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전날, 권하윤은 여전히 혼자 지냈다.분명 즐거운 분위기여야 할 별장은 오히려 한산하고 고요했다. 심지어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이런 상황 때문에 권하윤은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었다.분명 주인공인데 무시당하는 느낌이었으니까.점심을 먹은 뒤 권하윤은 적적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나 도준 씨한테 전화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그건 은찬도 결정권이 없는지라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한참 뒤 고개를 숙이고 돌아온 은찬을 보자 권하윤은 어느 정도 답을 짐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체념할 수 없었다.“안 된대?”“네…….”은찬은 약 2초간 머뭇거리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에이, 어느 신랑 신부가 신혼 전날 같이 자는 게 있어요? 옛말에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면 신혼보다 더 행복하다고들 그러잖아요. 그러면 신혼 첫날밤에 마른 장작에 불붙듯 막 타오를 거 아니에요…….”“됐어.”권하윤은 은찬의 말에 부끄러웠는지 일부러 화를 내는 척했다.“계속 헛소리하면 이번 달 보너스는 받을 생각도 마.”“누나, 미안해요. 화내지 마요. 저 다시는 안 그럴게요.”은찬은 올해 17살이라 동생 이시영과 비슷한 나이다. 때문에 권하윤은 은찬을 볼 때마다 자기 동생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솔직히 진짜 화를 내지도 못한다. 당연히 방금 한 말도 농담이고.하지만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안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만 가 사람을 괴롭혔다.오후, 답답한 침실 공기 때문에 권하윤은 창문을 열어 놓고 바람을 쐬었다.권하윤도 민도준이 바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기한테 말 몇 마디 할 시간조차 없는지 그게 의문이었다.‘내일이 결혼식인데 결혼식에서 봐야 하나?’‘결혼식은…… 무사히 끝나려나?’권하윤은 생각할수록 불안했다. 전에는 민도준의 심기를 건드렸다 해도 권하윤이 애교만 부리고 잘못을 인정하면 민도준이 권하윤을 방치해두는 일은 없었다.그런데 어제 분명 멀쩡했는데 왜
민도준은 자기 옷소매를 잡은 작은 손을 힐끗 보더니 약 2초간 멈칫하다가 이내 떼어내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꿈속에서 권하윤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자 놀랐는지 잠에서 깨어났다.눈을 뜬 순간 보이는 뒷모습에 권하윤은 다른 건 상관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침대에서 내려와 민도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작은 얼굴을 민도준의 등에 파묻은 권하윤은 입을 열기도 전에 서러워 눈물부터 나기 시작했다.며칠간 참아왔던 서러움이 한순간에 모두 눈물이 되어 왈칵 쏟아져 내렸다.“왜 저 방치해요? 설마 후회해요? 저랑 결혼하기 싫어요? 저 요즘 매일 악몽 꿔요. 저 너무…… 무서워요…….”권하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다 끝내 흐느낌으로 변하더니 눈가에 맺힌 눈물이 점점 민도준의 옷에 스며들어 등에 느껴졌다.민도준은 자기 허리를 두른 손을 떼어내고 돌아서더니 너무 울어 얼룩 고양이가 되어버린 권하윤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다가 끝내 목울대를 울렁이면서 한마디를 내뱉었다.“울지 마.”권하윤은 그 말에 위로받지 못한 채 고개를 들어 민도준을 바라봤다.“혹시 저랑 결혼하기 싫어요? 말해 줘요. 저 절대 떼쓰지 않을 게요…….”고개를 뒤로 젖힌 채 강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지만 눈물을 자꾸만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민도준은 권하윤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끝내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었다.“됐어. 후회 안 할게. 그러니까 울지 마.”그 말에 권하윤은 민도준의 손길을 피한 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기뻐서가 아니라 민도준의 말이 후회했다는 걸 증명해 줬기 때문이었다.손바닥에 고였던 눈물은 옆으로 흘러내렸고 어깨가 들썩인 탓에 긴 머리가 옆으로 흘러내렸다.그렇게 한참을 우는가 싶더니 권하윤은 몸을 돌려 눈물을 닦았다.“만약…… 후회되면 결혼은 없던 일로…….”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민도준은 권하윤을 품에 끌어당기며 꽉 끌어안았다.등에 닿은 손이 얼마나 힘 있었는지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분명 아팠지만 권하윤은 이 순간만큼 자
