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약간 차가우면서도 말랑말랑한 얼굴을 남자의 목덜미에 문질렀다. 심지어 지난 한달 동안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잊은 듯 말투마저 애틋함이 흘러 넘쳤다.그런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혀끝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젠장, 사람 속이기 참 어렵네. 어쩜 남한테 속는 것보다 더 괴롭지?’하지만 도준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하윤은 도준을 진짜 환자로 대하며 알뜰살뜰 보살폈고 차를 나르고 물을 따르는 것과 같은 잡일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러다가 하윤이 과일을 깎을 때. 그녀의 가는 손목에서 작은 상처를 발견한 도준은 얼른 하윤의 손을 낚아챘다.“이 상처는 어떻게 생겼어?”“아, 이거요? 추형탁과 민재혁을 피해 구치소에 들어가 있으면서 며칠 동안 수갑을 차고 있었더니 쓸렸나 봐요.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하윤은 얼른 손을 뒤로 뺐지만 도준은 꿈쩍도 하지 않고 굳은 살이 박힌 손으로 상처를 쓰다듬었다.점점 어두워지는 도준의 안색을 보자 하윤은 얼른 자기 손을 도준의 앞에 갖다 대며 애교 부렸다.“아파 죽겠어요. 호해줘요.”분명 자기 옆에 있을 때는 애교만 부리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던 여자였는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서 십여 명의 사람과 함께 지냈다는 걸 생각하니 도준은 마음이 미어졌다.마치 알뜰살뜰 보살피며 키워온 고양이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길고양이들과 먹이를 뺏어 먹는 걸 본 기분이었다.그런데 바보같이 다시 주어 오니 그동안 주인이 자기를 나몰라라 한 것도 모르고 자기가 없는 동안 외롭지는 않았는지 물으며 장난치며 애교 부리는 모습이라니…….도준은 어두운 눈동자로 하윤의 팔을 빤히 살펴보다가 자기 앞으로 쑥 내민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이윽고 따뜻한 입술이 상처에 닿는 순간, 얇은 살갗은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펄떡펄떡 뛰었다.도준의 시선은 팔을 따라 올라가더니 끝내 하윤의 얼굴에 멈췄다.“다 내 잘못이야.”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진지한 말투였다.잠깐 어리둥절해진 하윤은 이내 헤실 웃으며 도준의
“제가 씻는 거 도와 줄게요.”권하윤은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열정적으로 달려 들었다.하지만 작은 손이 민도준의 옷에 닿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말이야?”“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그냥 샤워하는 것만 도와주겠다는 뜻이었어요. 다른 의미 없었다고요!”노골적인 도준의 눈빛에 하윤은 황급히 부정했다.이윽고 붕대를 칭칭 감은 도준의 팔을 보며 말을 이었다.“함부로 할 생각 하지 마요. 아직 상처도 채 안 나았잖아요.”“걱정하지 마. 함부로 하지 않을 테니까.”도준은 말하면서 하윤을 쓱 훑었다.“그런데 옷 입고 씻겨 줄거야?”도준의 눈빛에 하윤은 순간 발가 벗겨진 느낌이 들었다.아무 의미 없는 건강한 샤워가 이상한 쪽으로 변질될까 봐 욕실로 들어가기 전 하윤은 슬립 원피스는 남겨 두었다.하지만 욕실 안으로 들어섰더니 도준이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선 채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었다.“어떻게 씻겨줄지 말해 봐.”도준이 입원한 곳은 욕실이 딸린 vip 병실이긴 하지만 집 욕실처럼 널찍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도준이 키가 워낙 큰 바람에 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때문인지 도준의 그림자까지 드리우자 하윤은 당장이라도 잡아 먹힐 것만 같았다.갑자기 느껴지는 압박감에 샤워 부스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동작마저 조심스러웠다.“이거로 해요. 안 그러면 붕대가 젖을 수도 있잖아요.”“그래, 시작해.”하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도준의 샤워를 도와줬다.도준이 가만 있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것도 무색하게 샤워하는 내내 도준은 하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오히려 긴 하늘거리는 슬립 치마를 입은 데다 축축한 열기 때문에 실크로 된 원단이 하윤의 몸에 점점 달라붙었고 뒤에 질끈 묶은 머리가 점점 풀어지며 앞으로 흘러내려 발갛게 물든 얼굴에 달라붙으며 분위기를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갔다.게다가 물기를 머금은 채 남성미를 뽐내고 있는 도준의 근육을 볼 때마다 호흡이 가빠져 하윤은 점점 대충하기 시작했다.“대충 다 된 것 같으
