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윤아 씨 머리에서 피가 난 것 같은데?게다가 고석훈 저 자식... 아이를 발로 차려고 했어?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머리가 복잡해진 양훈은 석훈에게 다가가 싸늘하게 그를 바라봤다.“고석훈. 너 미친 거지?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나...”석훈은 아니라고 반박하려다가 윤아의 이마를 타고 흐르던 선홍빛 피를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자기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인지했지만... 석훈은 고개를 돌려 소영을 바라봤다. 소영이 그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했다. 애초에 그녀가 아니라면 석훈도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테니까.한편, 소영은 벌렁대는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그녀는 사실 윤아가 이대로 잘못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양훈의 말을 듣고 번뜩 정신을 차렸다.소영은 하면 안되는 생각을 도로 집어넣고 언제 그랬냐는 듯 석훈을 향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래, 석훈아. 말로 하면 몰라도 폭력은 정말 아니야.”소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게다가 어린아이잖아. 석훈 씨 이렇게 매정한 사람이었어?”그녀의 말에 석훈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아찔해 났다. 그는 한참을 그대로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나, 난 널 위해서 그런 거였어!”그 말은 진심이었다. 소영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진 않았을 거다.석훈은 윤아와 그녀의 아이한테 아무런 적대심도 없었다. 소영이 아니라면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윤아에게 왜 그런 짓을 했겠는가.그러나 석훈의 말에 소영은 오히려 실망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홧김에 이성을 잃고 그런 짓을 한 거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믿어줬을 텐데. 이제 와 다 나 때문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어? 설마 내가 석훈 씨한테 아이를 해치라고 지시라도 했다는 거야? 난 저 아이들을 오늘 처음 알았어. 윤아 씨가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날 줄은 더더욱 몰랐고.”사실 소영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김양훈은 수현의 가장 친한 친구다. 만약
소영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데엔 제 책임도 있잖아요. 같이 가서 윤아 씨 상황을 봐야겠어요.”“그렇죠. 일이 이렇게 된 데엔 우리 모두 책임이 있죠. 진수현 지금쯤 엄청 화났을 거니까 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예요.”말을 마친 그는 소영을 지그시 바라봤다.마치 그녀의 생각을 낱낱이 꿰뚫어 보기라도 하려는 듯한 그 눈빛에 소영은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그리고 그 순간 소영은 양훈에게 더 뭐라 할 수 없었다.“그... 그래요. 하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꼭 저한테 연락해 줘요. 비록 5년이나 못 본 사이지만 저도 윤아 씨가 너무 걱정돼서요.”양훈은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한 후 핸드폰을 챙겨 자리를 떴다.양훈이 가자 그 자리엔 소영과 석훈 둘만 남았다.소영은 양훈이 멀리 가버린 걸 확인 한 후 서둘러 몸을 돌려 석훈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어서 일어나.”석훈은 조금 전 소영이 한 말에 아직도 풀이 죽어 있는 상태였는데 갑자기 다가와 자기를 일으켜주자 어안이 벙벙해졌다.“소영아? 너... 너 나한테 화난 거 아니었어?”“일단 일어나 봐.”석훈은 그제야 소영의 부축을 받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소영은 석훈을 일으킨 후 다정하게 물었다.“괜찮아? 다친 덴 없어?”석훈은 고개를 흔들며 소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석훈아, 그렇게 보지 마. 조금 전에 내가 모질게 말했던 건 다 널 위해 그런 거였어.”“날 위해?”“생각 해봐. 오늘 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람을 때렸어. 다들 널 이해하려 하겠어? 이런 상황에서 내가 네 편을 들어주면 다들 널 뭐라 생각하겠어? 분명 네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난 널 혼내는 척, 너한테 실망한 척하고 넌 나중에 반성한 척, 개과천선한 척 하기만 하면 돼. 그럼 아무도 널 탓을 하지 않을 거야.”반성한 척을 하라고?석훈은 되려 더 어리둥절해졌다.