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준은 아무리 봐도 골병이 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손발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칭칭 감긴 붕대를 보자 권하윤은 마음이 아픈 듯 조심스럽게 도준을 만졌다.“많이 아파요?”아까만 해도 도준을 마구 꾸짖던 하윤은 도준의 ‘상처’들을 보자 온순한 양이 되어버렸다.그걸 본 도준은 재밌는 듯 하윤을 놀려댔다.“아프지. 아파 죽을 것 같아.”그 말에 하윤은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움직이지 마요. 반듯하게 누워 있어요. 상처가 찢어지면 안 되니까.”“왜 갑자기 착해졌어?”계속 놀려대는 도준의 등 뒤에 베개를 받쳐주던 하윤은 화가 난 듯 도준을 째려봤다.“후유증이라도 남을까 봐 걱정되지만 않았다면 도준 씨 돌보지도 않았을 거예요.”때마침 창문을 통해 흘러 든 정오의 햇빛이 하윤의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였다.도준의 시선이 하윤의 가느다란 허리와 얼굴을 가린 긴 머리카락을 지나 열심히 바삐 움직이는 하윤의 손에 머물렀다. 이윽고 그가 편할 수 있도록 이불을 정리해주는 하윤의 손을 덥썩 잡았다.갑작스러운 동작에 하윤은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도준의 장난기 가득한 눈과 부딪쳤다.“충분히 편하니 다른 곳 좀 어떻게 해 줘.”그 말을 듣는 순간 하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여기 병원이에요.”하윤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이미 욕망이 고개를 든 남자는 하윤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손에 힘을 확 주어 자기 품안으로 끌어들이고는 하윤의 허리를 느긋하게 문지르며 유혹했다.“어딜 도망가려고? 떨어져 지내는 동안 나 안 그리웠어?”하윤은 침대를 손으로 받치며 도준의 상처를 누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하윤의 손길을 피하는 건 역부족이었다.“그만해요. 아직 상처도 채 안 나았으면서.”도준은 하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그녀의 머리카락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솔직히 상처가 없는 건 둘째 치고, 상처가 있다고 해도 도준은 입가에 다가온 고기를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도준은
걱정 가득한 권하윤의 표정을 보자 민도준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별로 부드러운 손길도 아니었지만 하윤은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났다.이번 달 내내 간 떨어질 일만 겪은 걸 돌이켜 보니 서러움이 다시 되살아났다.“분명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도준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윽고 손으로 하윤의 얼굴을 받쳐 들고는 엄지로 하윤의 뺨을 문질렀다.“미안해. 이제 그만 슬퍼해.”분명 간단한 위로였지만 하윤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동안 대체 어디 갔었어요? 이번 일 모두 도준 씨가 계획한 거 맞죠? 조 국장님과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저 속인 거죠? 그런 것도 모르고 제가 혼자 걱정한 거 맞죠?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그 문자를 받은 순간 하윤은 이런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도준이 자기를 그렇게 대할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공아름이 확신에 찬 말투로 도준이 죽은 척 연기한다고 말한 데다 공씨 가문이 갑자기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 하윤은 더 이상 자기를 속일 수 없었다.공씨 가문은 해원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가문인 데다 해원에서만큼은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가문을 무너뜨리는 건 절대 하루아침에 될 리 없다.추형탁 사건을 빌미로 진작에 공씨 가문에 설치해 뒀던 폭탄을 터뜨렸다면 모를까.만약 진짜로 이 모든 걸 미리 계획했다면 절대 우연은 아닐 거다.‘설마 공아름 말대로 도준 씨와 조 국장이 모든 판을 짜 놓고 연기한 건가?’‘그러면 내가 도준 씨 때문에 슬퍼하고 죽을 듯 괴로워하며 혐의를 벗겨 주려고 노력을 할 때, 도준 씨는 높은 곳에서 죽어라 뛰어다니는 나를 지켜봤다는 건가?’‘진짜 그렇다면…….’하윤은 순간 도준이 낯설게 느껴졌다.‘도준 씨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게 맞나?’눈물이 그렁그렁한 하윤을 보는 순간, 도준은 마음이 흔들려 손을 들어 하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뚝. 다 알면서 왜 그래? 나는 그동안
