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찾아왔을 때, 유준은 신발장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똑똑히 보았다.유준은 자세히 살펴보았고, 그중 한 슬리퍼에 ‘캐리’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진 것을 발견했다.‘캐리는 또 누구야?’유준이 아는 바에 따르면, 하영의 곁에 남자라곤 주강과 진석뿐이었다.그러나 슬리퍼를 관찰해 보면, 한동안 사용된 게 분명했다.‘보아하니, 이 여자의 집에는 내가 본 적이 없는 한 남자가 자주 지내고 있었던 것 같군!’여기까지 생각하자, 유준은 눈을 들어 계단을 바라보았고, 마음속에는 분노가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어쩐지 오늘 나와 관계를 끊겠다고 하더라니, 곁에 이미 또 다른 남자가 있었던 거였어!’‘그럼 줄곧 아크로빌까지 쫓아온 난 또 뭐지?’‘나의 이런 행동은 그 여자의 눈에 완전히 바보처럼 보이는 거 아니야??’입술을 구부리고 자신을 비웃더니 유준은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별장을 떠났다.위층에서.하영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 전원을 켜자마자 세희에게 다섯 개의 전화가 온 것을 발견했다.‘지금 벌써 12시가 넘었는데, 세희는 왜 아직도 자지 않은 거지?’하영은 걱정을 하며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세희는 받지 않았다.그렇게 잠시 사색하다가 하영은 또 노지철에게 전화를 했다.노지철은 오히려 아주 빨리 전화를 받았다.하영은 얼른 물었다.“선생님, 세희 지금 선생님의 곁에 있는 건가요?”노지철은 침대에 앉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세희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그래.”하영은 어렴풋이 세희가 우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잔뜩 긴장을 하며 다시 물었다.“세희에게 무슨 일 있는 건가요? 나에게 연거푸 다섯 통의 전화나 걸었던데.”노지철은 두 무릎을 안고 있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세희야, 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엄마와 얘기를 할 건가?”세희는 코를 훌쩍이며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전화 주세요.”노지철은 세희에게 휴대전화를 건넸고, 세희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엄마...”하영은 다급한
“엄마.” 세희는 황급히 하영을 불렀다. “방금 왜 핸드폰을 끄고 있었어요?”하영은 멀리 떨어져 있는 세희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엄마 방금 샤워하고 있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다 나가서 충전하고 있었거든. 다음에 다신 그런 일 없을 거야.”세희는 그제야 안심하고 말했다. “네, 그럼 엄마도 잘 자요.”“그래, 사랑하는 우리 세희.”전화를 끊은 세희는 휴대폰을 노지철에게 돌려주었다.노지철은 굳은살이 가득 박힌 손으로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세희는 코끝이 또다시 찡해졌다.“할아버지, 저도 알아요. 이제 할아버지도 안심하고 주무세요.”노지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할아버지는 바로 옆방에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할아버지 불러.”“네.”노지철은 세희를 위해 이불을 잘 덮은 준 다음 침실을 떠났다.문이 닫힌 순간, 세희는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재빨리 일어섰다.그녀는 사방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정말 캐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야 다시 실망을 안고 침대에 누웠다.“캐리 아저씨...”세희는 속눈썹이 촉촉하게 젖은 채 눈을 감으며 몸을 웅크리더니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세희는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그녀가 깊이 잠든 순간, 창문 밖에 한 줄기 그림자가 나타났다.캐리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세희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심지어 지워지지 않은 눈물 자국이 있었다.그는 손을 들어 허공에서 세희의 작은 얼굴을 가볍게 그렸다.‘세희야...’‘조금만 더 기다려.’‘조금만 더 지나면 아저씨는 널 만나러 올 수 있을 거야.’토요일.하영은 인나와 함께 쇼핑하러 가기로 약속했다.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기에 하영은 세준과 희민에게 가을 옷을 사주려고 했다.백화점에서 나온 하영은 또 인나와 함께 어린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하영은 먹을 것을 좀 사서 옷과 함께 아이들에게 보내주려고 했다.음식을 주문한 다음, 하영과 인나는 룸에
