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의 눈시울은 이미 붉게 물들었다.“뭐라고요?”우원준은 장욱을 흘끔 보더니 주먹을 입가에 대고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냈다.“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도준이가 가기 전에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걱정할 거 없다고 말했어요.”알 듯 말 듯한 몇 마디로 하윤이 받은 충격이 가셔지는 건 불가능 했다. 오히려 기회를 잡은 하윤이 따져 물었다.“언제 말했나요? 정확히 어떻게 마했죠? 위험한 상황이 있을 거라는 걸 말했다는 거예요? 아니면 행방불명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했다는 거예요?”잇따른 질문에 원준은 머리가 어지러워 바로 질문을 장욱에게 토스했다.“물어 보잖아!”뜬금없이 자기한테 던져진 질문에 놀란 장욱은 하마터면 옆에 있는 기둥을 씹어버릴 뻔했다.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말을 반복했다.“아, 네 맞아요. 행방불명이 될 거라고 말했어요.”말을 시작하니 그 다음은 쉬웠는지 술술 이어나갔다.“민 사장님은 이 모든 걸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창백한 낯빛을 한 하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장욱을 바라봤다.“거짓말. 진짜 그렇다면 일주일 뒤에 돌아올 거라고 저한테 약속하지 않았을 거예요. 상황이 다르게 흘러갔다고 해도 미리 언질이라도 줬을 거고.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증발해 버린 건 갑자기 사고가 벌어졌다는 뜻이잖아요!”하윤의 목소리는 점차 날카로워졌다.장욱도 그런 기세에 눌렸는지 질문을 또 원준에게 넘겼다.“보스, 물어보잖아요.”대충 속이려던 작전이 먹히지 않자 원준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대꾸했다.“저한테 그렇게 물어보면 저는 누구한테 물어봅니까? 도준이 그 자식이 대체 뭐 하느라 자기 몸뚱어리마저 그렇게 폭파시켜 버렸는지 알게 뭐예요. X발, 배도 벌써 열 몇 척이나 빌려서 건져내고 있는데도 못 건져냈어요. 젠장.”“…….”욕지거리를 내뱉고 난 뒤, 원준은 방안의 온도가 순간 내려갔다는 걸 느꼈다.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침대를 후벼 파던 하윤의 눈은 점점 공허해졌고 심지어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사기 전화라면 바로 끊는 걸 권장합니다.”“던 씨.”던은 하윤의 목소리를 알아챘는지 몇 초 지난 뒤 다시 입을 열었다.“윤이 씨?”“네.”하윤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열심히 조직한 말을 내뱉었다.“혹시 지금 통화 가능해요?”짙은 콧소리와 더듬거리는 말투.“저는 가능하지만 윤이 씨가 불편해 보이네요.”하윤은 깊은 숨을 들이켜면서 애써 진정했다.“사실 왜 전화 했냐면, 도준 씨 일…… 던 씨도 들었죠?”“네, 유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게요.”하윤은 당장이라도 도준은 살아있다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지금 그런 것을 따진다고 한 들 아무 의미가 없었다.이에 씁쓸함을 삼킨 하윤이 애써 목소리를 냈다.“아직 사고가 난 전투기를 찾지 못했다는데 혹시 인양하는 거 도와줄 수 있나요?”하윤은 던이 거절할까 봐 한 마디 보충했다.“던 씨가 도와준다면 소원은 이대로 없었던 일로 할게요.”한 번 도움을 주는 것과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도와주는 것 중에 당연히 전자가 더 편리할 거다.“이게 윤이 씨 소원인가요?”던이 반문했다.“네.”다른 건 모두 나중으로 미룰 수 있지만 도준은 하루라도 늦으면 생존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던이 몇 초간 고민하는 것마저 하윤에게는 몇 년처럼 느껴졌다.바다에서 사람을 찾는 일이라면 던보다 더 적합한 인물을 찾을 수는 없다고 하윤은 생각했다.그도 그럴 게, WM은 선박 사업 규모나 전문성을 놓고 볼 때 단연 세계 제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업의 대표가 나선다면 도준은 아마, 아니 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윤이 거의 숨 막혀 질식하려 할 때쯤 전화 건너편에서 던의 목소리가 울렸다.“도와줄게요.”“고마…….”“그런데 조건이 있어요.”전화기를 잡고 있던 하윤의 손가락 뼈마디가 하얗게 질렸다.“말해요.”“첫째, 제가 수색은 도울 수 있으나 시간 기한 없이 도와줄 수는 없어요. 만약 한 달 내에 진전이 없으면 수색은 중단할 겁니다.”선박이 바다 위를 항행한다면 초 단
