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옷으로 가녀린 어깨를 감싸는 권하윤의 모습에 공태준의 목소리는 한껏 부드러워졌다.“데려다 줄까요?”‘데려다 준다고?’만약 하윤이 태준을 따라 가면 가짜 싸움이 진짜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좋은 변명거리도 생각나지 않았다.그때, 태준이 하윤의 걱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민도준 씨가 오해하는 게 걱정되면 기사한테 부탁할게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하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걱정하면 공은채를 속이려던 게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게다가 저와 도준이 싸웠다는 걸 두 사람이 믿어야 복수도 더 빨리 진행할 수 있었다.이에 하윤은 끝내 동의했다.“응, 고마워.”물론 하윤과 동행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태준은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얼마 뒤, 이남기의 차가 도착하자 태준은 하윤이 부딪히지 않도록 매너 있게 막아주었다.“조심해요.”하지만 하윤이 차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손 하나가 하윤을 홱 잡아 끌었다.그 힘에 못 이겨 하윤은 비틀거리며 남자의 품에 부딪혔다.캄캄한 밤, 도준의 낯빛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 그 모습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잠시, 비바람을 암시하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 가?”도준의 무서운 모습에 하윤은 저도 모르게 해명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황에 해명을 하기도 뭣해 억지로 연기를 이어가며 도준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댔다.“제가 어디 가든 도준 씨가 상관할 바 아니에요.”하윤의 어깨에 걸친 외투를 보는 순간, 도준은 짜증이 솟구쳐 옷을 홱 낚아 채 태준에게 던졌다.이윽고 하윤의 손을 잡은 채 제 차 쪽으로 걸어갔다.힘을 억제하지 않은 탓에 하윤의 손목을 이내 붉어졌다.반 발짝 정도 뒤처진 거리에서 따라가고 있던 하윤은 도준의 무서운 낯빛에 저도 모르게 겁이 났다.하지만 그런 당황한 기색은 다른 사람의 눈에 오히려 협박을 못 이겨 무기력해진 모습으로 비춰졌다.태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앞으로 다가가 두 사
하윤은 겉으로는 더 이상 말다툼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연기를 시전하면서 도준과 맞잡은 손으로 그의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긁었다.이윽고 도준이 저를 흘겨보는 틈을 타 윙크를 날렸다.‘이거 모두 가짜예요! 가짜! 알죠?’도준은 혀로 제 볼을 꾹 누르더니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하윤의 손을 꽉 쥔 채 차 안에 밀어 넣었다. 곧이어 두 사람을 실은 차는 눈 깜짝할 새에 훌쩍 사라졌다.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공태준의 표정은 차가운 밤공기보다 더 싸늘하게 식었다.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공은채가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어때? 오빠의 관심이 다른 것보다 더 효과 있지?”방금 전 하윤이 도준 앞에서 저를 감싸던 모습을 생각하자, 태준의 표정은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이윽고 차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런데 윤이 씨가 좀 곤란하게 됐네.”그 말에 공은채는 실소했다.“그 여자가 난처한 걸 원하지 않는 게 뭐 어렵다고. 그냥 방관하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그럴 수 있어? 분명 오빠가 먼저 알았잖아. 마음 약해져서 놔주지 않았다면 권하윤 곁에 있는 건 오빠였어.”태준은 가슴이 조여왔다. 그것 역시 태준이 가장 후회하는 일이기도 하다.하지만 이내 눈을 감으며 말했다.“만약 그랬다면 아마 평생 나를 증오했을 거야.”공은채의 입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사랑이든 미움이든 권하윤 마음 속에 오빠 혼자만 있으면 된 거 아닌가? 그렇다면 도준 씨를 만날 일도 없었을 거고, 오빠의 소유가 됐을 건데. 그게 사랑이든 미움이든 뭐가 중요해?”짤막한 몇 마디는 태준이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다.하윤과 다시 만났을 때, 태준은 이 문제를 항상 회피했다.만약…….만약 그때 하윤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윤은 아마 태준을 증오하고, 제 자유를 빼앗아 가고 저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태준을 미워할 거다.하지만 공은채의 말대로 그게 사랑이든 미움이든, 하윤의 마음 속에는 오직 태준 하나뿐이었을 거다.짤막한
