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사의 말에 하윤은 호기심이 생겼다.‘설마 이걸 경매에 내놓은 사람이 아버지와 아는 사람인가?’그때 경매사가 하윤을 무대 위로 안내했다.“무대 위로 올라오시죠.”물론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전문적으로 친 것도 아닌 데다 대부분 시간은 춤에 할애한 탓에 오랜만에 다시 연주하려니 하윤은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아버지의 피아노를 다시 가져가기 위해 창피함을 무릎 쓰고서라도 연주를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윤은 깊은 숨을 들이 켜더니 건반 위에 천천히 손을 올려 놓았다.피아노가 낯설어 허둥댈 거라고 생각했지만 연주를 시작한 순간 몸은 이미 생각을 거치지 않고 움직였다.심지어 귓가에 아버지의 잔소리가 맴도는 것 같았다.“리듬이 안 맞아. 다시!”“틀렸잖아, 이 부분 다시 연습해.”“이제야 연주 같네, 몇 번 더 연습해.”그때면 어린 하윤은 늘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맞다면서 왜 또 연습하라는 거예요?”“지금은 맞아도 무대에서 틀리면 어떡할 건데? 맞게 연주한다고 되는 건 아니야.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해져야 해. 얼른 연습해. 연습 끝내지 않으면 오빠랑 놀 생각 꿈도 꾸지 마.”“아! 오빠, 살려줘!”……세월이 녹아 든 건반을 누를 때마다 잔잔한 멜로디가 들릴 뿐만 아니라 하윤이 피아노를 연습하던 추억이 보이는 듯했다.무대 아래의 사람들은 하윤의 연주에 모두 소리를 죽였다.실력으로 따지면 하윤의 연주는 그다지 출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머리카락이 귀 옆으로 흘러내려 하윤의 얼굴을 가렸지만 미간에 드러난 비통함은 점점 짙어졌다. 아니, 그건 아마 그리움일지도 모른다.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하윤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레었다.맨 앞줄에 앉아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하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도준의 머릿속에 옛 추억이 흘러 들었다.그 순간, 이게 하윤의 연주를 처음 듣는 게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무대 아래에서 쏟아진 박수 소리가 도준의 회상
재벌가 자제인 석지환이 민도준과 안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그가 한 말은 왠지 사람의 상상력을 자아냈다.한참을 생각해 보니 그제야 그 답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석지환과 도준이 서로 알게 되었을 때만해도 도준은 공은채의 약혼남이었을 텐데, 지금 하윤의 남편이 되었으니 석지환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생각할수록 질투심이 몰려와 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그러게 말이에요. 제가 싼 가격에 주어들인 거죠 뭐.”도준은 그 말에 눈썹을 치켜 올리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그래? 그럼 나는 어떤 상황이라고 해야하지?”그제야 제가 전에 도준의 제수씨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는지 하윤은 기세가 싹 사라져 대충 얼버무렸다.“우연이 여러 번 겹친 거죠, 뭐.”두 사람의 티키타가에 석지환은 이내 미소 지었다.“보아하니 잘 지내는 것 같네.”석지환은 아버지의 제자일뿐만 아니라 오빠의 친구이기에 하윤은 늘 석지환을 제 오빠처럼 대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니 왠지 부끄러웠다.“뭐, 그냥 그래요.”“그냥 그렇다고?”도준이 하윤을 흘겨봤다.살짝 올라간 말꼬리에 하윤은 양심이 찔려 이내 말을 바꾸었다.“그냥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아요.”“좋으면 됐네.”석지환은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도준한테로 눈길을 돌렸다.“제가 시윤을 친동생처럼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잘 지내는 걸 봤으니 저와 승우 모두 마음 놓을 수 있겠네요.”오빠의 이름이 거론되자 하윤은 석지환의 팔을 슬쩍 바라봤다. ‘예전에 지환 오빠가 우리 오빠랑 무대에 오를 때 참 멋있었는데.’순간 아쉬움이 몰려오면서 마음이 찌끈거렸다.“오빠는 어때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그때 사고 이후에 해외로 유학 갔어. 가업도 해외 쪽으로 확장돼서 그쪽에 계속 있었거든. 교수님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피아노밖에 되찾지 못했어.”석지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싱긋 웃었다.“두 사람 결혼 선물로 줄게.”지인의 축하에 감동한 하윤은 저도
