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눈빛이 반짝였다. ‘이 남자는 지금 자신의 마음속에 여전히 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가?’하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유준은 계속해서 말했다.“시간을 좀 줘.”하영은 입술을 오므리며 눈물이 차올랐다.“당신이 평생 기억을 되찾을 수 없다면요?”유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한동안 하영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하영은 갑자기 입술을 구부리며 씁쓸하게 웃었다.“기억이 나지 않으면 나와 함께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유준은 여전히 침묵에 잠겼다.그도 하영과 다시 함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기억이 없는 유준은 지금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유준은 하영의 일을 한쪽에 놓고 싶었지만, 기범의 말은 또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하영을 붙잡지 않으면 그녀는 정말 염주강과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하영을 붙잡고 싶어도 유준은 두 사람이 예전에 어떤 사이였는지조차 몰랐다!하영이 어떤 사람인지, 유준은 분명히 알아내야 했다.결국 그는 자신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을 평생 곁에 둘 수가 없었다.하영은 연신 코웃음을 쳤다.“정유준, 당신은 자신의 생각조차 잘 모르죠? 잘 모르는 이상 날 건드리지 말았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난 당신이 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할 뿐이니까!”“그런 게 아니야.” 유준은 얼른 하영의 생각을 부인했다.“난 아무 여자나 찾아 자신의 생리적 수요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야.”하영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말했다.“도대체 어쩌자는 거죠?”“나도 잘 모르겠어.” 유준은 초조함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3개월의 시간을 줘.”하영은 남자를 향해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그게 무슨 뜻이죠?”“3개월 뒤, 만약 내가 여전히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또 너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더 이상 네 일에 간섭하지 않을게.”말을 마치자, 남자는 자신의 마음이 갑자기 텅 빈 것만 같았다.하영은 코끝이 찡해지더니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전에 찾아왔을 때, 유준은 신발장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똑똑히 보았다.유준은 자세히 살펴보았고, 그중 한 슬리퍼에 ‘캐리’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진 것을 발견했다.‘캐리는 또 누구야?’유준이 아는 바에 따르면, 하영의 곁에 남자라곤 주강과 진석뿐이었다.그러나 슬리퍼를 관찰해 보면, 한동안 사용된 게 분명했다.‘보아하니, 이 여자의 집에는 내가 본 적이 없는 한 남자가 자주 지내고 있었던 것 같군!’여기까지 생각하자, 유준은 눈을 들어 계단을 바라보았고, 마음속에는 분노가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어쩐지 오늘 나와 관계를 끊겠다고 하더라니, 곁에 이미 또 다른 남자가 있었던 거였어!’‘그럼 줄곧 아크로빌까지 쫓아온 난 또 뭐지?’‘나의 이런 행동은 그 여자의 눈에 완전히 바보처럼 보이는 거 아니야??’입술을 구부리고 자신을 비웃더니 유준은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별장을 떠났다.위층에서.하영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 전원을 켜자마자 세희에게 다섯 개의 전화가 온 것을 발견했다.‘지금 벌써 12시가 넘었는데, 세희는 왜 아직도 자지 않은 거지?’하영은 걱정을 하며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세희는 받지 않았다.그렇게 잠시 사색하다가 하영은 또 노지철에게 전화를 했다.노지철은 오히려 아주 빨리 전화를 받았다.하영은 얼른 물었다.“선생님, 세희 지금 선생님의 곁에 있는 건가요?”노지철은 침대에 앉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세희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그래.”하영은 어렴풋이 세희가 우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잔뜩 긴장을 하며 다시 물었다.“세희에게 무슨 일 있는 건가요? 나에게 연거푸 다섯 통의 전화나 걸었던데.”노지철은 두 무릎을 안고 있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세희야, 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엄마와 얘기를 할 건가?”세희는 코를 훌쩍이며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전화 주세요.”노지철은 세희에게 휴대전화를 건넸고, 세희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엄마...”하영은 다급한
