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준은 무서운 눈빛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권하윤을 바라보더니 권하윤이 겁에 질려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옆에 앉았다.“도망치는 게 재밌었어?”권하윤은 아래로 푹 숙였던 고개를 마구 저었다.그렇게 흔들다가 뭔가를 인식한 듯 고개를 쳐들고는 불쌍한 눈빛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저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날 약 때문에 쓰러졌어요.”이윽고 권하윤은 그날 있은 일을 곧이곧대로 설명하고는 자아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저도 알아요. 이번 일은 제가 잘못했다는 거. 제가 얌전히 있기만 했어도 공태준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잘못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권하윤은 창백한 얼굴로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심지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반성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하.”갑자기 비아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다음 순간 권하윤은 턱에 전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권하윤의 당황한 눈빛에 민도준은 기분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결혼식 날 도망가는 건 예전에도 했었으니까.”권하윤은 민도준의 관대함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겁에 질린 채 다음 질문을 기다릴 뿐.그때 턱에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더니 민도준은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빨개진 피부를 문질렀다. “무서웠지?”부드러워진 목소리에 호박색 눈동자가 흔들렸다.“네?”민도준은 인내심 있게 다시 물었다.“강에 빠졌을 때, 무서웠지?”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물에 빠졌을 때 느꼈던 질식감이 다시 휘몰아쳤다.그때 물결치는 강물 속에서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허우적대며 점점 가라앉았었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무서웠어요. 정말 무서웠어요.”뒤늦게 밀려오는 서러움에 권하윤은 민도준의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고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물도 차갑고 난 수영할 줄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안 잡히고. 저 요즘 매일 매일 악몽 꿔요. 물에 빠져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악
“왜 말이 없어?”커다란 손이 권하윤의 목덜미를 꽉 잡는 바람에 권하윤은 민도준의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민도준의 목소리는 표정과 달리 매우 부드러웠다.“헬기 소리 들었을 때 무슨 생각 했어? 응? 왜 나한테 잡혔나 생각했어? 아니면 나한테 잡히면 공태준과 어떻게 해원으로 돌아갈지 걱정했어?”한마디 한마디 말은 권하윤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어 도망칠 수 없게 했다.모든 설명은 사실 앞에서 변명만 될 뿐이었다.말문이 막힌 권하윤의 모습은 마침 민도준의 눈에 들어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효과를 더해줬다.목덜미를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 권하윤의 목을 더 꽉 조였다.“말해 봐. 왜 말 안 하지? 나는 미친 듯이 찾아다녔는데 공태준과 어떻게 도망칠지를 생각했어? 어디 말해 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몇 날 동안 쇠약해진 몸은 남자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 힘에 종잇장처럼 펄럭이다가 확 내팽개쳐졌다.가슴속에 쌓여 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모두 흘러나왔는지 권하윤을 밀쳐내는 힘을 빼지 않은 터라 권하윤은 철퍼덕 넘어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민도준은 여전히 침대 옆에 서서 권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그늘에 가려져 알 수 없는 빛을 비춰냈다.그렇게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민도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돌려 떠나갔다.권하윤은 다급히 손을 뻗어 민도준을 잡으려 했다.“잠깐만요.”하지만 제대로 잡지 못한 탓에 다급히 침대에서 내리느라 자기의 발이 다쳤다는 것도 잊어버렸다.“아-”권하윤이 눈을 감고 침대 아래에서 고통을 참고 있을 때 힘 있는 손이 권하윤을 들어 올려 다시 침대 위에 던져버렸다.이윽고 귀찮은 듯 꾸짖었다.“다리도 다쳤으면서 왜 이래?”하지만 권하윤은 다른 걸 관계할 겨를도 없이 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한 민도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제 말 좀 들어 봐요.”권하윤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를 악물었다.“제가 공태준과 같이 간 건 제가…… 제가 권하윤이 아니라