제가 잘못했기에 할 말이 없어진 하윤은 얼른 목소리를 줄이며 작게 중얼거렸다.“그거야 더 리얼하게 연기하려고 그랬죠.”하지만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도준이 하윤의 턱을 움켜 잡았다.“리얼? 어떻게 리얼하게 하려고 했는데? 어디 말해 봐. 얼마나 리얼하게 하려고 했는지?”하윤의 얼굴은 도준의 손에 잡혀 잔뜩 일그러졌다. 그 때문에 목소리마저 어눌하게 들렸다.“제가 어떻게 감히 뭘 했겠어요? 제 몸과 마음은 모두 도준 씨 건데. 저 그럴 배짱없어요.”눈을 깜빡이며 제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쓰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겨우 손의 힘을 풀었다.“그럴 배짱이 없다고? 아닌 것 같은데?”하윤은 기회를 틈 타 도준의 팔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럴 리가요. 공태준이 기사를 불러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오르려고 한 거예요. 안 그랬다면 거절했을 거라고요.”도준은 콧방귀를 뀌었다.“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도준이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든 태도를 보이자 하윤은 애써 자기 얼굴을 도준의 손아귀에서 빼냈다.“제가 도준 씨한테 어떻게 거짓말하겠어요? 잊었어요? 우리 같은 편이잖아요.”하지만 그런 말에 쉽게 넘어갈 도준이 아니었다.“난 또 자기가 친구를 더 신경 쓸 줄 알았지.”또 약점이 잡히자 하윤은 도준에게 더 바싹 가까이 갔다.“도준 씨는 제 남편인데, 신경 써도 남편부터 써야죠.”하윤은 어두운 차 안에서 도준을 빤히 쳐다봤다. 꼬리가 있었다면 지금쯤 아마 꼬리까지 흔들어 댔을 거다.도준은 손을 들어 하윤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다음에 또 이랬다간 가만 안 둘 줄 알아.”“절대 안 그래요.”도준이 화 나면 복수도 하지 못하게 할까 봐, 하윤은 애써 아부를 떨어댔다.심지어 손을 뻗어 도준의 어깨까지 두드리기 시작했다.“저한테 화내느라 힘들었죠? 제가 두드려 줄게요. 저 힘 장난 아니에요.”하윤의 행동에 도준은 피식 웃었다.“자기가? 제대로 서지도 못하며 힘이 있기는.”콧방귀를 뀌며 도준의 말에 반박하려던 찰나, 도준의 옷주머니에
늦은 밤.권하윤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때마침 욕실에서 나온 도준은 마침 저를 이불로 돌돌 감은 채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하윤을 보더니 재밌는 듯 피식 웃었다.“뭐 하는 거야?”그제야 멈춘 하윤은 침대에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려 도준을 바라봤다.“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 중이예요.”오늘은 공은채가 자리에 있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싸우는 척 연기할 수 있었다.‘그럼 앞으로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지?’근심 가득한 말에 도준은 하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그쪽에서 다 알아서 할 건데, 걱정할 거 뭐 있어?”“그쪽?”하윤은 턱을 괸 채 고개를 살짝 꺾으며 도준을 바라봤다.“무슨 뜻이에요?”도준은 얼른 침대에 걸터 앉았다.“그쪽에서 우리 사이 갈라놓으려 할 테니 우리는 그냥 잘 협조해 주면 그만이야.”‘그건 그렇네.’하윤은 빙글 돌아 침대에 벌러덩 눕더니 도준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것도 다 알다니. 대단하네요.”“내가 또 어쨌다고 이래?”도준은 하윤을 자기 팔 사이에 가두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이에 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쭉 내밀며 테이블 쪽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마침 공은채의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공은채가 준 마음을 그냥 저렇게 나몰라라 해서야 되겠어요?”도준은 피식 웃었다.“기어코 가져오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가져왔더니 또 삐져? 혹시 심심해?”“그건 목걸이가 새것도 아닌 것 같아 그랬죠. 만약 목걸이에 얽힌 사연이 있거나 사랑의 증표라도 되면, 그걸 버리라고 한 제가 죄인이 되잖아요.”도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손등으로 하윤의 얼굴을 톡톡 쳤다.“총명하네. 새 목걸이가 아닌 것도 알아차리고.”이런 걸 알아 맞혔다고 해서 하윤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삐죽거렸다.“그럼 더 맞혀볼까요? 이거 도준 씨가 줬던 걸 공은채가 다시 돌려준 거죠?”도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침대 위에 흩어진 하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이불 속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는 약간 불쌍하기까지 했다.