몰랐다!하영이 어떤 사람인지, 유준은 분명히 알아내야 했다.결국 그는 자신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을 평생 곁에 둘 수가 없었다.하영은 연신 코웃음을 쳤다.“정유준, 당신은 자신의 생각조차 잘 모르죠? 잘 모르는 이상 날 건드리지 말았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난 당신이 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할 뿐이니까!”“그런 게 아니야.” 유준은 얼른 하영의 생각을 부인했다.“난 아무 여자나 찾아 자신의 생리적 수요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야.”하영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말했다.“도대체 어쩌자는 거죠?”“나도 잘 모르겠어.” 유준은 초조함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3개월의 시간을 줘.”하영은 남자를 향해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그게 무슨 뜻이죠?”“3개월 뒤, 만약 내가 여전히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또 너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더 이상 네 일에 간섭하지 않을게.”말을 마치자, 남자는 자신의 마음이 갑자기 텅 빈 것만 같았다.하영은 코끝이 찡해지더니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전에 찾아왔을 때, 유준은 신발장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똑똑히 보았다.유준은 자세히 살펴보았고, 그중 한 슬리퍼에 ‘캐리’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진 것을 발견했다.‘캐리는 또 누구야?’유준이 아는 바에 따르면, 하영의 곁에 남자라곤 주강과 진석뿐이었다.그러나 슬리퍼를 관찰해 보면, 한동안 사용된 게 분명했다.‘보아하니, 이 여자의 집에는 내가 본 적이 없는 한 남자가 자주 지내고 있었던 것 같군!’여기까지 생각하자, 유준은 눈을 들어 계단을 바라보았고, 마음속에는 분노가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어쩐지 오늘 나와 관계를 끊겠다고 하더라니, 곁에 이미 또 다른 남자가 있었던 거였어!’‘그럼 줄곧 아크로빌까지 쫓아온 난 또 뭐지?’‘나의 이런 행동은 그 여자의 눈에 완전히 바보처럼 보이는 거 아니야??’입술을 구부리고 자신을 비웃더니 유준은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별장을 떠났다.위층에서.하영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 전원을 켜자마자 세희에게 다섯 개의 전화가 온 것을 발견했다.‘지금 벌써 12시가 넘었는데, 세희는 왜 아직도 자지 않은 거지?’하영은 걱정을 하며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세희는 받지 않았다.그렇게 잠시 사색하다가 하영은 또 노지철에게 전화를 했다.노지철은 오히려 아주 빨리 전화를 받았다.하영은 얼른 물었다.“선생님, 세희 지금 선생님의 곁에 있는 건가요?”노지철은 침대에 앉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세희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그래.”하영은 어렴풋이 세희가 우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잔뜩 긴장을 하며 다시 물었다.“세희에게 무슨 일 있는 건가요? 나에게 연거푸 다섯 통의 전화나 걸었던데.”노지철은 두 무릎을 안고 있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세희야, 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엄마와 얘기를 할 건가?”세희는 코를 훌쩍이며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전화 주세요.”노지철은 세희에게 휴대전화를 건넸고, 세희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엄마...”하영은 다급한
“엄마.” 세희는 황급히 하영을 불렀다. “방금 왜 핸드폰을 끄고 있었어요?”하영은 멀리 떨어져 있는 세희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엄마 방금 샤워하고 있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다 나가서 충전하고 있었거든. 다음에 다신 그런 일 없을 거야.”세희는 그제야 안심하고 말했다. “네, 그럼 엄마도 잘 자요.”“그래, 사랑하는 우리 세희.”전화를 끊은 세희는 휴대폰을 노지철에게 돌려주었다.노지철은 굳은살이 가득 박힌 손으로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세희는 코끝이 또다시 찡해졌다.“할아버지, 저도 알아요. 이제 할아버지도 안심하고 주무세요.”노지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할아버지는 바로 옆방에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할아버지 불러.”“네.”노지철은 세희를 위해 이불을 잘 덮은 준 다음 침실을 떠났다.문이 닫힌 순간, 세희는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재빨리 일어섰다.그녀는 사방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정말 캐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야 다시 실망을 안고 침대에 누웠다.“캐리 아저씨...”세희는 속눈썹이 촉촉하게 젖은 채 눈을 감으며 몸을 웅크리더니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세희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그녀가 깊이 잠든 순간, 창문 밖에 한 줄기 그림자가 나타났다.캐리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세희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심지어 지워지지 않은 눈물 자국이 있었다.그는 손을 들어 허공에서 세희의 작은 얼굴을 가볍게 그렸다.‘세희야...’‘조금만 더 기다려.’‘조금만 더 지나면 아저씨는 널 만나러 올 수 있을 거야.’토요일.하영은 인나와 함께 쇼핑하러 가기로 약속했다.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기에 하영은 세준과 희민에게 가을 옷을 사주려고 했다.백화점에서 나온 하영은 또 인나와 함께 어린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하영은 먹을 것을 좀 사서 옷과 함께 아이들에게 보내주려고 했다.음식을 주문한 다음, 하영과 인나는 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