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에 다가갈수록 나이 든 어르신의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귀에 들려왔다.“어르신께서 물건을 가져다주라고 해서 온 거라니까 그것도 못 들어가게 해?”익숙한 목소리인 것 같아 문틈으로 확인했더니 장 집사였다.그 시각 장 집사는 네모난 상자가 든 채로 대문 밖에 있는 경호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하지만 경호원들은 누구도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민도준의 명령을 받았기에 온 사람이 아무리 민씨 집안 어르신의 곁에서 일하는 장 집사일지라도 칼같이 거절했다.그때 권하윤이 문을 비스듬히 열었다. 어찌 됐든 장 집사는 민상철 쪽 사림이기에 민도준이 민씨 집안과 더 사이가 틀어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집사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권하윤이 밖으로 나오자 팀장으로 보이는 경호원이 얼른 앞에 막아섰다.“권하윤 씨,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여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경호원들이 장 집사가 마치 권하윤을 죽이러 온 사람인 것처럼 대하자 권하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민상철이 만약 권하윤을 죽이려면 장 집사를 혼자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권하윤도 경호원들이 난감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에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 안전거리를 유지했다.모든 경호원들의 관심이 권하윤에게 쏠렸을 때 장 집사는 상자를 든 손으로 권하윤에게 손짓했다.암시가 담긴 듯한 손짓에 권하윤은 잠깐 멍해 있다가 눈이 살짝 흔들리더니 입을 열었다.“집사님께서 그저 물건만 전해주러 오셨다니 물건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민 사장님께는 제가 대신 전해줄게요.”권하윤은 장 집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예 집안으로 쳐들어가기보다 물건을 전하는 게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는지 장 집사는 경호원들의 눈빛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니 이걸 대신 도준 도련님께 전해주세요.”그저 특별할 것 없는 상자였지만 경호원들은 권하윤에게 전해주기 전 조심스럽게 안을 훑어보고 위험한 물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권하윤에게 건넸다.이윽고 권하윤은 그 상자를 받아
권하윤은 순간 의문이 생겨났지만 민상철과 더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어찌 됐든 민상철은 진작부터 권하윤을 처리하려고 했었으니까. 지금껏 손을 못 쓰고 있는 것도 단지 민도준이 권하윤을 너무 곁에 붙여두고 있어 손 쓸 기회를 찾지 못한 것뿐이다.더욱이 민상철처럼 몇 년 동안 비즈니스계를 휩쓸던 사람을 대응하기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권하윤은 아예 헛소리로 대답했다.“할아버님께서 박민주 씨를 손주며느리로 드리고 싶어 하셨잖아요. 민 사장님께서도 효도하시는 분이니 저는 아마 대중들 앞에 나서지 못하게 숨겨둘 겁니다. 저도 정부라는 제 위치를 알고 있어요.”이 말을 듣는 순간 전화 건너편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바로 전화가 끊어졌다. 아마 평소 접촉하는 명문가 사람들과 달리 뻔뻔하게 나오는 권하윤에게 화가 난 모양이다.하지만 권하윤은 민상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았다.오히려 이미 미움을 사 자기가 무릎을 꿇어도 상대가 용서하지 않을 걸 알기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물론 민상철한테서 받은 핸드폰은 잘 숨겨두었다.그 핸드폰은 그저 전화와 문자만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거였기에 도청 앱을 설치할 수 없는 데다 기능이 간단하다 못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권하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핸드폰에는 그저 번호 하나만 저장되어 있었는데 이름은 없었다. 민상철과 대화한 것으로 보아 그 전화번호는 공태준의 것일 거라고 권하윤은 짐작했다.그리고 그 순간 권하윤은 공태준이 자기의 모든 걸 민상철에게 말해 버렸다는 걸 알아버렸다.‘하지만 왜 그랬지?’분명 권하윤이 민도준의 제수씨여야 두 사람을 찢어놓을 가능성이 더 많겠는데.그 문제의 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권하윤은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이 생각났다.‘설마 민승현도 공태준이 잡아간 건가?’권하윤은 당장이라도 공태준에게 전화해 따져 묻고 싶었지만 자기가 또 새로운 함정에 빠지기라도 할까 봐 생각을 멈췄다.권하윤은 자기가 지금 지뢰 찾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한