“엄마.” 세희는 황급히 하영을 불렀다. “방금 왜 핸드폰을 끄고 있었어요?”하영은 멀리 떨어져 있는 세희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엄마 방금 샤워하고 있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다 나가서 충전하고 있었거든. 다음에 다신 그런 일 없을 거야.”세희는 그제야 안심하고 말했다. “네, 그럼 엄마도 잘 자요.”“그래, 사랑하는 우리 세희.”전화를 끊은 세희는 휴대폰을 노지철에게 돌려주었다.노지철은 굳은살이 가득 박힌 손으로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세희는 코끝이 또다시 찡해졌다.“할아버지, 저도 알아요. 이제 할아버지도 안심하고 주무세요.”노지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할아버지는 바로 옆방에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할아버지 불러.”“네.”노지철은 세희를 위해 이불을 잘 덮은 준 다음 침실을 떠났다.문이 닫힌 순간, 세희는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재빨리 일어섰다.그녀는 사방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정말 캐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야 다시 실망을 안고 침대에 누웠다.“캐리 아저씨...”세희는 속눈썹이 촉촉하게 젖은 채 눈을 감으며 몸을 웅크리더니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세희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그녀가 깊이 잠든 순간, 창문 밖에 한 줄기 그림자가 나타났다.캐리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세희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심지어 지워지지 않은 눈물 자국이 있었다.그는 손을 들어 허공에서 세희의 작은 얼굴을 가볍게 그렸다.‘세희야...’‘조금만 더 기다려.’‘조금만 더 지나면 아저씨는 널 만나러 올 수 있을 거야.’토요일.하영은 인나와 함께 쇼핑하러 가기로 약속했다.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기에 하영은 세준과 희민에게 가을 옷을 사주려고 했다.백화점에서 나온 하영은 또 인나와 함께 어린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하영은 먹을 것을 좀 사서 옷과 함께 아이들에게 보내주려고 했다.음식을 주문한 다음, 하영과 인나는 룸에
세준이 대답했다.“인나 이모요.”유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우인나 씨의 목소리를 들었다고?”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영의 희미한 목소리가 유준의 귀에 들려왔다.“캐리를 보러 가려고?”‘캐리...’유준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어젯밤에 본 그 슬리퍼에 바로 캐리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지금 또 캐리를 언급하다니.’인나가 말했다.“그래, 만약 만날 수 있다면 너도 캐리를 꼭 만나고 싶어 할 거 아니야?”“당연하지, 우리 사이의 아쉬움은 이미 메울 수 없잖아. 만약 캐리를 만날 수 있다면, 나도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좀 더 기다려 보자. 만약 세희가 또 캐리를 본다면, 그때 우리도 얼른 가서 만나러 가자.”“좋아.”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유준은 두 손을 꼭 쥐었다.‘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지?’‘강하영으로 하여금 아쉬움을 느끼게 하다니??’“아빠.” 희민은 입을 열어 유준의 생각을 끊었다.“엄마도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우리 들어가서 엄마 찾고 싶어요.”유준은 입을 벌리며 대답을 하려 했지만, 세준이 오히려 먼저 입을 열었다.“어차피 밥 먹을 거니까 엄마와 이모랑 함께 먹어도 되잖아요.”말이 끝나자 세준은 유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하영 그들이 있는 룸으로 걸어갔다.문은 살짝 열려 있었기에 세준이 문을 밀고 들어왔을 때, 인나와 하영은 모두 깜짝 놀랐다.“세준아??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하영은 얼른 일어섰고, 아직 세준을 향해 걸어가기도 전에 뒤에 희민과 유준이 따라들어온 것을 보았다.그녀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눈빛은 놀라움에서 차가움으로 변했다.유준은 하영을 바라보았다.“아이들이 너와 함께 밥 먹으려고 해서. 내가 살게.”하영은 유준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이 남아서 밥을 먹겠다고 하니 그녀는 또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하영은 유준을 무시하며 두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자, 엄마 옆에 앉아.”두 아이는 하영의 손을 잡았고, 싱글벙글 웃으며 하영의 양쪽에 앉았다.인나