우원준은 며칠 동안 민도준을 구조하는 작업에 몰두하느라 그 일을 조사할 여유가 없었다.그 때문인지 권하윤의 말을 들은 순간 개의치 않은 듯한 태도를 취했다. 사람도 없어진 마당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그런 도준이 그 자식 찾은 다음에 얘기하죠.”하지만 하윤의 태도는 완강했다.“도준 씨 계좌에 뜬금없이 돈이 들어왔다면 분명 스파이가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도준 씨를 찾는다 해도 억울한 죄를 뒤집어쓸 수 있어요. 게다가 만약 그 사람을 그대로 두면 수색을 방해할지도 몰라요.”원준이 고민에 빠진 태도를 보이자 하윤은 얼른 말을 보탰다.“만약 단순히 기술적인 실패라면 조 국장도 기껏해야 징계를 받는 것으로 끝났을 텐데 정직 처분까지 받았다는 건 이 돈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그 출처를 밝혀내면 조 국장도 하루 빨리 풀려날 수 있을 겁니다.”이 일이 이상하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조관성이 정말 모함에 빠진 거라면 그 뒤에 무조건 배후가 있을 거고 이번 싸움이 가져올 영향은 헤아릴 수 없다.지금은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싸움일 뿐만 아니라 두 세력 간의 대결이기도 하다.도준은 죽어서도 져서도 안 된다.원준은 일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겪을만큼 겪은 사람인지라 대충 생각해도 답을 보아낼 수 있었다.“알겠어요. 제가 사람을 풀어 해원에 가 조사해 볼게요.”해원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원준은 순간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게, 하윤이 또 따라 가겠다고 소란일 피울까 봐 두려워서였다.하지만 하윤은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예의 있게 인사를 할 뿐이었다.“고마워요.”그런 하윤의 태도에 원준은 어안이 벙벙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밖으로 나갈 때까지 하윤이 기회를 엿봐 도망칠까 봐 걱정했다.하지만 하윤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을 꺼내 들고 또 어디론가 전화를 할 뿐.“…….”원준은 곧바로 장욱에게 나가라는 눈빛을 보냈다.그렇게 문 앞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또 귓속말로 대
민시영은 권하윤의 말을 듣자마자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했다.“알았어요. 제가 바로 칩 응용 실험에 참여했던 팀원들을 위주로 최근 움직임을 알아볼게요.”두 사람은 상세한 계획에 관해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었다.그렇게 얼마간 이어진 통화가 끝났을 때, 하윤은 온 몸의 힘을 순간적으로 잃은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하윤은 등을 침대 기둥에 기댄 채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아쉽게도 갑자기 덮치는 질식감이 하윤을 가만두지 않았다.하필이면 하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 기다림은 구조 작업에 직접 뛰어 들기보다 더 사람 피를 말렸다.하윤은 차라리 해원으로 가서 직접 구조 작업을 돕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하지만 충동적인 행동을 막기 위해 하윤은 자기 팔을 꼬집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안돼.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 도준 씨 말 들어야 돼. 내가 말을 잘 들어야 도준 씨가 돌아올 거야.”……흐리멍덩한 상태로 하윤은 밤을 새웠다.심지어 그 사이 기억도 드문드문 나지 않았다. 그렇게 누군가 자기를 부를 때에 하윤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식탁 앞에 앉았다.“윤이 씨?”장욱은 또 전매특허인 윙크를 시전해 보이며 하윤을 설득하고 있었다.“미녀가 밥을 거르면 안 되죠. 얼른 한 술이라도 떠요.”하윤은 거절하지 않았다. 장욱이 건네는 젓가락을 받은 하윤은 꾸역꾸역 밥을 삼켰다.이대로 쓰러질 수 없었으니까. 걱정 끼치지 말라던 도준의 약속도 지켜야 했다.’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하윤은 살기 위해 기계적으로 입 안에 넣기를 반복했다.“띠리링.”그때 위층에서 전화벨이 울리자 하윤은 젓가락을 내팽개 치고 미친 듯이 위층으로 달려갔다.슬리퍼가 어느새 떨어졌는지도 상관할 겨를이 없이 하윤은 송수화기를 귓가에 갖다 댔다.“여보세요. 혹시…….”“윤이 씨, 왜 그래요?”시영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하윤의 기분은 낭떠러지로 추락했고 살갗을 뚫고 나올 것처럼 뛰던 심장에도 고통이 전해졌다.그 때문인지 목
권하윤은 방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물었다.“장욱 씨?”“쿵!”하지만 대답 대신 무거운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순간 하윤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직감이 들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그저 조심스럽게 계단을 따라 내려가 상황을 확인할 뿐.그랬더니 장욱의 뒤에서 누군가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목숨줄이 상대에게 잡히자 장욱은 고분고분 두 손을 들고 투항 자세를 취했다.