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그림자를 뒤쫓으려 했지만 앞에 끼어드는 웨이터 때문에 하윤의 시선은 막혀 버렸다.그리고 불과 몇 초 만에 그 그림자는 하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하윤은 곧장 그림자를 뒤쫓아 가 복도 반대편에 멈춰 섰다. 하지만 앞에 있는 수많은 방들 중 그 그림자가 사라진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아까 그 사람 공은채 맞나? 아니면 내가 잘못 봤나?’질주하고 난 뒤라 그런지 심장이 쿵쾅거리며 하윤의 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휙 스쳐 지나간 그림자는 하윤의 눈앞에서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또렷해졌다.웨이터가 시선을 막기 전 그 여자는 분명…….하윤 쪽을 바라봤다…….때마침 웨이터 하나가 한 룸안에서 빈 그릇을 들고 나오자 하윤은 얼른 앞에 막아서며 물었다.“저기 혹시 이 그릇을 가지러 간 방에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있었나요?”웨이터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죄송합니다만 주의해 보지 않았습니다.”그 뒤로 나오는 두 웨이터에게도 잇따라 물었지만 하윤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제서야 하윤은 이런 5성급 레스토랑에서 손님 정보를 쉽게 알려줄 리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어떡하지?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데?’게다가 공은채가 그 길로 레스토랑을 나갔는지 아니면 룸 안으로 들어갔는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그렇게 한참 동안 고민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민도준]하윤은 복도를 흘깃 스쳐보고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길 잃었어?”“배탈 났어요.”“아, 그래?”한참 동안 사람을 찾고 있던 하윤은 끝 음을 길게 늘어뜨리는 도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아니나 다를까, 등 뒤에서 갑자기 긴 그림자가 하윤을 뒤덮었다.“어디 봐 봐, 대체 어떻게 배탈 났는지?”뻣뻣하게 굳은 채 돌아서 보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준이 핸드폰을 흔들며 하윤을 내려봤다.“여기가 화장실이야?”하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자 도준이 긴 손가락으로 하윤의 머
손을 들어 웨이터 한 명을 잡아 세운 민도준은 고개를 살짝 들며 입을 열었다.“여기 있는 룸들 제가 다 계산할 테니, 문 좀 열어 주겠어요?”도준의 말에 웨이터는 첫 번째 룸을 열었다.안에는 연로한 부부가 있었는데 도준이 계산한다는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다.두 번째 룸안에는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웨이터의 설명에 도준이 저들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오해하는 해프닝까지 생겨 버렸다.곧이어 본 룸들 역시 모두 일반 손님들뿐이었다.그렇게 어느새 맨 마지막 룸에 도착했다.만약 이 곳마저 없으면 공은채는 정말 이곳에 없는 거다.웨이터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 번 노크했다.“죄송합니다,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들어오세요.”낮게 깔린 음성이 안에서 들려왔다.왠지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사람을 찾는데 급급했던 하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때 문이 열렸고, 룸 안에 앉아 있던 두 남녀의 얼굴을 본 순간 하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오랜만이네요.”공태준은 웃는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하윤을 바라봤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윤은 태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고은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은지가 입고 있는 옷이 마침 흰색 원피스였으니까.‘그럼 방금 내가 본 사람이 은지 씨였다고?’도준은 두 사람을 보자 눈을 가늘게 접더니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저희가 방해한 건 아니죠?”태준의 시선은 하윤을 끈질기게 좇으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괜찮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죠?”“제 아내의 지인이 사라져서 찾아 주느라고요.”도준은 하윤을 제 품에 끌어 들였다.