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유준은 유유히 눈을 뜨며 사방을 바라보았다.하영이 핏발이 선 눈으로 걱정스럽게 침대 옆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며 유준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커튼 밖의 이미 밝은 날을 힐끗 보고는 억지로 몸을 받치고 일어나 앉았다.하영은 얼른 손을 뻗어 부축했다.“누워 있어요, 일어나지 말고. 지금 몸은 좀 어때요? 머리 아직도 아파요?”유준은 하영의 손에 눌려 다시 누웠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나 어젯밤에 기절한 거야?”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나와 세희는 얼마나 많이 놀랐는지. 의사 선생님을 불렀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링거만 놓아주고 갔어요.”“응.”유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는 어젯밤 기절하기 전, 하영에 관한 몇 가지의 추억이 머릿속에 튀어나온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다만 기억 속의 하영은 옷을 안고 벌거벗은 몸으로 욕실로 들어갔다.그리고 그 자신은 침대에 차갑게 앉아 몇 번 보고는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그러나 이런 장면은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유준 역시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여기까지 생각하니, 유준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마음이 무척 아팠고, 이런 느낌은 그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우리 예전에 어떻게 만난 사이지?”유준은 잠긴 목소리로 이 문제를 물었고, 하영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왜 갑자기 이걸 물어봐요?” 하영은 이해하지 못했다.“뭐라고 생각이 난 거예요?”유준은 검은 눈동자를 들어 하영과 눈을 마주쳤다.“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안 사이인지만 말해줘.”유준이 포기하지 않고 묻는 것을 보고 하영은 멈칫하더니 곧 자신의 귓불을 어루만졌다.“내 귓불에 주사점이 하나 있는데...”약 한 시간가량 지나서야 하영은 그들이 그때 서로를 알아봤지만 또 서로를 오해한 일을 똑똑히 설명할 수 있었다.유준의 눈동자는 의혹에서 선명한 놀라움으로 변했다.“그래서, 넌 그때 거의 3년이란 시간 동안 그 아이의 대체품이 되어준 거야?” 유준은 가
하영이 말했다.“세희와 며칠 좀 더 같이 있지 않을 거예요?”“세희의 상태로 내가 어떻게 감히 내 곁에 남겨두겠어.” 유준의 목소리에는 씁쓸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하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비행기표 세 장을 예약했다.점심 시간, 식사를 한 후, 하영과 유준은 세희를 데리고 함께 공항으로 떠났다.경호원도 마침 세희의 소지품을 그들에게 전달하였다.탑승하기 전, 하영은 대량의 경호원이 구석구석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이런 움직임에 하영은 의혹의 눈초리로 유준을 바라보았다.남자는 담담하게 설명했다.“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이 비행기에는 내 사람밖에 없어.”“다른 위험도 검사했어요?”“음.”유준은 세희의 손을 잡고 입구에 들어섰다.“전부 검사했어.”설령 유준이 이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하영은 여전히 안심하지 못하고 사방을 자세히 관찰했다.그 어떤 수상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하자, 하영은 그제야 마음을 약간 내려놓고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그들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 진석이 한쪽 구석에서 나왔다.그는 눈빛이 어두컴컴한 채 하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애잔했고 슬픔이 솟아올랐다.“선생님, 움직일까요?” 진석의 곁에 서 있던 경호원이 물었다.“하영은 지금 그 남자와 함께 있으니 지금 손을 쓰면 하영도 위험해질 거야.” 하영이 따라가자, 진석은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이 일깨워 주었다. “선생님, 이번은 그야말로 아주 얻기 어려운 기회입니다!”“내가 왜 모르겠어?” 진석이 말했다. “하지만 난 하영을 잃을 수 없어.”경호원은 은근히 한숨을 내쉬었다.‘보아하니 그 어떤 남자도 사랑의 고비를 넘을 수 없을 것 같군.’비록 경호원은 진석을 여러 해 동안 따라다녔지만,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담담해 보이는 진석조차 한 여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니.오랫동안 서 있다가 진석은 그제야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 채 시선을 거두었다.“가자.”“네, 선생님.”비행기에서.하영은 밤새 자지 못