곁눈질로 하윤의 위치를 확인한 장욱은 그녀에게 얼른 도망가라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총을 든 남자도 어느새 장욱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홱 돌렸다.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자 장욱은 얼른 소리쳤다.“당장 도망가요! 저는 상관하지 말고요. 다음 생에 봐요.”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하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케빈 씨? 케빈 씨가 어떻게 강원에 있어요?”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확인한 장욱은 얼른 손을 내리며 자기 허리를 툭툭 쳤다.“이봐요 형 씨, 아는 사람이면 진작 말을 하지. 간 떨어질 뻔했잖아요.”케빈은 군말 없이 하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데리러 왔습니다.”“저를요?”하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저를 어디로 데려가려고요?”“해원이요.”장욱은 그 말을 듣기 바쁘게 버럭 소리쳤다.“이봐요, 형씨,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내가 윤이 씨 얼마나 어렵게 설득했는지 알아요? 해원이라니? 미쳤어요? 죽으러 가라는 뜻이에요?”“민 사장님의 명령입니다.”케빈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그 말을 듣는 순간 하윤은 고개를 홱 들었다. 심지어 두 눈에는 기쁨이 가득했다.“도준 씨 찾은 거예요? 혹시 많이 다쳤어요? 몸은 괜찮던가요?”하지만 케빈의 말은 하윤의 꿈을 산산조각 내버렸다.“아니요, 민 사장님은 바다에 빠져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그런데 왜 도준 씨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거예요?”“민 사장님께서 전투기에 오르기 전에 만약 소식이 누설되면 사모님을 해원으로 대피시키라고 했습니다.”“…….”짤막한 한마디는 하윤의 마음은 뒤죽
권하윤이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케빈이 두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얼른 출발해야 합니다.”하윤은 케빈의 말에 바로 움직이지 않고 되물었다.“어떻게 가는데요?”“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겁니다.”“네?”하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럴 때일수록 종적을 감추는 게 좋지 않나?’장욱도 케빈의 말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연신 그를 훑어봤지만 케빈의 손에 든 총을 보자 얼른 태도를 바꿔 어깨동무를 했다.“공항까지 가는 거 너무 번거롭지 않나? 우리 보스한테 전용기가 있으니 그거 타고 가요. 내가 전화 넣을게.”장욱이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찰나, 케빈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아!”케빈에게 손목이 붙잡힌 채 끌려 가게 된 장욱은 하마터면 허리마저 삐끗할 뻔했다.“우리 남자 답게 말로 해결합시다!”케빈은 장욱과 시간 낭비를 하기 싫었는지 장욱을 끈으로 묶은 채 내동댕이쳤다.“사모님, 갑시다.”“그래요.”하윤은 케빈의 차가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면서 위층을 바라봤다.“저 핸드폰 가져와도 되죠?”“네.”하윤은 얼른 위층으로 달려가 문을 잠그고 유선 전화로 한민혁에게 전화했다.아무래도 케빈 보다는 민혁이 더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었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왜 꺼져 있지?’너무 급한 상황인지라 하윤은 얼른 민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윤이 씨?”“시영 언니, 저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케빈 씨가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네?”뜬금없는 물음에 시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혹시 무슨 일 있어요?”“설명하지만 긴데, 케빈 씨가 도준 씨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나요?”하윤의 말에 전화 건너편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 뒤, 지금껏 봐왔던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분노만 남은 한 여인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케빈은 사실 처음에 민용재 쪽 사람이었어요. 제가 그런 일을 당할 때 문 밖에 있었고요.”“…….”그리 길지 않은 말에 하윤은