그는 이성을 되찾은 후 그의 행동이 잘못됐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서훈도 그의 말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할 수 있어요.”“그래. 훈이랑 윤이가 좀 도와줘. 아저씨가 얼른 병원에 데려다줄게.”“네.”이윽고 수현은 시선을 내려 기절해 있는 윤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선홍색 피는 그녀의 흰 피부색과 비교되며 더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수현은 행여나 운전 중에 윤아가 시트에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레 뒷좌석에 눕히고 자리를 만들어 두 아이를 그녀의 양옆에 앉혔다.세심하게 자리를 조정한 후 수현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팡!문이 닫히고 차는 빠르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뒷좌석에 앉은 서훈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윤아의 이마를 감싸며 낮게 읊조렸다.“걱정 마요, 엄마. 괜찮을 거예요.”하윤도 많이 놀란 듯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하윤의 늘 반짝이던 눈동자엔 어느새 슬픔이 가득 고여 두 볼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은 방울방울 떨어져 어느새 윤아의 발등을 흠뻑 적셨다.“윤이야, 울지마.”서훈의 목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그 소리에 하윤이 눈물범벅이 되어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고개를 들었다.“오빠... 엄마 죽어?”죽는다는 말에 서훈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는 아까보다 서늘해진 눈으로 하윤을 꾸짖었다.“심하윤, 그런 소리 하지 마!”갑작스러운 꾸중에 하윤은 깜짝 놀라 울먹였다.“하지만...”“엄마는 그저 이마를 다치신 거야. 우리 엄만 안 죽어!”운전 중인 수현은 이따금 백미러로 윤아를 꼭 안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쥐방울만 한 아이들의 입에서 저런 대화가 오가는 걸 들으며 그는 심장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도로는 평탄했고 차도 빠르지만 스무스하게 달렸다. 하지만 평탄한 도로와 달리 수현의 마음은 아찔하게 덮쳐오는 파도 같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진지하게 말했다.“훈이, 윤이. 아저씨가... 엄마 지켜줄게. 아저씨 믿어.”믿으라는 말이 원
그리고 그 옆에 눈물범벅인 두 아이까지.경찰은 곧바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진지하게 말했다.“따라오시죠.”곧이어 그는 손수 수현을 위해 길을 터줬다. 그는 가는 길에 막힘이 없게 하기 위해 차량을 통제하는 건 물론이고 가까운 병원에 연락까지 하면서 수현을 도왔다.경찰의 도움으로 수현은 예정보다 빨리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병원에 도착한 후, 수현은 곧장 윤아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물론 두 아이도 그의 뒤를 따랐다.한바탕 소동 끝에 윤아는 무사히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_응급실에서 환자 외 다른 사람은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기에 수현은 하는 수 없이 두 아이를 데리고 밖에서 기다렸다.혼잡한 응급실 내부와 달리 바깥은 사람 한 명 없이 한산했다. 수현은 윤이, 훈이와 함께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조금 걸릴 거야. 여기서 기다리자.”서훈은 철이 일찍 든 데다 말수가 없는 편이다. 그는 수현의 말에 토를 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옆에 앉지도 않았다. 그는 조금 더 걸어가 수현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수현도 훈이가 무슨 생각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멀리 떨어지진 않아 그의 시야 안에 있었기에 수현도 굳이 그의 옆자리를 강요하진 않았다.그러나 예상치 못한 것은 하윤이 주동적으로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수현은 윤이가 드디어 자신을 용서해 주는 건가 싶어 잠시 기대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하윤은 그에게 다가간 뒤 콩알만 한 주먹을 뻗어 수현의 허벅지를 마구 때렸다.“아저씨 미워!”그러나 그 말랑한 주먹으로 아무리 때려봤자 수현이 아플 리가 없었다.수현은 하윤의 분이 풀릴 때까지 가만히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비록 솜방망이 주먹은 아무런 타격도 없었지만,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하윤의 얼굴은 수현의 마음을 욱신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그렇게 수현은 하윤이 지쳐 더 때릴 힘이 없을 때까지 한참을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고는 하윤의 자그마한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이제 다 때렸어?
