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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5화 음식을 만들고 기다리다

그 뒤의 기억은 마치 안개에 뒤덮은 것처럼 희미했다.

희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가 싶더니 물방울이 되어 주위에 뚝뚝 떨어져 물방울 소리와 심장 소리만 귓가에 맴돌았다.

남자의 악마 같은 속삭임과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 때문에 정신이 말짱할 때는 차마 할 수 없었던 행위를 해 나갔다.

그러다가 권하윤이 이불 속에 몸을 파묻자 텅 빈 공간 속에 전류음만 남았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밭은 숨소리가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밌어?”

“아니요!”

이불 속에 숨어 있는 하윤의 목소리는 딱 들어도 화난 듯해 보였다.

하지만 민도준은 마치 눈치채지 못한 듯 야릇한 농담을 이어갔다.

“그래. 그러면 돌아가서 더 재밌는 거 놀자.”

“싫거든요. 아예 오지 마요.”

“내가 안 가면 하루 종일 칭얼댈 거면서.”

“흥.”

인내심 가득한 도준의 목소리에 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

“됐어. 그만하고 이제 자. 끊을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하윤은 이불 속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하윤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

샤워를 하는 동안 하윤은 손가락을 접으며 날짜를 계산했다.

나흘, 아직도 나흘이나 지나야 도준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괴롭게만 느껴졌다.

……

상황은 닷새째부터 달라졌다.

예전에 도준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전화를 했지만 닷새째 되던 날부터 도준은 연락마저 끊겨 버렸다.

그 사실에 하윤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하윤은 별장 안 유선 전화로 한민혁과 로건한테 상황을 여쭈어 보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도준이 바쁠 뿐 잘 있는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그러면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연락은 왜 또 안 되고?’

7일째 되던 날, 하윤은 그래도 도준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도준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장욱한테서 요리를 배운 덕에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이제 가정 음식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한 하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음식이 점점 식어가고 파랗던 야채들이 누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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