권하윤은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다 좋아요.”권하윤의 얼굴에 드리운 두려움이 너무 선명하여 민도준은 권하윤을 안고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그러고는 권하윤의 손등에 위로가 담긴 키스를 했다.“착하지, 무서워할 거 없어.”그래서일까? 뜨거운 온도가 차가운 손등에 남아 마치 화상을 입은 듯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았다.그러던 그때 옷을 들고 욕실로 걸어가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이내 물었다.“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예요?”그 물음에 동작을 잠깐 멈춘 민도준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돌아섰다.“왜? 내가 있는 게 싫어?”“아니요…….”권하윤은 눈을 내리깔았다.“그런데 신혼 전날 신부와 신랑은 같이 자면 안 된다고 하지 않나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턱이 위로 들리더니 민도준은 권하윤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자기야, 내가 어떻게 우리 자기 혼자 자게 내버려 두겠어?”권하윤은 뻣뻣한 자세로 민도준의 손에 이리저리 휘둘리고는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올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이틀 전까지는 그저 의심만 했다지만 이제 권하윤은 확신할 수 있었다.민도준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고.아직 까놓고 말하지 않은 걸 보면 그저 조사 중에 있는 게 틀림없다.어쩐지. 요 며칠 동안 민도준을 찾지 못해 대신 한민혁을 찾으려 할 때 경성에 없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아마 그 원인일 거다.민도준이 계속 나타나지 않은 것도 한민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 테고.그렇게 소식을 접하면 권하윤을 어떻게 처리할지 답을 얻겠지.꽉 움켜쥔 이불은 한껏 쪼그라들었다. 마치 권하윤의 심장처럼.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날이 닥치자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괜찮을 거야. 난 한 번도 가족의 이름으로 춤을 춘 적 없으니까 도준 씨도 쉽게 찾아내지 못할 거야.’권하윤은 애써 자기를 위로하며 진정하려고 애썼다.‘그 전에 그 전에 가족에게 알리거나 누군가를 찾아 도준 씨를 막아야 해.’그 순간 떠오르는 공태준
“하윤 씨, 일어나 봐요. 일어날 시간이에요.”눈을 뜬 순간 앞에 보이는 민시영의 모습에 권하윤은 자기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하지만 민시영은 끈질기게 권하윤을 흔들어 깨웠다.“차가 벌써 도착했어요. 일어나야 해요.”아까보다 더 선명해진 목소리에 권하윤은 그제야 잠에서 깨어났다.“시영 언니? 여긴 어쩐 일이에요?”민시영의 표정은 잠시 굳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오늘 하윤 씨와 도준 오빠 결혼식인데 제가 당연히 와야죠.”민시영의 어색한 미소를 보니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하긴, 제수씨가 새언니가 되는 상황인데 이런 추잡한 일은 사람이라면 모두 껄끄러워 할 거다.화장실에서 찬물 세수를 한 권하윤은 그제야 정신이 또렷해졌다.이윽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왔을 때 민시영은 마침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보는 순간 권하윤은 마음이 움직였다.“시영 언니, 저 핸드폰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민 사장님한테 전화해 보고 싶어요.”민시영은 그 말에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이따가 블랙썬에 가면 만날 텐데, 그때 얘기해요.”물론 완곡히 거절했지만 어색한 동작에서 권하윤은 민시영이 미리 당부를 받았다는 걸 알아채고는 더 이상 부탁하지 않았다.조금 뒤에 화장을 해야 하기에 권하윤은 생얼로 차에 올랐다.차를 운전하는 경호원은 매우 엄숙해 보였고 얼굴에 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조수석에는 이미 한참을 기다린 은찬이 앉아 있었다.권하윤을 보자마자 은찬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민시영을 보자 말을 도로 삼켰다.이토록 괴이한 분위기 속에서 권하윤은 블랙썬에 도착했다.물론 떠들썩하고 흥겨운 분위기가 아닐 거라고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도착하고 나서야 권하윤은 블랙썬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는 걸 발견했다. 그 순간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심지어 핏기 하나 없던 창백한 얼굴은 화장 덕에 겨우 생기가 돌았다.웨딩드레스로 옷을 갈아입은 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방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권희연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민시영도 함께.하지만 이미 이런 상황을 미리 짐작했기에 권하윤은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권희연은 들어오기 전부터 문밖을 지키고 있는 수맣은 경호원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홀로 외로이 앉아 있는 권하윤을 보자 미간에 근심이 더해졌다.