이와 동시, Tyc에서.인나는 점심 휴식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예준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그를 보자, 인나는 놀라서 소리쳤다.“예준 오빠?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음, 하영이 찾으러 왔는데.” 예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일어서서 인나의 뒤를 바라보았다.“하영이는?”“하영이가 말하지 않았나요?” 인나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예준에게 건네주었다.“지금 정 대표님과 함께 세희를 지철 선생님에게 데려다주러 갔어요.”예준은 물을 받았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그건 아닐걸요.”인나도 잘 몰랐다.“아직 화해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 예준 오빠는 오늘 무슨 일로 하영을 찾아온 거죠?”예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음, 하영에게서 그녀가 수집한 부진석의 범죄 증거를 받아가려고. 위에서 사람이 내려왔는데, 내가 특별히 찾아가서 부탁을 해서 내일 한 번 만날 수 있을 거야.”“똑똑똑-”예준의 말이 끝나자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인나는 문을 향해 외쳤다.“들어와.”문이 열리자 진연월이 나타났다.그녀는 인나에게 인사를 한 뒤 예준에게 눈길을 돌렸다.“소 대표님도 계실 줄은 몰랐는데, 내가 방해했네요.”인나는 일어서서 진연월을 맞이했다.“방해는 무슨. 우리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얼른 들어와서 앉아요.”진연월은 대범하게 걸어 들어가더니 예준 곁에 있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그러자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계속 해요. 날 무시하면 되니까.”예준은 진연월을 바라보았다.“진 사장님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인데, 우리가 또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어요?”예준은 진연월에 대해 적의가 있었다. 왜냐하면 지난번 유준이 하영을 끌고 나갔을 때, 진연월이 그를 막았기 때문이다.인나는 이 상황을 보고 얼른 분위기를 완화시켰다.“그 뭐지, 예준 오빠, 진 사장님은 우리의 편이니까 괜찮아요.”진연월은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눈썹을 치켜세웠다.“소 대표님, 설마 나에게 무슨
“소 대표님이 지금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틀림없이 우리 보스가 도대체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악당인지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죠.”진연월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예준은 입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연월이 계속 말했다.“이 말밖에 해줄 수가 없네요. 우리 보스께서 만약 무슨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굳이 오늘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또 인력과 재력을 들여 도련님을 구하실 필요도 없었겠죠.”인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렇게 말할수록 그 보스의 생각을 더 모르겠네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구하다니, 그것도 단지 그 사람이 정 대표님이기 때문에??”진연월은 이런저런 질문에 인내심이 사라졌다.“이런 일들은 나중에 보스를 만날 때 다 알게 될 거예요. 난 보스의 명령 없이는 알고 있어도 말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이것만 알면 돼요. 우리는 도련님을 해치지 않을 것이고, 또 도련님 곁의 그 어떤 사람도 해치지 않을 것이란 것을요.”진연월의 말에 사무실은 침묵에 잠겼다.한참 후에 예준은 그제야 말했다.“그래서,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요?”“네.” 진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모두 도련님에게 맡기면 돼요.”말을 마치자 진연월은 부채를 활짝 펴고 부채질을 했다.“자, 본론으로 들어가죠. 도련님과 강 사장님은 이미 김제를 떠났어요. 인나 씨, 이제 우리 다음 계획을 상의할 수 있어요.”예준은 의아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두 사람 사이에 계획이 있다니? 그게 무슨 계획이지?”인나는 입을 삐죽거렸다.“정 대표님의 남자로서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계획 말고 뭐가 더 있겠어요?”‘여자의 화제에 난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겠군.’저녁 무렵, 하영과 유준은 세희를 데리고 비행기에서 내렸다.공항을 나서자마자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다.차에 오른 후, 빗줄기는 여전히 매우 컸고, 경호원은 유준에게 항공편이 결항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유준이 물었다.“요 며칠의 날씨는?”