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은 눈빛이 흔들려 차마 도준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그거야 공태준이 저 보려고 일부러 그런 거겠죠.”“알면서 따라가려교?”하윤은 이내 고래를 푹 떨구었다. 하윤도 그게 공태준이 내건 미끼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알면서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이제야 연기한다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게 실감이 들었다.연기는 연기일 뿐 감정까지 흔들릴 것 없다고 자신했건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공태준이든 공은채든 쉬운 상대가 아니었으니까.고작 아침식사 하는 그 잠깐 사이에도 이렇게 되었는데 태준을 따라가면 어떤 일이 기다릴지 아무도 몰랐다.한참 생각하던 하윤은 그제야 타협했다.“그럼 안 갈게요.”이윽고 고개를 쳐들고 도준을 바라봤다.“그 피아노 꼭 사와야 해요?”“알았어, 착하네.”도준은 그제야 만족한 듯 대답했다.물론 도준의 확답을 받아냈지만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하윤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심지어 방에 돌아온 뒤, 어디 가겠냐고 묻는 도준의 물음에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다 돼요. 도준 씨가 정해요.”잔뜩 풀이 죽어 소파에 앉아 있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이내 손을 뻗어 하윤의 고개를 쳐들었다.“왜? 아직도 삐졌어?”“아니요.”하윤은 도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제 얼굴을 도준의 몸에 비볐다.“저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요. 제가 쉽게 휘둘리는 것도 모자라 쓸데없는 생각을 자주 하니까. 제가 더 성숙했다면 보냈을 수도 있겠죠.”제 자리에 우뚝 선채 저한테 기댄 하윤을 보고 있던 도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손을 뻗어 하윤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왜 갑자기 이해심이 깊어졌지?”하윤은 고개를 들어 도준의 몸에 제 턱을 얹은 채 도준을 빤히 바라보았다.“사랑하니까요. 도준 씨가 기분 나쁜 건 원치 않아요.”그 말을 듣는 순간 도준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솔직히 하윤이 아무리 애교 부리고 제 비위를 맞추려 애써도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하지만 하윤의 이런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차 안이라 그런지 하윤은 잠을 설쳤다.게다가 아버지의 피아노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에 자꾸만 가족과 있었던 일들이 자꾸만 아른거렸다.의자에 앉아 피아노 연주 숙제를 검사 받던 모습, 오빠가 곁에서 박자를 세어주던 모습, 심지어 오빠와 함께 어머니한테 사랑 노래를 연주하는 아버지를 훔쳐보던 모습도 보였다.기억속의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그 피아노를 찾으면 하윤뿐만 아니라 엄마와 오빠도 기뻐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차가 흔들려 눈을 떠보니 어느새 경매장에 도착했다.이번 경매에 나오는 피아노는 이성호가 사용하던 피아노 외에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던 피아노도 있다.예전이라면 이성호의 추문 때문에 피아노는 당연히 이성호의 이름으로 소개되지 않을 거다. 심지어 누구의 피아노도 아닌 그저 평범한 피아노로 소개될 가능성이 다분했다.하지만 하윤이 우여곡절 끝에 이성호의 누명을 벗겨 준 데다, 뉴스의 파급력 때문에 이성호의 억울함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가뜩이나 유명한 음악가인 데다, 억울함을 쓴 서사까지 붙었으니 업계 사람만 알던 이성호의 이름은 단숨에 널리 알려졌다. 이성호에 관한 뉴스를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큼. 그 때문인지 이성호가 사용하던 피아노는 포스터 맨 중앙에 있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포스터를 본 하윤은 잔뜩 흥분한 채 도준의 손을 잡아 끌었다.“이거예요. 우리 아빠가 사용하던 피아노!”하지만 이내 걱정이 앞섰다.“포스터 맨 중앙에 소개했으면 가격은 당연히 엄청나겠죠?”도준은 하윤의 등을 밀며 농담조로 말했다.“자기가 돈 흥청망청 쓴 게 어디 한두 번이야? 왜 갑자기 돈 걱정하고 그래?”“제가 언제 돈을 흥청망청 썼다고 그래요? 저 엄청 절약했거든요!”초대장에 적힌 대로 자리를 찾다 보니 일찌감치 저를 기다리고 있던 태준이 눈에 들어왔다.하윤은 잠깐 멈칫했지만 도준의 팔짱을 풀지는 않았다.당황한 듯 반응하면 오히려 의심만 살 뿐이니까.아니나 다를까 도준을 보고도 태준은 예상했다는 듯