특히 캐리를 언급할 때, 인나는 유준의 안색이 점차 팽팽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그 두 눈동자에서 넘쳐흐르는 불쾌함은 더욱 선명했다.인나는 눈썹을 치켜들었다.‘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정유준이 지금 캐리 때문에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을걸!’‘대박이네!’‘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질투하다니!’‘하영과 아이들이 캐리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드러내게 해선 절대 안 돼!’식사 도중 유준은 화장실에 갔고 인나는 아이들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며 그들을 데리고 나갔다.세 사람이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자, 인나는 아이스크림을 파면서 물었다.“너희들은 엄마와 아빠가 재결합했으면 좋겠어?”세준과 희민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그들은 모두 인나가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모,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희민이 말했다.인나는 의아해하며 희민을 바라보았다.“야, 내가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이때 세준이 말했다.“우리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인나는 입가가 실룩거렸다.“넌 말을 꼭 듣기 싫게 하더라! 그래, 너희들 모두 알아차린 이상,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 난 너희들이 아빠 앞에서 캐리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일을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희민은 잠시 생각했다.“아빠가 캐리 아저씨를 질투하게 만들려고요?”“이모 정말 비열하네요. 세상 떠난 캐리 아저씨까지 이용하다니.” 세준도 참지 못하고 인나를 비아냥거렸다.인나는 아이스크림을 그들에게 건네주었다.“나 지금 선행을 하고 있는 거지 이용은 무슨! 너희들 정유준의 표정을 보지 못해서 그래! 하영의 이성 친구만 얘기하면 눈에서 불이 날 것 같다니깐!”세준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다.“아마 이런 방법으로 아빠를 자극하고 싶은 사람은 이모밖에 없을 거예요.”인나는 화가 나서 흥얼거렸다.“나 정말 그런 유치한 사람이 아니라고!”“아무튼 이건 이모가 생각해 낸 거 맞잖아요?” 세준이 받아치자 인나는 말문이 막혔다.그게 사실이었기에 인
그러나 이번에는 빈손으로 찾아왔다.하영은 펜을 내려놓고 일어섰다.“알았어요, 이따 내려갈게요.”아래층으로 내려간 하영은 거실로 들어서자 진석이 휴대전화를 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앞으로 다가가서 물었다.“뭐 하러 왔어요?”진석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눈을 들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하영아, 저녁에 시간 있어?”하영은 생각지도 않고 즉시 거절했다.“없어요!”“일단 너무 급하게 대답하지 마.”진석이 말했다.“너 데리고 갈 데가 있거든.”하영은 반감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당신과 그 어디도 가지 않을 거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굳이 이런 말을 하려는 거죠?”“만약 나와 함께 간다면 일부 사실을 알게 될 텐데, 그래도 거절할 거야?”진석이 웃으며 물었다.하영은 의심을 하며 진석을 바라보았다.“무슨 사실인데요? 당신이 직접 말하는 게 더 낫지 않나요?”“네가 직접 가봐야 알 수 있어. 내가 말하면 의미가 없거든.”진석이 대답했다.“하지만 이건 틀림없이 네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야. 나도 이로 인해 네 요구를 하나 들어줄 수 있지. 만약 네가 나와 함께 간다면, 난 염주강을 풀어주겠어. 어때?”하영은 동공이 갑자기 움츠러들었다.“주강 오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진석은 가볍게 웃었다.“걱정하지 마. 그 사람 지금 별일 없으니까. 단지 밥을 몇 끼 먹지 않았을 뿐이야.”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부진석, 당신 도대체 왜 계속 이런 비겁한 짓을 하는 거죠?! 주강 오빠는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았는데, 왜 억울한 사람을 잡아간 거냐고요?”진석은 미소를 점차 거두었다.“이곳에서 술을 마시던 그날 밤, 염주강은 후에 날 그의 별장으로 불렀어. 만약 중요한 일이 있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아쉽게도 염주강은 단지 핑계를 대고 나를 네 집에서 쫓아내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 이유는 심지어 너와 정유준에게 공간을 남겨주기 위해서였고. 하영아, 이건 내가 화를 낼만 하지 않아?”“이까짓 일 가지고 주강