여자는 약간 차가우면서도 말랑말랑한 얼굴을 남자의 목덜미에 문질렀다. 심지어 지난 한달 동안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잊은 듯 말투마저 애틋함이 흘러 넘쳤다.그런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혀끝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젠장, 사람 속이기 참 어렵네. 어쩜 남한테 속는 것보다 더 괴롭지?’하지만 도준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하윤은 도준을 진짜 환자로 대하며 알뜰살뜰 보살폈고 차를 나르고 물을 따르는 것과 같은 잡일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러다가 하윤이 과일을 깎을 때. 그녀의 가는 손목에서 작은 상처를 발견한 도준은 얼른 하윤의 손을 낚아챘다.“이 상처는 어떻게 생겼어?”“아, 이거요? 추형탁과 민재혁을 피해 구치소에 들어가 있으면서 며칠 동안 수갑을 차고 있었더니 쓸렸나 봐요.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하윤은 얼른 손을 뒤로 뺐지만 도준은 꿈쩍도 하지 않고 굳은 살이 박힌 손으로 상처를 쓰다듬었다.점점 어두워지는 도준의 안색을 보자 하윤은 얼른 자기 손을 도준의 앞에 갖다 대며 애교 부렸다.“아파 죽겠어요. 호해줘요.”분명 자기 옆에 있을 때는 애교만 부리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던 여자였는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서 십여 명의 사람과 함께 지냈다는 걸 생각하니 도준은 마음이 미어졌다.마치 알뜰살뜰 보살피며 키워온 고양이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길고양이들과 먹이를 뺏어 먹는 걸 본 기분이었다.그런데 바보같이 다시 주어 오니 그동안 주인이 자기를 나몰라라 한 것도 모르고 자기가 없는 동안 외롭지는 않았는지 물으며 장난치며 애교 부리는 모습이라니…….도준은 어두운 눈동자로 하윤의 팔을 빤히 살펴보다가 자기 앞으로 쑥 내민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이윽고 따뜻한 입술이 상처에 닿는 순간, 얇은 살갗은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펄떡펄떡 뛰었다.도준의 시선은 팔을 따라 올라가더니 끝내 하윤의 얼굴에 멈췄다.“다 내 잘못이야.”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진지한 말투였다.잠깐 어리둥절해진 하윤은 이내 헤실 웃으며 도준의
“제가 씻는 거 도와 줄게요.”권하윤은 팔소매를 걷어붙이며 열정적으로 달려 들었다.하지만 작은 손이 민도준의 옷에 닿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말이야?”“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 그냥 샤워하는 것만 도와주겠다는 뜻이었어요. 다른 의미 없었다고요!”노골적인 도준의 눈빛에 하윤은 황급히 부정했다.이윽고 붕대를 칭칭 감은 도준의 팔을 보며 말을 이었다.“함부로 할 생각 하지 마요. 아직 상처도 채 안 나았잖아요.”“걱정하지 마. 함부로 하지 않을 테니까.”도준은 말하면서 하윤을 쓱 훑었다.“그런데 옷 입고 씻겨 줄거야?”도준의 눈빛에 하윤은 순간 발가 벗겨진 느낌이 들었다.아무 의미 없는 건강한 샤워가 이상한 쪽으로 변질될까 봐 욕실로 들어가기 전 하윤은 슬립 원피스는 남겨 두었다.하지만 욕실 안으로 들어섰더니 도준이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선 채로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었다.“어떻게 씻겨줄지 말해 봐.”도준이 입원한 곳은 욕실이 딸린 vip 병실이긴 하지만 집 욕실처럼 널찍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도준이 키가 워낙 큰 바람에 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때문인지 도준의 그림자까지 드리우자 하윤은 당장이라도 잡아 먹힐 것만 같았다.갑자기 느껴지는 압박감에 샤워 부스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동작마저 조심스러웠다.“이거로 해요. 안 그러면 붕대가 젖을 수도 있잖아요.”“그래, 시작해.”하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도준의 샤워를 도와줬다.도준이 가만 있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것도 무색하게 샤워하는 내내 도준은 하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오히려 긴 하늘거리는 슬립 치마를 입은 데다 축축한 열기 때문에 실크로 된 원단이 하윤의 몸에 점점 달라붙었고 뒤에 질끈 묶은 머리가 점점 풀어지며 앞으로 흘러내려 발갛게 물든 얼굴에 달라붙으며 분위기를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갔다.게다가 물기를 머금은 채 남성미를 뽐내고 있는 도준의 근육을 볼 때마다 호흡이 가빠져 하윤은 점점 대충하기 시작했다.“대충 다 된 것 같으