민도준은 옆에 난 자리에 앉으며 권하윤의 엉덩이를 때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주 점점 기어오르지? 매일 성깔만 부려대기나 하고.”그때 또다시 관문을 넘는 것에 실패한 권하윤이 맥 빠진 듯 소파에 축 늘어지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고작 정부인 제가 어떻게 감히 도준 씨한테 성깔을 부리겠어요? 죽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제대로 말해.”민도준은 인내심이 다했는지 권하윤을 잡아당겼다.하지만 아무리 잡아당겨도 권하윤은 눈을 허공에 이리저리 굴려대며 민도준의 얼굴만은 끝까지 보지 않았다.그러다 민도준은 끝내 권하윤의 어깨를 잡은 채로 몸을 돌려놓고는 경고가 담긴 말투로 말했다.“제대로 앉아.”그제야 권하윤은 입을 삐죽거리며 똑바로 앉았다. 권하윤도 적당하게 해야 한다는 걸 아니까.그때 민도준이 테이블 위에 놓인 박스를 보더니 그 안에 든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할아버지가 보내오신 거야?”‘별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보고 받았을 거면서 나한테 왜 묻는대?’권하윤은 속으로 불평을 하면서 콧소리를 냈다.하지만 민도준은 사진첩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테이블 위에 던져 버리고는 권하윤을 돌아봤다.“이 사진첩 하나뿐이었어?”민도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권하윤은 손가락을 움찔거렸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턱을 민도준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무슨 뜻이에요? 저 같은 정부가 도준 씨 물건까지 훔쳤을까 봐요? 하긴, 전 대단한 명문가 출신도 아니라 도준 씨와 신분 차이가 있으니 그런 의심 하는 것도 당연하죠. 아니면 제가 옷 벗을 테니 몸수색해 봐요.”그저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괴상야릇한 말로 비꼬아 대는 권하윤을 보자 민도준은 순간 화가 나서 웃음이 났다.이윽고 손을 뻗어 옷을 벗으려 하는 권하윤을 품에 끌어안았다.“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어? 그리고 뭐가 불만인데 자기를 정부라고 비하해? 듣기 거북하지 않아?”권하윤은 민도준의 다리 위에 편히 앉아서는 발뒤꿈치로 민도준의 다
생각하다 보니 권하윤의 얼굴에는 침울함이 더해졌다.심지어 젓가락을 든 손에 힘이 빠져 반찬을 집으려 했지만 음식이 자꾸만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이에 망연자실해서 고개를 들었을 때.“먹기 싫으면 먹지 마.”민도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권하윤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를 굴렸다. 지금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과 아까 전 상황이 더해지니 민도준에게는 아마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 심술을 부리는 모습으로 비쳤을 거다.그제야 권하윤은 민도준이 자기를 귀찮아할까 봐 감정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취했다.“안 먹는다고 하지 않았거든요.”이윽고 젓가락을 뻗어 음식을 집으려 할 때, 민도준이 아예 권하윤의 젓가락을 밀어버렸다.그러더니 젓가락을 내려놓고 치키를 집어 들었다.“일어나. 데려갈 곳이 있어.”밖으로 나간다는 소리에 권하윤은 순간 자기 귀에 이상이 생겼나 의문이 들었다.‘밖에 나간다고? 이젠 나갈 수 있나?’이런 생각이 들기 바쁘게 권하윤은 민도준이 말을 번복할까 봐 다급히 옷을 갈아입고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갔다.“얼른 가요.”폴짝폴짝 뛰면서 기뻐하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의 눈은 약간 어두워졌다.이에 권하윤의 손이 대문에 닿은 찰나, 뒤에서 민도준의 기분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밖에 나가는 게 그렇게 즐거워?”민도준의 목소리는 원래도 낮은 데다 밤바람에 살짝 흩어져 한층 더 낮게 들렸다. 하지만 권하윤은 그 속에 숨은 위험함을 알아챘다.그제야 권하윤은 문을 밀고 있던 손을 슬며시 내리며 고개를 돌려 민도준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도준 씨랑 같이 나가니까 기쁜 거예요.”그러고는 불편한 다리를 움직이며 민도준의 곁으로 다가가 익숙한 듯 손을 뻗어 민도준의 목을 끌어안았다.“오늘 늦게까지 힘들었겠는데 우리 다시 들어가요. 먹지 말아요.”권하윤은 한참 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 민도준의 모습에 자기 손을 슬쩍 뻗어 민도준의 손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저 데리고 들어가 줘요. 네?”그렇게 원하던 자유를
