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준 씨…….”“일단 병원부터 가.”많이 말할수록 실수할까 봐 권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분고분 옷을 입기 시작했다.원래는 스스로 하려고 했으니 민도준이 도와줘 잠깐 버둥대며 치맛자락을 꽉 잡았다.“저 손은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하지만 다음 순간 민도준은 권하윤의 손을 옷에서 강제로 떼어내더니 권하윤의 슬립원피스를 들추기 시작했다.“내가 도와줄게.”기억 속에 권하윤은 어릴 때 외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은 적이 없다. 그때는 손발이 짧아 어른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지만 지금은 다 큰 성인인데 도움을 받으니 오히려 부끄러웠다.게다가 하필이면 권하윤에게 옷을 갈아입혀 주는 사람이 젠틀한 사람이 아니라 입혀주다가도 손으로 이리저리 슬쩍 만져대는 바람에 권하윤은 자꾸만 몸을 흠칫흠칫 떨며 새우처럼 움츠렸다.물론 바둥거리며 이리저리 피해도 모두 헛수고였지만.민도준은 아예 웅크린 권하윤을 확 잡아당겨 팔을 활짝 열어버렸다.“이러면 내가 어떻게 옷 입혀줘? 손 들어 봐.”“응. 조금 더 들어.”자기를 살살 구슬리는 듯한 말투에 권하윤은 끝내 참지 못하고 민도준의 손에서 옷을 홱 낚아챘다.“제가 입을게요.”하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흥미로운 듯 반항하는 권하윤을 단번에 제압했다.“말 들어. 옷 입혀주는 데도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말을 안 듣는다고? 지금 말 안 듣는 게 누군데.’끝내 권하윤은 민도준을 이기지 못하고 민도준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가 단추를 채운 손가락이 어깨를 스칠 때 몸을 살짝 떨더니 민도준이 또 무슨 헛짓거리를 할까 봐 바로 몸을 배배 꼬며 밀어버렸다.“됐어요. 이제 다 입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버둥대며 침대에서 내리려 했지만 민도준은 권하윤을 꾹 누르며 아래층으로 안고 내려갔다.권하윤 스스로도 지금의 자기가 그저 짐짝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귀찮아하기는커녕 권하윤이 모든 걸 자기한테 의존하는 걸 즐기는 듯했다.그렇게 신발을 신을 때가 되자 권하윤은
권하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앞에 있던 사람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넘어졌다.하지만 민도준은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미안함도 없이 오히려 권하윤을 품 안에 안고 강수연을 향해 씩 웃었다.“어이쿠, 다섯째 숙모였네요. 죄송해요.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괜찮으세요?”이 시각 민도준을 보는 강수연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고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우리 승현이 돌려줘. 아무리 그래도 걔는 네 동생이야. 잘못했다고 해도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게다가 잘못한 걸로 따지면 네가 승현이한테 먼저 미안한 짓을 했잖니. 승현은 그저 너무 어려서 홧김에…….”하소연하는 강수연의 말을 들어보니 민승현이 이틀 동안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었다.강수연은 이틀간 찾다가 찾지 못하고 끝내 여기로 온 거고.민도준은 민승현이 실종됐다는 말에 약 2초간 멈칫하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승현이가 실종됐다고요? 그렇게 큰일을 왜 이제야 말하게요? 일찍 말했다면 저도 도왔을 텐데. 벌써 이틀이나 지났으니 죽었을지도 모르겠네요.”“너!”강수연은 눈앞이 캄캄해져 뒤통수를 잡고 말을 잇지 못했다.그때, 한참을 서 있다 보니 권하윤은 다리에 또다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해 몸의 무게중심을 살짝 민도준에게 나누며 뒤로 기댔다.하지만 움직이기 바쁘게 민도준이 권하윤을 번쩍 들어 안으며 입을 열었다.“다리 아파?”그래도 앞에 시어머니가 될 뻔한 사람이 서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권하윤은 어색했다.아니나 다를까 권하윤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강수연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권하윤! 너와 승현이는 그래도 부부가 될 뻔한 사이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너한테 직접 파혼도 하지 않던 승현이가 사라졌다는 데 돕지는 못할망정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사람이라면 그래도 승현이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야 하는 거 아니니?”“하.”순간 짤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러더니 민도준이 눈을