세준이 대답했다.“인나 이모요.”유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우인나 씨의 목소리를 들었다고?”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영의 희미한 목소리가 유준의 귀에 들려왔다.“캐리를 보러 가려고?”‘캐리...’유준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어젯밤에 본 그 슬리퍼에 바로 캐리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지금 또 캐리를 언급하다니.’인나가 말했다.“그래, 만약 만날 수 있다면 너도 캐리를 꼭 만나고 싶어 할 거 아니야?”“당연하지, 우리 사이의 아쉬움은 이미 메울 수 없잖아. 만약 캐리를 만날 수 있다면, 나도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좀 더 기다려 보자. 만약 세희가 또 캐리를 본다면, 그때 우리도 얼른 가서 만나러 가자.”“좋아.”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유준은 두 손을 꼭 쥐었다.‘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지?’‘강하영으로 하여금 아쉬움을 느끼게 하다니??’“아빠.” 희민은 입을 열어 유준의 생각을 끊었다.“엄마도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우리 들어가서 엄마 찾고 싶어요.”유준은 입을 벌리며 대답을 하려 했지만, 세준이 오히려 먼저 입을 열었다.“어차피 밥 먹을 거니까 엄마와 이모랑 함께 먹어도 되잖아요.”말이 끝나자 세준은 유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하영 그들이 있는 룸으로 걸어갔다.문은 살짝 열려 있었기에 세준이 문을 밀고 들어왔을 때, 인나와 하영은 모두 깜짝 놀랐다.“세준아??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하영은 얼른 일어섰고, 아직 세준을 향해 걸어가기도 전에 뒤에 희민과 유준이 따라들어온 것을 보았다.그녀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눈빛은 놀라움에서 차가움으로 변했다.유준은 하영을 바라보았다.“아이들이 너와 함께 밥 먹으려고 해서. 내가 살게.”하영은 유준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이 남아서 밥을 먹겠다고 하니 그녀는 또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하영은 유준을 무시하며 두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자, 엄마 옆에 앉아.”두 아이는 하영의 손을 잡았고, 싱글벙글 웃으며 하영의 양쪽에 앉았다.인나
특히 캐리를 언급할 때, 인나는 유준의 안색이 점차 팽팽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그 두 눈동자에서 넘쳐흐르는 불쾌함은 더욱 선명했다.인나는 눈썹을 치켜들었다.‘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정유준이 지금 캐리 때문에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을걸!’‘대박이네!’‘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질투하다니!’‘하영과 아이들이 캐리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드러내게 해선 절대 안 돼!’식사 도중 유준은 화장실에 갔고 인나는 아이들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며 그들을 데리고 나갔다.세 사람이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자, 인나는 아이스크림을 파면서 물었다.“너희들은 엄마와 아빠가 재결합했으면 좋겠어?”세준과 희민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그들은 모두 인나가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모,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희민이 말했다.인나는 의아해하며 희민을 바라보았다.“야, 내가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이때 세준이 말했다.“우리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인나는 입가가 실룩거렸다.“넌 말을 꼭 듣기 싫게 하더라! 그래, 너희들 모두 알아차린 이상,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 난 너희들이 아빠 앞에서 캐리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일을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희민은 잠시 생각했다.“아빠가 캐리 아저씨를 질투하게 만들려고요?”“이모 정말 비열하네요. 세상 떠난 캐리 아저씨까지 이용하다니.” 세준도 참지 못하고 인나를 비아냥거렸다.인나는 아이스크림을 그들에게 건네주었다.“나 지금 선행을 하고 있는 거지 이용은 무슨! 너희들 정유준의 표정을 보지 못해서 그래! 하영의 이성 친구만 얘기하면 눈에서 불이 날 것 같다니깐!”세준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다.“아마 이런 방법으로 아빠를 자극하고 싶은 사람은 이모밖에 없을 거예요.”인나는 화가 나서 흥얼거렸다.“나 정말 그런 유치한 사람이 아니라고!”“아무튼 이건 이모가 생각해 낸 거 맞잖아요?” 세준이 받아치자 인나는 말문이 막혔다.그게 사실이었기에 인