도준의 호칭 변화에 태준의 눈빛은 미세하게 변했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살짝 힘이 실렸다.“아직 축하하지 못했네요…….”“지금 축하해도 늦지 않았어요.”도준은 상냥하게 웃었다.“공 가주님 글솜씨야 워낙 좋으니 덕담은 제가 안 그라쳐도 되죠?”살짝 올라간 목소리에 룸 안은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때 태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공은채였다.공은채는 고은지와 똑 같은 옷을 입은 채 걸어오더니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다.“고마워, 오빠.”“너 이러는 거 너무 위험해.”저를 빤히 바라보는 공태준의 시선에도 공은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치맛자락을 정리했다.“그 덕분에 오빠도 꿈에 그리던 사람 봤잖아요.”“네가 이러는 게 별 소용이 없다는 뜻이야.”미세하게 흔들리는 태준의 눈빛에 공은채가 피식 웃었다.“그건 오빠가 여자를 몰라서 그래요. 여자는 예민하고 의심 많은 동물이에요. 제 연적이자 원수가 나타난 걸 보고도 도준 씨와 다투지 않을 것 같아요?”“윤이 씨가 본 건 고은지잖아, 네가 아니라.”공은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지.”……“시영 언니는 벌써 갔어요?”텅 빈 룸을 보자 하윤이 고개를 돌려 도준을 바라봤다.“응. 경성에 돌아가야 하거든.”“아, 그럼 우리도 이만 가요.”방금 전 일을 겪어서인지 바깥의 아름다운 경치에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하윤은 우울하기만 했다.하지만 갓 두 걸음 정도 떼었을 때, 긴 손가락이 하윤의 이마를 꾹 밀었다.“왜? 사람을 못 찾은 것도 나한테 화내는 거야?”공은채의 존재는 마치 머리 위에 매달린 칼과 같다. 때문에 하윤의 몸과 마음은 공은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은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러면서도 공은채가 차라리 제 앞에 나타나기를 바랐다. 더 이상 공은채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는 싫으니까.오늘 그 모든 걸 결판 낼 수 있나 했더니 하필이면 모두 오해였다니 하윤은 김이 빠졌다.기뻐할 힘도 화낼 힘도 없어 그저 고개를 저었다.“제가 잘못 봤어요. 죄송해요.”하윤은 굴복한 듯했지만 이렇게 기운 없는 모습은 오히려 아까처럼 발톱을 드러내고 화를 낼 때 보다 더 거슬렸다.도준은 발꿈치로 문을 닫아버렸다.그 모습에 하윤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안 가요?”하지만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어깨가 잡힌 채로 도준의 다리 위에 앉
그제야 모든 걸 알아차린 하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럼 공은채가 그곳에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까는 왜 말하지 않았아요?”하윤은 자리에 우뚝 서서 의자에 기대 앉은 남자를 빤히 내려봤다.그때 도준이 앉은 자세로 손을 뻗어 하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때 알려주면 놀라서 도망칠 수도 있잖아.”도준이 제 편을 들어주자 하윤은 마지못해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오히려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꼴이 된다는 건 알죠?”‘따박따박 따지는 모습이 혼자 끙끙 앓던 아까 보다는 훨씬 낫네.’도준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꺼풀을 들었다.“공은채가 이러는 이유가 뭔지 알아?”“뭐긴 뭐예요? 제가 눈치껏 두 사람 사이에서 빠져 주라는 거겠죠.”순간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눈치 있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해.”“뭐요?”도준은 긴 손을 뻗어 하윤을 제 품에 꼭 끌어안았다.“농담이야. 아까워서 어떻게 그래? 내 말은…….”도준은 하윤의 귓가에 대고 계획을 속삭였다.한참 뒤, 하윤은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들었다.“그게 먹힌다고요? 공은채가 믿을까요?”도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공은채는 똑똑한 사람이야. 그런데 똑똑한 사람의 제일 큰 약점이 제가 똑똑한 줄 아는 거거든.”도준의 태연한 말투에 하윤은 왠지 마음이 쓰라렸다.“네, 뭐, 결혼도 할 뻔했으니 당연히 공은채에 대해 잘 알겠죠.”도준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으며 하윤을 안은 팔에 힘을 더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는 걸로 따지면 공은채보다는 자기를 더 많이 알지.”한 명은 앉아 있고 한 명은 서 있는 자세라 도준의 매혹적인 얼굴은 마침 하윤의 가슴에 닿았다.뜨거운 숨결이 옷감을 뚫고 전해져 가슴이 데일 것만 같아 하윤은 참지 못하고 뒷걸음 쳤다. 하지만 도준이 하윤의 등을 꾹 눌러 저한테 더 바싹 붙였다.“나 안쪽도 더 알아가고 싶은데? 응?”이윽고 하윤의 치맛자락을 들어 하윤의 입가에 가져갔다.“착하지