그런 이유라면 납득할 수 있지.수현의 말이 끝난 후 하윤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때려보았는데 확실히 다리보다 더 수월한 것 같았다.의자에 앉아 있었을 때는 발뒤꿈치를 들어야 간신히 다리를 가격할 수 있었는데 수현이 이렇게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내어주니 큰 어려움 없이 마음껏 주먹을 날릴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가까이서 본 수현의 새까만 눈동자는 생각보다 더 어두웠고 얼굴도 날카로워 조금 무서웠다.하윤은 그런 수현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손을 뻗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수현의 험상궂게 생긴 얼굴을 한 눈 보고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그리고 수현도 그런 하윤의 변화를 눈치챘다.“왜 그래?”하윤이 입을 오므리더니 말했다.“아저씨가 보복하면 어떡해요?”‘키도 크고 손도 큰 아저씨가 저 힘으로 날 때리기라도 한다면 난 납작만두처럼 납작해질지도 몰라.’하윤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무서워져 서둘러 몸을 돌려 오빠에게로 달려갔다.이미 딸에게 얼굴을 내어줄 마음의 준비를 다 했던 수현은 하윤이 갑자기 몸을 돌려 도망가 버리자, 어리둥절 해졌다.그는 한시름 놓은 동시에 또 왠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딸에게 맞는 건 어떤 기분일까?상상해 보니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행복한 상상에 빠져있던 수현은 불현듯 지금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나 싶어졌다. 대체 누가 맞길 좋아한단 말인가?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수현은 얼른 지저분한 생각들을 치워버리고 응급실 상황에 집중했다.제발 무사하길... 수현은 윤아가 무사히 깨어만 준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한편, 서훈은 그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온 하윤을 살뜰히 챙겨줬다. 하윤을 의자에 앉히고 눈가에 맺힌 눈물도 세심히 닦아주는 모습은 제법 어른스러웠다.서훈은 참지 못하고 수현 쪽을 힐끗 보았다. 수현은 아직 그곳에 앉아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의 커다란 몸집이 유독 외로워 보였다. 서훈은 그런 수현을 보며 입을 앙다물었다.“윤아, 우리 이제 저
고석훈 그 자식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양훈은 수현의 말 속에서 그가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와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나도 오늘 밤 일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어. 윤아 씨는 좀 어때?”수현은 얇은 입술을 앙다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와 대화하기 싫은 모양이었다.양훈도 이를 눈치채고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그렇게 한참 후, 가만히 있던 수현이 갑자기 그에게 말했다.“여기 있지 마.”“아무 말도 안 할게.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도 안 돼?”“안 돼.”“...매정하기는.”“그래, 나 매정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어쩌긴 뭘 어째. 어쩔 수 없지.하지만 양훈은 꿋꿋이 가지 않고 버텼다. 그렇게 한참을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수현이 갑자기 무슨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그를 험상궂게 노려봤다.“김양훈. 주먹 나오게 하지 마.”아이들만 없었어도 수현은 진작에 그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을 거다. 이렇게 곱게 내버려두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많이 참고 있다는 말이다.“그래? 그럼 한 번 쳐봐.”양훈의 빈정대는 말투에 수현의 눈빛이 서서히 식더니 싸늘하게 말했다.“내가 못 할 줄 알아?”바로 그때, 응급실의 불이 갑자기 꺼지더니 문 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그늘진 얼굴로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던 수현도 인기척에 순식간에 안색이 바뀌더니 응급실을 향해 달려갔다.서로를 꼭 안고 있던 훈이와 윤이도 누가먼저랄거 없이 몸을 벌떡 일으켜 짧은 다리로 달려 나갔다.물론 양훈도 그 뒤를 따랐다.“의사 선생님. 어떻게 됐습니까?”수현의 말투는 조금 전보다 많이 누그러졌지만 떨리는 목소리까지는 어찌 하지 못했다. 그의 숨결은 조용한 복도에 거칠게 울려 퍼졌다.의사는 그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물었다.“누가 심윤아 씨 보호잡니까?”그러자 수현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접니다.
