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림 선배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상대가 계속 주림 선배를 괴롭히는 거지?’아마 이 모든 건 그 전화를 해봐야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전화 번호의 존재를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권하윤은 고개를 숙이고 고분고분 대답했다.“알았어요.”그때 민도준이 하윤의 턱을 들어 올리며 손가락으로 하윤의 입술을 문질렀다.“알면 됐어. 내일 내가 가면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어디 다른데로 새지 말고.”“간다고요? 어디 가요?”도준은 창백한 하윤의 입술이 빨갛게 변할 정도로 문지르고 나서야 만족한 듯 손을 뗐다.“우리 겁쟁이가 저질러 놓은 일을 처리해야지.”그제야 하윤은 도준이 말하는 게 해원 쪽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도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안 돼요. 공아름이 말했잖아요. 지금 도준 씨도 도주범이라고. 도준 씨가 돌아가면 위험해요!”“위험하다고? 오히려 재밌네.”도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그 곳은 해원이에요!”아무리 강한 사람도 지방 조무래기를 당하지는 못하는데, 도준이 경성에서 얼마나 강할지 몰라도 해원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도준은 하윤이 자기를 걱정하는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하윤을 끌어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됐어. 이렇게 쓸데없는 일 생각할 시간에 제대로 된 걸 생각하는 게 어때?”도준은 저를 밀어내려고 애쓰는 하윤의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살짝 깨물더니 말을 이었다.“예를 들면 내가 해원에 가 있는 며칠 동안 하고 싶으면 어떡할지라던가…….”“좀 진지해져 봐요!”하윤은 도준의 어깨를 꽉 잡아 도준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거리를 두고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도준은 그런 하윤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고개를 소파에 기댄 채 날카로운 턱선과 볼록한 목젖을 훤히 드러냈다. 단단한 뼈가 살갗위로 뻗어 나올 것처럼 선명한 라인은 사람을 매료시켜 하윤은 저도 모르게 멍 때렸다.“진지하라며? 왜 멍 때리고 있어?”도준의 농담은 마치 하윤을 공제하는 듯했다. 하윤은 그런 도준의 말에 김
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이 믿기지 않아 순간 얼떨떨했다.하윤이 전에 했던 일이라면…….도준을 배신하고, 도준에게 독을 타고, 또 심한 말로 도준을 상처 준 것까지…….스스로 돌이켜 봐도 용서받지 못할 일투성이다.상대가 도준이 아니라 평범한 남자라도 이런 일을 한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못했을 텐데.생각할수록 하윤은 눈시울이 시큰거려 저절로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그런데 전에 제가…….”“착하지,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짤막한 몇 글자로 하윤은 순간 엉엉 울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물론 도준이 지금껏 하윤의 말을 들어주고 하윤이 하자는 대로 했지만 그간 하윤이 했던 거짓말들은 항상 그림자처럼 곁을 따라다녔다.그런 느낌은 마치 실수로 상대에게 칼자국을 남겨 상대가 용서해줬지만 남아 있는 흉터가 계속 잘못을 깨우쳐 주는 것 같았다.그런데 그 오래된 흉터와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이 순간 새살이 돋아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건 용서를 받았기에 느낄 수 있는 홀가분한 마음이고 두 사람의 새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끝내 뚝뚝 떨어져 도준의 손에서 흩어졌다.“그런데 그러면 도준 씨가 너무 억울하잖아요.”흐느끼며 내뱉은 하윤의 말에 도준은 피식 웃으며 하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남자인 내가 어린 여자한테 그깟 일로 시비라도 걸까 봐 그래?”이 시각 하윤은 도준의 농담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손을 뻗어 도준을 끌어안을 뿐.“역시 도준 씨밖에 없어요.”도준은 미세하게 떨리는 하윤의 등을 쓸어주며 위로했다.아직도 한창 울어야 할 줄 알았더니, 하윤은 몇 분도 안 되어 바로 고개를 쳐들며 물기 머금은 눈동자로 도준을 바라봤다.“저 샤워하고 싶어요.”“샤워하는 것도 나한테 보고해?”도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이에 하윤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야릇한 눈빛을 보냈다.“도준 씨랑 같이 씻고 싶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도준은 혀를 입안에서 굴리며 하윤의 등을 누르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정말이야?”