만약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 놓자면 주림의 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도준 몰래 핸드폰 번호를 받고 또 도준 몰래 주림의 어머니와 연락한 사실도 당연히 말해야 한다.주림이 도준의 눈과 귀를 피해 제 정신이 온전한 것을 숨기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게 뻔한데, 주림과 주민수 모두 도준의 개인 병원에 있는 지금 배신을 때리면 사람도 아니게 된다.게다가…….정다정은 일전에 도준이 흥덕 마을에 공은채를 데리러 가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했으니 공은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도준이 알 거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뇌리를 파고드는 생각에 하윤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혹시 전에 흥덕 마을에 간 적 있어요?”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뭘 알고 싶은 건데? 내가 석지환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게 알고 싶은 거야?”“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도준은 해명하려는 하윤의 말을 자르며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억지로 젖힌 머리 때문에 하윤의 목은 팽팽하게 당겨진 채 가장 약한 부위를 드러냈다.“설마 자기가 누구의 아내인지, 누구를 위해 생각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하는 거야? 여기 오는 걸 동의한 것도 피아노 때문이지 이 사람 저 사람 동정하라고 그런 게 아니야.”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까치발 드느라 애쓰는 데다 호흡까지 곤란해지자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도준이 손을 놓자, 비틀거리며 겨우 자세를 잡았다.하윤은 도준의 손을 뿌리치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도준과 거리를 유지했다.“저는 뭐 감정도 있으면 안 돼요? 가족이나 친구가 있으면 안 돼요?”도준은 하윤을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그래서 뭐 하나는 건데? 결혼은 나랑 하고 다른 놈들과 불장난이라도 하겠다는 거야?”“그런 적 없어요!”하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지환 오빠는 제 친 오빠나 다름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공태준은 친구로 생각하고 석지환은 오빠. 그리고 또 누가
“이 봐요 공 가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아직도 소년처럼 꿈만 꾸면 안 되지”비웃음이 다분한 도준의 말에 옆에서 듣는 하윤마저 등골이 오싹했다.하지만 당사자인 공태준은 오히려 무덤덤한 태도로 느긋하게 말했다.“사람일은 모르는 거죠. 민 사장님이야 말로 제 동생과 평생을 기약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니 저도 기다리다 보면 알 게 뭐예요?”대화가 오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굳어졌고, 두 사람 사이에 낀 하윤만 점점 숨막혔다.하지만 이제 막 뭐라 말하려는 순간, 하윤의 어깨를 누르던 손에 힘이 더해졌다.만약 예전 같았으면 눈치껏 입을 다물었을 하윤이지만, 방금 전 상황을 생각하자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이에 하윤은 도준의 경고도 무시한 채 태준을 바라봤다.“아버지의 피아노를 찾아준 거 고마워. 나 먼저 갈게.”말을 마치지마자 하윤은 도준의 팔을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솔직히 도준에게 붙잡힐까 봐 꽁무니를 내빼는 거였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화가 나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도준도 하윤이 이토록 무모하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오호라, 팔이 밖으로 굽는다 이거야? 딱 기다려.’……태준은 뒤를 쫓아가지 않고 잇따라 떠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매장을 떠났다.그가 차에 오르자 차 안에 있던 여자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한참을 기다린 듯해 보였다.공은채는 태준의 기색을 살피며 피식 웃었다.“웬일로 기분 좋아 보이네?”“뭐, 그냥 그래.”태준이 미처 건네지 못한 티슈를 바라보며 낮게 대답했다.공은채는 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오히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아마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야.”태준은 무라 더 대답하지 않고 운전석에 놓인 쇼핑백을 바라봤다.“쇼핑했어?”“응.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하잖아. 