“앞으로 며칠 동안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향기로운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그들 앞에는 이미 음식 한 상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하영은 뒤따라 들어온 노지철을 바라보았고, 손님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노지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니 너희들이 마침 이쯤에 도착할 것 같아 요리 좀 했다.”유준의 눈동자에는 놀란 기운이 번쩍였다.“세희가 선생님께 저희들이 오늘 온다고 말씀드린 건가요?”“아니요!” 세희는 얼른 대답했다.“나 할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의 능력은 이렇게 대단하시다니깐요! 계산도 엄청 정확하시고요!”노지철의 능력을 언급하자, 세희는 자랑스럽게 작은 턱을 들어올렸다.그 모습에 뭇사람들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노지철은 그들을 자리에 앉힌 다음 또 뜨거운 물 한 잔씩 따라 주었다.“먼저 뜨거운 물부터 좀 마셔. 생선국을 담으면 바로 밥 먹을 수 있다.”말이 끝나자, 노지철은 또 부랴부랴 주방으로 걸어갔다.유준의 시선은 거실 창문에 떨어졌다.빗물이 창문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유리를 따라 빠르게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오늘 밤은 여기에서 잘 수 없어.”하영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아직도 이곳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거예요?”유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이런 주제조차 분간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야. 이번에 내리는 비가 너무 커서 산사태를 일으키기 쉽거든.”하영은 유준의 말에 깜짝 놀라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고, 마음속으로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게다가 하영은 산사태를 겪은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선생님께 말씀드릴까요? 저녁에 우리 먼저 선생님과 세희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하룻밤 보내요.” 하영은 고개를 돌려 유준에게 물었다.“응.” 유준이 대답했다.“밥 먹고 바로 떠나자.”말하던 참에 노지철은 밥과 생선국을 들고 들어왔다.하영은 얼른 일어나서 받으며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자리에 앉은 후, 하영은 유준을 바라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선생님, 오
노지철은 바로 말문이 막혔다.“세희야, 자연은 그만의 법칙이 있으니 나도 만능이 아니야. 게다가 난 귀신을 상대하고 있단 것을 똑똑히 알아둬.”세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그러니까 할아버지도 계산해 내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거네요?”노지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도 양보를 하려 하지 않자, 하영은 유준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당신의 경호원들이 줄곧 문밖을 지키고 있잖아요. 만약 무슨 상황이라도 생기면 그들더러 가장 먼저 긴급 조치를 취하게 할 순 없나요?”“여기에 남고 싶어?” 유준은 불쾌하게 하영을 바라보며 물었다.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세희가 가려 하지 않으니 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요. 그냥 이곳에 남을래요.”모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유준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저녁 10시 30분.유준은 거실에 앉아 영상 회의를 마치자마자, 창밖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눈동자를 움츠리더니 즉시 위험을 감지하며 고개를 들어 칠흑 같은 창밖을 바라보았다.유준뿐만 아니라 위층에 있던 하영도 바깥의 동정을 들었고, 심지어 침대까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하영은 놀라서 얼른 깊이 잠든 세희를 안았는데 신발도 신을 겨를 없이 맨발로 위층으로 뛰어내려갔다.계단 모퉁이에서 유준도 마침 위층으로 달려갔고, 두 사람은 정면으로 부딪쳤다.하영을 마주할 때, 유준은 약간 멈칫했다. 그 순수한 눈동자에 공포가 넘쳐흐르는 것을 보며 그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긴장해졌다.유준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세희를 안으며 하영에게 말했다.“아래층으로 내려가. 경호원은 이미 대기 중이니 바로 떠날 수 있어!”“좋아요...”하영은 유준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하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또 발걸음을 멈추었다.“유준 씨!”하영은 당황해하며 소리쳤다.“선생님은 아직 위층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어요. 먼저 세희를 데리고 차에 타요. 난 선생님 찾으러 갈게요!”유준에서 대답하기도 전에 하영은 몸을 돌려 또다시 위층으로 달려갔다.밖에서 점
