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미리 말하지 못해서. 제가 실수했어요. 혹시 화났어요?”권하윤은 공태준과 말다툼할 기분도 아니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딱 잘라 말했다.“난 왜 그랬는지 듣고 싶은데. 내가 도준 씨 제수씨가 돼야 당신한테도 유리한 거 아닌가?”그 말에 공태준은 약 2초간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앞으로 천천히 알게 될 거예요.”어물쩍 넘기는 듯한 말에 권하윤은 갑자기 민상철이 얼마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권하윤한테 이제는 민도준과 당당하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신분이 생겼는데 민도준이 왜 계속 가둬줄까 하던 그 한마디.‘설마 공은채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나?’‘무슨 일이길래 공은채의 죽음보다 더 중요하지?’하지만 공태준은 권하윤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는 눈치인지라 계속 물어본대도 답을 알아낼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권하윤은 대충 이유를 둘러대며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고는 발각되지 않게 핸드폰을 꺼버리고 다시 숨겨두었다.그러다가 핸드폰과 같은 자리에 숨겨둔 USB를 본 권하윤은 순간 멈칫했다.‘혹시 이 안에 답이 있을까?’점심시간 권하윤에게 배달을 하러 온 사람은 경호원이 아니라 진소혜였다.“하이, 하윤 언니!”진소혜는 두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유일하게 자유로운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며 권하윤에게 인사했다.그 모습이 귀여워 권하윤은 피식 웃더니 이내 앞으로 다가가 진소혜에게로 다가가 양손 가득 든 점심을 받아 들려고 손을 뻗었다.하지만 진소혜는 오히려 손을 뒤로 뺐다.“에이, 언니는 손대지 마요. 대신 제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주겠어요?”노트북이라는 단어에 권하윤의 시선은 순간 진소혜가 오른손에 든 가방에 집중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놓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노트북은 왜 가져 왔어요? 혹시 또 일할 게 남아 있어요?”“네!”진소혜는 악에 받힌 듯 테이블 위에 놓인 치즈볼 하나를 입에 집어넣으며 투덜대기 시작했다.“어쩐지 제가 먹을 것까지 챙겨준
권하윤이 테이블 앞으로 다가가 봤더니 두들겨 맞다시피 사용된 노트북은 어느새 뜨거워져 있었다.진소혜가 비번이라도 설정했을까 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우스를 살짝 움직여 봤더니 의외로 노트북 화면은 이내 밝아졌다.이에 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진소혜가 있는 쪽을 살폈다.다행히 요즘 착즙 되다시피 일한 데다 아까 연속 4시간 동안 코드를 해제하느라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진소혜는 아예 양팔과 다리를 대자로 뻗은 채로 자고 있었다.그제야 권하윤은 안심되는 듯 다시 노트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어, 비번이 없어.’권하윤은 기쁘고도 긴장된 마음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 시각, USB를 들고 있는 권하윤의 손바닥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끈적거렸다.이에 두 번 적도 USB를 꽂으려 했지만 모두 손이 미끄러져 세 번째 만에 성공했다.그와 동시에 USB를 연결했다는 알람음이 함께 울렸다.USB 아이콘이 노트북 화면에 나타나고 나서야 권하윤은 마우스를 슬쩍 움직여 클릭했다.예전에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안에는 [사진], [영상], [생일] 이 세 개 폴더가 있었다.생일은 전에 본 거라서 이번에 권하윤은 영상을 클릭했다.안에 영상이 많이 저잗되어 있을 것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고작 3개밖에 보이지 않았다.첫 번째 영상은 병원에서 시작되었다.잇따라 병상에 누워 자고 있는 공은채의 모습이 보였고 민도준이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민도준은 긴 팔과 다리를 소유한지라 그저 앉아 있기만 했을 뿐인데도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의사가 잔뜩 겁에 질려 병세를 설명하고 있었다.그사이 계속 미간을 찌푸린 채 공은채를 바라보는 민도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진소혜가 잠에서 깰까 봐 권하윤은 소리를 켜지 않아 그저 입을 뻐금거리는 모습만 봐야 했다.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듣지 않는다 해도 권하윤은 민도준이 걱정되어 초조해하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두 번째 영상은 피아노실에서 시작되었다.배치를