갑자기 결혼식을 치른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도 놀라운데 식장이 블랙썬인 것도 모자라 인질이라도 지키는 듯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니.이건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결혼식이 아니었다.하지만 민시영이 곁에 있었기에 권희연도 뭐라 말하지는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권하윤의 팔을 잡았다.“하윤아, 너 괜찮아?”권하윤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언니는? 로건 씨와는 잘 돼가?”로건을 언급하자 근심이 서려 있던 권희연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더니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잠시 잡담을 나누는 사이 민시영도 사이사이 대화에 끼어들었다.언변이 뛰어난 데다 활발한 성격 덕에 대화는 어색해질 리 없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가 들어와 권희연에게 이제 가봐야 한다고 말을 전하는 바람에 권희연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통제하는 건 마치 감시를 받는 것 같았으니.이에 권희연은 결국 다른 걸 관계할 겨를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하윤아,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랑 민 사장님…….”“희연 언니.”권하윤은 권희연의 손을 꼭 잡으며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꼬집으며 미소 지었다.“나 괜찮아. 밖에서 기다려. 이따 결혼식 시작하면 봐.”“그래.”권희연은 그제야 권하윤의 손을 놓았다.권희연이 나가자 민시영은 재밌는 얘기를 꺼내며 권하윤을 웃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권하윤의 기분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그저 권희연이 소식을 밖으로 전해줄 수 있는지만 걱정했다.민시영도 권하윤이 대화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알아챘는지 눈치껏 자리를 피해 권하윤에게
신부 대기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잇따라 경호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권하윤 씨,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2층으로 가시죠.”“알겠어요.”권하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드레스가 너무 크고 무거운 탓에 살짝 버거워 보이자 은찬이 얼른 다가와 부축했다.이윽고 훤히 드러난 권하윤의 어깨를 보고는 코트 하나를 챙겨 권하윤에게 걸쳐주었다.“조심해요.”엘리베이터에 오르자 권하윤은 혼자서 거의 모든 공간을 차지했다. 심지어 길게 늘어진 드레스 끝자락 때문에 사람이 발 디딜 공간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이에 경호원이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권하윤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탔다가 제 드레스가 더러워지면 어떡해요? 다음 차례를 기다려요.”권하윤의 말에 경호원들이 난감한 듯 머뭇거렸고 그걸 눈치챈 은찬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을 보태며 겁을 주었다.“이거 절대 작은 일 아니에요. 드레스가 더러워지면 민 사장님이 댁들 가죽을 벗길 수도 있다고요.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도 곧 올라올 테니 그거 타고 내려와요. 제가 먼저 하윤 씨와 함께 내려갈 테니까.”몇 초 차이 나지 않는 데다 별로 멀리 떨어진 거리도 아닌 옆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기에 경호원들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그 덕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고 권하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옆을 바라봤다. 이 시각, 엘리베이터에는 권하윤과 은찬이 둘뿐이었다.하지만 은찬이 옆에 있든 말든 권하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는 공태준이 자기 말대로 5층에서 기다릴지에 관한 생각뿐이었으니.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권하윤은 권희연에게 준 쪽지에는 그저 [공태준한테 5층에서 만나자고 전해줘요]라는 한마디밖에 적지 않았었다.목적은 민도준이 지금 자기를 의심한다는 걸 공태준에게 알려주어 민도준이 자기 가족을 찾지 못하게 부탁하기 위해서다.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결혼식이 끝난 뒤 권하윤은 별장에 갇힌 채 외부와 단절될 테니까.은찬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권하윤은 5