하나 또 하나의 경매가 끝나고 아버지의 피아노가 무대 위에 올라온 순간, 권하윤은 민도준의 손을 꽉 잡았다.“아빠 피아노예요.”그와 동시에 경매사의 소개도 시작되었다.“이 피아노는 이성호 교수님이 사용하던 피아노입니다. 아마 다들 이성호 교수님에 대해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유명한 음악가로 잘 알려졌죠? 친구의 질투 때문에 오명을 쓰고 세상을 떠나 더 안타까운 분이기도 합니다.”이성호의 가슴 아픈 서사를 소개하던 경매사는 이내 말머리를 돌리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그런데 이성호 교수님이 세상에 없다 해도 그분이 남긴 위대한 작품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분이 사용하던 피아노도 여전히 남아 있고요. 오늘 저희가 경매할 물건이 바로 이성호 교수가 사용하던 피아노입니다. 4억부터 호가 시작하겠습니다.”이 피아노는 원체 고가 브랜드인 데다 소장 가치까지 더해져 곧바로 6억까지 가격이 올라갔다.그걸 지켜보던 하윤도 번호표를 들고 호가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공태준이 먼저 끼어들었다.“10억!”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도준은 고개를 돌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이윽고 두 쌍의 눈이 서로 마주하는 순간, 태준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친구로서 선물하려는 것뿐인데, 설마 신경 쓰이는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그때 무대 위에서 경매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세 번 호가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10억, 10억…….”경매사가 세 번째로 호가하며 망치를 내려 치려고 할 때, 도준이 번호표를 꽉 쥐고 있던 하윤의 손을 들어 올렸다.이윽고 태준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런데 영 마음에 안 드네요.”“20억!”도준의 목소리에 경매사마저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게, 피아노는 어디까지나 수공예품에 지나지 않다. 물론 그 가격이 브랜드가치와 유명인의 이름과도 관련이 있다고는 하나 10억에 10억을 더 얹어 부르는 건 처음 접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더 놀라운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태준이 이내 번호표를 들어 올리며 호가했다.“40
경매사의 말에 하윤은 호기심이 생겼다.‘설마 이걸 경매에 내놓은 사람이 아버지와 아는 사람인가?’그때 경매사가 하윤을 무대 위로 안내했다.“무대 위로 올라오시죠.”물론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전문적으로 친 것도 아닌 데다 대부분 시간은 춤에 할애한 탓에 오랜만에 다시 연주하려니 하윤은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아버지의 피아노를 다시 가져가기 위해 창피함을 무릎 쓰고서라도 연주를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윤은 깊은 숨을 들이 켜더니 건반 위에 천천히 손을 올려 놓았다.피아노가 낯설어 허둥댈 거라고 생각했지만 연주를 시작한 순간 몸은 이미 생각을 거치지 않고 움직였다.심지어 귓가에 아버지의 잔소리가 맴도는 것 같았다.“리듬이 안 맞아. 다시!”“틀렸잖아, 이 부분 다시 연습해.”“이제야 연주 같네, 몇 번 더 연습해.”그때면 어린 하윤은 늘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맞다면서 왜 또 연습하라는 거예요?”“지금은 맞아도 무대에서 틀리면 어떡할 건데? 맞게 연주한다고 되는 건 아니야.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해져야 해. 얼른 연습해. 연습 끝내지 않으면 오빠랑 놀 생각 꿈도 꾸지 마.”“아! 오빠, 살려줘!”……세월이 녹아 든 건반을 누를 때마다 잔잔한 멜로디가 들릴 뿐만 아니라 하윤이 피아노를 연습하던 추억이 보이는 듯했다.무대 아래의 사람들은 하윤의 연주에 모두 소리를 죽였다.실력으로 따지면 하윤의 연주는 그다지 출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머리카락이 귀 옆으로 흘러내려 하윤의 얼굴을 가렸지만 미간에 드러난 비통함은 점점 짙어졌다. 아니, 그건 아마 그리움일지도 모른다.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하윤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레었다.맨 앞줄에 앉아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하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도준의 머릿속에 옛 추억이 흘러 들었다.그 순간, 이게 하윤의 연주를 처음 듣는 게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무대 아래에서 쏟아진 박수 소리가 도준의 회상