일촉즉발의 상황이 진소혜가 끼어든 덕분에 조금 누그러들었다.하지만 권하윤은 진소혜한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괜찮은 척 말했다.“우리 그냥 얘기하는 거예요. 괜찮아요.”“네?”진소혜는 사람을 죽일 것처럼 포악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민도준을 봤다가 가녀린 권하윤을 보고는 이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저기, 오빠! 하윤 언니도 오빠 때문에 집에만 갇혀 있느라 불쌍한데 이러지…….”“우리 할 얘기 있으니까 넌 꺼져.”“오케이. 바로 꺼질게.”의외로 일찍 퇴근하게 된 진소혜는 재빨리 물건을 챙겨 나가면서 권하윤에게 소리 없이 응원하는 손짓까지 했다.하지만 지금의 권하윤은 그 응원에 대답해 줄 수도 없었다. 민도준의 눈이 마치 못처럼 권하윤을 바닥에 박아버려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외부인이 모두 사라지자 권하윤은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민도준에게 다가갔다.“그 USB는 오래전에 받은 거예요. 진짜 오래된 거예요.”권하윤은 민도준이 자기가 별장에 갇혀 있는 동안 외부와 연락하고 지내는 거로 오해할까 봐 조심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하지만 민도준은 권하윤의 불쌍한 척하는 표정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손을 뿌리치며 입을 열었다.“누구한테서 받은 거야? 공태준? 아니면 성은우?”“공태준이요, 공태준.”민도준이 성은우의 이름을 말할 때의 목소리가 너무 위험해 보여 권하윤은 다급하게 사실을 말해버렸다.“공태준이 이 안에 도준 씨와…… 공은채 씨의 과거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해서 궁금해서 봤어요.”방금 전까지만해도 두렵던 권하윤은 공은채의 이름을 내뱉는 순간 억울하고 서러워 났다.만약 민도준이 공은채와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해주면 권하윤도 공태준의 계략에 빠지지 않았을 테니까.‘아니지, 이미 말했었네. 죽을 만큼 사랑했다고, 살아있으면 결혼했을 거라고.’하지만 권하윤은 스스로 그 모든 걸 무시하고 한번 또 한 번 스스로 또검증을 하려고 했던 거다.그 생각을 다시 되돌리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
입이 꾹 눌려 말할 수 업자 권하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권하윤이 고개를 끄덕인 뒤 민도준의 표정이 아까처럼 무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권하윤을 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조금 풀렸다.이에 권하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버둥대 빠져나와서는 민도준의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화내지 마요. 네? 저 정말 잘못했어요.”민도준은 눈을 내리깐 채 또다시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권하윤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사과는 참 빨라.”권하윤은 그 말에서 민도준이 화를 풀었다는 걸 알고는 배짱이 커져 아예 민도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제가 꼭 고칠게요.”그 말이 떨어지자 몇 초간 침묵이 이어지더니 익숙한 손길이 등에서 느껴졌다.민도준의 손이 목덜미로부터 허리까지 미끄러져 내리자 권하윤의 떨리던 몸도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하지만 평정심을 되찾은 뒤에야 권하윤은 민도준이 방금 다른 내용을 봤는지 물어보고는 화를 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왜지?’‘내가 공태준이 준 USB를 봤다고 화낸 건가? 아니면 내가 그 USB 안의 내용을 봐서…….’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민도준이 갑자기 권하윤을 들어 안았다.“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속마음을 숨기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제가 어떻게 해야 도준 씨의 화가 풀릴지 생각 중이었어요.”이 시각 권하윤은 또다시 실수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듯한 얌전한 얼굴로 돌아와 민도준이 마음 약해지기를 바라며 불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그 모습에 민도준은 끝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왜 어떻게 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지 생각하지 않아?”이것도 조금 훈수를 두는 말투였지만 아까랑 비교하면 비 온 뒤의 맑음에 가까웠다.이에 권하윤은 이내 민도준을 끌어안고 흔들어 댔다.“사람이 어떻게 실수를 안 해요? 역시 도준 씨밖에 없어요!”그때 민도준은 권하윤의 등을 꾹 눌러대며 말했다.“그만해.”‘칫, 그럼 내 잘못을 따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권하윤은 이런 생