위층.권하윤은 자기가 “기혼남성”과 바람을 피운 현장이 들킨 줄도 모르고 포크로 케이크를 조금 덜어 음미하고 있었다.단 음식을 입에 넣은 만족감과 오랜만에 밖에 나왔다는 것에 권하윤은 기뻐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쁨을 고스란히 티 낼 수는 없었다.이에 권하윤은 앞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민도준에게 케이크를 조금 덜어내 쑥 내밀었다.“엄청 맛있어요. 먹어 봐요.”민도준은 케이크를 두껍게 싸고 있는 크림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어린 여자애들이나 먹는 거 난 안 좋아해.”“그게 뭐예요? 누가 남자는 디저트를 못 먹는대요? 얼른 먹어 봐요. 이거 그렇게 달지 않아요.”권하윤이 케이크를 들고 유혹했지만 민도준이 먹지 않는 바람에 권하윤은 마지막 방법을 사용했다.이윽고 박민주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앞에는 이런 모습이 펼쳐졌다.바로 권하윤이 민도준의 입에 디저트를 갖다 대며 억지로 먹이려는 장면. 그 장면을 본 순간 박민주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저 여자 뭐야? 도준 씨가 단 거 안 좋아하는 거 몰라서 저러나?’‘왜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여자애들이나 먹는 걸 먹이고 저래? 어쩜 저렇게 예의가 없지?’사람들이 모두 사람 말이 무섭다고들 하는데 그 말에는 사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첫 번째는 사람들이 부풀린 헛소문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그걸 말하다 보면 자기도 그게 진짜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지금의 박민주가 바로 두 번째 상황이다. 분명 자기가 민도준과 결혼하지 않는 건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하도 옆에서 말해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기를 민도준 아내의 위치에 대입해 생각했다.때문에 권하윤을 보는 눈빛은 마치 자기 남편과 바람난 내연녀를 보는 것처럼 분노와 독기로 가득 찼다.그 시선이 얼마나 선명했는지 권하윤마저 눈치채고는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박민주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박민주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권하윤의 손에 든 케익에 구멍이라도 뚫을 것처럼 노려봤다.그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는 권하윤은 케이크를 살짝
박민주의 앞에서 권하윤도 민도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무심한 듯 포크로 케이크를 조금 덜어내서는 민도준에게 내밀었다.“자요.”그 순간 새하얀 손가락에 낀 루비 반지가 유난히 눈에 튀었다.그때 민도준이 커다란 손으로 권하윤의 작은 손을 완전히 감싼 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더니 작게 덜어낸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었다.민도준이 평소 먹지도 않던 디저트를 입에 대자 박민주의 눈시울이 더욱 붉어졌다.이렇게 되면 저녁 늦게 야식을 사 들고 온 자기만 정말 바보가 되니까.“대체 왜요?”하지만 박민주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민도준을 바라봤다.“왜 제가 그렇게 많은 걸 했는데 도준 씨는 저보다도 저렇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를 선택하는데요?”갑자기 쓸모없는 여자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권하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때 옆에서 온종일 꾸물대는 박민주에게 인내심이 바닥난 민도준은 귀찮은 표정으로 눈을 살짝 돌렸다.“내가 박민주 씨의 이런 쓸데없는 행동에 감동이라도 할 것 같아?”너무 직설적인 말에 박민주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이윽고 아예 흐느끼며 중얼거렸다.“전 도준 씨를 위해 남들이 뭐라 하든 내 명예도 상관하지 않고 도준 씨를 도왔어요. 그런데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그 뒤의 말은 민도준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그대로 묻혀버렸다.그때 민도준이 담배를 이 사이에 꽉 문 채로 박민주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이리 와. 내가 그럼 박민주 씨 친구들 앞에서 우리는 결혼한 적 없다고 잘 설명해 줄 테니까.”갑자기 벌어진 일에 박민주는 몇 번 비틀대며 끌려 나가다가 겨우 반응을 보였다.그리고 그 순간 친구들이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자기가 비웃음거리고 전락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그제야 박민주는 당황한 나머지 울면서 버둥댔다.“저 안 가요. 이거 놔요. 이거 놓으라고요…….”권하윤이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민도준을 잡아당겼다.“도준 씨, 잠깐만요. 차분하게 얘기로 해결해요.”민