민도준이 민승현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이런 순간 민승현이 사라졌으니 모든 사람이 민도준을 의심할 게 뻔하다.게다가 민승현을 납치한 사람이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을 테고.민승현이 아무 일도 없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사고라도 당한다면 이 모든 책임은 민도준에게 씌워질 거다.동생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분노를 살 텐데 더욱이 제수씨인 자기의 그렇고 그런 관계란 것만 생각하면 더 상상하기도 무서웠다.그런데 민승현이 죽기까지 한다면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이건 분명 도준 씨를 무너뜨리려는 수작이야.’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잔뜩 긴장해하는 권하윤과는 달리 민도준은 오히려 장난을 쳐댔다.“내가 급할 거 뭐 있어? 원래도 죽이고 싶었는데 직접 손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그게 어떻게 같아요!”권하윤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민승현은 권하윤과 민도준을 모두 죽이려 했다. 그러니 민도준이 똑같이 돌려주는 것도 성격상으로는 못 할 일이 아니다.하지만 직접 처리한다면 당연히 흔적도 남기지 않을 텐데, 다른 사람이 그걸 이용해 민도준을 무너트리려 한다면 그건 또 다르다.게다가 강씨 가문까지 있으니 일은 더 심각하다.강씨 가문은 물론 민씨 가문과는 비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오래된 재벌가이기에 그 뿌리는 매우 깊다.더욱이 강씨 가문 노부인이 민승현을 어릴 때부터 아껴 만약 진짜 민도준이 한 짓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피바람이 불 게 뻔하다.그 결과를 상상만 해도 머리가 찌근거려 권하윤은 얼른 민도준의 팔을 잡았다.“아니면 사람을 불러 민승현을 얼른 찾아보는 게 어때요? 데려오게.”“데려온다고?”민도준은 눈을 들어 권하윤을 힐끗 바라봤다.“왜? 설마 민승현한테 아직도 감정이 남았어? 이렇게 옛사랑을 그리워한다는 거 몰랐네.”안 그래도 조급한데 민도준이 농담을 하며 놀려대자 권하윤은 화가 나서 민도준의 가슴을 때렸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저도 도준
사람을 끄는 민도준의 얼굴을 보며 권하윤은 잠깐 넋을 잃었다.돌이켜보면 권하윤은 한 번도 민도준의 속내를 안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게 민도준의 행동은 언제나 알 수 없었으니까.‘그만하자. 이미 떠나기로 결심했으면서 이런 걸 고민해서 뭐 해?’‘도준 씨한테는 나보다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는 아내가 더 필요하잖아. 지금은 민승현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해.’어찌 됐든 권하윤이 아니라면 민도준은 매번 다른 사람 앞에서 약점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생각을 정리한 권하윤은 일부러 자기감정을 숨기기 위해 민도준을 살짝 밀었다.“저랑 이렇게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 게 아니라 얼른 민승현이나 찾아요.”하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권하윤의 손을 덥석 잡았다.“나더러 어디 가서 찾으라고?”하긴, 경성처럼 이렇게 큰 도시에서 사람 하나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숨기려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한참을 생각하던 권하윤은 끝내 입을 열었다.“혹시 민용재 짓일까요?”진씨 가문이 칩 기술 응용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욱이 그 상품이 시장에 유입되면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할 거고. 그때가 되면 민용재는 과학기술 단지를 계속 차지하고 있을 수 없을 테고 민씨 가문 산하의 모든 기업도 주인이 다시 바뀌게 될 거다.그러니 그 성격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아마도.”민도준은 무심하게 대답하며 권하윤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돌돌 감았다.“급할 거 뭐 있어? 민승현이 죽으면 알게 될 텐데.”민도준은 이렇게 말했지만 권하유는 민도준처럼 한가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에 눈을 내리깔고 한참을 고민했다.“사실,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박씨 가문과 혼인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해요…….”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권하윤의 머리카락을 돌돌 감던 손이 꽉 힘을 주며 머리를 잡아당겼다. 물론 아플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스스로도 말하고 넋을 잃은 권하윤의 정신을 다시 불러오는 건 충분했다.눈을 들어보니 민도준이 차가운 눈빛