갑자기 차가워진 민도준의 눈빛에 권하윤은 흠칫 놀라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이제 졸리네요.”권하윤은 강력하게 부정하면서 몸을 한껏 움츠린 채 민도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얌전함을 과시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민도준이 권하윤을 밀어냈다.민도준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자 권하윤은 겁에 질려 고개를 들었고 어렵사리 화가 풀린 민도준이 또다시 자기한테 화낼까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민도준은 잔뜩 긴장해서 웅크리고 있는 권하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졸린다며? 내려와.”권하윤은 민도준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느릿느릿 소파에서 내려왔다.이윽고 민도준은 권하윤을 침실로 끌고 가더니 마치 인형을 만지작거리듯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을 덮어주고 심지어 등을 토닥여 주기까지 했다.기괴해진 분위기에 권하윤은 잠이 오지 않아 눈을 깜빡이며 침대 끝에 걸터앉은 민도준을 바라봤다.“왜 안 자?”권하윤은 민도준이 자기를 두드려 주는 손을 덥석 잡았다.“저 무서워서 잠이 안 와요.”이에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권하윤의 손을 이불 안으로 넣어주고는 주위를 둘러봤다.이 방에는 두 사람이 함께 오래 산 흔적이 많이 묻어 있었다. 예전보다 많은 물건이 생겨나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권하윤도 민도준의 시선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도준 씨, 뭘 보고 있어요?”“사실 이 방도 살기에는 충분하지 않아?”권하윤은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불편할 거 아니야. 앞으로는 이 방에서만 살아.”뜨거운 손바닥이 권하윤의 얼굴을 쓱 문질렀다.그 순간 권하윤은 너무 놀라 믿기지 않는 듯 민도준을 바라봤다.‘지금 나더러 이 방에서만 갇혀 지내라고?’별장에서 지낸다면 그나마 숨겨두는 거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방에만 있으라고 하는 건 감금이나 다름없다.이에 권하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싫어요.”“왜 싫은데?”민도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권하윤은 당연히 여행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어색하게 입꼬리를 애써 말아 올리며 입을 열었다.“도준 씨 바쁘지 않아요?”“바빠도 하윤 씨를 소홀히하면 안 되지.”민도준은 애초부터 인내심이 강했던 사람처럼 권하윤을 애인 대하듯 눈빛으로 현혹했다.“자기야,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국내로 가고 싶어 아니면 해외로 가고 싶어?”해외라는 두 글자에 권하윤의 호흡은 몇 초 늦어졌다.민도준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어디든 괜찮아요.”“착하네.”민도준은 권하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내일 애들 시켜서 관광 안내 책자를 가져다줄 테니까 열심히 고르고 있어. 심심하지 않게.”권하윤은 입을 뻐금거렸지만 끝내 거절의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네.”민도준은 바쁜 일이 있다면서 권하윤 곁에 잠시 있어 주는가 싶더니 이내 떠나가 버렸다.그러고는 방에 얼마 있지 않았는데 밖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들어보니 문을 나무로 봉쇄하는 소리였다.그 소리는 한참 뒤 사라졌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권하윤이 문을 열어 보려고 힘을 밀어봤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았다.별장에 갇히면서 느꼈던 답답함은 오늘 이순간 최고조에 달했다.심지어 요즘 민도준과 함께 그려낸 “집”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떠나야 해.’안 그러면 언젠가는 이곳에 갇혀 답답하게 죽어갈 테니까.‘하지만 도준 씨가 발표회에 데려가지 않으면 어떻게 떠나지?’물론 민도준이 나중에 권하윤을 데리고 놀러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건 결국 기약 없는 약속일 뿐이다.만약 발표회가 끝난 뒤 민도준이 또다시 번복하면 권하윤으로서도 아무 방법이 없을 거다.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나니 권하윤은 이번 발표회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도준 씨가 오늘 USB 건으로 화를 내고 원래 했던 결정을 번복했으니 화가 가라앉고 난 뒤 다시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그래, 희망