그 위에는 여전히 하영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뒤에는 세희의 가슴 찢어지는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앞에는 산사태가 들이닥치기 직전이었다.‘정말 강하영을 버리고 혼자 떠날 거야?’기억 속 하영이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는 장면에 유준의 마음은 은근히 아팠다.‘강하영을 버리고 혼자 떠나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만약 그렇게 한다면, 난 틀림없이 후회할 거야!’유준은 경호원의 손을 힘껏 뿌리치며 다리를 들어 위층으로 돌진하려 했다.그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유준을 바짝 따라갔고, 유준의 곁으로 걸어가는 순간, 그들은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도련님!”말이 끝나자 그들은 손을 들어 날렵하게 유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순간, 유준은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곧장 쓰러졌다.경호원들은 재빠르게 유준을 차 안으로 부축했고, 차 안의 세희는 놀라서 쓰러진 유준을 바라보며 소리쳤다.“우리 아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작은 아가씨, 도련님은 잠시 기절하셨을 뿐이니 곧 깨어나실 겁니다. 저희는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세희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나 가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 아직 안에 있단 말이야!!”경호원은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차에 시동을 걸더니 재빨리 이곳을 떠났다.그러나 경호원들이 사람들 데리고 떠나자마자, 하영은 발목을 삐끗한 노지철을 부축하며 방에서 나왔다.계단을 내려갈 때, 옆방에서 갑자기 무언가 부딪치는 굉음이 들려왔다.지면이 한바탕 흔들리면서 하영은 하마터면 제대로 서지 못하고 계단에서 떨어질 뻔했다.그녀가 애써 몸을 진정시키자, 새하얀 작은 얼굴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나 상관하지 말고 먼저 내려가.” 노지철은 하영을 가볍게 떠밀며 말했다.“그건 안 됩니다, 선생님!” 하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좀만 더 버티세요. 차에 타면 우리도 이제 안전해질 거예요.”하영은 더 이상 노지철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벽에 기댄 채 가장 빠른
유준은 세희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하영이 사라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마음도 알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유준은 휴대전화를 찾아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가장 빠른 시간내에 사람을 배치하여 노지철이 사는 마을로 가서 상황을 살펴보게 했다.동시에 그는 방에 세희를 지킬 사람을 배치한 다음, 홀로 마을에 찾아가려 했다.안배를 마친 후, 유준은 세희 앞에 가서 몸을 구부렸다.그는 두 손으로 세희의 작은 두 손을 가볍게 잡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꼭 네 엄마를 데려올게. 그리고 지철 할아버지도.”세희는 고개를 홱 돌리며 유준을 보려 하지 않으려 했다.유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세희의 작은 손을 놓고 일어서더니 곧장 룸을 떠났다.한 시간 후, 유준과 경호원이 마을에 도착했다.흐린 하늘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빗줄기는 어젯밤처럼 억수로 쏟아지지 않았다.한눈에 바라보니 마을의 모든 농작물은 이미 물에 잠겼고, 집은 무너져 산산조각이 났다.마을 어귀는 노지철의 집과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차는 폐허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에 유준은 차에서 내려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고인 물의 깊이는 발목을 넘지 않았지만 노란 색의 각종 부유물로 가득 찬 더러운 물을 보며 유준은 안색은 살짝 어두워지더니 직접 발을 내디뎠다.“도련님!” 경호원이 말했다. “차에서 기다리시죠. 이곳은 너무 더럽습니다.”유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경호원을 바라보았다.‘한 마디만 더 하면 당장 꺼져!”경호원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난잡한 길을 따라 가다가 거의 20여 분 후에야 그들은 노지철 집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유준을 위해 장애물을 정리하던 경호원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고, 앞에 우뚝 솟은 집을 보았을 때 그는 얼른 입을 열고 소리쳤다.“도련님, 선생님의 집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유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주위의 집들은 모두 무너져 원래의 모습을 보아낼 수 없었지만 오직 노지철의 집만이 멀쩡했다.유준은 저도 모르게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