민도준은 밖으로 나가려는 권하윤을 덥석 잡아 다시 안으로 끌어 들였다.“홀딱 젖은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거야?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내가 또 챙겨야 하잖아. 여기 있어. 나 혼자서 갔다 올 테니까.”“어떻게 그래요? 옷 갈아 입고 같이 갈 테니 기다려요.”하윤은 도준이 걱정되어 혼자 보낼 수 없었다.하지만 완강하게 나오는 하윤의 태도에 도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말 안 들을래?”도준의 모습에 하윤은 끝질기게 발꿈치를 들어 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다.“저 환자 가족이에요. 어떻게 환자 혼자 보낼 수 있어요?”슬립 치마의 어깨 끈 한쪽이 끊어져 비뚤어진 상태에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하윤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야릇했다.하지만 하윤이 도준을 설득하려고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을 때, 도준이 갑자기 하윤의 목덜미를 받친 채 억지로 고개를 젖히게 하고는 벌이라도 내리는 듯 입을 맞췄다.“발정 났어? 아무 데도 갈 생각 하지 마.”“흥. 값도 치렀는데 저 두고 갈 건 아니죠?”도준은 자꾸만 자기 팔에 엉겨 붙는 하윤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자꾸 들러붙는 게 안 좋을 때도 있네.’결국 하윤은 도준과 함께 붕대를 갈러 의사를 찾아갔다.솔직히 도준의 상태가 심각한지 확인하고 싶은 마임이 컸다. 도준이 자꾸만 숨기니 더 걱정되기도 했고.껌딱지처럼 꼭 붙어 진료실에 도착한 하윤은 도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다급히 물었다.“의사 선생님, 우리 도준 씨 상처가 어떤가요? 혹시 뼈를 다치지는 않았나요?”“음…….”의사는 안경을 올리 밀면서 도준을 슬쩍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했다.“인체에는 도합 206개의 뼈가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골격을 형성합니다. 부위로 나눈다면 척추와 사지로 나눌 수 있고 형태로는 긴 뼈, 짧은 뼈…….”하윤은 의사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얼떨떨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의사의 말을 잘랐다.“저기, 그게 아니라 도준 씨 팔에 난 상처가 뼈에 손상을 주지는 않았는지
늦은 밤, 하윤은 도준의 품에 파고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안도감에 잠이 솔솔 몰 려 오려던 찰나, 하윤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도준에게 물었다.“참, 그동안 주림 선배와 선배의 할아버지는 잘 지냈어요?”도준은 어둠 속에서 자기 가슴 위에 엎드린 여자의 등을 토닥였다.“응, 잘 있어.”솔직히 하윤은 두 사람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 퇴원하지도 않은 도준의 곁을 떠나기 싫어 물으려던 물음을 다시 삼켰다.하지만 의외로 도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두 사람 지금 경성에 있어. 내일 비행기 준비해 줄 테니까 한번 가 봐. 나는 해원에서 일 다 처리하면 찾아 갈게.”도준은 어안이 벙벙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저 혼자 경성으로 돌아가라고요? 싫어요. 안 갈래요. 도준 씨 곁에서 돌봐 줄 거예요.”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도준은 하윤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본인이 여기 남아 있는 게 내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순간 아까 욕실에서 벌어진 일이 생각 난 하윤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방해만 되는 듯해 보였으니까.하지만 하윤은 망설여졌다.“그래도…….”“말 들어.”도준은 하윤의 손을 꼭 잡았다.“하윤 씨와 소혜가 찾은 그 증거에 문제가 있어 추형탁과 공씨 가문이 재기할 기회를 엿보고 있어. 하윤 씨가 여기 남아 있으면 상대방한테 빌미만 제공하는 꼴이야. 그러니까 말 들어.”하윤은 입을 뻐끔거리며 반박하려 하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겨우 다시 만난 도준과 또 헤어질 생각을 하니 하윤의 마음은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풀이 죽었다.이에 도준은 하윤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되물었다.“왜 그래? 싫어?”“아니요. 그냥…….”하윤도 도준이 작기를 걱정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얼른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그래도 헤어지기 싫은 마음은 여전했기에 하윤은 도준의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웅얼거렸다.“도준 씨랑 헤어지기 싫어서요.”“이번이 마지막이야.”등을 토닥이는 도준의 손길이 느껴지자 하윤은 도
