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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9화 사랑 혹은 미움

하윤은 겉으로는 더 이상 말다툼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연기를 시전하면서 도준과 맞잡은 손으로 그의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긁었다.

이윽고 도준이 저를 흘겨보는 틈을 타 윙크를 날렸다.

‘이거 모두 가짜예요! 가짜! 알죠?’

도준은 혀로 제 볼을 꾹 누르더니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하윤의 손을 꽉 쥔 채 차 안에 밀어 넣었다. 곧이어 두 사람을 실은 차는 눈 깜짝할 새에 훌쩍 사라졌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공태준의 표정은 차가운 밤공기보다 더 싸늘하게 식었다.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공은채가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어때? 오빠의 관심이 다른 것보다 더 효과 있지?”

방금 전 하윤이 도준 앞에서 저를 감싸던 모습을 생각하자, 태준의 표정은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이윽고 차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윤이 씨가 좀 곤란하게 됐네.”

그 말에 공은채는 실소했다.

“그 여자가 난처한 걸 원하지 않는 게 뭐 어렵다고. 그냥 방관하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그럴 수 있어? 분명 오빠가 먼저 알았잖아. 마음 약해져서 놔주지 않았다면 권하윤 곁에 있는 건 오빠였어.”

태준은 가슴이 조여왔다. 그것 역시 태준이 가장 후회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으며 말했다.

“만약 그랬다면 아마 평생 나를 증오했을 거야.”

공은채의 입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권하윤 마음 속에 오빠 혼자만 있으면 된 거 아닌가? 그렇다면 도준 씨를 만날 일도 없었을 거고, 오빠의 소유가 됐을 건데. 그게 사랑이든 미움이든 뭐가 중요해?”

짤막한 몇 마디는 태준이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윤과 다시 만났을 때, 태준은 이 문제를 항상 회피했다.

만약…….

만약 그때 하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윤은 아마 태준을 증오하고, 제 자유를 빼앗아 가고 저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태준을 미워할 거다.

하지만 공은채의 말대로 그게 사랑이든 미움이든, 하윤의 마음 속에는 오직 태준 하나뿐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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