손가락 끝에 갑자기 차가운 느낌이 전해지더니 루비 반지가 눈에 들어오자 권하윤은 잠깐 멍해졌다.무거운 마음이 순간 아래로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하더니 권하윤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려고 할 때 민도준의 손이 권하윤의 손가락을 잡았다.루비 반지는 새하얀 권하윤의 손을 마치 예술품처럼 만들어 주었다.이윽고 웃음기가 섞인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며칠 늦었지만 완전히 늦은 건 아니지?”다시 그 반지를 보는 순간 권하윤의 기분은 완전히 달랐다.고작 며칠이 흘렀지만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지난번에 이 반지를 볼 때 권하윤은 결혼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속박당하고 있다고만 느껴졌다.잠자기 전 권하윤이 반지를 빼려고 하자 민도준은 바로 막았다.“뭐 하는 거야?”“아직 적응이 안 돼요…….”“끼다 보면 적응돼. 얼른 자.”-민도준의 말대로 일주일이 지나자 권하윤은 반지에 적응했을 뿐만 아니라 별장에서의 생활도 적응했다.낮에는 민도준이 없다 할지라도 밤마다 찾아와 저녁식사를 함께했으니.게다가 식사가 끝나면 권하윤의 옆에서 민도준은 좋아하지도 않는 드라마를 같이 보곤 했다. 심지어 며칠 보고 나니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까지 외웠다.오늘 마침 무서운 부분이 나오는 장면인데 권하윤은 하필이면 주스를 많이 마셔 화장실에 다녀왔다.하지만 떠나기 전 민도준에게 제대로 보고 말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그러다 다급히 나왔을 때, 권하윤의 발걸음은 거실에 멈췄다.소파에 앉은 민도준이 눈살을 찌푸린 채 티브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분명 권하윤의 드라마 스타일을 뭐라 말하더니 이 시각 민도준은 인내심 있게 드라마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 권하윤은 마음이 누그러들었다.이윽고 며칠간 억눌렀던 감정이 고개를 쳐들었다.습관은 참 무서운 건가 보다. 분명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여러 번 되뇌었는데 결국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습관이 나오는 걸 보니.일주일 전 권하윤은 자유가 고팠고 정상적인 생
민도준은 침대 옆에 앉아 권하윤을 힐끗 바라봤다.“왜? 이젠 화가 풀렸어?”크게 화난 것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다시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스로도 난감했는지 권하윤은 콧방귀를 뀌었다.“조금 휴식하다가 다시 화낼 거예요.”민도준은 그런 권하윤을 무시한 채 옆에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뭔가를 처리하는 것 같았다.그때 옆에서 민도준의 핸드폰을 본 권하윤은 눈이 반짝이더니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가 기댔다.“도준 씨, 뭐 해요?”권하윤은 그저 핸드폰으로 말을 꺼내 자기한테도 전자기기를 줄 수 없는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핸드폰 액정에 비친 문자를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도준 형, 은찬이 찾았어.]은찬이…….순간 은찬이가 은우의 동생이라고 하던 공태준의 말이 생각났다.권하윤은 이미 성은우에게 미안한데 만약 은찬이마저 일이 나면 자기를 용서하지 못할 거다.순간 회상에 잠긴 권하윤은 민도준이 이미 핸드폰을 꺼버렸다는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민도준의 말에 방금까지 머리를 굴리던 권하윤은 침대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슬쩍 바라봤다.이윽고 바른 태도로 사과하기 시작했다.“방금 제가 실수로 핸드폰 문자 내용을 봐버렸어요.”“응. 그래서?”“그래서…….”권하윤은 슬그머니 민도준의 눈치를 살폈다.“은찬이를 찾았다는 걸 봐 버렸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민도준은 침대 머리에 기대며 악랄한 기운을 내뿜었다.“감히 내 눈앞에서 수작질을 했는데, 내가 어쩔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순간 권하윤의 가슴은 쿵 하고 가라앉았다. 민도준의 성격대로 한다면 은찬은 아마 죽지 않으면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그 생각에 권하윤은 손가락으로 이불을 꽉 그러쥐었다.“사실 은찬이가 예전에 저를 잘 챙겨줬었는데 그저 한번 실수한 것뿐이에요. 아직 어린애인데 그냥 놔주면 안 돼요?”“걔가 어떤 짓을 했는지 기억나게 해줄까?”사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지금도 은찬이가 자기에게 미약을 사용할 때 느꼈던 놀라움이 생생하니