민도준은 밖으로 나가려는 권하윤을 덥석 잡아 다시 안으로 끌어 들였다.“홀딱 젖은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거야?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내가 또 챙겨야 하잖아. 여기 있어. 나 혼자서 갔다 올 테니까.”“어떻게 그래요? 옷 갈아 입고 같이 갈 테니 기다려요.”하윤은 도준이 걱정되어 혼자 보낼 수 없었다.하지만 완강하게 나오는 하윤의 태도에 도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말 안 들을래?”도준의 모습에 하윤은 끝질기게 발꿈치를 들어 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다.“저 환자 가족이에요. 어떻게 환자 혼자 보낼 수 있어요?”슬립 치마의 어깨 끈 한쪽이 끊어져 비뚤어진 상태에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하윤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야릇했다.하지만 하윤이 도준을 설득하려고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을 때, 도준이 갑자기 하윤의 목덜미를 받친 채 억지로 고개를 젖히게 하고는 벌이라도 내리는 듯 입을 맞췄다.“발정 났어? 아무 데도 갈 생각 하지 마.”“흥. 값도 치렀는데 저 두고 갈 건 아니죠?”도준은 자꾸만 자기 팔에 엉겨 붙는 하윤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자꾸 들러붙는 게 안 좋을 때도 있네.’결국 하윤은 도준과 함께 붕대를 갈러 의사를 찾아갔다.솔직히 도준의 상태가 심각한지 확인하고 싶은 마임이 컸다. 도준이 자꾸만 숨기니 더 걱정되기도 했고.껌딱지처럼 꼭 붙어 진료실에 도착한 하윤은 도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다급히 물었다.“의사 선생님, 우리 도준 씨 상처가 어떤가요? 혹시 뼈를 다치지는 않았나요?”“음…….”의사는 안경을 올리 밀면서 도준을 슬쩍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했다.“인체에는 도합 206개의 뼈가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골격을 형성합니다. 부위로 나눈다면 척추와 사지로 나눌 수 있고 형태로는 긴 뼈, 짧은 뼈…….”하윤은 의사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얼떨떨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의사의 말을 잘랐다.“저기, 그게 아니라 도준 씨 팔에 난 상처가 뼈에 손상을 주지는 않았는지
늦은 밤, 하윤은 도준의 품에 파고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안도감에 잠이 솔솔 몰 려 오려던 찰나, 하윤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도준에게 물었다.“참, 그동안 주림 선배와 선배의 할아버지는 잘 지냈어요?”도준은 어둠 속에서 자기 가슴 위에 엎드린 여자의 등을 토닥였다.“응, 잘 있어.”솔직히 하윤은 두 사람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 퇴원하지도 않은 도준의 곁을 떠나기 싫어 물으려던 물음을 다시 삼켰다.하지만 의외로 도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두 사람 지금 경성에 있어. 내일 비행기 준비해 줄 테니까 한번 가 봐. 나는 해원에서 일 다 처리하면 찾아 갈게.”도준은 어안이 벙벙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저 혼자 경성으로 돌아가라고요? 싫어요. 안 갈래요. 도준 씨 곁에서 돌봐 줄 거예요.”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도준은 하윤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본인이 여기 남아 있는 게 내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순간 아까 욕실에서 벌어진 일이 생각 난 하윤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방해만 되는 듯해 보였으니까.하지만 하윤은 망설여졌다.“그래도…….”“말 들어.”도준은 하윤의 손을 꼭 잡았다.“하윤 씨와 소혜가 찾은 그 증거에 문제가 있어 추형탁과 공씨 가문이 재기할 기회를 엿보고 있어. 하윤 씨가 여기 남아 있으면 상대방한테 빌미만 제공하는 꼴이야. 그러니까 말 들어.”하윤은 입을 뻐끔거리며 반박하려 하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겨우 다시 만난 도준과 또 헤어질 생각을 하니 하윤의 마음은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풀이 죽었다.이에 도준은 하윤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되물었다.“왜 그래? 싫어?”“아니요. 그냥…….”하윤도 도준이 작기를 걱정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얼른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그래도 헤어지기 싫은 마음은 여전했기에 하윤은 도준의 품에 고개를 파묻으며 웅얼거렸다.“도준 씨랑 헤어지기 싫어서요.”“이번이 마지막이야.”등을 토닥이는 도준의 손길이 느껴지자 하윤은 도