재벌가 자제인 석지환이 민도준과 안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그가 한 말은 왠지 사람의 상상력을 자아냈다.한참을 생각해 보니 그제야 그 답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석지환과 도준이 서로 알게 되었을 때만해도 도준은 공은채의 약혼남이었을 텐데, 지금 하윤의 남편이 되었으니 석지환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생각할수록 질투심이 몰려와 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러게 말이에요. 제가 싼 가격에 주어들인 거죠 뭐.”도준은 그 말에 눈썹을 치켜 올리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그래? 그럼 나는 어떤 상황이라고 해야하지?”그제야 제가 전에 도준의 제수씨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는지 하윤은 기세가 싹 사라져 대충 얼버무렸다.“우연이 여러 번 겹친 거죠, 뭐.”두 사람의 티키타가에 석지환은 이내 미소 지었다.“보아하니 잘 지내는 것 같네.”석지환은 아버지의 제자일뿐만 아니라 오빠의 친구이기에 하윤은 늘 석지환을 제 오빠처럼 대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니 왠지 부끄러웠다.“뭐, 그냥 그래요.”“그냥 그렇다고?”도준이 하윤을 흘겨봤다.살짝 올라간 말꼬리에 하윤은 양심이 찔려 이내 말을 바꾸었다.“그냥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아요.”“좋으면 됐네.”석지환은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도준한테로 눈길을 돌렸다.“제가 시윤을 친동생처럼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잘 지내는 걸 봤으니 저와 승우 모두 마음 놓을 수 있겠네요.”오빠의 이름이 거론되자 하윤은 석지환의 팔을 슬쩍 바라봤다. ‘예전에 지환 오빠가 우리 오빠랑 무대에 오를 때 참 멋있었는데.’순간 아쉬움이 몰려오면서 마음이 찌끈거렸다.“오빠는 어때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그때 사고 이후에 해외로 유학 갔어. 가업도 해외 쪽으로 확장돼서 그쪽에 계속 있었거든. 교수님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피아노밖에 되찾지 못했어.”석지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싱긋 웃었다.“두 사람 결혼 선물로 줄게.”지인의 축하에 감동한 하윤은 저도
만약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 놓자면 주림의 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도준 몰래 핸드폰 번호를 받고 또 도준 몰래 주림의 어머니와 연락한 사실도 당연히 말해야 한다.주림이 도준의 눈과 귀를 피해 제 정신이 온전한 것을 숨기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게 뻔한데, 주림과 주민수 모두 도준의 개인 병원에 있는 지금 배신을 때리면 사람도 아니게 된다.게다가…….정다정은 일전에 도준이 흥덕 마을에 공은채를 데리러 가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했으니 공은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도준이 알 거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뇌리를 파고드는 생각에 하윤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혹시 전에 흥덕 마을에 간 적 있어요?”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뭘 알고 싶은 건데? 내가 석지환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게 알고 싶은 거야?”“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도준은 해명하려는 하윤의 말을 자르며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억지로 젖힌 머리 때문에 하윤의 목은 팽팽하게 당겨진 채 가장 약한 부위를 드러냈다.“설마 자기가 누구의 아내인지, 누구를 위해 생각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하는 거야? 여기 오는 걸 동의한 것도 피아노 때문이지 이 사람 저 사람 동정하라고 그런 게 아니야.”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까치발 드느라 애쓰는 데다 호흡까지 곤란해지자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도준이 손을 놓자, 비틀거리며 겨우 자세를 잡았다.하윤은 도준의 손을 뿌리치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도준과 거리를 유지했다.“저는 뭐 감정도 있으면 안 돼요? 가족이나 친구가 있으면 안 돼요?”도준은 하윤을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그래서 뭐 하나는 건데? 결혼은 나랑 하고 다른 놈들과 불장난이라도 하겠다는 거야?”“그런 적 없어요!”하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지환 오빠는 제 친 오빠나 다름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공태준은 친구로 생각하고 석지환은 오빠. 그리고 또 누가