권하윤은 어리둥절해졌다.솔직히 권하윤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이 서지 않았다.이제야 오빠가 민도준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평소에 무섭지 않냐고 하던 물음이 생각났다.민도준은 기쁠 때는 당연히 지내기 좋은 상대다. 하지만 일단 모순만 생기면 권하윤은 맞서기는커녕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없다.김빠진 권하윤의 얼굴에 민도준은 뜬금없이 웃음을 내뱉었다.“뭐야? 방법도 생각하지 않았으면서 나한테 개겼던 거야?”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권하윤은 이제 더 이상 민도준의 변덕스러움을 상대할 마음도 없어졌다. 더욱이 이대로 상황이 악화하다가 일이 더 나빠질까 봐 아예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 채 홱 돌아 누웠다.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이런 도피 방식은 얼마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민도준이 곧바로 옆에 누웠기 때문이다.그 순간 권하윤은 등골이 오싹해 났다.‘오늘 여기서 자려고 그러나?’권하윤은 분위기가 이토록 안 좋아져 민도준이 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곳도 민도준의 집이기에 권하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방안의 불이 꺼지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어둠이 내려앉았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별장으로 왔지만 이제는 여기를 떠날 기회도 없다.‘오늘 하루 종일 민혁 씨가 안 보였는데 설마 아직도 내 신분을 조사 중인가?’‘아니면 이미 조사를 마쳤나?’‘그래서 본인의 명성에 누가 되더라도 계속 제수씨인 권하윤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건가? 이씨 가문 딸보다는 이게 나아서?’‘아마 그렇겠지. 내가 이시윤이 되면 옛 연인과 새로운 애인 중에 선택하기 어려울 테니까.’‘오히려 이대로 나를 가둬 두는 게 나을지도.’순간 공태준이 리조트에서 기다리겠다던 말이 생각나 권하윤은 더 복잡하고 답답해 났다.이미 민도준에게 끌려 별장으로 돌아왔는데 자유가 어디 있다고? 리조트는커녕 이 별장에서 나가는 것조차 어려운데.순간 권하윤은 땅에 파묻었던 USB가 떠올랐다.‘잇따라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못 볼 것도 없지.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가 있
방 안의 어둠은 마치 모양이 생겨난 듯 권하윤의 코를 파고들어 숨이 막혔다. 이런 감각은 그날 강물에 빠졌을 때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권하윤은 계속 이 방에 있다간 결국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끝내 이불을 걷고 침대 아래로 내려가려 했지만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데 언제 일어나 앉았는지 모를 남자에게 어깨가 붙잡히고 말았다.“다리도 절뚝거리며 어딜 가려고 그래?”뒤늦은 반응에 권하윤은 더 답답해 버둥대며 내려가려고 애썼다. “제가 어딜 가든 도준 씨랑은 안 가요.”그 말에 민도준은 마치 인내심을 잃은 듯 권하윤을 다시 원래 자리고 끌어오더니 얌전하지 못한 권하윤을 자기 아래에 가둬버렸다.“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권하윤은 버둥대다가 헛수고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 아예 얼굴을 홱 돌려 포기하듯 투덜거렸다.“하고 싶으면 빨리하기나 해요. 어차피 도준 씨한테 저는 그런 용도밖에 없을 테니까.”민도준은 재밌는 듯 피식 웃으며 권하윤의 얼굴을 들어 윗몸을 일으켰다.“나 요즘 잠도 못 잤는데 일을 시키려고? 날 아예 뽑아 먹을 생각인가?”권하윤은 입을 입을 벌리며 억울한 듯 뭐라 말하려 했지만 또다시 자신감을 잃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갓 화내고 바로 걱정하는 말을 하는 것도 웃기니까. 말을 하려다가 마는 듯한 권하윤의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이에 민도준은 권하윤의 얼굴을 꽉 잡았다.“난 그저 잠만 자려고 했는데 옆에서 찡찡거리더니. 참 끝도 없지 아주? 한바탕 해야 얌전해 질 거야?”그 시각 민도준은 아까의 포악함을 거두더니 여상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 말투에 권하윤은 조금 전 일이 환상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마치 권하윤이 민도준을 거역하지만 않으면 얼마나 성깔을 부리든 모두 인내심 있게 받아줄 것처럼.예전 같았으면 권하윤은 비 온 뒤의 무지개 같은 이 변화에 기뻐 헤어 나올 수 없었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난 뒤라 그런지 이런 걸 믿는 건 그저 스스로를 속이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거짓된 아름다움 속에 언제나