권하윤이 싫은 척 거절하다가 다시 앞으로 다가갔을 때 민도준은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턱을 쓱 문질렀다.“몇 살인데 얼굴에 뭘 묻히고 다녀?” 그 순간 권하윤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뭔가 있을 줄 알았더니 얼굴에 크림이 묻은 거였어?’“아.”권하윤은 화가 난 듯 자기 얼굴을 마구 문질러 댔다. 솔직히 민도준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이상한 생각을 한 자기한테 화가 났다.하지만 그런 생각은 당연히 민도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빨개졌는데 뭘 계속 닦아내?”‘뭘 안다고 그래요? 제가 닦아내는 건 크림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라고요!’하지만 당연히 이 말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그저 고개를 홱 돌려 차창 밖을 내다볼 뿐.그때 민도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이리 와봐. 깨끗하게 닦아졌는지 보게.”권하윤은 고개를 돌린 채 끝까지 보여주지 않으려고 발악했다. 하지만 오히려 강제적으로 고개가 돌려 결국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도준 씨를 보기 싫거든…….”미처 뱉어내지 못한 한 글자는 순간 민도준의 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달콤한 냄새가 입술 사이로 흩어지는 사이 권하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민도준에게 끌려 그의 다리 위에 낮아 버렸다.이윽고 밭은 숨소리와 함께 민도준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원하는 게 이런 거였어?”물론 더 친밀한 관계도 가져봤지만 권하윤은 오래도록 뒤엉켜 이어진 입맞춤에 저도 모르게 귀밑까지 붉어졌다. 심지어 이대로 민도준에게 안겨 녹아내리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때문에 민도준이 권하윤을 풀어 줬을 때도 권하윤은 여전히 애타는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민도준에게 엉겨 붙었다. 그런 붙을듯 말듯한 거리는 오히려 더 사람을 미치게 했으니까.마치 갓 이빨이 난 새끼 동물처럼 자기 턱을 자꾸만 짓씹어 대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못 말린다는 듯 권하윤을 떼어내며 턱을 들어 올렸다.“뭐야? 발정 났어?”“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권하윤은 얼굴을 붉히며 불만스럽게 중얼
민도준이 떠난 뒤 권하윤은 계속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자기가 고이 숨겨 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그러고는 전원을 켜고 공태준의 번호를 누를지 말지 망설이기 시작했다.권하윤은 떠나고 싶었다. 게다가 그 기회는 이번 주 일요일 기자회견 날이고.더욱이 권하윤을 데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공태준뿐이었다.분명 전에 공태준과 해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해둔 상태라지만 다시 떠나려고 하니 권하윤은 왠지 자꾸만 망설여졌다.그도 그럴 게, 이 전화를 걸면 앞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니까.권하윤이 계속 그렇게 망설이고 있을 때, 조용하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권하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핸드폰을 던져버릴 뻔했다.하지만 이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는 건 민성철과 공태준뿐이라는 생각에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윤이 씨? 혹시 방해한 건 아니죠?”조심스럽게 질문하는 나지막한 목소리.권하윤은 공태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공태준이 전화를 건 시간이 하필이면 너무 기막힌 타이밍이라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의문을 품었다.“내가 지금 전화 받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윤이 씨가 핸드폰을 켰으니까요.”‘켰으니까? 설마 이 핸드폰…….’“걱정하지 말아요. 전 그저 여러번 전화했었던 것뿐이에요.”권하윤이 핸드폰을 켠 지 이제 10분도 채 안 되는데 여러 번이 아니라 이 정도면 계속 전화한 게 더 합당하다.권하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공태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다리는 어떻게 됐어요? 다 나았어요?”“괜찮아.”“다행이네요.”공태준은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요즘 윤이 씨랑 연락이 안 돼서 윤이 씨 어머니께서 많이 걱정하고 계세요.”“무슨 뜻이지?”권하윤은 순간 멈칫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저는 그저 윤이 씨가 가족과 오랫동안 연락이 안될 것 같아 대신 안부를 전해준 것뿐이에요.”“우리가 다시 돌아가면 제가 바로 윤이 씨 가족 국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