하지만 그 질문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못 들었나?’못 들었다 해도 하윤은 한 번 더 물어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만약 도준이 공은채에게 아무 마음도 남아있지 않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여전히 마음이 남아 있는 데다 진명주의 심장이 두 사람을 연결해준다면, 앞으로 도준이 저를 미워할 게 뻔했으니까.생각할수록 마음이 답답했고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그때, 머리가 가벼워지더니 신선한 공기가 이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갑갑해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하윤은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자는 줄 알았는데.”낮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도준이 코웃음을 쳤다.“자기 전에 이야기 듣고 싶었던 거 아니야? 내가 안 하면 또 하루 종일 삐질 거잖아.”도준이 모든 걸 알려주겠다는 듯 말하자 하윤은 얼른 도준의 어깨에 기댔다.“들을 준비됐어요.”불이 꺼져 캄캄한 탓에 도준이 제 머리카락을 느긋하게 문지른다는 것밖에 느껴지지 않았다.“이 목걸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지?”하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건 특수 제작된 목걸이야. 안에 심장 세포가 들어 있거든.”“혹시 공은채의 원래 심장에 들어 있던 세포예요?”“응.”도준의 대답에 하윤은 소름이 돋았다. 이 목걸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은채가 어떤 마음으로 이 목걸이를 도준에게 전해 줬을지가 더 신경 쓰였다.그런 상황에서 이런 선물을 준다면 그게 누구든 거절할 수 없었을 거다.하윤은 씁쓸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다시 입을 열었다.“아, 참 지극정성이네요.”“원하는 게 있으니까 당연한 거겠지.”도준의 가벼운 대답에 하윤은 저도 모르게 이불을 손톱으로 잡아 뜯었다.“공태준이 전에 줬던 USB에서 두 사람 참 화목해 보였었는데.”도준이 문에 기대 피아노 연주를 하는 공은채를 지켜보던 장면이 특히 눈에 선했다.그때 도준이 하윤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아직도 그것 때문에 질투하는 거야?”“아니거든요.”입을 삐죽거리며 말
다음날.새벽까지 도준에게 시달려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잔 하윤은 눈앞에 있는 도준을 보고 약 2초간 멍 때렸다.항상 빨리 깨어나 제가 눈을 뜰 때면 진작 사라지고 없을 사람이 옆에 있으니 놀랄만 했다.‘매일 오늘 같았으면.’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하윤은 도준의 머리로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하지만 도준의 이마에 닿기도 전에 도준이 하윤의 손을 덥석 잡더니 스르르 눈을 떴다.곧이어 눈꺼풀에 가려졌던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고 갓 깨어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하고도 모자라? 아침부터 왜 또 건드려?”하윤은 깜짝 놀라 투덜거렸다.“깨었으면서 왜 자는 척해요? 놀랐잖아요.”도준은 꽉 잡고 있던 하윤의 손을 들어 올렸다.“내 잠을 방해했으면서 나를 탓하는 거야?”“채 닿지도 않았는데 뭘 방해했다는 거예요?”하윤의 볼멘 소리에 도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손이 닿아야 정신을 차린다면 진작 죽었을 거야.”하긴, 도준이 이만한 경계심도 없었다면 아마 권력 다툼 때문에 수백번도 죽었을 거다.그걸 인지하는 순간 눈 앞의 도준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그럼 앞으로 제대로 자요. 제가 망 봐 줄게요.”도준이 피식 웃었다.“말은 참 예쁘게 해.”이윽고 하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그런데 자기가 깨어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야 발견할 걸 보니…….”길게 늘어뜨린 도준의 말꼬리에 하윤은 왠지 기대감이 샘솟았다. ‘발견한 걸 보니 뭐? 이제는 나랑 별반 다를 게 없어졌다고?’“어제 나 제대로 쥐어 짰나 보네.”“뭐라고요?”괜히 기대했다는 생각에 하윤은 얼른 달려들어 도준을 꼬집었다. 그렇게 한참을 뒹굴고 나서야 두 사람은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섰다.……아침 식사를 하며 하윤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끝내 낮은 소리로 물었다.“왜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요?”도준은 하윤의 말에 피식 웃었다.“아침 식사하는데 방해할 게 뭐 있어? 얼른 먹어. 식은 거 먹으면 배 아플라.”“네.”하지