권하윤은 순간 등이 오싹해 무의식적으로 버둥댔다.“저 다리가 저려서 그래요. 저 좀 놔줘요.”하지만 순순히 응해줄 민도준이 아니었다.오히려 놔주기는커녕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스르륵 아래로 쓸어내렸다.“다리가 저려? 내가 주물러 줄게.”“필요 없어요…… 어딜 주무르는 거예요…….”퉁명스러운 목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해버렸다. 심지어 부끄러운 나머지 민도준의 손을 마구 긁어대는 바람에 손톱자국을 남기기까지 했다.하지만 새끼 고양이가 손톱으로 긁어대는 듯한 느낌일 뿐이라서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했다.슬립 원피스의 끈이 흘러내리고 치맛자락이 위로 살짝 걷혀 올라간 순간 권하윤은 민도준이 끝까지 할 거라고 생각햤지만 웬일로 손을 뗐다.이윽고 어리둥절해하는 권하윤을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왜? 아직도 모자라?”권하윤은 그 말에 욱했는지 버럭 소리 질렀다.“누가 모자라다고 했어요?”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권하윤의 얼굴을 슬쩍 문질렀다.“난 아직 모자라는데.”“아, 만지지 마요.”말하면서 자기 얼굴을 벅벅 문지르는 권하윤의 동작에 민도준은 재밌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나도 더럽다고 하지 않는데 왜 본인이 그래?”민도준의 노골적인 말에 권하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벌떡 일어섰다.“저 샤워하러 갈 거예요!”그러고는 이 한마디를 남겨놓고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그 시각 민도준은 침대 머리에 비스듬히 기댄 채 절뚝거리며 욕실로 가는 권하윤을 빤히 지켜볼 뿐 도와주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처음에는 은근히 민도준이 도와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권하윤은 민도준이 끝까지 움직이지 않자 심술이 났는지 혼자서 절뚝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다리가 원래도 다쳤는데 민도준 때문에 힘까지 빠져 혼자 걷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권하윤이 욕실에 들어서려는 찰나 발이 붕 뜨더니 가로로 솟구쳐 올랐다.권하윤은 아직도 민도준이 모른체 지켜만 보고 있던 모습에 화가 났는지 고집을 부렸다.“도준 씨 도움 필요 없어요. 저 혼자도 돼요.”민도준은
집으로 가자는 말을 듣자 권하윤은 순간 멍해졌다.그토록 자연스러운 말투는 마치 결혼한 신혼부부끼리 집에 가서 식사하자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심지어 잠깐의 착각을 불러일으켜 차가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권하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민도준을 빤히 바라봤다.모든 감정 중에서 가장 억제하기 어렵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아마 사랑일 거다.마치 지금의 권하윤처럼. 분명 빠지지 말자고 현혹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달래봐도 민도준이 적색 신호등을 기다리며 권하윤의 손을 잡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어쩔 수 없었다.그때 민도준이 권하윤의 손을 주무르며 피식 웃었다.“마른 것 봐. 손도 닭발 같네.”순간 정신을 차린 권하윤은 화가 난 듯 손을 빼며 투덜거렸다.“그래요. 그런데 당장 놓지 않고 뭐 해요? 긁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하지만 권하윤이 손을 빼기도 전에 민도준이 권하윤의 손등을 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장난이야.”그제야 권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민도준은 권하윤의 손을 얼마나 오래 바라봤는지 모른다. 가는 손 위에 마침 차창으로 비쳐 든 햇빛이 드리워 희고 깨끗했다.“예뻐.”이윽고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손바닥을 살살 긁어댔다.“게다가 여기가 부드럽잖아.”분명 별말 아닌 것 같았지만 권하윤은 순간 민도준이 만졌던 곳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다는 게 느껴졌다.그 때문에 민도준이 손을 놓은 뒤에도 자기 손바닥을 한참 동안 긁어댔다.하지만 차 안의 온화하고 아름답던 분위기는 별장 주위에 서 있는 경호원들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아무리 아름다운 거라도 권하윤이 지금 새장 속에 갇힌 새라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까.민도준은 권하윤의 지친 듯한 표정을 보더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손을 뻗어 권하윤을 자기 품 안에 끌어안았다.그렇게 품에 안긴 채로 별장 안으로 들어간 권하윤은 문을 열자마자 음식 냄새를 맡게 되었다.이윽고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이 눈에 들어와 권하윤은 멍한 표정으로 민도준을 돌아봤다.“배고프다며? 나를 보면