“이 봐요 공 가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아직도 소년처럼 꿈만 꾸면 안 되지”비웃음이 다분한 도준의 말에 옆에서 듣는 하윤마저 등골이 오싹했다.하지만 당사자인 공태준은 오히려 무덤덤한 태도로 느긋하게 말했다.“사람일은 모르는 거죠. 민 사장님이야 말로 제 동생과 평생을 기약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니 저도 기다리다 보면 알 게 뭐예요?”대화가 오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굳어졌고, 두 사람 사이에 낀 하윤만 점점 숨막혔다.하지만 이제 막 뭐라 말하려는 순간, 하윤의 어깨를 누르던 손에 힘이 더해졌다.만약 예전 같았으면 눈치껏 입을 다물었을 하윤이지만, 방금 전 상황을 생각하자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이에 하윤은 도준의 경고도 무시한 채 태준을 바라봤다.“아버지의 피아노를 찾아준 거 고마워. 나 먼저 갈게.”말을 마치지마자 하윤은 도준의 팔을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솔직히 도준에게 붙잡힐까 봐 꽁무니를 내빼는 거였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화가 나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도준도 하윤이 이토록 무모하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오호라, 팔이 밖으로 굽는다 이거야? 딱 기다려.’……태준은 뒤를 쫓아가지 않고 잇따라 떠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매장을 떠났다.그가 차에 오르자 차 안에 있던 여자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한참을 기다린 듯해 보였다.공은채는 태준의 기색을 살피며 피식 웃었다.“웬일로 기분 좋아 보이네?”“뭐, 그냥 그래.”태준이 미처 건네지 못한 티슈를 바라보며 낮게 대답했다.공은채는 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오히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아마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야.”태준은 무라 더 대답하지 않고 운전석에 놓인 쇼핑백을 바라봤다.“쇼핑했어?”“응.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하잖아. 그러니 나도 잘 꾸며야지.”분명 스윗한 멘트를 하고 있었지만 여자의 눈빛은 차갑기만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어색한 웃음소리에 기사도 더 이상 들어주기 힘들었는지 창문을 내렸다.“탈 거예요, 말 거예요? 안 탈 거면 손 좀 떼 주시죠?”기사가 짜증 섞인 말투로 투덜대고 있을 때,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차 안으로 던져졌다.돈을 받아 든 기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천천히 얘기하십시요. 아니면 차 안에 에어컨도 있는데 들어와서 얘기하는 건 어때요?”하지만 하윤을 어떻게 혼내 줄지 생각하느라 도준은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기사는 얼른 시동을 걸더니 백년해로 하고 떡 두꺼비 같은 자식도 낳으라는 덕담과 함께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제 자유가 택시와 함께 멀어져가는 걸 눈뜨고 바라보던 하윤은 이내 위험을 감지하고 사과를 건넸다.“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하.”도준이 헛웃음을 쳤다.“사과를 아주 밥 먹듯 하네? 이젠 믿지 못하겠어.”“도준 씨부터 연기한 거잖아요. 저는 그저 맞춰줬을 뿐이고요. 이건 애드리브잖아요…….”하윤은 말하면 말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고 따라서 기도 죽었다.도준은 그런 하윤에게 맞춰 주기라도 하는 듯 싱긋 웃었다.“애드리브를 좋아해? 좋아. 이따가 내 앞에서 어디 잘해 봐.”“어? 뭐 하는 거예요? 내려줘요…….”도준이 하윤을 차 안으로 던진 순간, 운전석에 앉아 있던 한민혁은 상황을 감지하고 얼른 시동을 걸었다.차에서 내린 하윤은 그 길로 질질 끌려 침대에 던져졌고,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 도준이 제 벨트를 풀어 헤쳤다.그 모습에 놀란 하윤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발을 구르며 뒷걸음 쳤다.“저기, 지금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거 하려는 건 아니죠?”한쪽 무릎을 구부린 채 침대 위에 올려 놓은 도준은 웃옷을 벗어 탄탄한 복근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냥을 시작하려는 표범을 방불케 했다.아니나 다를까 도준은 느긋하게 하윤의 종아리를 움켜 잡으며 입을 열었다.“어떻게 하길 원해?”반으로 접힌 채 잡혀 있는 벨트와 핏줄이 울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