결국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갔다. 하윤은 차에 오를 때부터 내릴 때까지 내일 아침 도준을 위해 직접 만두를 빚겠다며 호언장담했다.그렇게 슈퍼에서 이것저것 잔뜩 사왔지만 반죽을 만드는 과정부터 하윤은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이에 하윤은 문에 기대 구경하는 도준을 돌아보며 슬쩍 말을 건넸다.“혹시 만두 만드는 방법 좀 검색해 줄 수 있어요?”“핸드폰 보고 싶어?”어깨를 누르며 묻는 도준의 말에 하윤은 순간 멍해졌다. 솔직히 그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반죽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었을 뿐.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이내 표정을 풀며 하윤의 핸드폰을 건넸다.하지만 하윤이 손을 뻗으려 할 때 도준이 손을 다시 뒤로 뺐다.“참, 잊을 뻔했네.”이윽고 도준은 하윤이 보는 앞에서 전화 카드를 빼 버리더니 하윤의 의아한 눈빛에 입꼬리를 올렸다.“지금 도주범이라는 거 잊었어? 그런데도 핸드폰 켜려고?”하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주민수가 준 전화 번호를 걸렸다고 생각했으니까.그제야 안심한 듯 핸드폰으로 방법을 검색한 하윤은 자신만만하게 작업을 시작했다.그리고 시작하기 전 앞치마를 꺼내 도준에게 묶어 달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도준이 뒤에서 앞치마를 묶어주자 하윤은 순간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허리를 끌어안고 긴 머리카락을 묶어주는 장면은 상상만해도 로맨틱했다.하지만 하윤의 상상이 끝나기도 전에 도준은 앞치마를 묶고는 하윤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됐어.”‘이게 끝이라고?’‘뭐야? 드라마랑 완전 다르잖아.’하지만 그 시각, 등 뒤에서는 도준이 하윤의 가는 허리를 느긋하게 훑어보고 있었다.흰색 원피스에 파란색 앞치마를 하고 있는 데다 긴 머리가 축 늘어져 있으니 언뜻 보기에 현모양처 같아 보였다.도준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혼자 할 수 있겠어?”한창 핸드폰을 보며 고심에 빠져 있던 그때 갑자기 들려온 도준의 말에 하윤은 고개를 홱 돌려 반박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요? 저 뭐
문이 닫혔다.고개를 돌려 텅 빈 별장을 보자 권하윤의 마음도 덩달아 허전했다.결국 혼자서 꾸물거리며 어수선한 부엌을 정리하며 방금 전의 흔적을 지워야만 했다.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는 만두를 보자 하윤의 마음은 더 다운되었다.하지만 민도준이 이렇게 갑자기 떠난 것도 이유가 있을 거다. 그 이유는 아마 하윤이 벌인 일과 관련이 있을 거고.때문에 도준을 탓할 수 없었다.쓸쓸히 계단을 올라 방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응?’소리를 따라 확인해 보니 유선전화에서 울리는 소리였다.하윤은 번호를 슬쩍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하윤은 손가락으로 전화선을 칭칭 감았다.“제가 도준 씨를 위해 힘들게 만두 빚었는데 먹지도 않고 가버렸잖아요.”“주식을 먹었으니 반찬은 안 먹어도 괜찮아.”“…….”주식이라 불린 하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전화 건너편에서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떠나는 거예요?”“응.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되도록이면 밖에 나가지 마. 어디 갈 거면 장욱한테 같이 가달라고 하고. 말 잘 들어, 걱정하게 하지 말고, 알았지?”도준의 당부에 하윤의 마음 한 켠은 달콤해졌다. 하지만 결국은 ‘알았어요’라는 한 마디로 목까지 차 올랐던 수많은 말을 대신했다.“참, 주림 선배와 주민수 할아버지도 강원에 있어요? 걱정이 돼서 보고 싶어요.”“지금 안전한데 굳이 가보겠다면 안전은 장담 못해.”“네.”기어들어간 목소리만 들어도 하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어둠 속, 도준은 전용기 옆에 서 있는 우원준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리며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됐어. 기운 차려. 못 보게 하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돌아가면 같이 보러 가자.”“정말요? 역시 도준 씨밖에 없어요.”전화 건너편에서 들리는 쪽 하는 소리에 도준은 또 몇 마디 농담을 더했다.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원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헤어진