민도준은 고개를 돌려 권하윤을 빤히 쳐다봤다.“우리 부처님께서 또 은혜를 베풀기 시작한 거야?”“도준 씨가 몰라서 그렇지 그 언니 정말 불쌍한 사람이에요. 매일 남편한테 맞다가 고작 한번 반격했는데 실수로 상대가 죽어 버렸거든요. 게다가 살인도 사형도 무섭지 않다고 하는데 딸이 그 일 때문에 슬퍼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래요.”하윤은 말하면서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사실 저는 제 상황이 엄청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누구나 다 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감개무량한 듯 한바탕 감회를 늘어 놓은 하윤은 여느 때처럼 자기를 놀려대지 않는 도준을 보자 적응이 안 되는 듯 되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하윤의 말에 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뭐라고 말해야 해?”“제가 순진하다고, 그 사람들이 나약한 거라고 왜 놀리지 않아요?”“갑자기 하윤 씨 말도 맞는 것 같아서.”도준은 하윤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그 모습에 하윤은 아연실색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헐, 이게 무슨 일이래? 설마 머리라도 다쳤나?”“됐어. 그만하고 얼른 자.”그동안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잔 적 없던 하윤은 처음으로 편히 잠들었다.하지만 하윤이 곤히 잠 자는 동안, 남자는 짙은 눈동자로 하윤을 빤히 쳐다봤다.……아침 9시에 눈을 떠보니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오히려 아침 밥을 사서 하윤 앞에 대령했다.“이제야 일어나는 거야? 얼른 씻고 아침 먹어.”“왜 깨우지 않았어요? 아침은 제가 사왔어야 했는데.”하윤은 눈을 마구 비비더니 침대 앞에 우뚝 서 있는 도준을 멋쩍게 바라봤다.그런 하윤을 도준은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며 재촉했다.“됐어. 기다리다가 굶어 죽을 일이 있어? 얼른 씻고 밥 먹어.”그렇게 맞이한 아침 식사 시간에 도준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의 입에서 경성과 비행기라는 단어를 들은 하윤은 이제 곧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입맛이 사라졌다.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끊은 도준은 하윤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점심
한민혁은 갑자기 쳐들어 갔다가 또 어제와 같은 상황을 보게 될까 봐 동의를 구하고 나서야 안으로 발을 들였다.그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하윤 씨, 좋은 아침이에요. 아침 식사 중이었어요?”분명 인사를 건넨 상대가 권하윤이었지만 민도준이 귀찮은 듯 대답을 가로챘다.“할 말 있으면 빨리 해.”“어…….”민혁은 하윤을 힐끗 바라봤다.그제야 하윤은 자기의 존재가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솔직히 예전이었다면 눈치 챈 순간 하윤은 얼른 자리를 피해줬을 거다. 하지만 도준과 한 마음 한 뜻이 된 지금 ‘내가 못 들을 게 뭐 있어?’ 라는 자신감이 들었다.이에 하윤은 도준을 바라봤다.하지만 도준은 하윤의 머리를 꾹 누르며 밖으로 내쫓았다.“밖에서 혼자 놀고 있어. 이따가 부를게.”하윤은 도준의 결정이 서운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문을 나선 뒤, 굳게 닫힌 문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설마 도준 씨가 나를 못 믿나?’‘하긴, 내가 그동안 한 거짓말이 얼만데, 못 믿는 것도 당연해.’‘그런데 본인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지?’‘잃기 전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건’ 사랑에 빠진 남녀가 꼭 알아야 하는 도리인 듯싶다.‘이제는 도준 씨의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 내 기분이 좌지우지되는데.’별의별 생각을 하며 우울해하던 하윤은 이내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렸다.‘도준 씨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나를 위해 뭐든 다 해주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내가 아는 게 많을수록 위험할까 봐 일부러 안 알려줄 수도 있잖아.’스스로 마음을 달랜 하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래층으로 내려 가 나무 그늘 밑에서 산책했다.오늘 날씨는 무척 화창해 햇빛이 쨍쨍 비쳤다. 이에 하윤은 일부러 나무 그늘만 찾아 다니며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병원 근처에서 호떡을 파는 가게를 발견 하윤은 얼른 호떡 하나를 사 들고 도준과 함께 나누어 먹을 계획을 세웠다.하지만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