민도준은 고개를 돌려 권하윤을 빤히 쳐다봤다.“우리 부처님께서 또 은혜를 베풀기 시작한 거야?”“도준 씨가 몰라서 그렇지 그 언니 정말 불쌍한 사람이에요. 매일 남편한테 맞다가 고작 한번 반격했는데 실수로 상대가 죽어 버렸거든요. 게다가 살인도 사형도 무섭지 않다고 하는데 딸이 그 일 때문에 슬퍼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래요.”하윤은 말하면서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사실 저는 제 상황이 엄청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누구나 다 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감개무량한 듯 한바탕 감회를 늘어 놓은 하윤은 여느 때처럼 자기를 놀려대지 않는 도준을 보자 적응이 안 되는 듯 되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하윤의 말에 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뭐라고 말해야 해?”“제가 순진하다고, 그 사람들이 나약한 거라고 왜 놀리지 않아요?”“갑자기 하윤 씨 말도 맞는 것 같아서.”도준은 하윤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그 모습에 하윤은 아연실색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헐, 이게 무슨 일이래? 설마 머리라도 다쳤나?”“됐어. 그만하고 얼른 자.”그동안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잔 적 없던 하윤은 처음으로 편히 잠들었다.하지만 하윤이 곤히 잠 자는 동안, 남자는 짙은 눈동자로 하윤을 빤히 쳐다봤다.……아침 9시에 눈을 떠보니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오히려 아침 밥을 사서 하윤 앞에 대령했다.“이제야 일어나는 거야? 얼른 씻고 아침 먹어.”“왜 깨우지 않았어요? 아침은 제가 사왔어야 했는데.”하윤은 눈을 마구 비비더니 침대 앞에 우뚝 서 있는 도준을 멋쩍게 바라봤다.그런 하윤을 도준은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며 재촉했다.“됐어. 기다리다가 굶어 죽을 일이 있어? 얼른 씻고 밥 먹어.”그렇게 맞이한 아침 식사 시간에 도준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의 입에서 경성과 비행기라는 단어를 들은 하윤은 이제 곧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입맛이 사라졌다.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끊은 도준은 하윤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점심
한민혁은 갑자기 쳐들어 갔다가 또 어제와 같은 상황을 보게 될까 봐 동의를 구하고 나서야 안으로 발을 들였다.그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하윤 씨, 좋은 아침이에요. 아침 식사 중이었어요?”분명 인사를 건넨 상대가 권하윤이었지만 민도준이 귀찮은 듯 대답을 가로챘다.“할 말 있으면 빨리 해.”“어…….”민혁은 하윤을 힐끗 바라봤다.그제야 하윤은 자기의 존재가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솔직히 예전이었다면 눈치 챈 순간 하윤은 얼른 자리를 피해줬을 거다. 하지만 도준과 한 마음 한 뜻이 된 지금 ‘내가 못 들을 게 뭐 있어?’ 라는 자신감이 들었다.이에 하윤은 도준을 바라봤다.하지만 도준은 하윤의 머리를 꾹 누르며 밖으로 내쫓았다.“밖에서 혼자 놀고 있어. 이따가 부를게.”하윤은 도준의 결정이 서운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문을 나선 뒤, 굳게 닫힌 문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설마 도준 씨가 나를 못 믿나?’‘하긴, 내가 그동안 한 거짓말이 얼만데, 못 믿는 것도 당연해.’‘그런데 본인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지?’‘잃기 전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건’ 사랑에 빠진 남녀가 꼭 알아야 하는 도리인 듯싶다.‘이제는 도준 씨의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 내 기분이 좌지우지되는데.’별의별 생각을 하며 우울해하던 하윤은 이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렸다.‘도준 씨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나를 위해 뭐든 다 해주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내가 아는 게 많을수록 위험할까 봐 일부러 안 알려줄 수도 있잖아.’스스로 마음을 달랜 하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래층으로 내려 가 나무 그늘 밑에서 산책했다.오늘 날씨는 무척 화창해 햇빛이 쨍쨍 비쳤다. 이에 하윤은 일부러 나무 그늘만 찾아 다니며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병원 근처에서 호떡을 파는 가게를 발견 하윤은 얼른 호떡 하나를 사 들고 도준과 함께 나누어 먹을 계획을 세웠다.하지만 호