전화를 끊은 뒤 권하윤은 유선전화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그러다가 손바닥에 꼭 쥐고 있던 작은 천 조각을 보며 고뇌에 잠겼다.민도준이 너무 급히 떠나는 바람에 하윤은 그에게 솔직히 고백할 타이밍도 놓치고 말았다.솔직히 이 기회에 천 조각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고 싶었지만 이대로 전화한다면 또 도준을 속인 일이 하나 늘어나는 것이 된다.‘그동안 도준 씨를 믿지 못해 다른 사람의 입에서 진실을 들으려고 한 건데.’하윤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끝내 천 조각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아니야. 일주일 뒤면 도준 씨가 나랑 같이 주민수 할아버지 찾으러 간다고 했는데 이러면 안 돼.’떳떳하게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두고 뒤에서 도준 몰래 일을 꾸미고 싶지 않았다.‘고작 일주일인데 그 정도 기다리는 건 아무 일도 아니야.’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하윤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그러다가 심심한 나머지 또 레시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준이 돌아오면 직접 요리를 해주고 싶어서였다.도준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떠올리며 내일 장 볼 채소를 정리한 뒤 하윤은 단잠을 청했다.다음날.씻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소파에는 사람 한 명이 앉아 있었다.“어…….”하품하고 있던 장욱은 하윤을 보자 침을 꼴깍 삼켜 참고는 손가락 두개를 이마 앞으로 들어 올리며 멋쩍게 인사했다.“좋은 아침입니다.”그 모습을 보자 하윤은 순간 느끼한 음식을 먹은 것처럼 속이 불편했다.“어, 여긴 어떻게?”“저 오늘부터 하윤 씨의 경호원이자 보모이자 친구이니 하고 싶으면 말씀하세요.”장욱은 윙크를 하며 대답했다.그러더니 또 다시 윙크를 한번 날리더니 말을 보탰다.“저는 하윤 씨 결정에 따를게요.”그런 장욱을 보고 있자니 하윤은 왠지 모르게 한민혁이 보고싶어졌다.하지만 하윤은 티를 내지 않고 장욱과 함께 슈퍼로 향했다.물론 운전하는 동안에도 장욱의 입은 쉴 틈이 없었다. 하윤은 맨 처음 예의상 웃으며 대꾸하던 데로부터 어느새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
그 뒤의 기억은 마치 안개에 뒤덮은 것처럼 희미했다.희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가 싶더니 물방울이 되어 주위에 뚝뚝 떨어져 물방울 소리와 심장 소리만 귓가에 맴돌았다.남자의 악마 같은 속삭임과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 때문에 정신이 말짱할 때는 차마 할 수 없었던 행위를 해 나갔다.그러다가 권하윤이 이불 속에 몸을 파묻자 텅 빈 공간 속에 전류음만 남았다.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밭은 숨소리가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재밌어?”“아니요!”이불 속에 숨어 있는 하윤의 목소리는 딱 들어도 화난 듯해 보였다.하지만 민도준은 마치 눈치채지 못한 듯 야릇한 농담을 이어갔다.“그래. 그러면 돌아가서 더 재밌는 거 놀자.”“싫거든요. 아예 오지 마요.”“내가 안 가면 하루 종일 칭얼댈 거면서.”“흥.”인내심 가득한 도준의 목소리에 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됐어. 그만하고 이제 자. 끊을게.”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하윤은 이불 속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하윤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샤워를 하는 동안 하윤은 손가락을 접으며 날짜를 계산했다.나흘, 아직도 나흘이나 지나야 도준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괴롭게만 느껴졌다.……상황은 닷새째부터 달라졌다.예전에 도준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전화를 했지만 닷새째 되던 날부터 도준은 연락마저 끊겨 버렸다.그 사실에 하윤은 불안감이 몰려왔다.하윤은 별장 안 유선 전화로 한민혁과 로건한테 상황을 여쭈어 보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도준이 바쁠 뿐 잘 있는다는 대답만 반복했다.‘그러면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연락은 왜 또 안 되고?’7일째 되던 날, 하윤은 그래도 도준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도준을 기다리기 시작했다.며칠 동안 장욱한테서 요리를 배운 덕에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이제 가정 음식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한 하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음식이 점점 식어가고 파랗던 야채들이 누렇
