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았으면 도망친 지 얼마되지도 않아 사용인들에게 잡혔을 테지만 공씨 가문이 무너진다는 소문 때문인지 저택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비 속에서 권하윤은 홀딱 젖은 채 미친 듯 질주했다.하지만 대문에 다다랐을 때 머리채가 누군가에게 잡히더니 뒤로 확 당겨졌다.그건 다름 아닌 어느새 뒤따라온 공아름이었다. 공아름도 하윤 못지 않게 홀딱 젖어 있었다.“감히 어딜 도망 가?”“이거 놔!”두 사람은 어느새 바닥에서 구르며 다투기 시작했다.하윤보다 몸집이 조금 더 있는 공아름은 어느새 우위를 점하고는 미친 듯 하윤을 바닥에 누르며 소리쳤다.“민도준 어디 있어? 당장 나오라고 해!”번개가 밤하늘을 가르는 순간, 아름다운 공아름의 얼굴이 섬뜩하게 번뜩였다.목이 졸린 하윤은 숨을 쉬려고 자꾸만 입을 벌렸고 그때마다 하윤의 입 안에 빗물이 들어갔다.점점 질식해 가는 하윤의 표정을 본 순간 공아름은 더 흥분했다. 심지어 손을 놓기는커녕 하윤의 목을 더 꽉 조이는 탓에 잘 다듬은 그녀의 손톱이 하윤의 살을 파고 들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공아름은 심지어 도준이 하윤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서로 뒹구는 장면까지 상상했다.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빠를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이제는 집안까지 망가뜨린 하윤을 공아름은 죽이고 싶었다.벌겋던 얼굴이 쟃빛으로 변하는 사이, 하윤은 바닥을 더듬으며 아무것이라도 잡으려고 노력했다.그러던 그때.“펑!”아름은 손에 잡힌 화분으로 공아름을 세게 내리쳤다.미처 피할 새도 없이 공격을 당한 공아름은 몸을 움찔 하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졌고 그제야 하윤은 공기를 탐하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콜록콜록…….”그렇게 한참 동안 숨을 헐떡이며 호흡을 되찾은 하윤은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로 흐른 시뻘건 피에 흠칫 놀랐다.‘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다행히 손가락을 공아름의 코 밑에 대보니 미세하지만 호흡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하윤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구급차를 부르려 했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야 하윤은 퇴원했다. 그 사이 공씨 가문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해원 여기저기에 보도되고 있었다.공씨 가문은 그저 추형탁과 비밀리에 손을 잡으며 위증을 한 것뿐인데, 그 뒤로 공씨 가문에서 했던 온갖 비리들이 도미노처럼 하나 둘 까발려 졌다.심지어는 한참 된 사건마저 도화선이 되어 인터넷에서 실명으로 공씨 집안을 제보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늘어났다.불과 며칠 사이, 공씨 집안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누구나 한 번쯤 밟는 상대가 되어 버렸다.심지어 며칠 사이, 공씨 가문의 모든 자산에 압류가 걸려 하윤마저 모든 게 믿기지 않았다.아무리 공들여 쌓은 탑이라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지만 이번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때문에 누군가 뒤에서 이 모든 판을 움직인다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순간, 공아름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민도준이 모든 판을 짜서 공씨 집안 사람들이 함정에 뛰어들기를 기다렸다던 말…….순간 하윤은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설마 정말 도준 씨인가?’‘그럴 리 없는데.’도준은 절대 하윤을 미끼로 사용할 리 없다. 게다가 공씨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윤이 죽든 살든 내버려 둘 리도 없다.‘그러면 도준 씨는 대체 어디 있지?’……병원에서 요양하는 동안, 하윤은 던을 계속 들들 볶아 끝내 보증서를 받아냈고 고은지가 안전하게 해원을 떤나도록 도와줬다.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한 하윤은 약속대로 인터뷰를 했다.물론 겪은 사실을 모두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하윤은 그저 몇 가지 일만 섞어 말하며 악한 사람은 꼭 벌을 받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충분히 힘든 세상에서 적어도 꿈 꿀 공간 정도는 남겨주는 게 맞았으니까.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는 또 다시 하윤이 춤을 추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얼마 뒤 전화를 받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시윤 씨, 죄송해요. 식사라도 대접하려고 했는데 또 특종이 잡혀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기자의 말에 하윤은 싱긋 웃었다.“괜찮아요. 저야