“민 사장님, 공 가주님은 이미 가셨습니다…….”“당장 쫓아.”“네.”최수인은 더 이상 농담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람을 불러 은찬을 깨웠다.그로부터 몇 분 뒤, 겨우 눈을 뜬 은찬은 민도준과 바닥에 놓인 웨딩드레스를 보고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더듬더듬 말을 시작했다.“민 사장님,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최수인은 옆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에 얼른 손을 저으며 끼어들었다.“쓸데없는 얘긴 그만하고, 우리 예쁜 윤이 씨가 어떻게 실종됐는지나 말해.”그제야 은찬은 울상이 되어 모든 사실을 토로했다. 게다가 경호원들이 말한 것과 거의 비슷했다.그때 라이터를 빙빙 돌리던 민도준이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스스로 떠난 거야? 아니면 공태준이 협박했어?”“그게…… 스스로 떠났습니다.”은찬은 자책하며 울먹였다.“권하윤 씨가 저더러 외투를 가져다 달라고 할 때 눈치챘어야 하는데. 다 제 잘못입니다.”물론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권하윤이 내려갈 때 외투를 챙겼다는 것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걸 간접적으로 설명했기에 현장 분위기는 한층 더 다운되었다.“오늘 누구랑 만났었지?”어둡고 무거운 민도준의 목소리에 은찬은 로건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쭈뼛거리며 말을 내뱉었다.“시영 아가씨 외에…… 권희연 씨밖에 없습니다.”그 시각, 권희연은 2층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공태준이 떠난 후부터 권희연은 긴장을 한 시도 늦출 수 없었다.더욱이 권하윤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자 권희연은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에 연신 문 쪽을 힐끗거렸다.그리고 그때.“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발에 걷어차이며 활짝 열렸다.빛을 등진 채 걸어오는 남자를 본 순간 권희연은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포악한 기운에 주위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쳤다.그걸 로건도 느꼈는지 민도준이 권희연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얼른 앞에 막아섰다.“민 사장님…….”“네가 내 곁에서 고생한 세월도 있
그 시각, 차 안.운전석에 앉은 민도준은 바로 시동을 걸지 않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는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최수인이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아직 출발하지 않은 민도준의 차를 보자 얼른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탔다.“공태준이 리조트로 가고 있다는 거 알아냈잖아. 그런데 왜 따라잡지 않아?”그 말에 민도준이 최수인을 힐끗 바라봤다.“내가 조사하지 않으면 이런 함정을 파느라 수고한 공태준의 노력을 저버리는 거잖아.”그러던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최수인은 귀를 세우고 민도준과 전화 건너편 사람의 대화를 엿듣다가 대충 전용기와 항로라는 단어를 어렴풋이 들었다.그제야 최수인은 차가 리조트로 향하고 있다는 건 그저 함정이라는 걸 알아챘다.경성은 민도준의 구역이나 마찬가지기에 공태준이 권하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지 않은 이상 민도준이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때문에 경성 바닥을 빨리 뜨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렇기에 민도준이 전용기를 막는 건 그 근원을 잘라버리는 거나 다름없다.‘쯧쯧, 역시 대단해. 고단수야!’그렇게 속으로 감탄하는 사이, 전화를 끊은 민도준이 핸드폰을 뒤로 던져버리고는 엑셀을 밟아버리는 바람에 최수인은 앞에 코를 박고 말았다.그 시각,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던 차가 한번 흔들리는 바람에 쓰러져 있던 사람은 순간 정신을 번쩍 차렸다.권하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웬 남자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 심지어 그 남자는 권하윤의 머리 뒤에 손을 받쳐 권하윤이 더 편히 잘 수 있게 도와주었다.어렵사리 정신을 차리며 일어난 순간 공태준의 얼굴이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머리 아파요? 물 마실래요?”약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 그런지 권하윤은 일어나 앉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부축하려고 내민 공태준의 손을 고민도 없이 뿌리쳐 버렸다.정신이 아무리 흐릿하다고 해도 권하윤의 눈에 드리운 혐오감은 선명하기만 했다.“공태준, 당신 참 역겨워.”공태준은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미안해요. 난 그저 윤이 씨에게 보