제 옷으로 가녀린 어깨를 감싸는 권하윤의 모습에 공태준의 목소리는 한껏 부드러워졌다.“데려다 줄까요?”‘데려다 준다고?’만약 하윤이 태준을 따라 가면 가짜 싸움이 진짜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좋은 변명거리도 생각나지 않았다.그때, 태준이 하윤의 걱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민도준 씨가 오해하는 게 걱정되면 기사한테 부탁할게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하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걱정하면 공은채를 속이려던 게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게다가 저와 도준이 싸웠다는 걸 두 사람이 믿어야 복수도 더 빨리 진행할 수 있었다.이에 하윤은 끝내 동의했다.“응, 고마워.”물론 하윤과 동행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태준은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얼마 뒤, 이남기의 차가 도착하자 태준은 하윤이 부딪히지 않도록 매너 있게 막아주었다.“조심해요.”하지만 하윤이 차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손 하나가 하윤을 홱 잡아 끌었다.그 힘에 못 이겨 하윤은 비틀거리며 남자의 품에 부딪혔다.캄캄한 밤, 도준의 낯빛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그 모습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잠시, 비바람을 암시하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 가?”도준의 무서운 모습에 하윤은 저도 모르게 해명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황에 해명을 하기도 뭣해 억지로 연기를 이어가며 도준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댔다.“제가 어디 가든 도준 씨가 상관할 바 아니에요.”하윤의 어깨에 걸친 외투를 보는 순간, 도준은 짜증이 솟구쳐 옷을 홱 낚아 채 태준에게 던졌다.이윽고 하윤의 손을 잡은 채 제 차 쪽으로 걸어갔다.힘을 억제하지 않은 탓에 하윤의 손목을 이내 붉어졌다.반 발짝 정도 뒤처진 거리에서 따라가고 있던 하윤은 도준의 무서운 낯빛에 저도 모르게 겁이 났다.하지만 그런 당황한 기색은 다른 사람의 눈에 오히려 협박을 못 이겨 무기력해진 모습으로 비춰졌다.태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앞으로 다가가 두 사
하윤은 겉으로는 더 이상 말다툼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연기를 시전하면서 도준과 맞잡은 손으로 그의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긁었다.이윽고 도준이 저를 흘겨보는 틈을 타 윙크를 날렸다.‘이거 모두 가짜예요! 가짜! 알죠?’도준은 혀로 제 볼을 꾹 누르더니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하윤의 손을 꽉 쥔 채 차 안에 밀어 넣었다. 곧이어 두 사람을 실은 차는 눈 깜짝할 새에 훌쩍 사라졌다.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공태준의 표정은 차가운 밤공기보다 더 싸늘하게 식었다.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공은채가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어때? 오빠의 관심이 다른 것보다 더 효과 있지?”방금 전 하윤이 도준 앞에서 저를 감싸던 모습을 생각하자, 태준의 표정은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이윽고 차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런데 윤이 씨가 좀 곤란하게 됐네.”그 말에 공은채는 실소했다.“그 여자가 난처한 걸 원하지 않는 게 뭐 어렵다고. 그냥 방관하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그럴 수 있어? 분명 오빠가 먼저 알았잖아. 마음 약해져서 놔주지 않았다면 권하윤 곁에 있는 건 오빠였어.”태준은 가슴이 조여왔다. 그것 역시 태준이 가장 후회하는 일이기도 하다.하지만 이내 눈을 감으며 말했다.“만약 그랬다면 아마 평생 나를 증오했을 거야.”공은채의 입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사랑이든 미움이든 권하윤 마음 속에 오빠 혼자만 있으면 된 거 아닌가? 그렇다면 도준 씨를 만날 일도 없었을 거고, 오빠의 소유가 됐을 건데. 그게 사랑이든 미움이든 뭐가 중요해?”짤막한 몇 마디는 태준이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다.하윤과 다시 만났을 때, 태준은 이 문제를 항상 회피했다.만약…….만약 그때 하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윤은 아마 태준을 증오하고, 제 자유를 빼앗아 가고 저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태준을 미워할 거다.하지만 공은채의 말대로 그게 사랑이든 미움이든, 하윤의 마음 속에는 오직 태준 하나뿐이었을 거다.짤막한