조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병원 측에서 가족들에게 순차적으로 전화를 돌리고 있어요.”그 말인 즉 아직 권하윤의 순서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민도준을 찾았다는 말만으로도 하윤의 눈시울은 이내 붉어졌다. 하윤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몸을 숙여 인사했다.“고맙습니다. 그럼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요.”이윽고 옆으로 가 순서를 기다리려던 순간, 조관성이 하윤을 불러 세웠다.“민 사모님, 이미 왔으니 같이 가봅시다.”“정말 그래도 되나요? 정말 고맙습니다.”하윤은 무척 흥분됐지만 규칙을 알고 있었기에 무턱대고 조관성을 따라 병실로 쳐들어 가지 않았다. 그저 병실 밖에서 기다릴 뿐.사실 진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사람도 조관성 뿐이었다.문병을 온 조관성은 조종사들을 빙 둘러보고 나서 맨 마지막에 도준의 병실로 들어갔다.그러다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손에 링거를 꽂고 있는 도준의 모습을 보자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안 다쳤잖습니까.”“우리 애기를 속이려면 제대로 연기 해야죠.”도준은 포도 한 알을 공중 위로 높이 뿌려 입으로 받아먹으며 대답했다.“이건 명백한 의료 자원 낭비입니다.”조관성의 싸늘한 말투에 도준은 붕대를 칭칭 감은 손을 머리 뒤에 베고 껄렁한 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제가 방값 대신 나중에 크게 기부할게요.”“방값이요? 병원을 뭐로 생각한 겁니까?”조관성은 이제 고작 마흔이지만 오랫동안 높은 지위에 있은 터라 사람을 억압하는 위엄이 느껴졌다.하지만…….“그렇다면 병원 의료기기를 모두 새로 바꿔 주시죠.”“이봐요. 조 국장님, 이거 사람 너무 갉아먹는 거 아닙니까?”조관성은 도준의 말을 듣지 못한 척하며 말머리를 돌렸다.“추 부장 쪽에서 여전히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어요. 그간 세력을 다져온 탓에 죄를 물으려면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사모님이 가져온 증거도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 그걸 물고 늘어질 수도 있고.”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든 라이터만 만지작거렸다. 원체 정서를 드러내지 않는 도준의
민도준은 아무리 봐도 골병이 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손발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칭칭 감긴 붕대를 보자 권하윤은 마음이 아픈 듯 조심스럽게 도준을 만졌다.“많이 아파요?”아까만 해도 도준을 마구 꾸짖던 하윤은 도준의 ‘상처’들을 보자 온순한 양이 되어버렸다.그걸 본 도준은 재밌는 듯 하윤을 놀려댔다.“아프지. 아파 죽을 것 같아.”그 말에 하윤은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움직이지 마요. 반듯하게 누워 있어요. 상처가 찢어지면 안 되니까.”“왜 갑자기 착해졌어?”계속 놀려대는 도준의 등 뒤에 베개를 받쳐주던 하윤은 화가 난 듯 도준을 째려봤다.“후유증이라도 남을까 봐 걱정되지만 않았다면 도준 씨 돌보지도 않았을 거예요.”때마침 창문을 통해 흘러 든 정오의 햇빛이 하윤의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였다.도준의 시선이 하윤의 가느다란 허리와 얼굴을 가린 긴 머리카락을 지나 열심히 바삐 움직이는 하윤의 손에 머물렀다. 이윽고 그가 편할 수 있도록 이불을 정리해주는 하윤의 손을 덥썩 잡았다.갑작스러운 동작에 하윤은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도준의 장난기 가득한 눈과 부딪쳤다.“충분히 편하니 다른 곳 좀 어떻게 해 줘.”그 말을 듣는 순간 하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여기 병원이에요.”하윤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이미 욕망이 고개를 든 남자는 하윤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손에 힘을 확 주어 자기 품안으로 끌어들이고는 하윤의 허리를 느긋하게 문지르며 유혹했다.“어딜 도망가려고? 떨어져 지내는 동안 나 안 그리웠어?”하윤은 침대를 손으로 받치며 도준의 상처를 누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하윤의 손길을 피하는 건 역부족이었다.“그만해요. 아직 상처도 채 안 나았으면서.”도준은 하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그녀의 머리카락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솔직히 상처가 없는 건 둘째 치고, 상처가 있다고 해도 도준은 입가에 다가온 고기를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도준은
