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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9화 감정 낭비

민도준은 더 이상 말하기 귀찮았는지 외투 호주머니에서 4장의 종이를 꺼내 펼쳐 보이며 끝을 손가락을 툭 튕겼다.

“여기 명확하게 적혀 있는데, 돋보기라도 껴야 잘 보이시려나?”

종이에는 공씨 가문이 자발적으로 자택을 실험 기지로 내놓고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게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공미란은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특히 똑똑히 보이는 서명과 공인을 보자 더욱 황당했다.

“조작하면 누가 모를 줄 알아?”

그때 도준이 복도 끝에 나타난 인영을 힐끗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 가주님, 그쪽 할머니께서 이 사인에 대해 묻는데요?”

‘공태준? 공태준이 여기 있다고?’

하윤은 도준의 눈길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역시나 공태준이 어두운 곳에서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하윤은 고은지와 공천하는 공태준이 벌을 받고 있다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게, 태준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외상도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으니까.

“합의서는 진짜예요. 제가 직접 사인했고요.”

태준의 말에 공미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서운 표정으로 공태준을 죽일 듯 노려볼 뿐.

그때 도준이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

“보세요, 조 국장님. 제가 말했잖아요. 저 착한 시민입니다.”

조관성은 눈살을 찌푸린 채 도준과 몇 초간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눈을 피하고는 떠나기 전 낮게 경고했다.

“도 넘는 행동하지 마세요.”

“당연하죠.”

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우여곡절 끝에 조관성마저 떠나자 하윤은 그제야 이 모든 게 도준이 계획한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면 아까 생이별하는 것처럼 군 것도…….

모두 거짓이라는 소리다.

아까 자기가 했던 ‘진심어린’ 말을 떠올리자 하윤은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하지만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라서 태준이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몇 초 뒤, 태준은 눈을 내리 깔더니 공미란을 향해 걸어갔다.

“짝!”

곧이어 뺨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하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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