그러나 이번에는 빈손으로 찾아왔다.하영은 펜을 내려놓고 일어섰다.“알았어요, 이따 내려갈게요.”아래층으로 내려간 하영은 거실로 들어서자 진석이 휴대전화를 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앞으로 다가가서 물었다.“뭐 하러 왔어요?”진석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눈을 들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하영아, 저녁에 시간 있어?”하영은 생각지도 않고 즉시 거절했다.“없어요!”“일단 너무 급하게 대답하지 마.”진석이 말했다.“너 데리고 갈 데가 있거든.”하영은 반감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당신과 그 어디도 가지 않을 거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굳이 이런 말을 하려는 거죠?”“만약 나와 함께 간다면 일부 사실을 알게 될 텐데, 그래도 거절할 거야?”진석이 웃으며 물었다.하영은 의심을 하며 진석을 바라보았다.“무슨 사실인데요? 당신이 직접 말하는 게 더 낫지 않나요?”“네가 직접 가봐야 알 수 있어. 내가 말하면 의미가 없거든.”진석이 대답했다.“하지만 이건 틀림없이 네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야. 나도 이로 인해 네 요구를 하나 들어줄 수 있지. 만약 네가 나와 함께 간다면, 난 염주강을 풀어주겠어. 어때?”하영은 동공이 갑자기 움츠러들었다.“주강 오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진석은 가볍게 웃었다.“걱정하지 마. 그 사람 지금 별일 없으니까. 단지 밥을 몇 끼 먹지 않았을 뿐이야.”하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부진석, 당신 도대체 왜 계속 이런 비겁한 짓을 하는 거죠?! 주강 오빠는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았는데, 왜 억울한 사람을 잡아간 거냐고요?”진석은 미소를 점차 거두었다.“이곳에서 술을 마시던 그날 밤, 염주강은 후에 날 그의 별장으로 불렀어. 만약 중요한 일이 있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아쉽게도 염주강은 단지 핑계를 대고 나를 네 집에서 쫓아내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 이유는 심지어 너와 정유준에게 공간을 남겨주기 위해서였고. 하영아, 이건 내가 화를 낼만 하지 않아?”“이까짓 일 가지고 주강
주강은 눈썹이 살짝 떨리더니 눈을 번쩍 뜨고 진석의 시선을 마주했다.그는 따가울 정도로 말라터진 입술을 움직이며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하영 씨를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 거죠?”진석은 담담하게 주강을 바라보았다.“이건 염 대표님이 알 바가 아니에요. 내가 저녁에 하영과 함께 나가면, 그때 가서 경호원더러 당신을 내보내라고 분부할 거예요. 요 며칠 당신도 확실히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것도 다 염 대표님이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해서 그런 거잖아요? 이제 내가 어떻게 복수하는지도 봤겠다, 다음에는 더 이상 이런 심심한 짓거리하지 마요.”“정말 비겁하네요.” 줄곧 겸손하고 매너 있던 주강은 진석의 수단에 분노를 느끼며 야비한 말을 했다.“핑계를 찾아 당신을 떠나게 만든 사람은 나인데, 왜 하영 씨를 찾는 거죠?!”“처음부터 내가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 아니었으니까요. 오늘 밤, 난 나만의 계획이 있어요.”말이 끝나자, 진석은 몸을 숙이며 옅은 갈색의 눈동자로 조용히 주강을 바라보았다.“하마터면 깜박할 뻔했네요. 난 당신을 집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재밌는 연극에 초대하는 거예요.”주강은 진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도대체 뭘 하려는 거죠?!”“급하긴, 오늘 밤에 다 알게 될 거예요. 일단은 기대해 봐도 좋아요. 비록 당신은 단지 방관자일 뿐이지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다는 것만 꼭 기억해요.”이 말을 한 뒤, 진석은 일어나 다락방을 떠났다.주강도 자신의 몸에 묶인 밧줄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는 쓸데없는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그는 냉정을 되찾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진석이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마음속으로 하영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주강은 갑자기 진석이 떠나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그 남자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하영 씨일 거야.’그리고 지금 하영 곁에는 그를 제외하면 오직 유준밖에 없었다.주강의 눈빛은 점차 엄숙해졌다.‘부진석은 지금 정유준에게 손을 대려 하고 있는 것 같군!’핸드폰은