권하윤은 경고의 눈빛을 보내는 민도준을 힐끔거리다가 옆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는 공태준을 보고는 말없이 머핀을 내려 놓았다. 심지어 도준의 압박 때문에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게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부러 태준에게 미안한 듯한 눈빛을 보냈다.그게 분명 연기인 줄 알면서도 태준과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하윤의 모습을 본 순간, 도준은 말 못할 짜증이 밀려왔다.하지만 뭐라 말하려는 찰나, 하윤이 제 다리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는 감각이 느껴졌다.눈을 들어 보니 하윤이 고개를 숙인 채 죽을 먹는 와중에 저한테 암시를 보내고 있었다.‘이거 다 연기예요. 진짜는 도준 씨뿐이에요.’도준은 혀로 제 볼을 꾹 밀며 애써 화를 삭였지만 결국은 하윤의 호의를 받아들였다.“다 먹었어?”“네.”하윤은 숟가락을 내리며 입을 닦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준도 다 먹었다는 듯 수저를 내려 놓았다.“오후에 피아노 경매가 있는데 이 교수님이 즐겨 사용하던 스타인웨이D274도 있어요. 관심 있으면 같이 보러 가요.”그 말에 하윤은 곧바로 집중력을 빼앗겼다.‘아빠가 사용하던 피아노라고?’집이 망하면서 집에 있던 모든 물건도 경매로 팔렸던 기억이 난다. 그 중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쥬얼리와는 달리 같은 모델의 피아노는 하나뿐이 아니다. 때문에 아버지가 사용하던 피아노를 찾는 건 더 어려웠다.그런데 그 피아노에 관한 소식을 듣자 하윤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더해졌다.“우리 아빠 피아노가 확실해?”태준은 싱긋 웃으며 물었다.“이 교수가 사용하던 피아노 뚜껑에 긁힌 자국이 있죠?”“맞아.”그건 하윤과 승우가 동생을 데리고 놀 때, 동생이 실수로 긁은 흔적이다. 그때 이성호는 무척 마음 아파하며 복구 작업을 맡겼지만 그 흔적이 완벽하게 가려지지는 않았다.그런데 태준이 그 흔적의 위치까지 정확히 말하자 하윤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경매는 어제 어디서 해?”“그건…….”태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도준이 벌떡
하윤은 눈빛이 흔들려 차마 도준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그거야 공태준이 저 보려고 일부러 그런 거겠죠.”“알면서 따라가려교?”하윤은 이내 고래를 푹 떨구었다. 하윤도 그게 공태준이 내건 미끼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알면서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이제야 연기한다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게 실감이 들었다.연기는 연기일 뿐 감정까지 흔들릴 것 없다고 자신했건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공태준이든 공은채든 쉬운 상대가 아니었으니까.고작 아침식사 하는 그 잠깐 사이에도 이렇게 되었는데 태준을 따라가면 어떤 일이 기다릴지 아무도 몰랐다.한참 생각하던 하윤은 그제야 타협했다.“그럼 안 갈게요.”이윽고 고개를 쳐들고 도준을 바라봤다.“그 피아노 꼭 사와야 해요?”“알았어, 착하네.”도준은 그제야 만족한 듯 대답했다.물론 도준의 확답을 받아냈지만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하윤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심지어 방에 돌아온 뒤, 어디 가겠냐고 묻는 도준의 물음에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다 돼요. 도준 씨가 정해요.”잔뜩 풀이 죽어 소파에 앉아 있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이내 손을 뻗어 하윤의 고개를 쳐들었다.“왜? 아직도 삐졌어?”“아니요.”하윤은 도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제 얼굴을 도준의 몸에 비볐다.“저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요. 제가 쉽게 휘둘리는 것도 모자라 쓸데없는 생각을 자주 하니까. 제가 더 성숙했다면 보냈을 수도 있겠죠.”제 자리에 우뚝 선채 저한테 기댄 하윤을 보고 있던 도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손을 뻗어 하윤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왜 갑자기 이해심이 깊어졌지?”하윤은 고개를 들어 도준의 몸에 제 턱을 얹은 채 도준을 빤히 바라보았다.“사랑하니까요. 도준 씨가 기분 나쁜 건 원치 않아요.”그 말을 듣는 순간 도준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솔직히 하윤이 아무리 애교 부리고 제 비위를 맞추려 애써도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하지만 하윤의 이런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