걱정 가득한 권하윤의 표정을 보자 민도준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별로 부드러운 손길도 아니었지만 하윤은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났다.이번 달 내내 간 떨어질 일만 겪은 걸 돌이켜 보니 서러움이 다시 되살아났다.“분명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도준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윽고 손으로 하윤의 얼굴을 받쳐 들고는 엄지로 하윤의 뺨을 문질렀다.“미안해. 이제 그만 슬퍼해.”분명 간단한 위로였지만 하윤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동안 대체 어디 갔었어요? 이번 일 모두 도준 씨가 계획한 거 맞죠? 조 국장님과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저 속인 거죠? 그런 것도 모르고 제가 혼자 걱정한 거 맞죠?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그 문자를 받은 순간 하윤은 이런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도준이 자기를 그렇게 대할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공아름이 확신에 찬 말투로 도준이 죽은 척 연기한다고 말한 데다 공씨 가문이 갑자기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 하윤은 더 이상 자기를 속일 수 없었다.공씨 가문은 해원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가문인 데다 해원에서만큼은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가문을 무너뜨리는 건 절대 하루아침에 될 리 없다.추형탁 사건을 빌미로 진작에 공씨 가문에 설치해 뒀던 폭탄을 터뜨렸다면 모를까.만약 진짜로 이 모든 걸 미리 계획했다면 절대 우연은 아닐 거다.‘설마 공아름 말대로 도준 씨와 조 국장이 모든 판을 짜 놓고 연기한 건가?’‘그러면 내가 도준 씨 때문에 슬퍼하고 죽을 듯 괴로워하며 혐의를 벗겨 주려고 노력을 할 때, 도준 씨는 높은 곳에서 죽어라 뛰어다니는 나를 지켜봤다는 건가?’‘진짜 그렇다면…….’하윤은 순간 도준이 낯설게 느껴졌다.‘도준 씨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게 맞나?’눈물이 그렁그렁한 하윤을 보는 순간, 도준은 마음이 흔들려 손을 들어 하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뚝. 다 알면서 왜 그래? 나는 그동안
여자는 약간 차가우면서도 말랑말랑한 얼굴을 남자의 목덜미에 문질렀다. 심지어 지난 한달 동안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잊은 듯 말투마저 애틋함이 흘러 넘쳤다.그런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혀끝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젠장, 사람 속이기 참 어렵네. 어쩜 남한테 속는 것보다 더 괴롭지?’하지만 도준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하윤은 도준을 진짜 환자로 대하며 알뜰살뜰 보살폈고 차를 나르고 물을 따르는 것과 같은 잡일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러다가 하윤이 과일을 깎을 때. 그녀의 가는 손목에서 작은 상처를 발견한 도준은 얼른 하윤의 손을 낚아챘다.“이 상처는 어떻게 생겼어?”“아, 이거요? 추형탁과 민재혁을 피해 구치소에 들어가 있으면서 며칠 동안 수갑을 차고 있었더니 쓸렸나 봐요.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하윤은 얼른 손을 뒤로 뺐지만 도준은 꿈쩍도 하지 않고 굳은 살이 박힌 손으로 상처를 쓰다듬었다.점점 어두워지는 도준의 안색을 보자 하윤은 얼른 자기 손을 도준의 앞에 갖다 대며 애교 부렸다.“아파 죽겠어요. 호해줘요.”분명 자기 옆에 있을 때는 애교만 부리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던 여자였는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서 십여 명의 사람과 함께 지냈다는 걸 생각하니 도준은 마음이 미어졌다.마치 알뜰살뜰 보살피며 키워온 고양이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길고양이들과 먹이를 뺏어 먹는 걸 본 기분이었다.그런데 바보같이 다시 주어 오니 그동안 주인이 자기를 나몰라라 한 것도 모르고 자기가 없는 동안 외롭지는 않았는지 물으며 장난치며 애교 부리는 모습이라니…….도준은 어두운 눈동자로 하윤의 팔을 빤히 살펴보다가 자기 앞으로 쑥 내민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이윽고 따뜻한 입술이 상처에 닿는 순간, 얇은 살갗은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펄떡펄떡 뛰었다.도준의 시선은 팔을 따라 올라가더니 끝내 하윤의 얼굴에 멈췄다.“다 내 잘못이야.”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진지한 말투였다.잠깐 어리둥절해진 하윤은 이내 헤실 웃으며 도준의