수현이 대답을 하지 않자 양훈이 또다시 물었다.“윤아 씨는 아직 안 깨어났지?”그러자 수현은 드디어 반응이 돌아왔는지 싸늘하게 대답했다.“괜찮아. 둘 다 영민한 아이니까.”그가 없어도 두 녀석은 똘똘하게 잘 있을 거다. 특히 심서훈, 그 아이라면 분명 엄마를 극진히 잘 살피겠지.다만...“그래도 어린아이잖아.”양훈이 말했다.“무슨 일이라도 생기면...”그러자 수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내가 여기 있을 거야.”“그래.”“넌 필요 없으니까 이만 가.”고집스런 수현의 모습에 양훈도 더 있어봤자 대화도 안 될 거란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 끝에 결국 수현과의 대화는 포기하고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수현은 벽에 기댄 채 핸드폰을 꺼내 민재에게 연락했다.민재와의 통화를 마친 수현은 핸드폰을 내리다 불현듯 뭔가 떠오른 듯 안색이 바뀌더니 급하게 병실 문을 열었다.아니나 다를까, 두 아이는 나란히 붙어 앉아 윤아의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연락하려고 하고 있었다.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아이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수현을 보자 하윤의 귀엽던 얼굴에 어느새 혐오가 드리웠다. 하윤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또다시 수현을 내쫓아버리려 했으나 수현이 먼저 성큼성큼 두 아이의 앞으로 다가가 몸을 낮췄다.“핸드폰으로 뭐 하려고?”서훈은 얇은 입술을 오므린 채 대꾸하지 않았다.반면 하윤은 허리에 손을 올리더니 삐딱하게 대꾸했다.“아저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아저씨 진짜 매너 없다. 문도 막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고. 저희 지금 완전 불쾌하거든요?”하지만 수현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어 하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하윤아, 그 핸드폰 아저씨한테 줘.”그러자 하윤은 서둘러 핸드폰을 뒤로 감추며 말했다.“이건 우리 엄마 핸드폰이에요. 아저씨 핸드폰 아니거든요?”“너희 엄마 핸드폰인 거 알고 있어.”수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엄마가 아직 의식이 없으니까
목적을 달성한 수현은 핸드폰을 들고 병실을 빠져나왔다.이윽고 그는 하윤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입력해 잠금을 풀었다. 그러나 핸드폰 화면이 바뀌는 순간, 수현의 입가에 맺혔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의 예상대로 핸드폰 화면은 연락처에 머물러있었다.그리고 그 연락처 속엔 이선우라는 이름이 떡하니 있었는데 그가 조금만 늦었어도 그 자식한테 연락이 갈 뻔했던 모양이다.수현이 타이밍 좋게 들어간 덕분에 다행히 그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이선우의 연락처를 누르고 들어간 수현은 손이 멋대로 삭제 버튼을 누르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이런 충동적인 행동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만약 윤아가 정말 이선우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그가 지금 이선우의 연락처를 지운다 해도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수현은 차라리 안 보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 핸드폰을 꺼버렸다.한편, 병실에서는 훈이와 윤이가 머리를 맞대고 소곤대고 있었다.“오빠. 정말 엄마 핸드폰 줘도 괜찮은 거야?”사실 하윤은 핸드폰을 넘겨준 게 내심 걱정되었다. 엄마 핸드폰엔 돈도 엄청 많은데 고독현 밤 아저씨가 냉큼 훔쳐 갈 수도 있지 않은가?하지만 생각해 보니 둘이 라이브 방송을 할 때 아저씨는 고가의 선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보냈었다.만약 돈을 훔칠 생각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선물 공세를 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하윤은 생각하면 할수록 도통 모르겠어서 오빠인 서훈에게 도움을 청한 거였다.둘은 비록 동갑이지만 서훈은 어릴 적부터 그녀보다 생각이 깊었다.하윤의 말을 들은 서훈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아니. 고독현 밤 아저씨는 안 그러실 거야.”서훈은 엄마 때문에 아저씨가 아빠가 되는 게 싫다고 말했지만,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아저씨와 그들의 관계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보였다.‘고독현 밤 아저씨... 어쩌면 우리의 진짜 아빠일 지도 몰라.’하지만 훈이는 윤아에게서 한 번도 아빠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뭐가 어찌 됐든 결국 이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