권하윤이 자기가 실수라도 한 게 아닌가 놀라고 당황해할 때 무릎 위에 따듯함이 전해지더니 민도준의 손이 멀쩡한 한쪽 다리 위를 천천히 쓸었다.“사실 지팡이도 불편하잖아. 아니면 이쪽 다리도 부러트리고 휠체어 준비해 주는 게 어때?”분명 농담조였지만 손이 닿은 곳에서부터 소름이 끼치며 온몸에까지 전해졌다.특히 권하윤의 번뜩이는 눈빛에 권하윤은 놀라 뒤로 슬쩍 물러났다.“지팡이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라…….”하지만 권하윤이 뒤로 물러나기 바쁘게 무릎 위에 전해지는 힘 때문에 다시 원래 자리로 끌려왔다.민도준은 씩 웃으며 권하윤의 머리를 누르더니 마치 애인에게 말하든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뭘 그렇게 겁을 먹어? 고작 지팡이 하나도 안 줄까 봐? 이따가 애들 시켜서 가져다주라고 할게.”민도준이 다시 동의하자 권하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그저 민도준의 자기를 침대에 눕히고 얼굴 옆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는 걸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자. 저녁에 밥 먹으로 올게.”권하윤은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민도준이 떠난 뒤 권하윤은 또렷한 정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민도준이 이미 떠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오전에 의사가 뼈를 교정해 준 덕에 다리가 원래처럼 아프지는 않았다. 게다가 천천히 걷는 것도 가능했다.물론 계단을 내리는 건 여전히 힘들었지만 작은 걸음으로 움직이면 그래도 괜찮았다.이 시각 목표는 단지 정원뿐이었다.하지만 USB를 묻어둔 곳을 찾을 때 시간이 꽤 걸렸다. 왜냐하면 다시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특별한 표식도 해놓지 않았으니까.정원을 이곳저곳 헤집어 놨지만 여전히 USB는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표식도 해놓지 않은 데다 USB 크기가 작기에 눈에 띄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렇게 약 1시간 넘게 바닥을 헤집었을 때, 권하윤은 끝내 USB를 찾아 위에 묻은 흙을 불어버리고는 손에 꼭 쥐었다.‘찾기는 찾았는데 이걸 어떻게 보지?
“도준 씨…….”“일단 병원부터 가.”많이 말할수록 실수할까 봐 권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분고분 옷을 입기 시작했다.원래는 스스로 하려고 했으니 민도준이 도와줘 잠깐 버둥대며 치맛자락을 꽉 잡았다.“저 손은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하지만 다음 순간 민도준은 권하윤의 손을 옷에서 강제로 떼어내더니 권하윤의 슬립원피스를 들추기 시작했다.“내가 도와줄게.”기억 속에 권하윤은 어릴 때 외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은 적이 없다. 그때는 손발이 짧아 어른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지만 지금은 다 큰 성인인데 도움을 받으니 오히려 부끄러웠다.게다가 하필이면 권하윤에게 옷을 갈아입혀 주는 사람이 젠틀한 사람이 아니라 입혀주다가도 손으로 이리저리 슬쩍 만져대는 바람에 권하윤은 자꾸만 몸을 흠칫흠칫 떨며 새우처럼 움츠렸다.물론 바둥거리며 이리저리 피해도 모두 헛수고였지만.민도준은 아예 웅크린 권하윤을 확 잡아당겨 팔을 활짝 열어버렸다.“이러면 내가 어떻게 옷 입혀줘? 손 들어 봐.”“응. 조금 더 들어.”자기를 살살 구슬리는 듯한 말투에 권하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민도준의 손에서 옷을 홱 낚아챘다.“제가 입을게요.”하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흥미로운 듯 반항하는 권하윤을 단번에 제압했다.“말 들어. 옷 입혀주는 데도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말을 안 듣는다고? 지금 말 안 듣는 게 누군데.’끝내 권하윤은 민도준을 이기지 못하고 민도준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가 단추를 채운 손가락이 어깨를 스칠 때 몸을 살짝 떨더니 민도준이 또 무슨 헛짓거리를 할까 봐 바로 몸을 배배 꼬며 밀어버렸다.“됐어요. 이제 다 입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버둥대며 침대에서 내리려 했지만 민도준은 권하윤을 꾹 누르며 아래층으로 안고 내려갔다.권하윤 스스로도 지금의 자기가 그저 짐짝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귀찮아하기는커녕 권하윤이 모든 걸 자기한테 의존하는 걸 즐기는 듯했다.그렇게 신발을 신을 때가 되자 권하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