아이 달래듯 부드러워진 민도준의 말투에 권하윤은 순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왜 이러는 거지? 설마 밖에 나갔다가 귀신이라도 씌었나?’하지만 뭐가 됐든 권하윤은 민도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아예 죽은 척 눈을 감고 있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민도준이 권하윤을 잡고 마구 흔들어 댔다.“정말 화났어?”권하윤은 그제야 눈을 감은 채로 콧방귀를 뀌었다.“제가 화나든 말든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하는 건 변함 없잖아요. 어찌 됐든 아무 데도 갈 수 없으니까 저를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요.”그 말투는 불쌍하기도 하고 화가 나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마 권하윤 외에는 몇 안 될 거다.민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눈을 감고 입을 삐죽거리는 권하윤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날카로움도, 부드러움도 심지어는 민도준 본인조차 알 수 없는 심란함도 섞여 있었다.민도준은 항상 뭐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뭘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권하윤이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걸 본 순간 바로 화면을 덮어버렸다.그 순간 민도준은 권하윤이 자기 곁에서 도망칠 수 있는 날개와 다리를 부러트리고 싶으면서도 권하윤이 아플까 봐 걱정되고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잃을까 봐 걱정되었다.이렇듯 자꾸만 망설이는 건 민도준의 성격이 아닌데 말이다.‘나도 점점 미쳐가나 보네.’민도준은 잔뜩 불만이 묻어 있는 권하윤의 얼굴을 꽉 꼬집었다.“눈 떠. 얼른, 할 얘기 있어.”민도준의 차가워진 말투에 권하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민도준을 힐끗거렸다.“왜요?”“방에 갇혀 있기 싫어?”그 말에 권하윤은 발끈했다.“당연하죠! 저 산 사람인데 방에만 가둬두고 해볕 쪼임도 못하고 신선한 공기도 못 마시게 하면 이건 학대예요!”권하윤이 화를 내는 모습에 민도준은 이내 권하윤을 품속으로 끌어들였다.“됐어. 햇볕도 쬐고 싶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싶다 이거지?”권하윤은 여전히 화가 났지만 민도준의 태도가 그나마 많이 누그러들자 더 이상
민도준은 분명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말하고 있었지만 권하윤은 너무 놀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농담일 수 있겠지만 민도준이 하면 진짜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도 그럴 게, 민도준은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겁에 질린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약속할게요.”“착하네.”민도준은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만족한 듯 권하윤에게 입을 맞췄다."배고프지 않아? 뭐 먹고 싶어?”이윽고 잇따른 물음에 권하윤은 그제야 자기가 저녁도 먹지 못했다는 게 생각났다.하지만 여러 번 충격을 받고 나니 이젠 입맛이 거의 사라고 없어져 고개를 저었다.“배 안 고파요.”권하윤은 뭐든 의욕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의욕이 넘쳐 보였다.“배 안 고파? 그러면 다른 거 할까?”장난기 섞인 말과 함께 강한 입맞춤이 휘몰아쳤다.남자의 숨결이 너무 뜨거워 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민도준은 그러면 그런대로 권하윤의 얼굴부터 점점 아래로 내려가 쇄골에 코를 박고 잘근잘근 씹어대기 시작했다.이윽고 긴장 가득한 권하윤을 살살 달랬다.“착하지. 무서워할 거 없어.”그 시각 민도준은 권하윤을 자기 아래에 가둔 채 점점 자기를 받아들이게 했다.민도준은 평소에도 사람을 강압적인 분위기로 몰아세우기를 좋아하던 사람인데 침대에서는 더 강압적이다.그 때문인지 거역하는 권하윤의 손을 커다란 손으로 꽉 잡아 쥔 채 깍지를 끼더니 이내 권하윤 머리 양옆으로 내리눌렀다.흐리멍덩한 상태에서 깨끗이 씻겨진 권하윤은 민도준의 품에 안긴 채로 침대에 누웠다.분명 몽롱한 가운데 민도준이 뭐라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았지만 다음 눈이 감기며 의식을 잃어버렸다.-그 뒤 며칠 동안 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이라면 뭐든 순종했다.게다가 민도준은 대부분의 시간을 권하윤과 함께 보내는 데 사용했다.가끔 권하윤을 품에 안은 채 티브이를 보는가 하면 아기자기하게 썬 과일을 권하윤의 입에 넣어주면서 말이다.그러다 가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