‘알았다고?’‘뭘 알았다는 거지?’권하윤은 호기심에 사로잡혀 문에 더 바싹 붙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공아름의 목소리가 문을 뚫고 병실 밖에 전해졌다.“우리 집안 망가트린 게 공은채 때문이죠? 공은채랑…….”공아름의 말에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 문이 갑자기 열리는 바람에 하윤과 민혁이 동시에 병실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하윤이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자 민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미안해요. 너무 긴장해서 문손잡이를 눌러 버렸어요.”갑작스러운 변고에 하려던 말이 끊긴 하윤은 방안에 나타난 하윤을 본 순간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댔다.“뭐야? 감히…….”공아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녀의 갖은 노력에도 꿈쩍하지 않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살을 찡그렸다. 하지만 분명 인내심이 한계치에 도달한 듯한 표정인데도 화를 내기는커녕 손을 내밀었다.“일어나.”몰래 엿듣다가 들켜버린 하윤은 우물쭈물 하며 도준의 손을 잡고 일어나더니 곧바로 잘못을 뉘우쳤다.“죄송해요. 일부러 엿들을려고 한 게 아니라 방해할까 봐 그랬어요.”그 시각, 옆에서 혼자 일어선 민혁은 하윤의 말에 엄지를 척 내밀었다.‘역시 대단하다니까. 애인과 연적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다니 참 대단해.’도준은 잔뜩 겁을 먹은 하윤을 흘끗 내려다봤다.“이젠 하다하다 엿듣기까지 해? 문에 끼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그러는 자기는, 다른 여자와 밀회하지 않으면 내가 이러겠냐고!’하윤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속으로만 투덜댔다.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에 공아름은 진심이 짓밟히다 못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공씨 가문의 변고 때문에 공아름은 예전처럼 빛나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는 산발이 된 채 두 사람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아주 좋아.”공아름은 비틀거리며 앞으로 더 다가가 자기를 괴롭히듯 두 사람을 눈에 새기더니 매니큐어를 바른 손가락으로 하윤을 삳대질했다.“도준 씨가 진짜 너 사랑하는 것 같아? 넌 그냥 이용당하는 것뿐이야! 도준 씨가 사랑하는
물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권하윤은 마음이 무거웠다.솔직히 민도준이 그간 했던 모든 일이 공은채를 너무 사랑해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공은채와 공태준의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은 뒤 모든 의심을 던져버렸었다.하지만 눈 앞에 벌어진 상황 때문에 그 두가지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도준과 공은채의 시작이 공은채가 도준 어머니의 신체 기관을 기증 받아서라고 해도 두 사람은 충분히 서로 사랑할 수 있다.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하윤은 가슴이 답답해나기 시작했다.하지만 하윤의 감정이 점점 북받칠 때, 도준이 그녀의 미간을 꾹 짚었다.“왜 또 혼자서 땅 파?”속내를 들킨 하윤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더 이상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화 나는 걸 어떡해요! 민혁 씨랑 무슨 비밀스러운 얘기를 나누려고 나는 밖으로 쫓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아침밥 사러 가는 사이 공아름 씨랑 밀회나 하고. 전 여친도 계속 언급하고! 아주 화 나서 미치겠어요!”“뭔 불만이 그렇게 많아?”끊임없이 불만을 얘기하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피식 웃더니 하윤을 자기 품에 꼭 끌어안았다.“난 하윤 씨 하나면 충분해. 다른 사람 생각할 겨를도 없어.”하윤은 콧방귀와 함께 고개를 홱 돌리며 여전히 화가 났다는 걸 강력 어필했다.그때 도준이 하윤의 턱을 잡아 돌리더니 허리를 숙여 하윤과 닿을 락 말 락 할 거리에서 멈췄다.“그렇게 불안하면 날 뽑아 먹어.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날 거잖아.”“싫거든요.”도준의 노골적인 말에 하윤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투덜거렸지만 태도는 전보다 많이 누그러들었다.그러다 끝내 고개를 들어 도준을 보더니 화가 난 듯 도준의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도준 씨가 다른 사람 좋아하면 저는…….”“음? 어떻게 할 건데?”“도준 씨가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가서 만나주지 않을 거예요!”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도준이 하윤의 허리를 세게 휘어 감았다. 그 힘이 어찌나 셌는지 하윤은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