제가 잘못했기에 할 말이 없어진 하윤은 얼른 목소리를 줄이며 작게 중얼거렸다.“그거야 더 리얼하게 연기하려고 그랬죠.”하지만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도준이 하윤의 턱을 움켜 잡았다.“리얼? 어떻게 리얼하게 하려고 했는데? 어디 말해 봐. 얼마나 리얼하게 하려고 했는지?”하윤의 얼굴은 도준의 손에 잡혀 잔뜩 일그러졌다. 그 때문에 목소리마저 어눌하게 들렸다.“제가 어떻게 감히 뭘 했겠어요? 제 몸과 마음은 모두 도준 씨 건데. 저 그럴 배짱없어요.”눈을 깜빡이며 제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쓰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겨우 손의 힘을 풀었다.“그럴 배짱이 없다고? 아닌 것 같은데?”하윤은 기회를 틈 타 도준의 팔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럴 리가요. 공태준이 기사를 불러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오르려고 한 거예요. 안 그랬다면 거절했을 거라고요.”도준은 콧방귀를 뀌었다.“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도준이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든 태도를 보이자 하윤은 애써 자기 얼굴을 도준의 손아귀에서 빼냈다.“제가 도준 씨한테 어떻게 거짓말하겠어요? 잊었어요? 우리 같은 편이잖아요.”하지만 그런 말에 쉽게 넘어갈 도준이 아니었다.“난 또 자기가 친구를 더 신경 쓸 줄 알았지.”또 약점이 잡히자 하윤은 도준에게 더 바싹 가까이 갔다.“도준 씨는 제 남편인데, 신경 써도 남편부터 써야죠.”하윤은 어두운 차 안에서 도준을 빤히 쳐다봤다.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쯤 아마 꼬리까지 흔들어 댔을 거다.도준은 손을 들어 하윤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다음에 또 이랬다간 가만 안 둘 줄 알아.”“절대 안 그래요.”도준이 화 나면 복수도 하지 못하게 할까 봐, 하윤은 애써 아부를 떨어댔다.심지어 손을 뻗어 도준의 어깨까지 두드리기 시작했다.“저한테 화내느라 힘들었죠? 제가 두드려 줄게요. 저 힘 장난 아니에요.”하윤의 행동에 도준은 피식 웃었다.“자기가? 제대로 서지도 못하며 힘이 있기는.”콧방귀를 뀌며 도준의 말에 반박하려던 찰나, 도준의 옷주머니에
늦은 밤.권하윤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때마침 욕실에서 나온 도준은 마침 저를 이불로 돌돌 감은 채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하윤을 보더니 재밌는 듯 피식 웃었다.“뭐 하는 거야?”그제야 멈춘 하윤은 침대에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려 도준을 바라봤다.“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중이예요.”오늘은 공은채가 자리에 있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싸우는 척 연기할 수 있었다.‘그럼 앞으로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지?’근심 가득한 말에 도준은 하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그쪽에서 다 알아서 할 건데, 걱정할 거 뭐 있어?”“그쪽?”하윤은 턱을 괸 채 고개를 살짝 꺾으며 도준을 바라봤다.“무슨 뜻이에요?”도준은 얼른 침대에 걸터 앉았다.“그쪽에서 우리 사이 갈라놓으려 할 테니 우리는 그냥 잘 협조해 주면 그만이야.”‘그건 그렇네.’하윤은 빙글 돌아 침대에 벌러덩 눕더니 도준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것도 다 알다니. 대단하네요.”“내가 또 어쨌다고 이래?”도준은 하윤을 자기 팔 사이에 가두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이에 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쭉 내밀며 테이블 쪽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마침 공은채의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공은채가 준 마음을 그냥 저렇게 나몰라라 해서야 되겠어요?”도준은 피식 웃었다.“기어코 가져오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가져왔더니 또 삐져? 혹시 심심해?”“그건 목걸이가 새것도 아닌 것 같아 그랬죠. 만약 목걸이에 얽힌 사연이 있거나 사랑의 증표라도 되면, 그걸 버리라고 한 제가 죄인이 되잖아요.”도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손등으로 하윤의 얼굴을 톡톡 쳤다.“총명하네. 새 목걸이가 아닌 것도 알아차리고.”이런 걸 알아 맞혔다고 해서 하윤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삐죽거렸다.“그럼 더 맞혀볼까요? 이거 도준 씨가 줬던 걸 공은채가 다시 돌려준 거죠?”도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침대 위에 흩어진 하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