“그렇다면 도준 씨 명령으로 저를 데리러 왔다는 건 거짓말이라는 뜻이네요?”권하윤은 케빈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봤다.“도준 씨는 케빈 씨한테 이런 말 한 적 없는 거고.”케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의 묵인에 순간 실망감이 몰려왔다.“그렇다면 도준 씨가 전투기에 오르기 전 케빈 씨한테 이번 일에 대해 당부했다는 것마저 가짜겠네요?”하윤은 케빈이 자기를 속였는지 아닌지는 관심 없었다. 그저 민도준이 사고를 당하기 전 자기의 상황을 미처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을 뿐,“네.”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이제 통증에 무감각해진 것인지, 아니면 너무 실망한 나머지 가슴이 그대로 죽어버렸는지 하윤은 그저 침묵했다.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드는 듯한 고통에도 그저 눈시울만 붉힐 뿐이었다.“민혁 씨한테도 연락이 안 닿아요. 혹시 민혁 씨도 무슨 일 있는 거예요?”“한민혁 씨와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 조사를 받고 있을 뿐, 아직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다.”케빈은 모든 희망을 잃은 듯한 하윤을 보며 묵묵히 대답했다.민혁을 포함한 사람들 모두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을 텐데, 케빈만 이곳에 멀쩡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말해준다.이에 다시 입을 열 때, 하윤은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시영 언니한테서 들었는데 민용재 쪽 사람이라면서요? 혹시 지금도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거예요?”시영의 이름을 듣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케빈의 눈동자에 그리움이 흘러나왔지만 곧바로 침통에 의해 가려졌다.하지만 하윤은 그런 케빈의 마음까지 헤아려 줄 여유가 없었다. 며칠간 쌓인 슬픔과 절망이 한 순간에 분노로 이어져 목소리마저 갈라졌다.“이번 사고 케빈 씨가 낸 거예요?”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돌아오지 않는 대답은 마치 하윤의 불붙은 마음에 기름을 들이 붙는 거나 다름없었다.순간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이 그치지 않았고 갈라 터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나를 이용해서 민혁 씨를 협박하려면 꿈 깨요. 저 케빈 씨 따라 가지
권하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몸이 묶인 채 차에 타 있었다.운전석에 앉아 있는 케빈을 본 순간 하윤은 화가 거꾸로 치밀었다.“이! 원우 씨와 장욱 씨는 어떻게 했어요?”“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아무 짓도 안 했다고? 그럼 저는 어떻게 데려온 거죠?”케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확인하더니 표정을 굳힌 채 가속 페달을 밟았다.관성에 의해 의자 등받이에 내동댕이 쳐진 하윤은 손발도 묶인 탓에 백미러로 뒤쪽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뒤에는 차 두대가 따라붙었는데, 딱 봐도 케빈의 차를 쫓아오고 있었다.그 차를 확인하는 순간 케빈의 표정은 싸늘해졌다.“추형탁 쪽 사람입니다.”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세 대의 차량.이런 곳에서 손을 쓰기 쉽지 않기에 케빈은 사람이 한적한 골목을 보자 얼른 핸들을 꺾어 오솔길로 들어섰다.그러자 뒤쫓아오던 두 대의 차도 바싹 따라붙었다.그렇게 그 두대의 차는 모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사냥감으로 전락되었다.……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졌다.약 15분 뒤, 하윤과 케빈은 다시 큰길로 빠졌다.뒤쪽을 확인한 하윤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아직도 아까 봤던 잔인한 장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 덕에 케빈의 말에 대한 믿음이 조금 늘어나기는 했다.추형탁이 따라와서 피해야 한다는 건 케빈의 말이 맞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얼마 뒤 공항에 도착했다.하윤은 꽁꽁 묶인 자신의 손목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 상태로 저 비행기 태울 생각이에요?”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항에서 하윤을 강제로 비행기에 태우는 건 아무리 케빈이어도 불가능했다.하윤도 자기 손에 묶인 끈을 풀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허리를 곧게 세웠다.“갈 생각이면 저 풀어줘요.”케빈은 시동을 끈 차를 공항 입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웠다.“우원준 씨가 사모님을 놓아준 것도 강원에 있으면 죽는 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하윤에게 그 말은 우습게 들렸다.“다른 곳에서도 도망치지 못하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