하영을 자신의 다리에 올려놓은 후, 진석은 휴대전화를 꺼내 하영의 깊이 잠든 모습을 찍어 유준에게 보냈다.그는 주소를 입력하며 또 한 줄의 문자를 보냈다.[오늘 밤 12시,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난 하영을 데리고 김제를 떠날 거예요.]이 문자를 받았을 때, 유준은 마침 회사 일 마치고 별장으로 돌아왔다.진석이 하영의 사진을 보낸 것을 보고 유준은 즉시 이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이 여자는 절대로 잠들 리가 없어. 그럼 부진석이 약을 타서 쓰러뜨린 것일지도 몰라!’유준은 가슴에서 분노가 솟구쳤다.‘부진석, 지금 죽음을 자초하고 있군!!’그는 진석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오히려 상대방의 전원이 꺼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유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이 사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지?!’지금 유준이 가면 결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심지어 그는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그러나 만약 가지 않는다면, 진석은 정말 하영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유준은 음침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망설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즉시 몸을 돌려 그곳에 가서 하영을 찾으려 했다.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세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유준은 발걸음을 문득 멈추며 감정을 억지로 억제했고 잠시 한숨을 돌린 다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았다.“무슨 일 있어?”“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가려고요?” 세준이 우유를 들고 물었다.유준은 설명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세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눈시울은 또 왜 그렇게 빨간 거예요?”유준은 세준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두 아이는 밤새 잠을 설칠 것이다.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차분하게 말했다.“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지금 가서 상황을 좀 확인해야 하거든.”“정말 별일 없는 거예요?” 세준은 의심의 눈초리로 유준을 훑어보았다.“먼저 나갈 테니까 넌 일찍 자.”말을 마친 후, 세준의 대답을 기다
“그곳의 CCTV를 한 번 돌파해 볼게. 그럼 아무것도 모른 채 조마조마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세준이 대답했다.“응, 알겠어!”다른 한편.유준은 액셀을 세게 밟으며 심지어 빨간불도 기다리지 않고 줄곧 항구로 달려갔다.도착한 후, 유준은 차에서 눈앞의 크고 등불이 환한 유람선을 보며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승선구를 지키는 경호원을 제외하고는 사방에 그 어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이것은 진석이 이 유람선을 빌려 일부러 유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서늘한 강가의 바람이 불어오자, 유준의 검은 트렌치코트는 바람에 미친 듯이 흩날리기 시작했다.유준은 고개를 살짝 돌려 사방을 바라보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핸드폰을 확인하자, 몰래 그를 따라오던 경호원이 이미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고, 유준은 그제야 승선구를 향해 걸어갔다.몇 명의 경호원 앞으로 걸어가며 그중 한 경호원이 유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수색에 협조하셨으면 좋겠습니다.”유준의 검은 눈동자는 차가워졌지만, 매우 협조적이게 두 손을 들어 상대방더러 몸수색을 하게 했다.휴대전화 외에 다른 위험한 물건이 없자, 경호원은 유준에게 길을 비켜주었다.이때, 유람선에서.소파에 누운 하영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그녀의 옆에 앉은 진석은 이를 보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하영아?”진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영의 어지러운 머릿속이 갑자기 맑아졌다.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아주 낯선 환경이었고 장식품으로 보아 어느 카지노인 것 같았다.사방에는 10여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인수가 너무 많아 하영은 은근히 불안해졌다.그녀는 손을 들어 머리를 받치며 미간을 찌푸리고 열심히 몸을 지탱했다.이를 본 진석은 얼른 손을 내밀어 하영을 부축하려고 했다.팔에서 따뜻한 느낌이 전해오자, 하영은 눈을 돌려 바라보았는데 진석의 손인 것을 보고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재빨리 그와 거리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