“그래, 나도 그건 알아.”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모르는 건 하윤 씨가 나를 얼마나 더 오래 속일 건가 하는 거지.”일주일간 돌아온 혈색이 순간 사라지더니 얼굴이 백지장으로 변했다.“저…… 일부러 속이려던 게 아니에요. 무서워서 그랬어요.”“응?”살짝 올라간 끝 음에 권하윤의 심장도 더 빨리 쿵쾅거렸다.아마 권하윤의 삶에 이제는 민도준뿐이라서 민도준의 모든 기분이 권하윤을 좌지우지하는 모양이었다.더욱이 민도준이 매번 화를 낼 때마다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었으니까.일이 악화할까 봐 권하윤은 매번 거짓말을 해대고 들통나면 또 무서워 벌벌 떠는 악순환에 놓여있다.게다가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니 권하윤은 점점 더 둔감해졌는지 지금도 한참을 생각해도 뭐라 말해야 할지 합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오히려 몸을 부들부들 떨며 민도준의 팔을 꼭 잡았다.그건 민도준을 무서워하면서도 의지하는 표현이었다.하지만 민도준에게는 잘 먹혀들어 간 모양인지 민도준은 끝내 권하윤의 등을 문지르기 시작했다.“그래서 나를 속이고 싶지 않다 이거지?”갑자기 부드러운 말투로 돌아온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어리둥절해서 둔감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래, 그럼 은찬이 풀어줄게.”“진짜요?”권하윤은 믿기지 않는 듯 민도준을 멍하니 바라봤다.“응, 하윤 씨가 말한 것처럼 얌전히 있은 보상이야.”민도준이 고분고분해진 모습에 권하윤은 입을 벌린 채 한참이 지나서야 기어들어 간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민도준은 그런 권하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나한테 그렇게 내외할 거 뭐 있어?”권하윤은 말을 더 하다간 실수라도 할까 봐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민도준의 가슴에 기댔다.이런 고요함은 이튿날까지 지속되었다.권하윤은 말이 적어졌고 좋아하던 드라마를 보는 것조차 흥미를 일으키지 못했다. 마치 하루아침에 활기를 잃은 것처럼.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온 것뿐이었다.늦은 밤 민도준은 이불 안에 쪼그리고 누운 권하윤을 보고는 열쇠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
불빛이 타오르더니 민도준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왜? 부러워? 너한테 이 기회를 넘겨줄까?”그 말에 최수인은 이내 손사래를 쳤다.“나한테 그런 복이 어디 있다고. 상대는 너를 원하지 나를 원하는 거 아니잖아. 그런데 너 박씨 가문 딸을 윤이 씨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거 그쪽에서는 괜찮대?”민도준은 그 말에 담배 연기를 후 내뱉으며 눈을 흘겼다.“내가 방패막이로 사용한다고? 스스로 달려든 거거든.”결혼식 전날 박씨 가문에서는 민도준과 박민주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퍼뜨리고는 나중에 결혼식을 비밀리에 진행하자 더 마음대로 날뛰기 시작했다.때문에 외부 사람들은 박민주와 민도준이 이미 결혼한 줄로 알고 있다.이런 행동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게 뻔한데 박씨 가문 가주가 딸을 생각해 세운 계략이란 것만은 알 수 있다.우선 민도준이 “제수씨”와 결혼한다는 걸 민씨 가문에서는 원래도 쉬쉬하기에 허위소문을 퍼뜨려도 해명하지 못할 테고, 둘째는 박씨 가문에서 이 “혼인”으로 민도준에게 묻어가려 하기 때문이다.더욱이 박민주가 민도준을 그렇게 좋아하니 아무리 허울 좋은 껍데기라도 딸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아버지 마음일 거다.게다가 한발 물러서서 생각한다 해도 두 가문에서 이번 일에 동의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민도준은 어느때곤 부인할 수도 모두 헛소문이라고 나서서 말할 수도 있다.하지만 지금은 그저 민상철을 상대해야 하기에 잠깐 박씨 가문을 이용하는 것뿐이다.최수인은 이런 재벌가들의 암투에 흥미가 없었기에 듣다가 이내 하품을 해댔다.“그런데 너 너네집 영감탱이 신경도 쓰지 않았었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왜 상대하는데?”“공태준이 영감탱이 찾아갔었거든.”최수인은 그 말에 하던 하품을 억지로 넘기고 놀란 듯 물었다.“뭐? 그럼 그 자식이 설마 윤이 씨 일을?”민도준이 부인하지 않자 최수인은 끌끌 혀를 찼다.“공태준 이 능구렁이 같은 놈. 자기는 좋은 사람인 척하며 영감탱이 힘을 빌린다 이거네! 상황이 아주 가관이구먼. 어쩐지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