그러니 나도 잘 꾸며야지.”분명 스윗한 멘트를 하고 있었지만 여자의 눈빛은 차갑기만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어색한 웃음소리에 기사도 더 이상 들어주기 힘들었는지 창문을 내렸다.“탈 거예요, 말 거예요? 안 탈 거면 손 좀 떼 주시죠?”기사가 짜증 섞인 말투로 투덜대고 있을 때,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차 안으로 던져졌다.돈을 받아 든 기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천천히 얘기하십시요. 아니면 차 안에 에어컨도 있는데 들어와서 얘기하는 건 어때요?”하지만 하윤을 어떻게 혼내 줄지 생각하느라 도준은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기사는 얼른 시동을 걸더니 백년해로 하고 떡 두꺼비 같은 자식도 낳으라는 덕담과 함께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제 자유가 택시와 함께 멀어져가는 걸 눈뜨고 바라보던 하윤은 이내 위험을 감지하고 사과를 건넸다.“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하.”도준이 헛웃음을 쳤다.“사과를 아주 밥 먹듯 하네? 이젠 믿지 못하겠어.”“도준 씨부터 연기한 거잖아요. 저는 그저 맞춰줬을 뿐이고요. 이건 애드리브잖아요…….”하윤은 말하면 말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고 따라서 기도 죽었다.도준은 그런 하윤에게 맞춰 주기라도 하는 듯 싱긋 웃었다.“애드리브를 좋아해? 좋아. 이따가 내 앞에서 어디 잘해 봐.”“어? 뭐 하는 거예요? 내려줘요…….”도준이 하윤을 차 안으로 던진 순간, 운전석에 앉아 있던 한민혁은 상황을 감지하고 얼른 시동을 걸었다.차에서 내린 하윤은 그 길로 질질 끌려 침대에 던져졌고,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 도준이 제 벨트를 풀어 헤쳤다.그 모습에 놀란 하윤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발을 구르며 뒷걸음 쳤다.“저기, 지금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거 하려는 건 아니죠?”한쪽 무릎을 구부린 채 침대 위에 올려 놓은 도준은 웃옷을 벗어 탄탄한 복근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냥을 시작하려는 표범을 방불케 했다.아니나 다를까 도준은 느긋하게 하윤의 종아리를 움켜 잡으며 입을 열었다.“어떻게 하길 원해?”반으로 접힌 채 잡혀 있는 벨트와 핏줄이 울퉁
가죽 벨트는 마치 리본처럼 하윤을 선물처럼 꽁꽁 묶은 동시에 도준에게 눈요기거리를 제공해 주었다.이윽고 도준은 몸소 하윤에게 가죽 벨트가 아닌 제가 바로 고문 기구라는 걸 시전해 보였다.그렇게 겨우 다시 숨을 돌리게 되었을 때, 하윤은 나른하게 녹아내려 도준의 가슴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다리뿐만 아니라 팔까지 부러질 것 같아 꿈쩍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오히려 도준은 만족해하며 땀으로 젖은 하윤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 붉게 상기된 하윤의 얼굴을 드러냈다.“이번에는 교훈 제대로 얻었겠지?”하윤은 더 이상 화 낼 힘도 없어 아예 눈을 감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덜 짜증 날 것 같으니까.그때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하윤의 귀를 파고 들었다.“아직도 성깔 부릴 힘이 남아 도나 봐?”방금 시달리고 나서인지 하윤은 이내 겁을 먹고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제가 언제 또 성깔 부렸다고 그래요? 당장 힘들어 죽을 것 같구먼.”나른해진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재밌다는 듯 하윤을 이리저리 주물러 댔다.“차라리 죽기라도 하면 딴 놈이 눈독 들일 일 없어 마음은 편하겠네.”도준의 말에 담긴 의미를 눈치 챈 하윤은 일부러 알아듣지 못한 듯 말머리를 돌렸다.“저 씻을래요.”지금 상황에 제 힘으로 씻을 수 없었기에 하윤은 도준의 도움이 필요했다.족히 서너 사람은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욕조에 엎드린 채 하윤은 도준의 손길을 즐겼다.약간 뜨거운 물이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며 거품을 씻어 내리자 물에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은 마치 생명력이라도 지닌 듯 여자의 흰 피부를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다만 예쁜 곡선을 그리는 어깨 위에 눈에 띄는 키스마크가 있어 순수한 모습에 색기를 더했다.심지어 손목과 발목에 난 쓸린 자국이 파문을 따라 일렁이며 아까 얼마나 뜨거웠는지 상기시켜 주었다.하윤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어깨 위에 부드러운 입술이 포개졌다. 얼마나 다정했는지 도준이 아니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흠칫 놀란 하윤