‘일부러 실패를 조성했다고? 게다가 뭐? 매수?’‘아니야, 그럴 리 없어. 도준 씨는 누구한테 매수당할 사람이 아니야. 누군가 일부러 함정을 판 게 분명해.’‘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그 몇 대의 전투기에 도준 씨가 타고 있었는지, 현재 무사한지 가장 중요해.’‘그런데 요즘 연락도 안 됐는데 설마 벌서…….’“윤이 씨, 저 약 받아왔어요. 이제 가요.”“윤이 씨?”하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하윤의 낯빛에 장욱은 깜짝 놀랐다.“왜 그래요?”“도준 씨한테 무슨 일 생긴 거죠?”“…….”질문을 할 때까지만 해도 하윤은 어느 정도 희망을 품고 있었다. 자기가 잘못 본 것일 거라고, 도준은 이미 전투기에서 내려왔을 거라고.하지만 장욱의 말은 희망이 불씨에 찬물을 끼얹었다.“어떻게 알았어요? 누구한테서 들었어요?”하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정말이었네……, 이럴 수가. 왜 이런 일이…….”장욱은 핏기 하나 없이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은 하윤을 보자 그녀가 이대로 무너지기라도 할까 봐 덜컥 겁이 났다.“아니에요.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보스가 이미 해원에 사람을 보내 수소문하고 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거예요.”잇따른 대화 속에서 하윤은 이 사고가 이미 사흘 전 벌어졌다는 걸 알아 차렸다. 그건 바로 도준의 연락이 끊긴 그날 부터다.그날이 바로 정식으로 시험 보고가 있었던 날이며 고위층 간부들이 모두 한 곳에 모인 날이다.원래 시험에 성공하면 기술 허가를 받고 정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이런 사고가 벌어진 거다.현재 도준과 조종사 몇 명의 생사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조관성도 직무 정지 통보를 받아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게다가 도준의 계좌에 갑자기 들어온 의문의 돈까지, 이 모든 것을 비추어 보면 이번 사태가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현재 일이 많이 커진 상황이에요. 조 국장의 정적들이 이번 일을 꾸
권하윤의 눈시울은 이미 붉게 물들었다.“뭐라고요?”우원준은 장욱을 흘끔 보더니 주먹을 입가에 대고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냈다.“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도준이가 가기 전에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걱정할 거 없다고 말했어요.”알 듯 말 듯한 몇 마디로 하윤이 받은 충격이 가셔지는 건 불가능 했다. 오히려 기회를 잡은 하윤이 따져 물었다.“언제 말했나요? 정확히 어떻게 마했죠? 위험한 상황이 있을 거라는 걸 말했다는 거예요? 아니면 행방불명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했다는 거예요?”잇따른 질문에 원준은 머리가 어지러워 바로 질문을 장욱에게 토스했다.“물어 보잖아!”뜬금없이 자기한테 던져진 질문에 놀란 장욱은 하마터면 옆에 있는 기둥을 씹어버릴 뻔했다.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말을 반복했다.“아, 네 맞아요. 행방불명이 될 거라고 말했어요.”말을 시작하니 그 다음은 쉬웠는지 술술 이어나갔다.“민 사장님은 이 모든 걸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창백한 낯빛을 한 하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장욱을 바라봤다.“거짓말. 진짜 그렇다면 일주일 뒤에 돌아올 거라고 저한테 약속하지 않았을 거예요. 상황이 다르게 흘러갔다고 해도 미리 언질이라도 줬을 거고.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증발해 버린 건 갑자기 사고가 벌어졌다는 뜻이잖아요!”하윤의 목소리는 점차 날카로워졌다.장욱도 그런 기세에 눌렸는지 질문을 또 원준에게 넘겼다.“보스, 물어보잖아요.”대충 속이려던 작전이 먹히지 않자 원준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대꾸했다.“저한테 그렇게 물어보면 저는 누구한테 물어봅니까? 도준이 그 자식이 대체 뭐 하느라 자기 몸뚱어리마저 그렇게 폭파시켜 버렸는지 알게 뭐예요. X발, 배도 벌써 열 몇 척이나 빌려서 건져내고 있는데도 못 건져냈어요. 젠장.”“…….”욕지거리를 내뱉고 난 뒤, 원준은 방안의 온도가 순간 내려갔다는 걸 느꼈다.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침대를 후벼 파던 하윤의 눈은 점점 공허해졌고 심지어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