“제가 씻는 거 도와 줄게요.”권하윤은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열정적으로 달려 들었다.하지만 작은 손이 민도준의 옷에 닿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말이야?”“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그냥 샤워하는 것만 도와주겠다는 뜻이었어요. 다른 의미 없었다고요!”노골적인 도준의 눈빛에 하윤은 황급히 부정했다.이윽고 붕대를 칭칭 감은 도준의 팔을 보며 말을 이었다.“함부로 할 생각 하지 마요. 아직 상처도 채 안 나았잖아요.”“걱정하지 마. 함부로 하지 않을 테니까.”도준은 말하면서 하윤을 쓱 훑었다.“그런데 옷 입고 씻겨 줄거야?”도준의 눈빛에 하윤은 순간 발가 벗겨진 느낌이 들었다.아무 의미 없는 건강한 샤워가 이상한 쪽으로 변질될까 봐 욕실로 들어가기 전 하윤은 슬립 원피스는 남겨 두었다.하지만 욕실 안으로 들어섰더니 도준이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선 채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었다.“어떻게 씻겨줄지 말해 봐.”도준이 입원한 곳은 욕실이 딸린 vip 병실이긴 하지만 집 욕실처럼 널찍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도준이 키가 워낙 큰 바람에 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때문인지 도준의 그림자까지 드리우자 하윤은 당장이라도 잡아 먹힐 것만 같았다.갑자기 느껴지는 압박감에 샤워 부스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동작마저 조심스러웠다.“이거로 해요. 안 그러면 붕대가 젖을 수도 있잖아요.”“그래, 시작해.”하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도준의 샤워를 도와줬다.도준이 가만 있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것도 무색하게 샤워하는 내내 도준은 하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오히려 긴 하늘거리는 슬립 치마를 입은 데다 축축한 열기 때문에 실크로 된 원단이 하윤의 몸에 점점 달라붙었고 뒤에 질끈 묶은 머리가 점점 풀어지며 앞으로 흘러내려 발갛게 물든 얼굴에 달라붙으며 분위기를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갔다.게다가 물기를 머금은 채 남성미를 뽐내고 있는 도준의 근육을 볼 때마다 호흡이 가빠져 하윤은 점점 대충하기 시작했다.“대충 다 된 것 같으
민도준은 밖으로 나가려는 권하윤을 덥석 잡아 다시 안으로 끌어 들였다.“홀딱 젖은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거야?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내가 또 챙겨야 하잖아. 여기 있어. 나 혼자서 갔다 올 테니까.”“어떻게 그래요? 옷 갈아 입고 같이 갈 테니 기다려요.”하윤은 도준이 걱정되어 혼자 보낼 수 없었다.하지만 완강하게 나오는 하윤의 태도에 도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말 안 들을래?”도준의 모습에 하윤은 끝질기게 발꿈치를 들어 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다.“저 환자 가족이에요. 어떻게 환자 혼자 보낼 수 있어요?”슬립 치마의 어깨 끈 한쪽이 끊어져 비뚤어진 상태에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하윤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야릇했다.하지만 하윤이 도준을 설득하려고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을 때, 도준이 갑자기 하윤의 목덜미를 받친 채 억지로 고개를 젖히게 하고는 벌이라도 내리는 듯 입을 맞췄다.“발정 났어? 아무 데도 갈 생각 하지 마.”“흥. 값도 치렀는데 저 두고 갈 건 아니죠?”도준은 자꾸만 자기 팔에 엉겨 붙는 하윤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자꾸 들러붙는 게 안 좋을 때도 있네.’결국 하윤은 도준과 함께 붕대를 갈러 의사를 찾아갔다.솔직히 도준의 상태가 심각한지 확인하고 싶은 마임이 컸다. 도준이 자꾸만 숨기니 더 걱정되기도 했고.껌딱지처럼 꼭 붙어 진료실에 도착한 하윤은 도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다급히 물었다.“의사 선생님, 우리 도준 씨 상처가 어떤가요? 혹시 뼈를 다치지는 않았나요?”“음…….”의사는 안경을 올리 밀면서 도준을 슬쩍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했다.“인체에는 도합 206개의 뼈가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골격을 형성합니다. 부위로 나눈다면 척추와 사지로 나눌 수 있고 형태로는 긴 뼈, 짧은 뼈…….”하윤은 의사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얼떨떨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의사의 말을 잘랐다.“저기, 그게 아니라 도준 씨 팔에 난 상처가 뼈에 손상을 주지는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