다음 날, 아침식사를 마친 하윤은 도준을 끌고 쇼핑에 나섰다.“오늘 저녁 지환 오빠의 파티에 참석해야 해서 대충 가면 안 돼요.”잔뜩 신나 있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하윤의 뒷덜미를 낚아챘다.“어제부터 하루 종일 그 놈의 지환 오빠만 찾네? 설마 처음 사랑에 눈 뜬 게 그 지환 오빠 때문이야?”솔직히 말해서 석지환은 썩 잘 생겼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뼛속까지 귀공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데다 다정하기까지 해서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도준의 말에서 위기감을 느낀 하윤은 얼른 도준의 비위를 맞추었다.“제가 사랑에 눈을 뜬 건 도준 씨를 만나고 나서니까. 좀 많이 늦어요.”“흥, 누가 믿을 줄 알고?”“정말이예요. 오빠가 이성 관계에 대해서는 특히 단속이 심해서 연애하고 싶어도 그럴 배짱이 없었어요.”투덜거리며 불만을 털어 놓던 하윤은 도준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말을 바꾸었다.“무엇보다 저는 그때 연애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제가 진심으로 좋아한 건 도준 씨뿐이에요.”그제야 도준은 피식 웃으며 하윤에게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몇 군데를 돌아보던 끝에 하윤은 결국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흰색 머메이드 드레스를 골랐다.“어때요? 예뻐요?”잘록한 허리를 감싸는 드레스를 입은 채 한 바퀴 빙 돌며 기대에 찬 듯 눈을 반짝이는 모습은 아마 그 누가 봐도 쉬이 흥을 깨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거다. 도준 역시 그랬다.“응. 예뻐.”도준의 대답에 하윤은 신이 나서 활짝 웃었다.“그럼 이거로 할게요. 이거 포장해 주세요.”그때 가게 직원이 활짝 웃으며 하윤에게 말을 걸었다.“남편 분 양복은 안 고르나요? 이 양복이 드레스와 어울리거든요.”그 말은 한순간에 하윤의 관심을 끌었다.“어? 진짜네요?”직원의 손에서 옷을 받아 든 하윤은 그 옷을 도준의 몸에 대보았다.“이거 한 번 입어 봐요.”이윽고 도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거절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먼저 말을 꺼냈다.“입는 거 도와줄게요.”기대에 부푼 하윤의 모습에 도준
스크린 속에는 남자를 위해 넥타이를 매주는 여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게다가 남자는 살짝 고개를 들었는데 눈빛만은 아래로 향해 있었다.하윤은 사진이 마음에 들어 일부러 직원과 연락처까지 교환해 사진을 받았다.반나절 동안 쇼핑을 하고 나서 쇼핑몰을 나오자 어느새 파티 시간이 임박했다.석씨 저택은 해원에서 중상류 층에 속한다. 물론 지난 몇 년 간 주로 해외 사업을 발전했지만 전에 쌓은 인맥 덕에 파티는 매우 떠들썩했다.하윤과 도준이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도준의 사업은 주로 경성에 있다지만 그의 이름은 해원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게다가 조관성과 손을 잡았던 일이 알려져서인지 도착하자 마자 친분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적잖게 모여들었다.“이곳에서 민 사장님을 다 보다니. 이번 주말 제 아들의 백일잔치가 있는데 혹시 자리를 빛내 주실 수 있나요?”“이번 주 제가 새로 차린 계열사에서 커팅식이 있는데 한번 구경 오세요.”“제 할머니께서 이번에 팔순 잔치를 여지는데 민 사장님을 그렇게 보고 싶다네요.”“…….”순식간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행사와 잔치를 들먹이며 도준에게 초대장을 건넸다.행사의 진위여부는 당장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도준과 친분을 쌓으려는 목적은 다분했다.하지만 도준은 몇 마디 채 들어주지도 않고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내가 뭐 소원 비는 연못도 아니고. 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저한테 하지 마시죠?”사람들은 도준과 교류해본 적 없지만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 둘 물러갔다. 그도 그럴 게, 도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재수 없는 일을 당할 게 뻔했으니까.하지만 모두 멀리 물러났으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미련 넘치는 얼굴로 도준을 힐끔거렸다.“너무 무섭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하윤이 보다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도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왜? 내가 다정한 태도를 보이길 원하는 거야? 뭐, 좋아. 심심하던 참에 잘 됐네. 마침 저들이 나를 위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