주강은 눈썹이 살짝 떨리더니 눈을 번쩍 뜨고 진석의 시선을 마주했다.그는 따가울 정도로 말라터진 입술을 움직이며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하영 씨를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 거죠?”진석은 담담하게 주강을 바라보았다.“이건 염 대표님이 알 바가 아니에요. 내가 저녁에 하영과 함께 나가면, 그때 가서 경호원더러 당신을 내보내라고 분부할 거예요. 요 며칠 당신도 확실히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것도 다 염 대표님이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해서 그런 거잖아요? 이제 내가 어떻게 복수하는지도 봤겠다, 다음에는 더 이상 이런 심심한 짓거리하지 마요.”“정말 비겁하네요.” 줄곧 겸손하고 매너 있던 주강은 진석의 수단에 분노를 느끼며 야비한 말을 했다.“핑계를 찾아 당신을 떠나게 만든 사람은 나인데, 왜 하영 씨를 찾는 거죠?!”“처음부터 내가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 아니었으니까요. 오늘 밤, 난 나만의 계획이 있어요.”말이 끝나자, 진석은 몸을 숙이며 옅은 갈색의 눈동자로 조용히 주강을 바라보았다.“하마터면 깜박할 뻔했네요. 난 당신을 집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재밌는 연극에 초대하는 거예요.”주강은 진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도대체 뭘 하려는 거죠?!”“급하긴, 오늘 밤에 다 알게 될 거예요. 일단은 기대해 봐도 좋아요. 비록 당신은 단지 방관자일 뿐이지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다는 것만 꼭 기억해요.”이 말을 한 뒤, 진석은 일어나 다락방을 떠났다.주강도 자신의 몸에 묶인 밧줄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는 쓸데없는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그는 냉정을 되찾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진석이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마음속으로 하영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주강은 갑자기 진석이 떠나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그 남자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하영 씨일 거야.’그리고 지금 하영 곁에는 그를 제외하면 오직 유준밖에 없었다.주강의 눈빛은 점차 엄숙해졌다.‘부진석은 지금 정유준에게 손을 대려 하고 있는 것 같군!’핸드폰은
하영을 자신의 다리에 올려놓은 후, 진석은 휴대전화를 꺼내 하영의 깊이 잠든 모습을 찍어 유준에게 보냈다.그는 주소를 입력하며 또 한 줄의 문자를 보냈다.[오늘 밤 12시,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난 하영을 데리고 김제를 떠날 거예요.]이 문자를 받았을 때, 유준은 마침 회사 일 마치고 별장으로 돌아왔다.진석이 하영의 사진을 보낸 것을 보고 유준은 즉시 이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이 여자는 절대로 잠들 리가 없어. 그럼 부진석이 약을 타서 쓰러뜨린 것일지도 몰라!’유준은 가슴에서 분노가 솟구쳤다.‘부진석, 지금 죽음을 자초하고 있군!!’그는 진석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오히려 상대방의 전원이 꺼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유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이 사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지?!’지금 유준이 가면 결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심지어 그는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그러나 만약 가지 않는다면, 진석은 정말 하영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유준은 음침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망설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즉시 몸을 돌려 그곳에 가서 하영을 찾으려 했다.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세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유준은 발걸음을 문득 멈추며 감정을 억지로 억제했고 잠시 한숨을 돌린 다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았다.“무슨 일 있어?”“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가려고요?” 세준이 우유를 들고 물었다.유준은 설명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세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눈시울은 또 왜 그렇게 빨간 거예요?”유준은 세준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두 아이는 밤새 잠을 설칠 것이다.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차분하게 말했다.“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지금 가서 상황을 좀 확인해야 하거든.”“정말 별일 없는 거예요?” 세준은 의심의 눈초리로 유준을 훑어보았다.“먼저 나갈 테니까 넌 일찍 자.”말을 마친 후, 세준의 대답을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